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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아오면 해가 뜨기 마련이지만,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감았기에 중천에서 놀고 있는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봉인 한번 되었다가 잡화점에서 잠이 들었을 때,‘이것이 과연 꿈인가? 환상인가?’라고 착각하면서 신선한 기분이 들었고, 루시피나는 레시아가 없는 지금이야 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언제인지 몰라도 내 옆에서 조용히 자고 있었다.

 

분명 나는 루시피나를 재우고 1층 바닥에서 잤을 텐데. 어느 사이에 이렇게 되어있는 모습은 그리 놀랄 것도 아니지. 지금은 이것보다 더 놀랄만한 일들이 내 앞에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우선 심신을 안정시키고 루시피나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기로 했다. 아직까지 조용한 잡화점의 내부에서 레시아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사키엘의 문을 이용해서 그나마 기억에 있던 마왕성으로 직접 갈 예정이다. 본래 용사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하지만, 내 경우에는 이미 혼인까지 한 사이가 아닌가?

 

어처구니 없게 당했다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갑작스러웠지만, 그래도 지금은 만나러 갈 수 있는 수단이 다양했다.

 

어차피 나는 용사가 아니라 잡화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 A라고 봐도 될 정도.

 

보통 평범한 사람 A가 물품을 들고 마왕성까지 찾아가 팔지는 않지만, 그래도 용사가 아니니까 직접적으로 싸우지는 않을 것이리라 믿어야지.

 

그래서 루시피나가 잠든 사이에 마왕성으로 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어머나? 카일~! 오랜만!”

 

마왕보다 더 극심한 최종보스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것을 보며, 사키엘의 문을 다시 닫아 목숨을 보존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내 멱살을 잡아챈 부드러운 손길이, 어마어마한 힘을 담아 저 멀리 반대쪽 벽으로 집어 던졌다. 내 시야가 잠깐 반전되어있는 사이에, 어마어마한 충격과 고통이 내 온몸을 쓸어 내리고 지나갔다.

 

아프잖아요!”

 

미안해. 카일을 오랜만에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만...”

 

반대편에서는 릴리 기사단장 시절과는 정 반대로, 검은 중갑을 입고 밝게 웃은 금발의 여기사. 루니아 누나가 나를 바라보며 반겨줬다. 루니아 누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남을 벽으로 집어 던지는 습관이 있는 건가? 여자를 울려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이 떠올랐지만, 루니아 누나를 울렸다간 다음 생에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어떤 인간이 눈물을 감추기 위해 사람을 집어 던져요!”

 

마왕성에 울려 퍼지는 절규가 담긴 태클이 사방팔방으로 확산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시아라던가 마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뭔가 특수한 장치라도 되어있는 장소라고 내 경험이 속삭이고 있는 사이에, 루니아 누나는 나에게 검을 던졌다. 그냥 주변에 있는 검 중에 하나를 던진 것 같은데...

 

잠깐만요? 저는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하지만 마왕님께서 시켰어요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상대를 하라고요오.”

 

레시아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요?”

 

모든 직업이 평등하게 루니아 누나와 검을 주고 받으라고? 설마 마법사나 성직자도 검으로 싸워야 하는 거 아냐?

평등할 것이 따로 있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우선 검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발상은 하지 않으시고 계시죠? 그것만 좀 물어보도록 할게요.”

 

검사에게 있어서 검이란 삶과 같은 법. 검사에 대한 예의라면 말이 아니라 검으로 부딪치면서 알아가는 법이랍니다아? 루나의 만화책에서는 그렇게 적혀있었어요오.”

 

그건 만화 이야기지 현실이 아니란 말이에요!”

 

얼떨결에 날아온 궤적을 눈으로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막아냈다. 이건 루니아 누나의 개인적인 시험이라고 봐도 좋은 건가? 마법을 다 잃어버린 나에게 남아있는 거라면 일반인보다 약간 더 튼튼하고 빠른 몸밖에 없다.

 

마나로 강화한 몸이 그립기 시작한 것은 3번째 검을 받아냈을 때부터, 팔이 저리기 시작하고 근육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흘려야 하는데, 그 흘리는 타이밍을 잘못 잡는 바람에 팔을 타고 내려와 다리까지 흔들렸다.

 

얼굴이 자동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아하니 카일이 너무 약해진 거 아닌가요오?”

 

루니아 누나는 대체 뭘 먹었길래 이렇게 강해요? 나중에 원펀치로 백신맨이라도 쓰러뜨릴 거에요?”

 

루니아 누나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옅게 붉혀진 홍조와 붉은 눈이, 장난은 여기까지라는 걸 알리기 시작했다. 보통 저런 경우에는 지는 순간 목숨은 나발이고 백장미에 찍힐 것 같았기에, 거리를 벌려서 자세를 다시 잡고 싶었다.

 

그럴 틈이라도 줬으면 좋겠는데 주지 않는 것이 문제지.

 

마법이 없는데 절 상대할 수 있겠어요오? 카일?”

 

무시하려고 해도 상대할 수 밖에 없잖아요!”

 

봉인에서 풀리고 난 다음 첫 대결이라고 하지만, 루니아 누나는 예전처럼 봐줄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 사자도 토끼를 사냥할 때는 전력을 다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루니아 누나가 전력을 내보이면, 내가 가루가 되는 건 시간문제.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아무리 마나가 없어도 전투를 많이 했으니 몸에 익혀진 프로세서는 사라지지 않았으리라.

 

저는 처음부터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거 기억하시나요?”

 

그건 갑자기 왜요오?”

 

루니아 누나는 아무런 자세를 잡지 않고 느긋하게 질문을 되돌렸다.

 

맨 처음부터 마법에 의지한 삶을 살아온 적이 없단 거에요. 루니아 누나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지금은 이 검으로만 상대한다는 소리죠.”

 

당연한 소리를 한 이유라면 혹시 그 소리와 정반대로, 그 안에 있는 마법공학 물품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 속셈은 아니겠지요오?”

 

내 허리춤 뒤로 몰래 움직이는 왼손이 경직되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아는 거지?

독심술이라도 쓰나?

 

지금의 카일이라면 많이 약해진 상태인 만큼, 잔꾀를 많이 생각했겠지요오? 그래도 누나에게는 소용없는 일이랍니다아? 누나는 카일에 대한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오.”

 

그거...참 무섭네요.”

 

자연에서 떠돌아다니는 야생동물을 멀리서 관찰하는 사람인가? 그래도 지금은 마음을 다 잡고 허리춤 뒤에 있던 물품을 꺼냈다.

 

그건 뭐에요?”

 

이거요? 안리아스의 수정구요.”

 

마법공학 물품은 맞지만, 그건 녹음과 녹화가 되는 수정구잖아요오?”

 

아니. 싸우기 전에 불편해서 빼려고 한 건데, 루니아 누나가 반정도 맞춰서 당황한 것뿐이에요.”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은 바닥에 가지런히 놓았다. 곧바로 날아드는 참격을 옆으로 굴러서 피하자, 또 다른 연격이 내 눈 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시작도 하지 않고 휘두르는 것은 비겁한 것은 아니고, 언제나 적의 공격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발생하는 거니까. 오히려 루니아 누나의 행동은 현실적이고 현명하다고 해야 하나.

 

-카앙!

 

롱소드의 옆면으로 막아내기에는 휘두르는 힘이 너무 무겁다. 불꽃이 튀면서 내 눈 안에 들어갈 정도로 선명했지만, 정신차릴 틈도 없이 내 복부로 날아오는 찌르기를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도록 허리를 뒤로 젖혔다.

 

림보를 할 때는 이것보다 더 낮게 한 경우는 없었는데. 허리에 강한 통증과 살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그나마 살 수 있었던 나는, 발을 박차고 공중에서 뒤로 한 바퀴 돌면서 안착했다.

 

여전히 몸이 유연하네요오?”

 

루니아 누나의 공격은 여전히 피하기가 어렵네요.”

 

그나저나 예전보다 더 빠르게 반응하는 거 같은데, 정말 약해진 거 맞나요오?”

 

누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강해지고 약해져요? 여태까지 마법을 배우고 이용한 것은 상황을 손쉽게 해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요!”

 

오른손에 들려있는 롱소드를 휘두르지만, 루니아 누나가 발로 차버리는 바람에, 잡고 있던 손목이 날아가지 않으려면 검을 놔야 했다. 발에 차인 검은 높은 마왕성 천장에 박혀버리고, 그 이후로 날아 들은 루니아 누나의 검을 나도 모르게 붙잡아 저지하고 있었다.

 

보통은 잘려나가도 이상하지 않는 괴력.

하지만 붙잡고 있던 손에 하얀 빛이 발현하기 시작하면서, 검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장갑방어구가 되어주었다.

 

카일? 언제 그 힘을 조절하기 시작한 거에요오?”

 

위기의 순간에는 멋대로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게 사람이니까요!”

 

운이 좋게도, 위험한 순간에 내 몸 안을 이리저리 다니던 에너지들이, 오른손에 응집되기 시작하면서 기적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악력으로 깨져나간 루니아 누나의 롱소드가 공기 중으로 사방에 흩어지면서 터졌고, 그 빛은 천천히 검의 형태로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루니아 누나의 느긋한 표정은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로 마주보며 말을 이어갔다.

 

설마 2단계를 뛰어넘을 줄은 몰랐는데 카일의 성장은 예측할 수 없네요오. 각본가는 왜 카일에 대해 예측을 할 수 없는 걸까요오?”

 

그걸 저에게 물어봐도 알 리가 없잖아요. 제가 각본가도 아닌데.”

 

루니아 누나는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붉은 색의 대검을 거칠게 뽑았다.

 

미안하게도 누나는 봐주지 않을 거에요오.”

 

미안하게도 누나를 봐주지는 않을 거에요.”

 

오른손에 광검을 들고 자리를 피하자마자, 거대한 구덩이가 내 발 밑에서 생성되었다. 어마어마한 흙먼지에 잠깐 몸이 가려지나 싶었더니, 흙먼지를 뚫고 튀어나오는 루니아 누나에게 검을 휘둘렀고, 붉은 대검과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부딪치려고 했을 때.

 

거의 통과하듯이 지나가버린 빛의 검은 루니아 누나의 검은 중갑을 강하게 타격했다. 당연히 나의 경우에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줄 몰랐기 때문에, 그 상태로 루니아 공격이 직격으로 날아왔다는 의미.

 

서로 한방씩 주고 받았지만, 루니아 누나의 갑옷은 특수처리가 되어있는지 튕겨나간 것에 비해, 나는 옷 안에 있던 비상용 단검이 으스러지면서, 겨우겨우 상체가 두 동강나버리는 위험을 피했다.

 

카악! 제길!”

 

아픈 건 아픈 거라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서 왼쪽 어깨부터 갈비뼈까지 박살이 난듯한 고통은, 차라리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었고, 루니아 누나도 입에 피를 흘리면서 당황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 카일? 아무리 진지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요오!”

 

아니...검을 통과하고 타격할 줄은 몰랐으니까요...으극!”

 

말하는 것도 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하면서, 말을 아끼는 걸로 마음을 먹었을 무렵. 전투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루니아 누나는 천천히 다가가면서 입을 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카일은 방금 전에 검사의 길에서도 가장 높은 달인의 경지까지 올라갔답니다. 다만, 아직까지 힘을 다루는 것이 미숙한 것 같네요오.”

 

루니아 누나는 대검을 집어넣고 나를 잠깐 흘깃 하고 바라보더니...

 

게다가 제가 공격받아본 것도 일생에 3번째네요오.”

 

일생에 3번째라면 루니아 누나는 어디 무패전사라도 되는 건가요?”

 

일생에 3번밖에 맞지 않았다는 소리인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런 궁금증이 머리에서 지나갔기에, 본래 물어보려고 했던 레시아의 근황에 대한 질문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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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타 후에는 집에 돌아와서

아침 워프레임을 방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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