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40
240
그러고 보면 루멘이 알려준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천계에 입성한다면, 왠 인간 하나가 천계에 침입을 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바람이 된다. 몰래 몰래 엘티노스를 드넓은 천상에서 찾아야 하는 만큼, 시간을 아껴서 움직여야만 했다. 자잘한 동선낭비도 없이 엘티노스를 찾아서 가야 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아무 천사나 붙잡아서 “엘티노스 씨가 어디 계시는지 아시나요?”라고 질문하면, “인간이다! 발키리 님!”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고, 그 이후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계에서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엘리시아는 문을 열어주는 역할만 하고 나와 같이 들어가지는 않았고, 지금 시나가 옆에 붙어 다니면서 내 기척을 지워주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그냥 떠 돌아다니는 빛의 구체처럼 보인다고 하니.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허공에 빛의 구체가 떠돌아다니는 것은 신경이 많이 쓰일 텐데...
“마스터. 천계란 곳은 신성한 곳입니까?”
“그야. 천사와 신들이 사는 곳이니까. 신성력으로 가득 매워진 세상에서는 살아있는 인간이 그대로 노출될 경우, 그대로 육체가 소멸해버리고 영체로 되어버린 다니까. 지금 같은 경우는 시나가 막아주고 있어서, 내가 소멸하지 않는 것도 있고...신성하다고 하면 신성하겠지.”
과다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성녀가 아우리스 여신을 몸에 담고 권능을 휘두르자, 이내 그 몸은 하늘로 승천을 하듯 소멸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건 아마 아우리스 여신을 담을 그릇이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능을 사용해서 과다한 신성력이 몸 안을 침식한 결과라 보면 된다. 베가프의 경우에는 아우리스 여신에게 은총을 받아 힘을 빌려 쓰지만, 신성력의 부작용은 아랑이 막아주고 있겠지.
“거기 매우 수상해 보여서 딱 봐도 “저는 수상한 공입니다.”라고 표현하는 빛의 구체. 가까이 와봐.”
너무 구체적으로 찌르잖아...
어쨌든 날 부른 것은 은발의 발키리다. 발키리들이 전부 은발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발키리들도 발키리들만의 규칙이나 규정이 있지 않을까? 머리카락 색상은 꼭 은발이어야 한다. 뭐 이런 거...
“처음 보는 구체인데...음...이 세상에서 뜨겁고도 차가운 것은 뭐지?”
나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하는 것은 분명, 천계의 주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나저나 이 세상에서 뜨겁고도 차가운 것은 뭐냐고 물어본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음...어디 보자...
“팝 타르트요?”
나도 정말 터무니 없게 찍었다고 생각했다.
“음...통과.”
팝 타르트가 대체 뭔데!!!
잊을 만하면 나와서 나를 괴롭히냐!
“뛰어나신 암호해독이었습니다.”
“이게 어딜 봐서 암호해독이야...”
그냥 찍었는데 얻어걸려서 맞춘 거지...다시 발키리가 날아가면서 저 멀리 모습이 사라진 후에, 천천히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천계의 풍경은 사람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라고 할 것 같으면 대부분은 자신을 감추며 살기 때문이다. 발키리 이상이 내가 못 보는 대다수의 천계의 주민을 관측할 수 있고, 신과 여신들은 그 주민들을 인도해서 죽어서도 천계에서 자신을 신봉하게 한다. 그 중 가장 뛰어나고 우수한 신도에게 하급 천사의 관직을 내리며,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 테크 트리를 타게 된다.
“마스터 저기 날개 달린 사람들이 마스터의 뒤를 쫓아오고 있습니다.”
“엄청 빠른 속도로 날아와?”
“아뇨. 그냥 천천히 마스터의 뒤만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떠돌아다니는 구체가 신기해서 잠깐 따라가는 중인가 보네. 그럼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차후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올바르다.
“그럼 슬슬 몸 자체를 숨겨주겠어? 그렇다고 시각적인 빛의 굴절은 안 돼. 완벽하게 심안으로도 못 볼 정도로 나를 숨겨줘야 해.”
“그럼 신체적, 정신적인 모든 생물, 사물로부터 마스터의 존재를 감추겠습니다.”
시나가 내 어깨 위에서 잠깐 빛을 뿜어내자, 나를 따라오던 천사들은 서서히 두리번거리며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상급천사에 올라갈수록 심안은 기본이고,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까지 존재해서 엘티노스를 만나러 갈수록, 들킬 위험성은 매우 높아지니까 더 치밀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반신격화 입니까?”
“그렇긴 한데...내 성별은 바꾸지 말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안 됩니다.”
“어째서?”
“마스터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고 신격화 하면 캐미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또 어디서 이상한 말을 주워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데, 나는 저 소리가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시나의 학습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쓸 때도 없는 것들을 학습해온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문제가 심각한데, 아무튼 존재를 감추고 반신격화를 하는 이유는, 천계에 벌어질 몇몇의 소란은 직접 잠재우겠다는 의미로, 나를 확인한 목격자에게서 내 기억을 지우겠다는 소리다.
“하아...”
한 숨 엔터테이먼트에서 제공한 한 숨을 쉬고 난 뒤에 다시 시나에게 입을 열었다.
“아니 성별을 바꿀 필요는...”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고 뭐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
“외견이 좋아집니다.”
“...그래도 내가 편해야?”
“보는 사람들은 카린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내 앞에서 올리지 마!”
정말 자다가 한 번쯤 생각나면 이불을 대기권 밖으로 차버릴 만한, 흑역사의 그 단어를 듣고는 시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시나는 전혀 밀리지도 않고 사무적인 태도로 밀어붙일 뿐이고, 결국 내가 먼저 포기 선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내가 졌다. 너 알아서 해라...”
“그럼 테아나 메이크 업!”
“그거 다른 곳에서는 각성기거든! 함부로 말하는 게 아냐!”
그대로 던전에 들어가서 싸울 뻔 했잖아!
[다 되었습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시나가 동화를 한 덕에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를 직접 받고, 그대로 천천히 내 손부터 확인했다. 평소보다 약간 작고 근육도 얇아졌으며,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내 어깨를 넘어 가슴까지 덮을 정도로 길게 늘어진 걸로 봐선...아무래도 카린의 상태에서 빛의 여신으로 동화된 모양이다. 그러니까 레시아모드의 카린과는 전혀 상반된 시나모드의 카린이라고 할까?
어떻게 줄여서 말하려고 해도, 완벽하게 마음속으로 와 닿지 못하게 서술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동화하기 전에 맨눈으로 못 봤던 수 많은 빛의 영체들이, 동화하고 난 뒤에 내 주변에 밀집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동화를 하면서 아무래도 존재를 감추는 것에 실패한 모양입니다.]
시나가 사무적으로 담담하게 위와 같은 말을 나에게 했다.
“오! 저길 봐! 새로운 여신님이다!”
“어쩜 이리 황홀하면서도 신비로울 수가! 오늘부터 이 여신님을 따르도록 해야겠어!”
“오늘 저는 여신님의 좋은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부디 이 가련한 신도들에게 구제의 말씀을...”
뭐야? 저것들...말도 할 줄 알아?
아니. 그 전에 이미 죽은 녀석이 뭘 또 구제해달라는 거야?
일이 너무 커질 조짐이다.
아무래도 뭐라 좀 말을 하고 죄다 해산 시켜야겠어.
“에...저기...저는...”
역시 목소리가 얇아져서 고운 미성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된 것도 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오! 여신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모두 받아 적어!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와!”
“빨리! 이쪽이야! 이쪽이 성지가 된다!”
뭐라 말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신도들이 난리 나기 시작했으니까.
[시나! 이것들을 어떻게 조용히 돌려보낼 말 없어?]
[마스터. 오히려 이 기회에 엘티노스에 대한 위치를 물어보는 겁니다.]
엘티노스...? 아. 지금 이 신분이면 물어보는 게 가능하지.
“엘티노스라고 불리는 신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엘티노스 님이라면 인간계에서 위대한 대마법사이시자, 현재는 의식과 무의식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분을 말씀 하시는 거라면, 이곳에서 북쪽에 있는 산에 올라가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가끔가다 보면 어여쁜 천사들이나 발키리들과 손잡고 뛰어 놀고 있으니까요.”
...일은 제대로 하고 있다던가?
“아...예...고마워요. 그럼 전...”
“여신님! 그전에 저희들에게 좋은 말씀을!”
신도 어지간히 힘든 직업이구나. 시나야 빛을 만들어내고 자고 있었으니 상관은 없다고 하지만...어라? 왜 내 손이?
“그대. 처음으로 보는 나의 청을 들어주고, 나에게 무릎을 꿇어 구원을 간청하는 자에게 고한다. 내 이름은 람파시나. 한 공간에서 영원한 어둠을 맞이하고 있을 때, 어둠을 먹고 자란 난 빛이며, 티끌이라도 빛이 남는다면 모두 나의 유산이라고 여길 것이니라. 내 미약한 힘을 부여하여 이름을 지어줄 터이니. 그대의 이름은 앞으로 ‘샤이어’라 명명한다.”
“저 샤이어는 람파시나 님께 이름을 받는 순간부터. 저는 충실한...”
“아니. 그대에게 힘을 부여한 만큼 그대가 성장하여, 누구보다 눈부시며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약자들을 보호하는 신이 되거라.”
마치 뭔가에 홀린듯한 그보다 내 의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 없이 샤이어라고 불리는 영체가, 빛이 일순간에 퍼지면서 나와 같은 백발의 미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보다 날개도 안 달리고 무장이 되지 않은 걸로 봐선...
[잠깐. 시나. 지금 영체에게 무슨 짓을 했어?]
[저의 극히 일부의 힘을 나눠줘서 하급 신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네?]
뭐 천사나...발키리나 뭐 그런 것도 아니고...그냥 신으로 끌어 올렸다고? 한 순간에? 무슨 사람 멱살잡고 끌어 올리는 듯한 난이도로 말하고 있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는 듯이, 시나는 내 입을 빌려서 모든 이들이 듣도록 했다.
“어둠을 침식하는 빛의 권능자이자. 나의 대행자인 샤이어는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이 영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무수히 뻗어나가는 어둠으로부터 수호하는 방벽이 되거라.”
“람파시나 님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시나가 나와 동화하는 동안, 나의 행동을 제어한다고 생각하니...어떻게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적어도 내 몸 중에 자폭 스위치 버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도 놀랐어. 느닷없이 내 몸의 일부를 지배해서 권능을 나눠주는 것이.]
[마스터가 곤란해 보였기에, 제가 직접 나선 것입니다. 혹시 불편하시거나 기분이 상하셨습니까?]
[아니. 그래도 다음부터는 나에게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어.]
[숙지하겠습니다.]
내 뒤에서는 샤이어라고 불리는 남성의 시선이, 아직까지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왠지 눈을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엘티노스를 찾으러 산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반정도 신격화가 된 내 몸으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펐을 무렵.
“아잉~ 자기야~ 간지럽잖아~”
...어째서 천계에도 저런 닭살이 돋다 못해, 솟아 올라서 공허 속으로 사라지는 멘트가 나올 수 있을까. 음...혹시나 해서 내 생각이 건데. 여기 수풀을 이렇게 뒤져보면...
“제길! 누구...! 하아...루멘이 네가 찾아올 때까지, 천사를 꼬시지 말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군.”
“어라...? 누구?”
그래 내 생각대로였군. 역시나 엘티노스였어...
상급신이 되어서 그나마 멋진 옷을 입고 있나 했더니, 역시나 왠 아저씨처럼 하얀 티셔츠와 허리띠가 풀어진 면바지를 다시 고쳐 입으며, 그 천사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알았어! 집에서 기다릴게! 빨리 와야 해!”
...
“천계가 이상한 이유는 그쪽 때문이에요?”
“시끄럽고. 본론만 말해라 꼬마야. 아니면 그 상태로 저 천사에게 하려고 했던 짓을 그대로 하기 전에.”
뭘?
아니. 깊게 관여하지는 말자.
“엘티노스 잡화점을 만든 이유가...신인류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면서요? 엘라임에게 듣고 직접 대답을 들으러 찾아왔습니다만?”
“......그렇군. 티르가 결국 2단계까지 완성한 건가.”
기묘하게도 뻔뻔했던 엘티노스의 얼굴에서 천천히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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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해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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