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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었던 니드호그는 깨워서 보내줬을 무렵. 다프네와 레오파드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끊임없이 다프네는 계속 질문을 해오고 있었다. 그것도 마법의 지배하는 최강의 생물이라고 칭하는 드래곤인 가이로안 씨가 아닌 나에게. 적어도 땅의 원소에 관련된 마법이라면 최상위에 속할 텐데. 자신이 마법을 사용할 것은 마법진과 영창이 아닌 수식에 관련된 근접전투마법이었다.

 

거절하고는 싶었는데 어느 순간 레오파드가 사라지는 바람에, 화장실이라도 갔으리라 생각하고 시간 때우기로 마법을 알려주고 있을 무렵. 다프네의 허공의 삽질이 담겨있는 의미불명의 말을 꼭 내 귀로 들어야만 했다.

 

머리 속에서 수식을 연결한 뒤에, 그냥 발동!’이라고 외치기만 해도 나가는 건가요?”

 

발동이 아니라 트리거 보이스를 따로 외쳐야 한다고. 마나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준다면 그저 말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트리거 보이스도 영창의 한 종류야. 자신의 의지를 담아 외치는 것으로 형상을 확실히 해주고, 세부적인 것은 수식에 있는 변수들을 조정한다. 그게 기본이라고. 나야 마나의 축복을 받아 친화력이 우수하니 상관 없지만, 너는 지금도 마나 연공법이 제대로 되지도 않아서 항상 발동할 때 마나 소드라고 외쳐야 해.”

 

마법도 자주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때문에, 숙련되면 트리거 보이스가 필요 없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마법을 배울 때는 익숙하지 않기에, 그 형상을 떠올리기 위한 언어로 트리거 보이스를 외치게 되는 것. 엘티노스가 작성한 책에서는 마법의 기초가 영창, 마법수식, 마법진에 있으며. 각각 효율과 장단점이 다르다는 것쯤은 너무 많이 봐왔기에 눈을 감고 외울 지경이다.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면, 마법을 처음 배울 때는 이 3개를 모두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다프네의 경우에는 마법진을 그리고 싶지 않다고 해서, 머릿속에 수식과 트리거 보이스를 이용한 짧은 영창만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융통성이 없는 것인지 독학으로 마법을 배워와서 그런지, 아까 나에게 날렸던 파이어 볼도 그렇고 너무 조잡했다.

 

잘 알아들어. 영창과 머릿속에 수식, 그리고 마법진을 마나로 그려 넣을 수만 있다면, 3개 만으로도 각기 다른 목적의 화염구를 만들 수 있어. 지금 네가 새로 배우려는 마나로 이루어진 검도 그렇고.”

 

왜 하필 마나 소드<Mana Sword>를 배우려고 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호신술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도, 끝맺음을 확실히 지을 마법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화염구는 폭발하게 되면 자신의 마나로 이루어졌기에 면역이지만, 레오파드가 다칠 수 있다는 계산이 들어갔는지, 정말 급할 때만 사용하는 마나 소드를 알려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마법진을 벽이나 땅에다 그리고 대기시켰다가, 마나를 불어넣어 활성화를 하면 함정처럼 이용할 수 있고, 양피지에 적으면 마법석을 촉매로 했을 때, 누구든지 사용 가능한 스크롤이 완성되는 거야. 영창을 이용하면, 시전자의 의지와 소망이 담긴 목소리에 반응한 마나를 한 가득 담아 발동하기 때문에, 수식이나 마법진을 이용한 방법과는 다르게 폭발적인 위력을 뽑아낼 수 있지. 수식의 경우 변수를 조정하면 길이와 유지시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 특수한 경우 날아가는 경로까지 바꿀 수 있지. 이게 엘티노스가 말하는 마법의 기초야. 그러니, 제대로 마법을 사용하려면, 3가지 방법을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해.”

 

역시 공부는 깊게 하면 할수록 신기한 법이군요.”

 

다프네에 손에 나온 마나의 검은 아직까지 미숙하기에 단검처럼 길이가 짧았다. 만일 레시아가 다급하게 내 마나를 빌려서 검을 만든다면, 분명 거대한 대검으로 적들을 휩쓸었을 것이 분명했다. 무구가 정해져서 칠흑의 사브르가 대신 나오긴 하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다프네가 천천히 집중을 하는 사이에, 레오파드가 볼일이 다 끝났는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고마워요. 카일 씨. 덕분에 전학수속을 쉽게 밟았어요.”

 

고맙긴 뭘. 근데 뭐라고? 전학?”

 

. 카일 씨 이름을 대니까, 가이로안 교장님께서, 빨리 이쪽으로 전학수속을 밟자면서 바쁘게 서류를 준비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카일 씨를 만나면 루시피나라는 분에게 착실하게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 했어요. 그런데 루시피나가 누구에요?”

 

가이로안 씨가 루시피나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으니까. 분명 드래곤의 체급으로 보면 루시피나가 한 단계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라면 체급을 무시하는 막강한 전투력이겠지. 남에게는 꿈에 나와서 정신까지 날려먹을 법한, 공포의 대명사인 레드 드래곤을 앞에 있는 레오파드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내 신부야. 잡화점 멤버 중에 한 명이기도 하고. 내 목에 기이한 문양이 있잖아? 그게 용족혼인의 문양이야.”

 

. 드래곤과 결혼도 할 수 있군요! 저도 이곳 루체른 용기사 학교는 졸업을 하고, 용족과 혼인까지 해주는 유망한 학교였을 줄이야!”

 

감탄하듯 나를 바라봤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용기사 학교 출신이 아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내 경우에는 과거 엘티노스가 깽판을 부리며 깡패 노릇을 하던 시절에 언약으로 이루어진 결혼이고, 그 학교에 다니는 용족이 마음에 들어 해야 혼인을 하던 말던 하겠지.

 

잠깐만? 그러면 네가 파이론에서 다니고 있는 학교나 거주지는?”

 

그야 다 옮겼죠. 이래 보여도 저는 아우리온 공화국의 차남이에요.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은 철저하게 받으며 자랐죠.”

 

예쁜 용족과 손잡고 연애할 망상에, 행복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레오파드와 달리 근심, 걱정, 불안감이 3박자가 조화를 이루며, 표정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다프네. 저 둘은 내가 직접 이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생겨버렸다.

 

앞으로 도련님께선 이곳에서 생활하시고 학교에 다니시는군요. 그럼 저는 미리 집으로 돌아가 청소를...”

 

괜찮아. 다프네. 너도 이곳 학교로 입학수속을 밟아놨어. 예전부터 마법에 대해 관심 있다고 했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같이 다니면서 생활을 하면 굉장히 좋을 거라고 생각해.”

 

천진난만하게 웃는 레오파드에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자라난 본능과, 지금은 내가 있으니 나중에 따로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내적 갈등으로 인해, 작은 몸부림을 치고 있는 다프네. 내가 있어서 정말 미안하니. 슬슬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학교의 복도를 걸어가면, 군청색의 바탕을 하고 있는 교복의 겉옷과,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이기에 안에는 연노랑, 혹은 갈색의 가디건을 감싸고, 남자와 여자 구분할 것 없이 전부 군청색의 긴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교복으로 사용될 면바지는 고급원단으로 사용한다고 하던데, 가이로안과 메이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을까? 거대한 건물 안에 회랑을 지나가면서 외부자인 내가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레시아와 시나가 오기 전에 이곳에서 탈출해야 하지만, 공간이동도 잡화점으로 가는 긴급귀환마법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드라고니스 언덕에 있는 초원으로 올라갔다. 루시피나와 처음 만났던 장소를 올라가 언덕에서 쉬고 있을 무렵. 차갑게 지나가는 바람 뒤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죠?”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직감해버렸다.

검은 양갈래 머리를 한 루비아가 무녀복장을 입은 상태로 날 찾았으니까.

 

당신을 찾아오라는 아랑님의 명입니다.”

 

일처리가 빛의 속도를 넘어 태양풍을 맞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라도 했을까? 기가 막힌 내 얼굴이 루비아의 검은 심연이 가득한 눈동자로부터 반사가 되었다.

 

안 가.”

 

여장 때문입니까?”

 

핵심만 집으며 이야기 하니 머리에서는 짜증만 날 따름.

 

맞아. 어차피 내가 여장해봤자 안 어울려.”

 

먼 옛날. 간호사 복장을 하며 찾아왔을 때는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쓸 때 없는 것에 대해 기억력은 정말 좋군. 그 기억을 내가 날려버리는 것에 동의하냐?”

 

당신처럼 연약한 사람에게 당할 정도로 평화로운 삶은 살지 않았습니다.”

 

나더러 연약하다고 단정까지 지은 루비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죄책감보단 짜증이 나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랑의 명령으로 얼굴도 보기 싫은 남자가 안 간다고 발악을 하고 있으니, 너도 마음속에서 분노가 솟구치고 짜증이 머리를 갉아먹는 기분이겠지? 티르가 만든 호문쿨루스는 인간과 똑같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최고의 걸작품일 테니까.”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기초에도 생명체이기에 감정은 있다. 지능이 있는 지성체뿐만이 아니라, 본능으로 살아가는 동물조차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니까.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루비아는 의도적으로, 남의 앞에서 감정을 철저하게 감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브센티아를 멸망시켰던 건 나야. 그러니 너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에 대한 증오가 있겠지. 나를 감싸던 루비아 씨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으니, 산 사람에게 후회하지 말라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어. 결국 그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니까. 그러니 너도 나에게...”

 

당신은 틀렸어요.”

 

내가 말을 잘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끊어버렸다. 무엇이 납득을 하지 않는 것인지, 루비아는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를 볼 때마다 불안해하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죄책감에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그 진실이, 결국 당신의 가면을 벗겨버린 거겠지요.”

 

뭐라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걸음이 멈췄다. 사뿐 사뿐하게 풀을 밟는 소리가 멈추고, 루비아는 하염없이 냉정하고 차갑게 선고했다.

 

당신은 연약한 사람입니다. 혼자 있을 때만큼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하네요.”

 

시끄러워. 이제 와서 나에 대해 다 아는 척을...”

 

레인이라는 남자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죄책감에서 해방하는 길이 필요하다면, 저 역시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박하게 저를 설득하고 또 설득을 했죠. 기나긴 삶을 무녀의 본분으로 다시 살아오며 느낀 것이라면, 루비아와 당신의 끝맺음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당신을 좋아합니다. 300년전 과거. 이브센티아에서 처음 봤던 그 시절부터 반해있었습니다. 절 잡화점 멤버로 넣어주세요.”

 

머리를 박살낼 정도로 충격적인 말은 내 생전 처음 들어봤다. 방금 이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한 거지? 방금 전에 세차게 불던 강풍이 내 고막을 찢어놓길 간절히 바랬지만, 호문쿨루스의 소행이 아닌, 진짜 루비아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계속해서 나를 직시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이브센티아의 재앙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너를 잡화점에 귀속시키라는 말이야?”

 

정확히는 당신과 루비아가 같이 지내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루비아와 이브센티아 주민들에게 대한 죄책감이 늘러 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대신, 저를 아끼고 보살피며 속죄하는 방법이 좋다고 보고 있죠. 게다가 호문쿨루스라고 한들 당신의 말처럼 티르의 걸작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이 정도는 나을 수 있으니 밤이 외롭고 쓸쓸하시다면야 언제든...”

 

그런 걸로 타협을 하자고?

웃기지 마라.

이 죄책감은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거다.

더 이상의 자만심으로 모든 일을 수포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켜온 죄책감이란 말이다!

 

아냐. 너는 절대로 루비아 씨를 이해하지 못해. 그리고 너는 나를 나락으로 빠뜨리려고 하고 있어. 누가 그딴 달콤한 말에 넘어갈까 보냐! 넌 내가 우습냐고!”

 

뇌는 이성을 다스리기엔 이미 열이 잔뜩 올라버렸다. 북서풍의 찬 바람도 결국 내 머리는 식히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차가운 이성이 내 머리를 식히며, 내 시야에는 어느 사이에 다섯 발자국 정도 거리를 좁힌 루비아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신에게 반한 것은 과거의 내가 잘못한 것이니까요. 그 잘못은 지금도 저지르고 있답니다.”

 

문득 달콤한 향과 가녀린 양팔이 내 목을 감싸기 시작하면서,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나풀거리며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에게 닿을 듯한 눈은 어느새 입김으로 녹아버리고, 그 대신 루비아의 입술만이 천천히 입술에 내려앉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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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로 눈이 많이 내리네요.

다들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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