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112
112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고 생각했다. 밀리아와 헤어지고 나서 세피르와 이비는 탈로스 씨에게 보낸 순간에, 너무 느긋하게 찾아와서 나에게 일격을 가하고, 덤으로 말로 농락까지 하면서 천천히 잡아가는 소녀의 모습. 애석하게도 내가 상대한 그 소녀는 브류나크라고 불리는 창을 가지고 있으며, 별의 아이라고 불리는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철저하게 끌려왔을 때 흐릿한 의식에서는, 적어도 침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손과 발을 묶고 있었으니. 천천히 주변을 의식하면서 눈을 떴을 무렵. 크로우는 나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 기분 나빠.”
“맞아. 너는 기분 좀 나빠야 해. 그러라고 웃는 거니까.”
“어린애.”
“역시 이런 상황에서도 매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너는 무엇을 믿고 이런 곳에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래도 지금 당장은 너에게 손을 대는 거나 그런 일은 하지 않아. 그래, 지금은 말이지.”
음흉하게 웃으며 저항할 수 없는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지만, 의외의 목소리가 크로우의 등 뒤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로우. 무리하게 악역을 연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은 빅터를 막으러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알았어요. 레이나 씨. 그런데 레이나 씨는 괜찮겠어요? 지금 아리엘에게 모습이 보여진다면, 언젠가 켈모리아가 당신을…”
“아무리 켈모리아가 괴물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는 쉽게 당하지 않으니까 걱정 말도록 해.”
크로우가 까마귀 깃털을 남기며 사라지자마자 내 앞에는 동명이인인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언제나 양호실에서 백의를 입고 있던 레이나 씨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레이나 씨?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어째서 레이나 씨가 검은 높새바람과…?”
“당연히 나는 검은 높새바람 소속이기 때문이지. 이럴 때는 아리엘의 총명한 머리로도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당연히 내 말이 끝나고 물어볼 것은 어째서 배신을 했냐고 물어보기도 하겠지?”
레이나 씨의 말대로 내가 해야 할 질문 중에 하나는 배신에 관련된 거였지만, 내가 아직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래서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레이나 씨를 바라보기만 했다.
“난 켈모리아를 배신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 아무리 내 친구가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해도 내가 이곳에 있는 그 자체는 배신하는 것이 아냐. 검은 높새바람이 하는 일은 켈모리아도 잘 알고 있는 걸?”
“그럼 저번에 윈디 씨가 구해준 여학생들은요?”
“당연히 검은 높새바람의 소속인 스파이지. 다만 거친 용병이나 산적을 억지로 군대화 시키기에는 좀 무리수였다는 사실을 잘 깨달아버렸어. 아무튼 이제 본론으로 이야기해볼까? 우리가 왜 여기에 너를 데리고 왔는지 이유를 말하자면, 너만 보이는 마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는 거야.”
“저만 보인다고요? 아니.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 보이고 있다니까요?”
아르트리옴이 말을 걸어서 다른 이들과 이야기 한 적이 있으니까. 나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분명 아르트리옴은 실존하는 마신 중 한 명이다.
“그러면 질문을 할게. 아르트리옴은 지금도 이곳에 있어?”
“당연히 저 옆에서 춤이나 추고 있는걸요?”
레이나 씨는 계속 뭐가 문제인지 나를 바라보며 심각한 얼굴을 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내 앞에서 했으니….
“아르트리옴은 나에게 보이지도 않고, 네가 위험에 빠져도 구하기는커녕 저 구석에서 춤이나 추고 있다고 말했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은 어떠한 존재라도 곧바로 감지하는 결계가 사방에 있어. 그런데 감지되지 않는 걸로 보아 이 근처에는 아르트리옴이나, 그와 비슷한 다른 신조차 없다는 소리지.”
“그럼 여태까지 저에게 아르트리옴이 현현한 것은 뭔데요?”
“그건 네가 공상에 있는 존재를 현실로 불러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공상에 있는 존재를 현실로 불러오는 힘? 그러면 여태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아르트리옴은 모두 거짓이란 소리인가? 그럴 리가? 아르트리옴은 분명 존재해.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상도 아냐.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따지지 않지. 아르트리옴이라는 신은 확실히 있지만 그는 묻혀있어. 봉인을 당한 상태로 말이야. 살아있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멸의 존재라서 상급신도 비밀리에 알고 있는 진실을…너는 손쉽게 다가가서 그를 일시적으로 불러오는 것에 성공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아르트리옴은 봉인에 상관없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어.”
“그러면 저는 대체?”
“확실한 것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 너는 쉬도록 해. 그리고 이 일에 대해 비밀로 해준다면 오늘 내로 보내줄 수도 있지만, 켈모리아 때문에 기억소거까지 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봉인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지.”
“봉인이라뇨? 저를요?”
갑작스러운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머릿속에서는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봐주지 않고 사정없이 몰아치는 레이나 씨는…….
“너는 이 세상의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존재란 것이 확실해. 게다가 켈모리아는 그걸 가속하고 있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너를 빠르게 성장시킴으로써, 그리고 나에게 그걸 숨기면서까지 너를 반강제로 성장시키고 있는 거야. 저번에는 릴리스의 힘을 대부분 흡수해서 몽마가 되었다고 했지?”
레이나 씨는 나에게 대답을 원하는 듯 말을 일단락 끊었다. 그 짧은 침묵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고,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끄덕이기 시작했다.
“마신이 되기 위해서는 마족이 되야 하고 그 외형까지 변하는 것이 맞지만, 너는 무슨 영문인지 외형은 변하지 않고 내부만 바뀌기 시작했어. 마치 본래 그릇이 너무 커다랗게 비어있는 기분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설마 제가 원래 마신이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레이나 씨는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며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기억이 봉인 되어있는 상태로 왜 이곳에 내려온 것일까? 그건 내가 마신이기 때문일까? 아니, 내가 마신이라면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아. 분명 무슨 일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곳으로 이끌려온 것뿐이야.
“제가 본래 마신이라는 소리는 1%도 인정하기 싫군요. 제가 몬스터를 배회하는 숲에서 죽임을 당할 뻔했는데 어떤 마신이 몬스터에게 죽고 싶어하겠어요?”
“그것도 그렇네. 하지만 아리엘을 통해서 켈모리아는 뭔가 이루어내려고 하고 있는 건 분명해. 그 바보 같은 쾌락주의자가 무슨 일을 벌일지는 상상도 못할 테니까.”
검은 높새바람에 붙잡혀서 레이나 씨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탈출을 하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조금씩 옮기고 있었다. 내 몸이 이곳에는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계속 했기 때문이니까.
“그러면 저는 언제 풀려나는 거죠? 지금 당장이라도 풀려나고 싶은데요?”
“아마 내일쯤 돌려보내주지 않을까? 기억소거를 해야 하니까. 당연히 내 집에서 재웠다고 하면 켈모리아도 별 의심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절차를 해야 할 것이 있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내 앞에 몰려와서…….
“Yee.T 보드게임을 해야 하니, 아리엘이 심판을 봐줬으면 좋겠으니까.”
“어째서어어어!!!”
***
내가 복도에서 브류나크를 맞고 나서 무엇을 했더라? 해가 떠있지만 노을이 아니라, 새벽을 밝히고 있었으니, 내 옆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뭘 한 것 같은데. 꿈처럼 지나가버린 이상한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고, 가장 끔찍한 악몽을 꾸고 일어난 것만 같았다.
“일어났니? 아리엘?”
“저, 제가 왜 지금 여기서 눈을 뜨는 거죠?”
“그거야. 복도에서 쓰러져있는 아리엘을 내가 먼저 발견해버렸거든,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의식이 없길래 켈모리아 몰래 가져와버렸어. 헤헷!”
“제가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가져왔다는 표현이 뭐에요!”
레이나 씨는 이래나 저래나 내 볼을 자신의 볼과 비비기 시작하면서, 끈적하고 느긋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아, 켈모리아는 좋겠다. 이런 귀여운 애를 매번 안고 잘 수 있다니이.”
“잠깐만요! 목은 왜 핥는 거에요! 그만 해요!”
“아아 부드러워. 우유를 핥고 있는 것 같아아~”
소름 끼치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서 팔 하나를 붙잡고 팔을 비틀어서 그대로 굳혀버렸으니, 레이나 씨는 “아파! 아파앗! 항복! 항복!”이라고 다급하게 외치면서, 나는 곧장 침대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심하게 꺾지 않아도 되는 데…아리엘은 장난에 대해 너무 엄격해.”
“장난이 아니라 신변에 위험을 받았기 때문이잖아요! 이거 켈모리아에게는 말했겠죠?”
“당연히 말했지. 그리 많이 다친 것은 아니니까 걱정 말라는 말까지 했는걸? 그보다 누구와 싸웠길래 아리엘이 기절해버린 거야?”
“그 에밀리라고 부르는 소녀인데. 검은 높새바람이라는 말만 듣고 덤비다가, 브류나크라는 이상한 창에 당해버렸어요.”
그 이후로 나는 기절하고 눈을 떠보니 레이나 씨 집에 있었다는 소리인가? 아니, 집이라기 보단 그냥 양호실인데?
“그 좁은 양호실침대에서 둘이서 자다니? 불편하지도 않아요?”
“아리엘은 체구가 작아서 괜찮은걸? 그래도 이렇게 행복한 꿈이 하루 만에 끝나다니. 나도 켈모리아 집으로 이사나 갈까?”
“오지 마시죠.”
나는 세피르를 불러보았지만 아직 자고 있는지 응답이 없었다.
“오늘은 제가 먼저 도서관에 가야 할 것 같네요. 켈모리아 먼저……아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아리엘은 나와 학원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으면 돼. 켈모리아는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사먹어야겠지만! 그런데 아리엘은 뭐 좋아해? 푸딩도 좋아하지? 혹시 케이크나 티라미슈는? 몽블랑은?”
“그거 아침밥으로 먹는 거 맞아요? 달고 맛있고 부드러운 건 좋지만,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요? 아니면 디저트로 배를 채우는 그런 연료통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실례네. 디저트는 소녀들의 삶이라고? 삶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생이 아닐까?”
쓸 때 없는 헛소리가 내 귀에 들어가자마자 뇌는 빠르게 한숨을 생성하라고 몸에게 지시를 내렸다.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인지 아니면, 기대를 하게 만드는 레이나 씨의 잘못인지 어느 쪽에 죄가 더 깊은 가에 대해서 저울질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보도록 하고.
“하아…. 그래서 학원식당에서 그렇게 많은 디저트를 누가 만드는 건데요?”
“요리연구부.”
그 애들은 왜 학원식당에 간섭을 왜 하는 거야? 무엇보다 그런 쓸 때 없이 부지런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이른 새벽에 나와서 기숙사생들의 음식을 준비하고, 디저트까지 준비하는 위용을 뽐내는 것이야 말로 무시무시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쓸 때 없는 부지런함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라면, 요리연구부는 이미 자신이 걸어올 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 슬슬 옷이나 갈아입을까? 아리엘은 속옷차림으로 나가는 일은 하지 않겠지?”
“…그, 그럴 리가요.”
레이나 씨는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근처에 걸려있는 옷을 주섬주섬 꺼내서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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