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메이 씨가 돌아가고 다시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는 엄청난 알코올 향이 내 코에 들어가 머리를 찌르고 있을 시기였다. 최근 켈모리아가 술을 자주 마시는 이유를 추측하기도 힘들지만, 어쩌면 켈모리아가 살아가면서 사용해야 할 연료 중에서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무기질 이외에도 알코올이 필수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하교를 알리는 종도 치지 않았지만, 쇼파 위에 누워있는 켈모리아를 내려다보면서 장난을 쳐야 할까? 아니면 그냥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상냥하게 이불을 덮어줘야 할까?에 대해 내적 갈등을 앓고 있었다.

 

세피르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 해?”

 

어떻게 하긴? 그대로 서비스 씬을 아아악!”

 

쓸 때 없는 소리를 한 세피르의 발등을 강하게 밟은 이후에 천천히 되묻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지금은 검은 높새바람이라는 미지의 세력이나, 비니스 여신이 행성을 충돌하게 만든다고 이리저리 시끄럽게 움직여야 하지만, 켈모리아는 언제나 봐왔듯이 태평하게 있잖아. 아무리 자신이 위대한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빈틈을 보여주면 언젠가 당하기 마련이야.”

 

그러면 아리엘의 생각은 지금 켈모리아가 너무 방심을 한다는 거야?”

 

아니. 방심이라기 보단,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항상 이러고 있잖아? 카일 씨라면 분명 이렇게 태평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움직였을 거야. 기다리고 있다는 거라고 보기에는 너무 무방비하게 기다리고우아앗!”

 

순식간에 뻗어온 손길에 피하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잡혀, 켈모리아와 같은 쇼파에 누워버렸다. 무슨 파리지옥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하던 사이에, 진한 와인 향이 입에서 퍼져나가며 켈모리아는 조용히 말했다.

 

무방비한 모습이야 말로 다른 녀석들에게는 좋은 미끼지. 안 그래? 이렇게 아리엘도 걸려들고 말이야. 아아 오랜만에 끌어안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끌어안아서 기분이 좋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저는 술 냄새 때문에 죽겠는데!”

 

그나저나 메이가 널 많이 걱정하고 있더라.”

 

메이 씨가요? 뭐라고 했는데요?”

 

메이 씨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이제서야 두 번째로 본 상대를 많이 걱정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해줄게. 언제나 늘 그래왔듯이 지금은 이렇게 쉬는 걸 좋아하거든. 볼도 매끄럽고 피부도 좋고…….”

 

그만 하라니까요! 이제 좀 풀어주시기나 하시죠!”

 

핥으면 무슨 맛이 날려나?”

 

징그럽게 혀를 이리저리 돌리지 마시고 당장 풀어주기나 하시죠? 신기루 병사가 가진 창으로 머리 하나에 구멍이 나기 전에!”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신기루의 병사는 켈모리아의 머리 위에서 창을 들어올렸지만, 겁만 주려는 목적이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을 했다. 그걸 아는지 여전히 나를 풀어주지 않는 켈모리아는 조금 심술이 난 표정으로 입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뜩이나마 아리엘에 대한 애정을 받지 못해서 나는 좀 우울한 상태라고? 아리엘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가져줄 필요가 있어. 아니면 애정을 주던가?”

 

양쪽 다 비슷한 의미잖아요. 켈모리아는 어린 아이에요? 다 큰사람이 얼마나 응석을 부리면서 살아갈지 모르겠네요. 세피르가 보고 있으니까 이제 좀 놔줘요.”

 

세피르? 보라고 해. 어차피 우리는 곧 결혼할 사이인 걸?”

 

지금 켈모리아가 얼마나 취해있는지 모르겠지만, 동성간에 결혼이 불법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도아니, 귀에 못이 너무 막혀서 초기에 들어간 못이 중심부를 뚫고 다시 반대편 밖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듣지를 않았다.

 

저는 켈모리아와 결혼할 생각 없어요. 적어도 저는 남자에게 시집을 갈 거라고요.”

 

. 이 세상의 남자를 전멸 시켜야 하는 건가.”

 

시키지 마요!”

 

장난 삼아 한 말이라고 하지만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농담이야. 아리엘은 아직 시집 보내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아서 그래. 내가 할 일은 좀 많이 있거든, 아리엘이 시집을 갈 수 있는 날은 분명, 내가 학원장을 그만두는 날이 되겠지.”

 

그거 너무 오래 걸리는데요? 그 기간에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냐. 당연히 아니지. 어차피 내가 학원장을 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어. 애석하게도 내 예지에서는 잡화점의 주인이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받지 않은 모양이야.”

 

그 사이에 예지를 봤어요?”

 

켈모리아는 약간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늘 말했지? 예지는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고. 게다가 잡화점의 주인은 요상하게도 예언이나 예지는 전부 엇나가게 만들어서 말이야. 가장 기초로 넘어가서 설명하자면 운명을 미리 보는 마법에 대해서, 인물, 장소, 시간에 관련되어 볼 수 있는데, 잡화점의 주인은 절대적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예지를 관측할 수가 없어. 운명의 여신에게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 추방당한 여신 데모르테의 유일한 계약자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비틀리고 있을 때. 언제나 잡화점의 주인은 올곧은 길을 걸을 수 있지.”

 

누군가가 운명을 비틀고 있다는 거에요?”

 

의외로 솜씨가 대단해서 본질을 꿰뚫는 여신인 레이베리아의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고 하나 봐. 물론 내 입장에서는 들은 이야기뿐이라서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독은 불가능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은 의외로 많은 정보를 내뱉는데, 내 근처에 있는 아르트리옴은 검은 정장을 어디다 버리고, 회색의 후드티를 입은 체 구석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언제나 아르트리옴의 옷을 보면 언제나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은 거에요?”

 

그야 아는 사람이지.”

 

켈모리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껴안는 베개를 대신해서 숙면을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밝고 영롱한 에메랄드 빛의 녹안이 서서히 눈꺼풀에 잠식당하고 있을 때. 완전히 코를 조용히 골며 자고 있는 모습에, 지금까지 받아온 피로가 한 순간에 몰려오기 시작했고, 나도 천천히 어둠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며 켈모리아 위에서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의식은 언제나 몸에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유동적인 것. 정신을 우리 몸 속에 담아두고 있는 이유라고 한다면, 모든 원소가 서로 이끌리듯이 내 몸은 내 고유의 정신을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이 밀도에 관해 중력이 적용된다면, 우리가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은 당연할까?

 

그걸 말하기에는 역설이 너무 많을 거라고 생각해. 다른 생각으로 채워 넣기 전에 지금 너에게 닥쳐온 일부터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꿈속에서는 켈모리아가 나를 먼저 알아차렸다.

 

그럼 켈모리아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돼요.”

 

그건 무리야. 술과 나는 이미 운명의 단짝이라고? 어쩔 수 없어. 이건 그래태초부터 이루어졌던 언약의 증표!”

 

태초부터 맞기 싫으면 잠꼬대는 그만하시죠?”

 

여기는 꿈속이잖아? 그럼 나는 잠꼬대를 하는 것이 맞아.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며, 인간이라면 한번씩은 다 겪을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해. 아리엘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부정한적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니까?”

 

켈모리아가 바보 같은 소리를 장황하게 늘여서 하길래 흥미는 없지만 예의상 물어봤다.

 

예를 들면요?”

 

그러자 켈모리아는 아까 입은 하얀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거대한 새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날씬하고 타이트한 드레스를 살짝 휘두르면서 입을 열었다.

 

사랑은 국적이든 성별이든 뛰어넘을 수 있는데 아리엘이 그걸 거부하잖아.”

 

그건 늘 말했듯이 법적으로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그렇게 틀에 갇혀있다면 정말로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마저 해결할 수 없데 된다고? 그거 알아? 너와 잡화점 주인의 전혀 다른 점?”

 

잡화점 주인과 저는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존재하잖아요.”

 

켈모리아는 한숨을 나지막하게 내쉬더니 다시 질문을 했다.

 

그야 카일과 너는 성별도 다르고, 체격도, 모습도, 발전해나가는 기술도, 살고 있는 집, 살아가는 이유 등. 모든 것이 전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결정적으로 너와 잡화점의 주인은 같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게 존재해. 내가 말한 것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뭔지 알겠어?”

 

켈모리아의 질문은 언제나 선문답과 같았다. 내가 모르는 것을 바로잡아주려는 것처럼, 아니면 내가 모르는 지식을 알려주지 않고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주는 질문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부정의 표시를 남겨버렸다. 내 앞에 있는 여성은 불쑥 나의 손을 깍지를 쥐며 잡아 들어올리고 말하기를….

 

아리엘은 이 상황에 대해서 유동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내 정기를 흡수하고 있는 아리엘에게 있어선 이 현상을 절대로 거절할 수 없거든, 잡화점의 주인은 정신방어가 매우 높기 때문에 거절할 수 있어. 카일의 경우에는 이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면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하기 때문이지. 안 그래?”

 

그래도 전 켈모리아와 결혼을 하지 않을 거에요. 설령 카일 씨처럼 생각이 유동적이라고 한다고 해도, 현실에 대한 법은 동성간의 결혼이 아직까지 불법이기 때문이죠.”

 

합법이면 나랑 결혼 할 거야?”

 

아니요.”

 

왜앵~!”

 

내가 즉답을 하자마자 억울한 표정을 지은 켈모리아는 반문을 했고, 나는 그 물음에 합당한 이유를 대며 말하기 시작했다. 꿈속의 지배권은 내가 확실히 가지고 있으니 지금은 이런 폭언을 해도 상관 없겠지.

 

귀여운 척 하지 마세요! 켈모리아도 이제 나이가 있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살아야 하는 시기에 언제까지 노처녀로 있을 거에요! 게다가 귀여운 사람이 그렇게 좋으면, 켈모리아의 능력으로 귀여운 남자를 꼬시면 되잖아요? 예를 들어 트릭스 같은 사람 말이죠!”

 

나의 사소한 반항은 꿈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반항이 켈모리아에게는 분노의 기폭제가 되었고, 녹안에는 반짝이는 눈이 아니라 타오르는 눈으로 서서히 내 앞에 적대적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그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몸이 멋대로 굳어버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요즘 아리엘이 나에게 자주 덤비는 것 같아. 그렇지 않니?”

 

, 저기요?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는아팟!”

 

깍지를 낀 손에서 켈모리아의 손이 너무 힘이 들어간 나머지, 깍지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 손가락이 들어올려지면서 손 등에 어마어마한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손가락은 각 마디마다 어마어마한 압박을 느끼고 있을 때.

 

그래도……꿈의 주도권은 제가 쥐고 있다고요!”

 

그래? 그거 좀 후회할 것 같지만, 벌을 주기 전에 한 마디는 하도록 하지.”

 

내 귓가에 달콤한 속삭임을 하는 켈모리아의 충고는 다음과 같았다.

 

네가 믿고 있는 것을 전부 조심해야 해.”

 

? 그건 무슨 말으웁!”

 

언제 속삭였냐는 듯 내 입을 손으로 막고는, 그 자리에 액체를 뿌리기 시작했고, 입과 목에서 타오르는 것으로 보아…….

 

매워! 매워어어어!!!”

 

하하하! 그거 대략 2백만 스코빌에 달하는 양일걸?”

 

너무 매워서 눈이 안보이잖콜록! 콜록!”

 

꿈속에서 언제 주도권이 빼앗겼는지 모르겠지만, 꿈속에서 생각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을 나에게 사용하고 있었다. 몽마들에게 허락된 마법인 줄 알았더니 켈모리아는 그 마법마저 지배하고 있었다는 건가?

 

블로그 이미지

FNL-Phantasm

카테고리

판타즘의 공간 (757)
글쓰기 관련 공지 (2)
취미로 글쓰는 중? (753)
즐거운 스트리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