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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루니아 씨와의 내기에서 패배한 이후로 인형놀이에 쓰던 인형이 되어, 한동안 여성용 옷을 이리저리 바꿔 입혀지는 악몽 같은 일을 겪고 난 뒤, 8시가 되자마자 나에게 입혀진 옷들을 죄다 집어 던지고, 남성용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그보다 루니아 씨가 내 사진을 계속 찍은 것 같은데...

 

"컬렉션이 더 늘었네에."

 

루니아 씨는 뒤에 음흉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면서 웃었고, 그것을 본 나는 이게 날 보호하려는 기사인지, 날 정신적으로 암살하려는 암살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레시아는 오늘도 나와 가위바위보를 하기 위해, 연습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저 방대한 마력을 쓰지 않고, 내 마나를 뽑아서 쓰는 거니까.

 

지치는 것은 역시 나였다. 그러다가 루니아 씨와 레시아가 서로 사이 좋게 카메라에 찍은 사진을 돌려보면서, 사이 좋게 놀고 있을 동안, 잡화점 입구에 있는 손님을 알리는 종이 이리저리 울렸다. 거기에는 박쥐날개와 더불어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심상치 않을 정도로 노출이 높은 차림의 머리에는 2개의 뿔이 달려있었고, 뒷모습에는 검은 꼬리가 보였다.

 

"지금 내가 자고 있나? 몽마를 왜 여기서 봐야 하는 건데?"

 

몽마 서큐버스.

물론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자고 있는 남자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몬스터다. 레시아가 통치하는 마계의 주민이 되기도 하는 이 마족은...

 

"오늘 샴푸가 다 떨어져서, 샴푸사러 왔는데...어디 있어?"

 

단지 샴푸를 사기 위해 찾아온 손님에 불과하다. 게다가 루니아 씨는 "어서오세요오."라고 말하고 있었고, 몬스터가 나타나도 해가 없으면 베어버리지 않는 건가? 게다가 3명씩이나 더 몰려와서, 머리핀과 꽃등 여러 물품을 고르고 있었다. 여기는 잡화점이니 이상하리만큼 장대한 물품목록을 가지고 있다.

 

"어라?"

 

한 서큐버스가 레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나 마족은 마왕을 알아 보는 걸까?

 

"이 고양이도 팔아요?"

 

못 알아봤다. 그보다 마왕님 앞에서 그런 말 하는 너에게 안녕을 빌어줘야겠구나. 물론 팔지 않는 물품이라고 대답하고, 조용히 있는데...

 

"그럼 이 사진은요?"

 

나의 벌칙사진을 노리는 다른 서큐버스가 루니아 씨에게 말을 했고, 루니아 씨는 웃으면서 "저는 보관용과 관상용이 따로 있으니까. 가져가세요오." 라며 친절히 대답했다. 물론 그 친절은 하얀 알갱이가 되어 내 정신을 강타하듯, 정신적인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그거 한 장에 5골드씩 받을 만한 거액의 물품이었나요?

 

"카일! 매출을 올렸어요오!"

 

사진만으로 30골드의 매출을 올렸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야.

 

"후훗. 내 달링도 이렇게 꾸며서 후후후."

 

방금 사진을 샀던 서큐버스가 음흉하게 웃으면서, 입구를 마지막으로 나갔다. 그보다 그 남자분이 심히 걱정될 찰나에 모든 서큐버스가 다 나간 것을 확인하고, 레시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레시아?]

 

[이놈의 릴리스. 짐이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고 했건만, 짐이 언젠가 그 바보 같은 년의 꼬리를 잡고 중얼중얼...]

 

지금 텔레파시를 걸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더 이상 걸지 않았다. 아까 마왕을 알아보지 못한 그 서큐버스들의 언행에 의해 심각하게 분노한 상태라고 보면 되겠지. 릴리스라고 이름이 거론 된 부하는 나중에 사키엘의 문으로 레시아가 마계로 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레시아와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 이후로는 손님이 매우 뜸하게 찾아온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허브티도 끓이고, 책도 가져와서 보고 있지만, 앞으로 이 이런 일을 평생 할 생각에 여전히 한숨만 나온다. 물론 루니아 씨는 7일 정도면 해방이지만, 나는 영원히 여기에 있어야 하는 팔자라서...행복을 위한 비밀 커맨드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언제나 조용하게 찻잔은 김을 내뿜으며, 천천히 식어만 가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잡화점은 이대로 평화롭게 가줬으면 좋았지만, 느닷없는 불청객이 뛰어들어왔다.

 

"어서오세...멜시스 씨?"

 

와인 빛의 로브를 뒤집어 쓴 체 등 뒤에는 거대한 상처가 있었다. 루니아 씨는 검은 달의 여왕이란 태그로 검을 뽑아서 경계태세를 취했고, 레시아 또한 일어서서 쓰러져있는 멜시스 씨를 지켜봤다. 결국 확인은 내가 해야 하는 건가.

 

"미안해......! 생각보다 빠른 마검의 폭주가...!"

 

"우선 좀 쉬고 있어요. 루니아 씨..아니 누나! 혈액팩 2개만 준비해주세요. 카운터 안에 있을 거에요. 레시아는 상처를 소독해야 하니까 구급상자를 가져다 주세요."

 

결과적으로 멜시스 씨가 입은 상처는 소독만 하고, 혈액팩 2개를 마시게 해주자 빠르지 않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재생을 하고 있었다. 물론 티르빙에 뭘 첨가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재생속도가 느렸지만, 우선 기절하지 않아서 다행일지 몰라도 지금은 수호 명령서로 인해 내가 보호받고 있으니, 루니아 씨는 검을 집어넣지 않고 계속 멜시스 씨를 경계했다.

 

"마검의 폭주라면, 지금 마일론은 어디에 있어요?"

 

"마일론이라면, 뭔가에 이끌리듯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어요."

 

"대체 왜..."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은 순간, 특유의 머리 속에서는 특유의 공명이 느껴졌다.

 

[그렇군.]

 

레시아가 뭔가 납득한 듯이 텔레파시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뭐가 일어난 거지?

 

[주인. 아무래도 마검에 변이가 일어난 듯 하다.]

 

[마검이 무슨 코믹스의 캐릭터도 아니고 어떻게 마검에서 돌연변이가 나와요?]

 

[그 마검에 인격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검의 인격과 주인의 친구의 인격이 얼마나 많이 부딪쳤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있는가? 수 없이 부딪치면서 마검도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마검은 소유자의 몸을 장악해야 하니까 타협도 볼 줄 안다.]

 

[그럼 그게 대체 돌연변이와 어떤 관련이 있는데요?]

 

레시아는 나와 두 눈이 마주치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마검의 포식이다.]

 

***

 

상황을 정리하자면, 마일론은 마검에게 지배를 당한 체 이곳으로 오고 있었고, 마검은 그간 수십 수백의 생명들을 먹고 자란 결과 낙인의 마검이 되어있었다. 어째서 낙인의 마검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면, 내 오른손에 기괴한 눈 모양의 낙인이 어느새 찍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마검은 현실에서 만든 검 중 하나. 티르빙과 성향이 비슷해도.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그것은 티르빙이 아니게 된다. 정체성의 상실이 그런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멜시스 씨가 일어서서, 우리를 대려다 주겠다고 공간이동 마법진을 주변에 펼쳐줬다. 파이론 마을과는 1시간 거리 떨어진 교차로에 마일론은 마검에 침식 당했는지, 붉은 눈을 띄었고, 주변에는 도적들의 시체가 보였다.

 

물론 도적들이 시비를 걸다가 죽은 것이라 판명됐지만, 정말이지 곱게 죽은 시체가 없을 정도로 난도질 당했다.

 

티르빙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았는데, 전에 봤던 모습이 소검이었다면, 지금은 대검을 필적할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피를 포식하고 낙인을 찍는 능력까지 생기다니. 이제 말만 하면 딱 괜찮은 돌연변이가 되리라 생각했다.

 

"어이 마일론! 니 친구가 왔는데?"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마검으로부터 들려왔다. 정말 말하는 거냐?

 

"지금은 마일론이 자고 있어서, 내가 조종하고 있던 거였지! 나란 녀석이 실수를..."

 

요새는 마검도 덜렁거리는 포지션이 존재하는 뜻밖의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저 마검이 어디서부터 비틀린 건지 알 수 없는 이유를 물어보기 전에...

 

"이 손등의 낙인은 그럼 니가 한 거냐? ...어 뭐라 불러야 하지?"

 

"티르빙으로 불러. 그리고 그 낙인은 내가 한 게 맞아. 목표물로 고정이란 뜻이지."

 

"그럼 마일론이 잠자고 있을 때마다 나를 죽이러 온다는 그런 소리로군."

 

루니아 씨와 레시아가 그리고 멜시스 씨가 내 옆에서 내용을 듣고 있을...

 

"와 귀엽다."

 

"우리 카일이 귀엽죠오? 한 장당 5골드에 사실레요오?"

 

"비싸긴 한데..."

 

밖에 나가서까지 그 빌어먹을 사진 판매하지마!

저게 무슨 기사야! 그냥 잡상인이지!

 

그냥 나 혼자 상대할 처지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나저나 마일론의 기억으로 봤을 때, 너는 꽤나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네?"

 

"어느새 기억을 침식할 정도로 무럭무럭 자랐구나. 그래서 이제 그 몸으로 뭘 하려고?"

 

"지금 마일론이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너뿐이더라고? 물론 만담 같은 그런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용병시절에도 꽤나 잘 해준 모양이야."

 

왜 하나 같이 내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너희 할 말만 하는 거냐?

 

"그래서 얼마나 들췄지?"

 

마검이 마일론의 기억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어디까지 아는지,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돌아온 마검의 대답에 예상처럼 내가 용병시절에 했던 모든 일을 함축적으로 표현을 한 것이.

 

"어릿광대. 맞지?"

 

"어릿광대? 그건 처음 들어보는 건데?"

 

내가 어릿광대를 했던 경험이 전혀 없었다. 분명 용병시절도 같이 했었고, 마일론이 사고치는 것을 뒷수습하느라 고생을 했지만, 내 생에 단 한 번도 어릿광대를 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마일론의 기억에는 광대가면을 쓴 너를 투영하고 있어."

 

"그 전에 나는 기억에 없다니까?"

 

기억의 어긋남.

어린 시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인의 친구는 어릴 때 허깨비를 자주 본건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레시아로부터 텔레파시가 도착했다. 물론 마일론은 성격과 행동만 빼면 모두 정상이었으니, 그런 헛것을 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럼 이 녀석은 지금까지 나를 광대가면을 쓰고 있는 녀석이라고 착각을 하고 나에게 의지해왔단 소리인데...애초에 나에게 그런 숨겨진 동생이란 복선을 깔려고 해도. 나는 이미 숨겨진 동생이고 뭐고 없다. 다 병 때문에 죽었으니까. 게다가 쌍둥이도 아니었고...

 

"이상하군. 그럼 마일론의 기억 속에 있는 이 녀석은 누구지?"

 

"그 전에 일단 마일론이나 해방시켜라. 네가 억지로 기억을 헤집지 않아도 너의 문제는 아닐 테니까. "

 

내 몸 속에 마나를 활성화 시키는 순간. 루니아 씨가 검을 꺼내들어, 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루니아 씨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명령서대로 저는 카일을 지키는 거니까요. 저런 건 분리수거 하는 데 좀 오래 걸리니까. 1분만 기다려주세요."

 

그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을 때. 나는 루니아 씨의 손을 붙잡았다.

지금 명령서대로라면 나의 위협 대상은 범죄자 단체로 찍혀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루니아 씨는 가차없이 마검과 함께 마일론까지 죽이려고 할 것이고, 오히려 내가 해결을 해야, 최소한 마일론이 살아서 도망가기 때문이다. 비록 친구라서 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릿광대에 대한 어긋나버린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제가 할게요. 루니아 씨."

 

"누나."

 

"...누나. 지금 마일론을 가차없이 죽이는 것보단, 내 친구에게 아직 들어야 할 정보들이 좀 남아있어요. 그러니까 마검과 분리시키는 것에 성공하면, 마검만 왕국 비밀보관소에 집어넣고, 저 둘은 도망갔다고 거짓 보고 좀 해주세요."

 

"곤란한데에...뭐 괜찮겠죠오."

 

고맙다는 나의 말을 끝으로 다시 앞으로 3발자국 티르빙과 마주했다. 힘껏 마나를 끌어보아 온 몸에 강화를 하고, 거리를 보며, 지형을 파악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물 바가지 빌려와서 얼음 물부터 뿌려줄 테니까."

 

나는 마일론에게 중얼거린 체 마법화살<Magic Arrow>을 장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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