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14
14
여전히 야릇한 연보라 세계를 지닌 나의 꿈속은 한 인큐버스의 침입을 받아서 꼬이기 시작했고, 저런 꼬마가 어떻게 기본 200살이 넘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꿈속에서는 자신의 본 모습을 바꾸거나, 변형해서 침입을 하는 것 같은데, 내 취향이 절대로 저렇게 어린 소년이 다짜고짜 내 잠을 방해하면서, 모성애를 자극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런 모습이 아니다.
그래도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인큐버스는 괜히 오랫동안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마족의 비밀은 자연스럽게 지식이 쌓여가는 것. 지식이 업데이트가 되는 것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지식이 더 빠르게 쌓이기도 하고, 지금 저 인큐버스의 지식은 꿈속에서 여성을 홀리는 것에 주력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어린애처럼 사는 것이 자신의 취지에 맞는 것인지는 몰라도,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계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피곤해질 뿐이었다.
“그렇군. 그렇군. 확실히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 애처롭게도 그런 성격일수록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친다면, 대부분은 완전하게 무너져서 순종적으로 될 텐데 말이야?”
저런 건 대체 왜 지식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빅터를 좋아한다는 말은 전략상 내뱉은 한 수였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 시작했다.
“순종이고 뭐고, 우선 난 너와 계약을 맺을 마음이 없어.”
내가 차갑게 쏘아붙여서 말해도 얼굴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나에게 몸을 숙이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지금은 너무 갑작스럽게 계약의 이야기를 꺼내서 생각을 못하는 거겠지. 지금은 말이야.”
앞으로도 또 오겠다고 암시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장래에 내가 수면부족으로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꿈속에서 침입을 한다는 것은 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인가?”
“맞아. 지금도 마법학원장과 같이 자고 있는 너를 보고 있다는 소리야. 당연히 꿈에 침투하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무방비하게 자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
너무 각별하고 애처로워 보여서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저 인큐버스를 혐오한다거나 멸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꿈마다 찾아와서 “널 사랑해. 널 좋아해. 나랑 계약해서 마법소녀가 되어줘.”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면, 꿈에서 찾아올 때마다 주먹 한번씩은 휘둘러보고 싶은 충동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지금은 두 번째니까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나도 한심해 죽겠네.
마치 어디 판매원이라도 되는 마냥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인큐버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래도 나와 계약하면 이익은 충분하다고? 우선 매력이 올라가서 남녀노소 누구나 가릴 것 없이 꼬실 수 있어.”
“내가 지금 인기가 없어서 인생을 살아가기 싫은 사람으로 보여? 다른 곳에서 인기가 없는 사람에게 붙기나 하라고. 인간의 삶은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아.”
“음. 꽤나 유연하지 못하네. 그럼 일단….”
내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내 무릎을 베개로 삼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나와 마주했다.
“이야. 정말 편하고 부드럽네. 너를 보러 오랜 시간을 날아오는 것도 힘들긴 하거든, 이른바 장거리 연애라고나 할까? 물론 연애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한 관계지만.”
“애매한 관계고 뭐고, 너와 나는 이제 두 번째로 만났으며, 너는 지금 내 잠을 방해하고 있는 중일 뿐이잖아. 그보다 여성의 정기를 흡수해야 하는 인큐버스의 성질상. 지금 정기를 받아내고 있는 중이겠지?”
정기를 흡수하는 것에 있어서 마법진이나, 문양이 몸에 그려져 있다고는 하지만, 몽마 중에서 서큐버스, 인큐버스로 분류되고 있는 마족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멋대로 정기를 흡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편리한 구조를 가졌다. 사실상 이렇게 접촉하기만 해도 내 심박수가 천천히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어린 아이의 몸이라고 할지라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 때문이라 본다. 그와 덤으로 지금 저 인큐버스는 내 정기까지 뺏어가고 있는 중.
오늘아침은 컨디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저기 있잖아? 머리 좀 쓰다듬어줘?”
“200년을 살았다면 제발 어른답게 행동하라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머리를 쓰다듬은 이유는 단 한가지인데, 제발 좀 내 꿈에서 나가라고. 소년의 요구사항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겠지만, 꿈속에 접근을 허용한 것은 내가 아닐지라도, 지금 막무가내로 접근을 한 소년을 허용한 것은 나다. 과연,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무방비하게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게 만들다니. 어떻게 보면 저런 모습으로 다른 여성의 정기를 무자비하게 갈취한 사례가 많을 것이리라. 키가 크고 얼굴만 봐도 몸과 마음이 녹아버릴 것 같은 절세미남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순진하고 귀엽고 천진난만한 꼬마라니.
“너는 틈새시장을 잘 노리게 생겼네.”
“틈새시장?”
“아냐. 다른 곳의 용어야. 기억하지 않아도 돼.”
어째서 내 기억은 이런 애매한 지식도 같이 남아있는지. 나중에 창조주에게 건의를 넣을 수 있는 상자가 생겨난다면, 제발 이 지식부터 어떻게 처리를 하고 싶다.
“그나저나. 한 가지 물어보도록 할 게.”
“뭔데? 누나?”
여전히 심박수가 올라가고 혈액이 빠르게 돌아, 볼이든 머리든 불에 달궈지듯이 뜨거워지고 그로부터 5분정도 지났을 무렵. 아직까지 이름을 듣지 않았으니 물어보기로 했다.
“이름이 어떻게 돼? 적어도 내가 “망할 꼬마.”라고 뒷담을 하기 전에, 정상적인 이름을 듣고 싶긴 하거든.”
“‘세피르’. 나는 세피르라고 부르면 돼. 망할 꼬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내가 되돌려 주는 것은 차가운 반박.
그래도 세피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고만 있었다.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자면, 나와 계약을 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거야. 뭐. 지금 이 상태로라면 어차피 계약이 성사되겠지만.”
나는 자신만만해 하는 세피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마, 네가 노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신체접촉을 하면서, 강렬한 페로몬으로 상대의 넋을 놓게 만든 다음에, 스킨쉽을 하려는 척하면서 계약에 이행하려고 하는 거겠지? 상대의 판단력을 저하시키는 주문을 걸기 쉽게 정신방어체계를 무너뜨리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억지로 다른 사람을 덮치는 것과는 다르게 신중하기도 하고, 상대의 긍정적인 의사가 필요하겠지. 애초에 사역마로 계약한다고 하지만 지금 계약해버리면, 수직관계로 맺어질 경우에 내가 되려 사역마가 되니까. 너는 어떻게 보면 무서운 수를 내 꿈까지 들어왔다는 소리네. 대부분의 여성은 달콤한 분위기에 쉽게 넘어가겠지만, 내가 상대라서 정말 유감이야.”
세피르의 피를 담은 듯한 붉은 눈과 아침의 노을을 한 가득 담은듯한 나의 눈이 마주쳤을 때. 세피르는 “뭐야? 다 알고 있었던 거야?”라고 물어보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세피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단해. 그걸 알면서도 내가 접촉하는 것도 허용하고, 분석까지 할 정도로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그런데. 누나도 지금 한계가 아닐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많이 느려졌는데?”
머리를 쓰다듬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나! 분석을 한 건 나였지만 안 보이는 함정에 걸려든 것도 나였다. 이렇게 빨리 내가 한계라는 것을 파악하게 할 줄이야.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차갑지만, 속은 지금 뜨거울 정도로 불이 나고 있을 것 같아. 인간의 3대 욕구 중에서는 식욕, 수면욕, 성욕이 존재한다면, 지금은 어느 것이 최고 우선 순위야?”
“수면욕. 너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서 화가 나. 그리고 속에 불이 난다는 것은 분노라는 이름의 감정으로도 작용하니까. 아직까지는 네가 나를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세피르.”
세피르는 내 무릎 위에서 걸터앉고는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직접 확인해볼까? 그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불덩이는 분노일지…. 욕망일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에서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달고 풍미가 깃든 달콤한 숨소리가 내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어떻게든 도망은 가고 싶었지만 도중에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발버둥도 치지 못했다. 입술과 입술이 거의 마주할 무렵. 머릿속에서는 말 그대로 최악의 비상사태를 맞이하고 있던 찰나에, 세피르의 고개가 빠르게 뒤로 빠져나갔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지금 이렇게 키스라도 해버리면,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네. 저항하지 못한 아리엘의 모습은 나름대로 귀엽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나? 인큐버스인 나도 아리엘에게 무의식적으로 키스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너 또한 나에게 있어선 무서운 존재일지도 몰라.”
정말 다행
“쪽!”
“흐읏….”
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세피르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내 목 언저리에 따듯한 마크 하나가 생겼다. 어처구니 없게도 소리를 내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그만큼 데워져 있었고 민감한 터라, 꼴 사나운 모습 그대로 세피르에게 노출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비웃지도 않고 정말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따듯한 눈빛으로, 내 귓가에 천천히 속삭였다.
“내일. 또 꿈속에서…….”
급하게 눈을 뜨면 아침 해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고, 커튼 사이로 삐져 나온 빛은 내 눈을 직접적으로 강타했다. 그렇다고 눈을 감싸고 “으앙! 내 눈!”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렬하지 않았으니, 눈살이 자동으로 찌부러진 상태에서 내 등 뒤에 켈모리아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설마 내가 처음부터 세피르에게 압도당할 줄은 몰랐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기묘한 기분과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나태함을 뿌리치고 서둘러 일어났다. 메인터넌스로 인해 녹다운이 되어있는 켈모리아와 2층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 온지 1주일도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안에서 내 포지션은 고정되어버린 모양이다.
오늘은 휴일이라서 켈모리아가 어제 억지로라도 데려오라는 이유였을지도 모르고, 우선 몸이라도 씻고 아침에 할 요리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목욕실의 구조는 커다란 온탕이 자동으로 물을 정화하고 청소하고 있는 터라 바닥이 단숨에 보일 정도. 천천히 네글리제를 벗기 위해 거울을 보고 있던 도중, 나는 또 다른 이변을 깨닫고야 말았다.
“꿈속에서 당했던 키스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말 그대로 꿈속에서 당한 그 짓궂은 장난은 현실에서 내 목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흐음? 인큐버스의 낙인이네.”
“꺄악!”
기척도 없이 내 등 뒤에 나타난 켈모리아의 말 소리 때문에, 본능적으로 지른 비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정말 내가 생각해도 볼품없는 비명소리였다고 생각했을 때, 켈모리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같이 목욕이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해볼까?”
“먼저 들어가세요. 전….”
밖에 나가려고 하는 사이에 켈모리아는 내 앞에 문을 가로막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구? 으흐흐...!”
“잠깐만요. 그 변질자 같은 웃음은 뭐에요! 기다려요! 억지로 벗기지 마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나는 켈모리아에게 2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제발 좀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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