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22
22
켈모리아의 과도한 SM플레이와 같은 전기충격에 당해 기절을 한지 얼마나 흘렀을까? 부셔질 듯한 온몸의 격통은 내 몸에 전세를 낸 모양인지, 한 동안 계속해서 지속 될 것이라 생각했다. 소리가 갈라진 듯한 불쾌한 기분의 진원지는 목. 노래가 아니고 함성도 아닌 비명으로 목이 맛이 가버리면서, 제발 팔,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길 기원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자 온 근육이 비명을 질러, 나도 모르게 고통이 가득 찬 목소리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크읏…. 아파.”
“그야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지휘관의 벌은, 죽음으로도 값을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다행이네. 그 학원장의 비위를 맞춰줄 정도로 귀여운 목소리로 울었다고?”
“그것 때문에 켈모리아가 날 기절시킨 거 아냐….”
듣기 좋은 비명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가학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버렸고, 켈모리아는 분위기에 취해서 나를 다시 기절까지 몰아가는 전기 충격을 가했다. 나의 팀원들은 처음에만 제대로 움직였지, 카를로스와 엘리온이 당하고 난 이후로는, 패닉에 휩싸여서 추풍낙엽처럼 전멸해버렸다.
그 상황을 냉철하게 보았을 때는 아직까지 내가 그들에게 있어선, 리더의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그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같은 위치에 있을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어색하고 남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개인마다 자존심과 개성이 너무 강한 탓에,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을 섞어줄 계란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한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비서 자리를 그만 둬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눈을 뜬지 1개월도 안 되었잖아? 애초에 켈모리아가 말하는 요구는 꽤나 무리한 요구라고? 이제서야 같이 지낸 지 1주일 조금 넘긴 사람들을 통솔하고, 연계해서 켈모리아를 잡는다? 그건 차라리 하늘에 별을 따는 것이 그것보다 쉬울 꺼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달라. 이건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듯 했다.
“세피르. 이거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켈모리아.”
순진무구한 소년의 얼굴로 즉답했다. 내 손과 발을 구속한 것은 질 좋은 검은 가죽이었다. 대체 켈모리아가 뭘 하려고 나를 이렇게 묶어놨는지 모르겠지만, 이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좋지도 않으니, 나는 세피르에게 빨리 말했다.
“세피르. 이거 끊어.”
“미안하게도 나는 켈모리아가 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라.”
안 그래도 좋지 못한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나 홀로 이 세상과 맞서는 기분이 들었는데, 사역마라는 존재는 어째서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남의 편을 계속 들어주는 것인지, 혹은 내 말은 왜 안 듣고 남의 말을 안 들으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대체 누구의 사역마야! 당장 안 풀어! 아니면 내가 자력으로 풀고 나가겠…”
“그 이상 몸부림은 오히려 건강에 안 좋아. 아리엘.”
세피르가 아닌 그 반대편에서는 상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증오가 담긴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며, 으르렁거리듯 낮게 한자 한자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켈.모.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귀엽다는 듯이 “응!”이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마법을 통괄한 자에게 있어선 이런 상황이 될 줄 예상을 했다기 보단, 확신에 가까운 계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뭔데요?”
“그야. 심한 전기충격을 받은 탓에 신경계나 다른 곳에 손상 여부를 보기 위함이지. 그래도 아리엘은 튼튼해서 다행이야.”
“그렇다고 묶어놓을 필요는 없잖아요!”
“지금 그 애들을 만난다면 너를 보자마자 죄책감에 시달릴 거야. 애초에 능수능란하게 지휘를 할 수 없었던 너의 잘못은 있지만, 너희들을 하나로 규합해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조치이기도 하고, 본보기로 너를 몰아붙였다는 것은 아리엘도 알고 있지?”
“그렇다고 절 그렇게 몰아붙이면 어떻게 해요? 게다가 중간에 즐기고 있었죠? 분명히.”
“아리엘이 귀여우니까.”
켈모리아가 왜 내 손과 발을 묶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켈모리아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나저나 정확하게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던 찰나에, 나의 궁금증을 단 한방에 해결해줄 사람이 내 시야에 등장했다.
“그건 그렇고 이런 어린 아이에게 전기고문을 멋대로 주면 안 된다고?”
켈모리아 옆에 늘씬하면서도 검은 와이셔츠와 와인 빛 스커트와 함께, 겉에는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백의를 착용한 여성이, 별보다 빛날 정도로 반짝이는 에메랄드의 두 눈동자가 나를 반듯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물결치는 긴 갈색의 머리카락의 일부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꼬면서 연분홍색의 입술이 움직였다.
“밀리아라는 아이도 귀여웠지만, 역시 아리엘이 훨씬 더 귀엽다고 해야 할까? 어쩌지? 켈모리아! 너무 귀여워서 어떻게 해! 나에게 조금이라도 인내심이 없었다면, 아니 솔직히 말해 켈모리아 네가 없었다면, 이 아이를 내 인형으로 만들어서 평생 귀여워해줄 텐데 말이야!”
수술대에 올려진 환자를 보며 기뻐하는 돌팔이 의사의 분위기와 많이 닮았다. 켈모리아는 폭주하는 레이나 씨를 진정시키면서 입을 열기를…….
“너는 남편이 있잖아? 남편을 인형으로 삼으라고?”
“그래도 하멀 씨는 거친 카리스마 있는 것이 더 좋다구~♥”
“그런데도 귀여운 것만 보면 곧바로 인형으로 만들려고 한다니까? 레이나 그 전에 아리엘의 몸을 진단하기로 했잖아. 애초에 몸 속에서 마나를 생성하는 것이 어떤 방식인지 궁금해 하던 거 아니었어?”
레이나 씨는 정신이 잠깐 안드로메다인지 어디인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는지 황홀한 표정에서 다시 정상적인 표정으로 돌아오기까지 1초가 걸렸다.
“아. 맞아. 아리엘의 특이체질에 대해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걸 켈모리아가 제공했었지?”
“대체 그 인간실험 같은 이야기를 어쩌다가 하게 된 거에요?”
켈모리아는 나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대답했다.
“술 게임을 하다가 졌거든.”
내 인내심이 무너지고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분노가 내 머릿속을 장악했다.
“켈모리아! 이거 당장 풀어! 지금 당장이라도 그 바보 같은 얼굴을 밟고, 평생 땅바닥에 기어 다니게 만들어 줄 테니까!”
“헤에. 역시 폭언은 아리엘의 개성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차피 질 것을 알면서도 이빨을 들어내는 늑대의 모습을 하다니 좋은 모습이야.”
언젠가 켈모리아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일그러뜨리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와중에, 레이나는 팔부터 시작해서 내 몸을 진단 하듯이 만지기 시작했다. 몸을 더듬거리는 성희롱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다른 마나가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내 온 몸을 회전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음. 역시. 몽마의 피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아. 게다가 아리엘의 몸은 일반 사람의 몸 구조하고는 전혀 다른 구조인데?”
“설마 심장 위치가 반대라거나 그거요?”
나는 레이라에게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봤지만, 레이라는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줬다.
“아니. 인체의 장기구조가 아니라, 마나가 쌓이는 구조를 말하는 거야. 보통 마나는 주변에 있는 마나가 자연스럽게 축적되기도 하고, 온 몸에 회전을 시키기도 하고, 손과 발에 집중을 시켜서 강화하기도 하는 등. 운영하는 방법은 수십에서 수백만 가지나 되는 방법이 존재해. 그런 방법 중에서도 대부분은 자신의 몸 속에 마나를 운용하는, ‘마나 연공법’을 주로 애용하면서 체내에 축적하고, 누적하고, 압축하면서,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는 거야. 마나의 친화력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연공법을 할 때마다 몰려오는 마나는 더욱 많아지고, 압축을 하면서 더 좋은 질의 마나를 만들어 나가는 거지. 그래서 나중에는 고위급의 마법도 마나 연공법을 얼마나 자주하고 능숙하게 하느냐에 따라, 시전시간, 위력, 마나소모 등. 여러 가지 요소에 영향을 끼치기도 해.”
한마디로 말해서 마나 연공법을 오랫동안 해오면, 마법을 사용할 때 그 능력이 상승하게 된다는 소리다.
“마나에도 등급이 있나 보죠? 1등급이라던가 A+등급이라던가.”
“영웅 엘티노스의 말에 의하면, 마나는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가장 까다롭다고 했어. 자연상태의 마나는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흩어지려는 성질을 보이게 하거든, 우리는 연공법으로 그런 마나를 흡수하고 우리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특이체질 중에는 마나에게 축복을 받아서, 연공법을 하지 않아도 거대한 마나가 들어오기도 하고, 품을 수 있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아리엘의 같은 경우는 자연 상태가 아니라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나를, 어디서인지 몰라도 직접 생성하고 마법을 사용하니까. 아리엘의 경우에는 연공법은 필요 없다고는 할지라도, 위력은 매우 제한 되어있거든. 그것도 개선해줄 겸. 신체검사를 급하게 하고 있는 것뿐이야.”
개선도 해주고 원인을 찾는 것은 다 좋지만, 어째서 손과 발을 묶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켈모리아가 묶어놨다고 한다면 분명히 나에게 주먹을 맞는 것이 싫다고 할 수 있지만, 레이나 씨가 그냥 진찰만 해준다면 내가 날뛰는 일 없이 가만히 있을 터인데.
날 뛰는 일?
“그러면 아리엘의 쓰리 사이즈부터 알아볼까나?”
“예!”
“‘예!’는 무슨! 당장 그 이상한 손짓 안 치워요!”
레이나 씨는 단숨에 악마가 된 듯이 섬뜩한 미소와 함께,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 무방비인 나에게 음험하게 입을 열었다.
“단념하려무나. 너의 마나가 어떻게 생성되는 지는 내 마법으로 알아서 알아낼 테니, 이제 그 귀중한 육체정보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실까?”
절망적인 상황을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니, 지금 당장이라도 세피르를 불러서 레이나 씨와 켈모리아를 재우라고 명령하고 싶었는데,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세피르와 켈모리아가 서로 사이 좋게 앉아서 수첩을 꺼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뭘 받아 적으려는 거야! 당장 그만 두지 못해! 안 돼! 이상한 곳 더듬지마!”
뭐에 신났는지 레이나 씨는 잔뜩 폭주가 된 상태로, 나의 전신을 이리저리 주무르고 있었다. 가끔가다 “이상에 근접한 허리 길이인 58cm!”라고 가끔 중얼거리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대략 20분동안 벌어지는 이 상황에 대해, 또 다른 이유로 차라리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신체검사를 빌미로 한 성희롱이 끝나고, 가죽으로 묶여진 손과 다리가 풀려나게 된 이후에, 켈모리아의 턱에는 주먹을 꽂고, 세피르의 정강이를 찼으며, 레이나 씨는 이미 도망가고 없으니 보복할 수가 없었다.
잔뜩 화가 난 상태로 네글리제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내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막무가내로 이리저리 움직였을 무렵. 황혼이 내 앞을 비추며 하늘을 붉게 태우는 동안, 나는 멈춰서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한 가지 생각을 했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다.”
어디가 나의 집인지도 잊었으면서도, 힘들고 지칠 때 안전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켈모리아와 같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 내가 예전에 혹은 기억을 잃기 전에 살아왔던 그 따듯하고 안전한 집으로. 평안한 안식을 취하고 응석을 부릴 수 있는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있는 그 집으로.
지금에서야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전부, 커피의 향기처럼 진하고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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