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정령사가 폭주를 하는 원인은 분명 감당해야 하는 정령의 힘이 너무 클 때, 혹은 정령을 담고 있는 정령사의 정신방어가 너무 약해져서, 정령의 힘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때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은 엘라임의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을 마구자비로 휘두르기에, 마리아는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과 안전한 장소로 대피했고, 나는 윈디와 함께 엘라임을 대적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레시아와 시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안 보이는 바람에, 결국 정령과 정령사의 대결구도로 이어졌고, 내가 이렇게 길게 독백하는 사이에도 언월도는 나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

 

티르빙으로는 거리가 짧은 무기로 상대하면 힘들기에, 먼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6개의 사슬검이라고 불리는 뱀 조종자이외에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의지대로 뻗어나가는 뱀 조종자는 공격과 수비가 다 되는 팔방미인이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불리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언월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들 때문이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하나하나가 예리한 칼날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바닥과 바위, 나무에 스쳐 지나간다면, 전부 버터가 잘려나가듯이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나마 위험한 순간에는 윈디가 바람으로 나를 감싸 궤도를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기에,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언월도로 찌르거나 벤 후에는 강력한 수압으로 마무리라. 호러 소설도 따로 없네.”

 

저곳에 스치기만 해도 유혈과 오장육부가 아름답게 흩날리는 거 아니에요?”

 

그런 소리 하지마. 무서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너는 지금 간접적으로 저거에 맞으면 세상과 작별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거라고. 적어도 지금 내가 주인이라면, 주인을 위해 뭔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강구해야 할 거 아냐.”

 

윈디는 잠깐 고개를 들어서 검지손가락으로 턱을 집으며 생각하는 여유를 가졌다. 남은 지금 공격이 사방으로 들어와서 바빠 죽겠는데 말이지!

 

그러면 저번 비무대회처럼 진한 키스...아니, 정기흡수는 어떠세요?”

 

해연 씨 주변에 돌아다니는 물들이 보이지 않아? 저건 접근하면 그대로 머리부터 날려버리겠단 소리잖아.”

 

주변에 닿은 모든 물체들을 요격하기 위해 생성한 듯한 물방울들은, 내가 조금만 다가가도 곧바로 날아가서 마법방패를 가볍게 뚫고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바로 당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채워지고 있는 동안, 발 밑으로 날아드는 물줄기를 겨우겨우 왼쪽으로 굴러서 피했다.

 

아 맞다! 어두운 영혼에서 구르기는 일시적인 무적판정이 있죠! 그래요! 카일 씨! 구르기를 잘 사용하면 클리어 할 수 있어요!”

 

현실에는 구른다고 해도 무적판정이 없거든! 게임하고 현실하고 구분하면서 살아!”

 

폭주를 하고 있으나 저기는 정령사와 정령이 힘을 합쳐서 싸우는 것에 비해, 나와 윈디는 전혀 따로따로 놀고 있는 수준이었다.

 

~”

 

저기 있는 이프리트는 아직도 자고 있고!

 

윈디! 저 이프리트 깨워서 정령계로 돌려보내! 검은 계약의 돌을 마리아가 흘리고 간 것 같으니까. 그것도 부수고 가라고 하고!”

 

~”

 

너도 자냐!”

 

태초에 도움이 되는 녀석들은 아니었기에 나는 한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묵직한 한방을 넣기 위해 계산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내가 뒤로 몸을 움직이는 동안 폭주하고 있는 해연 씨의 언월도는 날카롭게 내 복부로 파고들어가려 했다.

 

-치이이이잉!

 

티르빙을 타도로 바꾼 후에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비틀어, 겨우겨우 언월도의 면을 타고 물처럼 흘려 보내고 있는 검은 사방팔방에 불꽃을 내쫓으며, 해연 씨의 목 언저리로 휘감아 올라가려 해도, 순식간에 내 얼굴로 날아드는 막대부분 때문에, 허리를 과도하게 뒤로 젖혀서 한 손으로 바닥을 집고, 발로 땅바닥을 힘껏 차서 뒤로 튕겨나가듯이 거리를 벌려야 했다.

 

하긴, 그렇게 쉽게 당하면 하란국의 영웅이라고 불렸던 사람이 아니지.”

 

도움도 안 되는 잉여정령보단 레시아와 시나의 서포트가 더 그리워지던 시기가 지금일까? 마음이 약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하기 전에, 현실이 정신차리라고 경고하는 듯이 다시 대각으로 베려는 움직임에 반응하고, 다시 검으로 흘려 보내기 위해 타이밍을 재고 있었지만, 그 뒤로 날아드는 연속 찌르기에 반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야 했다.

 

날카로운 언월도의 끝부분이 날아드는 순간에, 바람의 갑옷이 궤도를 바꿨지만 옷이 찢어지고 살짝 베인 상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잊을 만 하면 물을 끼얹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주변에 있는 바닷물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저 파도 안에 상어라도 있기만 해봐. 그때는 정말 가만 안...”

 

-파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분명 육지 위에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해일이 내 몸을 덮쳐서, 이대로 바다에 끌려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래도 윈디의 서포트는 바람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숨을 쉴 공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5초 뒤에 나는 무사히 젖지 않은 상태로 바닥에 얼굴이 틀어박혔다.

 

망할...”

 

마음 한편으로는 너무 갑갑해서 무의식적으로 한 단어를 내뱉었다. 얼굴을 들어서 바로 정면을 보았을 때는 이프리트가 오렌지 빛의 졸린 눈동자로, 나를 계속 직시하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내가 입을 연건 다음과 같았다.

 

왜요? 불만 있어요?”

 

이프리트는 졸린 표정에 비해, 의외로 또박또박 듣기 좋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정령사의 길 초급은 계약을 맺어도 우리 정령들을 이해하지 못해.”

 

오늘 아침에 느닷없이 정령사로 입문했으니 그렇죠! 윈디 이 녀석은 정령사가 뭘 해야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도 않았다고요! 그야 엘티노스 자서전을 읽어서 정령사는 기본적으로 이런 녀석이다.’라는 기초 이론은 잘 알고 있지만!”

 

엘티노스는 정령사가 아냐. 마법사야.”

 

아니, 그렇지만...어라? 이프리트 씨는 엘티노스를 알아요?”

 

이프리트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티노스는 한 때 정령사였던 동료에게 이론만 듣고 집필한 것뿐. 하지만 그는 정령사가 아니었기에 활용할 방법을 몰라. 자서전만 보고 정령사에 대한 기본은 서술할 수 있어도, 정령사가 어떻게 정령을 다루는 가에 대해서는 무조건 경험에서 나타나는 일.”

 

그러면 조금만 알려주세요. 그보다 검은 계약의 돌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나요?”

 

나는 편안한 보금자리만 있으면 돼.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보금자리를 찾았어.”

 

내 목을 끌어 당기더니 이프리트는 나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검은 계약의 돌이 옭아맨 사슬처럼 생긴 붉은 입자가, 부셔지기 시작하면서 이프리트는 천천히 내 앞에 일어선 체 입을 열었다.

 

지금은 가계약 상태일 뿐. 이건 시험이야. 나와 힘을 합쳐서 물의 정령왕의 폭주를 막는다면,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태초의 화로로 돌아가 잠을 자겠지.”

 

결국. 집에서 자고 싶으니까 빨리 해결하라는 말 아니에요.”

 

진흙이 된 흙을 옷에서 대충 털어내고는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프리트. 정령사는 이제 뭐라고 해야 하는데요?”

 

진명을 부르고 명령을 내려. 방금 전에 실피드가 너의 행동에 답하지 않은 것은, 네가 윈디라고 불렀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잉여정령왕이 내 말을 안 들었던 건가?

그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바람의 갑주를 그냥 무의식적으로 던져줬다는 소리로군?

 

이프리트! 그대의 주인을 보호하는 갑주와, 적의 방어를 꿰뚫을 수 있는 검을!”

 

그리고 이프리트는 나의 말에 응답했다.

 

, 이프리트는 그대의 검과 갑주가 되리라.”

 

내 온 몸에 홍염이 불타며 흐르고, 타도에는 붉은 색의 기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에게 있어서 화상이라던가 뜨겁다던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프리트. 여기에 마법을 좀 더해도 상관 없나요?”

 

불에 관련된 마법이라면 언제든지.”

 

이프리트의 짤막한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외쳤다.

 

칠흑의 불꽃이여. 적을 분쇄하는 발자취가 되어라!”

 

타도에 서서히 검은 불길이 집어삼키면서 더욱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이끌고, 나는 이번에 윈디에게 천천히 읊조렸다.

 

실피드여. 그대의 주인에게 바람보다 빠른 장화를!”

 

, 실피드는 그대의 장화가 되리라.”

 

항상 장난스러운 어조가 아닌 진지한 어조로 윈디 메르아. , 실피드가 부름에 응답하자, 내 발은 깃털처럼 가벼워 어디든지 뛰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저 앞에 있는 상대는 나의 분위기가 한 차례 바뀐 것에 경계하여 방어를 굳히며, 또 다시 해일이 이곳으로 덮쳐 흐르기 시작했지만, 정령사의 길 초급을 이제서야 걷고 있는 나에게는, 이런 마법부여와 같은 속성부여만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시공의 눈 개안!”

 

모든 일격을 2초안으로 때린다는 의지로 시공의 눈까지 개안하여, 모든 시간이 전부 늘어지기 시작하고 거대한 바닷물이 나를 덮치기 전에, 실피드의 장화를 신은 내가 해연 씨에게 빠르게 파고들어, 검 등으로 복부와 어깨, 마지막으로 등을 사선으로 벤 뒤에 지나갔다.

 

물의 견고한 방어는 이프리트의 검은 홍염이 기화시켰고, 날아드는 물방울들 또한 이프리트의 갑주로 전부 날려보냈다. 보통 해연 씨라면 나의 가속화된 움직임을 예측하고 막을 수 있겠지만, 의식을 잃은 해연 씨는 실피드의 장화로 더욱 빨라진 나의 공격을 정확하게 막을 수 없는 상태.

 

그보다 이번에 해연 씨와의 승부는 2 1패 인가.”

 

시공의 눈을 닫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변한 내 몸의 피로를 잊기 위해, 혼잣말을 하던 나는 엄지손가락을 내려 무언가를 누르는 시늉을 했다.

 

-딸칵! 파파팡!

 

검은 불길에 휩싸인 해연 씨는 끝내 쓰러졌고

 

후우...그보다, 두 정령왕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의외로 연비가 나쁘구나...”

 

내 시야가 어느 사이에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모든 감각이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아늑한 어둠이 나를 감싸 안듯 시야를 천천히 검게 물들고 있었다. 이윽고 의식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태초의 샘이 아닌, 잡화점의 1층 바닥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우연히 왼쪽으로 돌렸을 때 나를 바라보는 거울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보다 이 거울은 왜 내 상태를 항상 확인하고 싶을 때만 나타나는 걸까?

 

주인. 고생이 많았군. 짐과 비둘기는...”

 

올빼미 입니다.”

 

여전히 시나는 늘 그래왔듯이 레시아에게 태클을 걸었지만, 검은 고양이는 하얀 올빼미의 말에 신경 쓰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물의 정령왕이 폭주하는 바람에 잡화점 인근을 지키느라 도와주지 못했노라. 폭풍이 이곳까지 발생해서 물고기가 쏟아지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짐은 윈디에게 맡기고 귀환했다.”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니까 이건 꼭 얻어야 한다.’ 라고 해석이 되는데 기분 탓인가?

 

그런데 지금은 봄이라고요? 두꺼운 이불은 없어도 돼요.”

 

마스터. 그 이불은 얇은 이불입니다. 마스터가 직접 바꾸시지 않으셨습니까?”

 

...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이불을 살짝 올렸다. 그러자 내 몸 위에서 잠들어있던 붉게 타오르는 듯한 두 눈동자가 서서히 커지더니, “추워. 덮어.”라는 두마디에 소름이 돋으면서 곧바로 그 자리에서 이탈해야 했다.

 

으아악! 주온인가! 주온이죠! 사다코 찾아요! 빨리! 토시오도!!!”

 

주인. 진정해라. 호러 소설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애초에 불의 정령왕까지 잡화점 멤버로 맞이하면 어쩌겠다는 소리인가?”

 

잡화점 멤버?

 

이프리트! 일어나요! 태초의 화로로 돌아간다면서요! 거기 가서 다크소울의 시작부분을 알려야지! 그리고 그거 가계약이라면서요!”

 

나는 이불을 들추려고 했지만, 이불과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이프리트를 상대하긴 역부족이었다. 이프리트는 얼굴만 쏙 꺼내고는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태초의 화로로 돌아갔지만 지저분해서 이곳에서 살려고. 그럼 잘자.”

 

뭐가 잘 자에요! 당장 안 일어나! 내가 청소해주면 되잖아요!”

 

예상치도 못했지만 가계약이 정식계약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이래서 계약을 맺을 때는 계약서가 있어야 해!

=============================================================================================

계약할 때 항상 조심합시다.

 

블로그 이미지

FNL-Phantasm

카테고리

판타즘의 공간 (757)
글쓰기 관련 공지 (2)
취미로 글쓰는 중? (753)
즐거운 스트리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