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79
379
해연 씨를 겨우 따라 잡은 것은 좋지만, 내 머리에 흘러나오는 파인애플 과즙을 씻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자신의 힘으로 직접 태초의 샘을 찾겠다는 해연 씨였지만, 태초의 샘은 세상의 끝에 걸려있다는 윈디의 말에 다시 잡화점으로 들어왔다. 가게를 부순 변상은 어떻게 했냐고? 적당히 수면마법으로 재운 다음에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 내가 이러기 위해 마법을 배웠나? 자괴감이 든다.
“게다가 우연하게도 용사들의 연회에 관련된 의뢰내용이 있네요. 아직까지 정령몬 Go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을 잡으라니. 이건 그냥 용사가 아니라 현상금 사냥꾼이 하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스파이크?”
“스파이크는 또 뭔데? 우주에 떠다니는 비밥호까지 날려줄까?”
나와 윈디가 그렇게 말싸움을 하는 동안, 해연 씨는 아무런 말 없이 그 모습을 계속 보고만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정신적인 금이 더 가지 않도록, 베니가 해연 씨 옆에 붙어서 응석을 부리도록 놔뒀다. 해연 씨는 베니를 집어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곳에 처음 온 것도 엊그제 같은데, 이런 귀여운 생물까지 있을 줄은 몰랐소, 게다가 저렇게 거대한 자동인형처럼 생긴 장식품은 어디서 난 거요?”
“어라? 그거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거에요. 팔랑크스.”
키와 덩치가 평범한 일반인에 비해 너무 확연할 정도로, 커다랗고 강인한 몸체에서 마나를 동력원으로 이용하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붉은 빛의 두 눈이 점화하기 시작하면서
-두둥! 둥 두둥!
잠깐! 효과음 담당! 그거 아냐! 미래에서 온 살인기계의 효과음을 틀지마!
-시무룩...
팔랑크스는 천천히 해연 씨의 앞으로 움직이면서 입을 열었다.
“I’ll Be Back.”
“네가 T-800이냐고! 그리고 처음 만났으면서 용광로에 들어가려고 힘쓰지 말고! 애초에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타이밍에서, 마지막 명대사를 날리지 말란 말이야!”
팔랑크스는 거대한 몸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거대한 위압감과 함께 나에게 오른손을 뻗더니 입을 열었다.
“난 터미네이터 T-800이다. 금속 내골격과 인체 생체조직으로 구성된 인공적 유기체다.”
“팔랑크스!!!”
전에 마리아가 팔랑크스와 같이 다른 차원의 물품을 구동한 기억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미래에서 살인기계가 찾아오는 영화라고 했던가?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의 팔랑크스는 거기에 완전히 꽂혀서, 검은 색으로 도배한듯한 가죽옷들로 철저하게 자신을 꾸미고 있었다. 아놀드 씨에게 사과해.
“You are terminated.”
“하지마!”
마지막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팔랑크스의 말을 끝내고는, 해연 씨에게 결국 내가 따로 설명을 해야만 했다. 해연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쓴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말하기를...
“카일은 사람을 만나는 복이 좋은 것 같소. 소인이 이곳을 떠나고 엘라임과 여행을 하던 사이에, 그렇게나 많은 동료들을 모집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소.”
“그래도 지금은 마리아와 루시피나, 카렌은 저에게 뭘 숨기는지 몰라도, 최근에는 얼굴보기가 너무 힘들기도 해요. 쇼콜라 씨는 다시 아르페 공주님의 메이드 장으로 복귀했는지, 이제 잡화점에도 오지 않고. 엘리시아는 자신의 가문을 위해 성에 남는다고 했고, 잡화점의 멤버가 너무 많아도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기 마련이네요.”
나는 윈디가 허공에서 바람의 정령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사실상 내 눈에는 그냥 허공에다 말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지만, 가장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것이 바람의 정령인만큼, 엘라임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잡화점에 잠깐 대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인. 아직까지 시간이 남았으면 짐을 좀 도와다오.”
“도와달라뇨?”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대강 검은 고양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다른 일을 처리할 것이 있나 확인하...
“주인. 더 쓰다듬어주거라.”
“뭐...알았어요.”
다시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
“주인.”
“왜요?”
“머리를 좀 더...”
“대체 오늘 따라 응석이 왜 이리 심해요?”
-콰직!
“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손을 옮기려다, 정신차리고 보니 내 검지 손가락이 작은 고양이의 입에 들어가버린 것. 내 손가락이 잘려나갈 것 같은 고통을 맞이하면서, 나는 검은 고양이의 입 안에서 내 손을 빼왔다.
“대체 오늘 뭐가 문제냐고요!”
“어째서 저 여자가 이곳에 있는가? 주인은 항상 나가면 다른 여자를 잡화점에 들여놓는 것이 취미인가?”
“생전에 그러지도 않았던 마왕님이, 왜 오늘은 예민하게 구는 거에요!”
“흥! 주인은 역시 바보로군. 아직도 짐이 이러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가?”
나는 레시아와 눈 높이를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 붉은 빛으로 반사되는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대체 무슨 기념일을 놓친 것도 아니고, 어디서 뭐가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정확하게 집어야 하니까.
“그래서. 오늘은 무슨 날이에요? 혹시 우리가 처음으로 사역마 계약을 했던 날이라던가?”
“아니. 애초에 짐은 기념일이나 그런 쓸모 없는 허례허식을 싫어한다. 애초에 짐은 연인 사이에 사소한 기념일을 창조해서 꼭 지키라는 그런 꽉 막힌 여자가 아니로다. 그 이유는 짐도 주인의 중요한 기념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기 위함이니까.”
“뭐. 저도 그것에 대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기념일이 아니면 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 심술이 난 거에요?”
“흥. 아직도 모르다니. 그거야 주인이 놀아주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닌가? 애초에 다른 지역으로 재미있게 바람의 정령왕과 해연을 데리고 나가면서, 짐을 껴주지 않는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초에 이 잡화점 이야기의 진 히로인이며, 주인의 정부는 바로 13대 타락의 마왕 레프리시아. 바로 짐이며 이는 불변의 진리와 마찬가지이니라. 짐을 빼놓고 간다는 의미는 찐빵이 빠진 팥. 식빵이 없는 잼과 같노라!”
아니,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하려면 팥 없는 찐빵이라던가, 잼 없는 식빵이라고 해야 정상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자신을 빼놓고 간다고 해도 일부가 없어지는 거지, 전체를 삭제하면 어떻게 해?
“마스터.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하얀 올빼미인 시나가 내 어깨 위로 올라와서 옷깃을 물고 당겼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윈디와 해연 씨를 더불어, 레시아와 시나까지 다 같이 가기로 했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레시아와 시나는 곧바로 어딘가에 달려나가더니, 소풍을 위한 돗자리를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 머리 위에는 작은 밀집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저기? 이건 또 뭐에요?”
“주인! 짐의 동료가 되어라!”
“패러디 하지 말고! 왜 돗자리를 가져왔냐고요!”
오른쪽 어깨 위로 올라온 레시아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질문을 했으나 레시아의 경우에는 “태초의 샘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가보면 어째서 짐이 이런 걸 준비 했는지 알 수 있노라.”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너무 반복적으로 말해서 레시아를 누르기만 해도 똑같은 말만 반복되었다.
“시나는 알고 있어?”
“태초의 샘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가보면 어째서 제가 이런 걸 준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꼭 도착해서 그걸 봐야겠냐?
지금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
“어쩔 수 없네. 윈디. 바람의 전언은 어때?”
“음, 지금 엘라임은 태초의 샘에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는데, 문제는 정령몬 Go를 아직도 하고 있는 무리가 존재해서 큰일이에요.”
“혹시 정령왕도 잡힐 수 있다는 소리야?”
“항상 예외는 있으니까요. 검은 계약의 돌이라도 존재하는 날엔 어찌될지 잘 모르겠네요.”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별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나랑 계약을 맺으면 되잖아?”
“카일 씨! 설마! 저의 인큐베이터가 되어주시는 건가요! 우아아! 소원을 뭐로 하지? 아니 그건 이미 이루어졌나! 자! 카일 씨! 저를 때려주세요! 짓밟아주세요! 매도해주세요!”
“목의 절취선을 그어서 위, 아래로 나뉘어지고 싶어!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 아냐! 내가 널 왜 때리고 짓밟고 매도해야 하는데!”
그나저나 최근에 내 몸은 무슨 계약과 페어링이 이렇게 많은지 잘 모르겠다. 용족 혼인의 문장도 변화해서 루시피나와 부부라는 것을 정식적으로 승인하기도 했고, 마리아의 검은 달의 사도라는 징표를 얻기도 했고, 시나와 레시아는 사역마의 계약으로부터 페어링이 존재하는 상황. 이번엔 윈디와 계약을 맺으면 정령사의 길까지 가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지만...
검은 계약의 돌을 무서워한다면 일정기간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가계약이라도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해서 그 제안을 윈디에게 한 건데...
“아아! 저는 벌써 제 몸을 다 묶었다고요! 이제 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계약의 성립을...꾸에엑!”
“그런 기묘한 모양의 묶는 방법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그걸 어떻게 혼자 한 건데!”
이게 글이라서 다행인 이유는 그림이었다면 잘려나갔기 때문이라 본다.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만 상상하면 다 알 수 있을 거라 본다. 아무튼 징그럽게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윈디의 등을 밟아 멈춰 세운 뒤에, 티르빙을 사브르로 변형시켜 줄을 잘라주며 구속을 해제시켜준 뒤에, 정령계약을 맺기 위해 윈디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윈디. 정령계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사역마 소환진과 비슷하다고 엘티노스의 자서전에는 나와있지만, 지금 이렇게 나와있는 정령왕과 계약을 맺는 것은 어찌...읍!”
내 입에 따듯한 온기가 잠깐 지나가는 사이에, 윈디는 붉은 볼을 지우려는 듯이 노력을 하는 듯, 두 뺨을 양손으로 감추면서 입을 열었다.
“계약 성립이에요. 카일 씨. 모든 정령은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접문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계약을 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그렇다고 다 보는 앞에서 이러면 창피하잖아.
해연 씨도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고...
“카일은 기습공격에 약함. 공략할 수 있음.”
“넌 좀 조용히 해!”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해연 씨에게 확인을 했다.
“해연 씨. 엘라임과 계약을 맺을 때 정말 이런 방식으로 진행 되었나요?”
“아니. 소인은 단 한 번도 엘라임과 접문을 한 적이 없소. 정령계에 있었을 때 엘라임은 자신이 좋아서 따라 나오고 힘을 빌려준 것뿐. 지금도 정식적인 계약상태가 아니라오.”
“아하. 없구나.”
......???
“잠깐? 뭐라고요? 계약 상태가 아니라고요?”
해연씨는 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내가 동요하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레시아와 시나, 그리고 이제 추가로 윈디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이제서야 깨닫고, 분주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가라! 태초의 샘으로 가는 거다! 가서 네팔렘을 찾아라!”
“무슨 네팔렘이에요! 엘라임을 빨리 찾아야지! 해연 씨! 지금 당장 떠나야 해요! 애초에 그 긴 시간에 계약도 안 맺고 뭘 한 거야!”
어딘가의 검은 영혼석도 아니고 검은 계약의 돌 때문에, 엘라임이 잡혀서 악용되는 바보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자, 3층에 있는 사키엘의 문을 향해 모두 급하게 뛰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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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도 하나 쓰고 머리 염색하러 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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