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12
212
로버트 씨의 집에는 검소한 생활의 흔적이 보이는, 나무로 만든 침대. 나무로 만든 의자. 나무로 만든 탁자. 나무로 만든 장식품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아무래도 로버트 씨가 직접 만든듯한 물품들을 감상하면서, 레시아는 탁자위로 올라와 엎드리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나무의 재질은 잡화점에 있는 것과 다르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소재로 되어있노라.”
“마음이 진정되는 소재는 따로 있나요?”
그 이후에 다른 곳을 둘러보면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서 만들고 있는 듯한, 간이용 침대가 내 오른쪽에 있는 문이 열린 방에 고스란히 대기하고 있는 것. 은퇴를 하면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의지가 집으로 구현화 된 줄 알았다. 물론 지금 로버트 씨의 직접은 용병이 아니라 농부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지금은 가을이고 이번 계절에 추수를 앞뒀으니,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인 만큼 로버트 씨의 활약도 더욱 더 커지겠지.
“그나저나...그 간호사 옷을 입고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내 건강상태라면 상당히 양호하네만?”
“로버트 씨의 건강상태는커녕, 제가 진단할 수 있는 것은 태클 타이밍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 간호사 복장은 레시아와 시나가 억지로 입혀놓은 거니까. 저의 의지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어쨌든 본론으로 넘어가서...”
로버트 씨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조리 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더욱 정확하게는 신인류에 대한 정보와, 지금 호문쿨루스가 대륙규모로 섞여서 인간처럼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브센티아에 대한 나의 과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한 후에 호쾌한 웃음이 싹 지워지고 로버트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 마음속에 담아 음미하듯 경청을 해주셨다.
“따라서...지금은 본래 전 대륙의 적이었던 유랑극단 중에,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가 하멀 씨를 도와 수사를 벌이고 있고, 저는 로버트 씨에게 경고차원으로 와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니. 그저 마음속에 담아놓고만 있다가 만약...로버트 씨 주변에서 난리가 난다면, 그때는 빠르게 잡화점으로 와주시면 되요. 잡화점의 대결계가 작동해도 제가 이렇게 말해줬으니, 로버트 씨도 들여보낼 수 있겠죠.”
로버트 씨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은퇴했다고 해서 너무 얕보는 것 아닌가? 만약 호문쿨루스들이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그 자리에서 내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야. 물론 마을 주민 전체가 호문쿨루스라면 그건 사정이 좀 달라지겠지만...”
“뭐...그건 뜻대로 하세요. 저는 만일의 경우 피난처를 알려드린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뱀 조종자와 은빛 송곳이 없이도 괜찮으시겠어요?”
뱀 조종자와 은빛 송곳은 티르빙이 멋대로 집어삼켜버린 로버트 씨의 무기들이지만, 은빛 송곳만큼은 로버트 씨를 나타낼 수 있는 무기 중 하나다. 은빛 송곳니라고 불렸으니 지금은 이가 빠진 용병이라 생각했다.
“나야 괜찮네. 적어도 이 튼튼한 몸과 7가지의 무기가 함께 하고 있으니까.”
60세 중반을 달리시는 외모인데도 몸이 튼튼하시니 부럽군요. 하긴...아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다급하게 몸을 가리고 밖으로 뛰쳐나온 것을 봤었지...
그 순간은 내 눈이 정말로 잘못 되길 빌었다.
이런 일은 없다고...
“오랜만에 손님이 왔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쓰나! 자 여기 음료일세! 선선한 가을이라고 할지라도 낮에는 상당히 더웠을 텐데 들이키게.”
“음료라...”
나는 컵에 담겨있는 음료의 색상을 봤다. 옅은 분홍색의 액체라면 무슨 과일이 들어간 것일까? 로버트 씨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듯이 멍하니 있다가, 내가 컵을 집으려는 찰나에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 앞에 있는 컵을 회수해버렸다.
이거 뭐 줄려고 하다가 뺏는 것도 아니고...
“아. 미안하군. 자네에게 줄 것이 이게 아니었네.”
“...그럼 그 컵에 담겨있는 게 뭔데요?”
“별거 아니네. 좀 더 정상적인 음료로 줬어야 했는데, 실수로 어제 나와 같이 잤던 여자에게 먹인 음료를 줄뻔했군.”
...로버트 씨에게는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뭐...술이나...그런 거겠지.
“어디 보자...소다. 오렌지 주스. 보라색 음료...서니 D! 예!”
...지금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심정이 얼마나 착잡했는지 그 고통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서니 D인지 뭔지 하는 음료를 보아하니, 오렌지 주스와 흡사하게 생기긴 했는데. 어째서 로버트 씨는 서니 D인지 뭔지에 열광을 했을까?
아무튼 음료로 목을 축이고 나서 다른 대화를 했다. 다른 대화라고 해도 일상에 대한 대화일 뿐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메뚜기 때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검 하나를 들고 나와서 메뚜기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밀을 지켜냈다는 그런 무용담이 생각났다. 애초에 밀은 하나도 베지 않고 날아다니는 메뚜기 때를 전멸시킬 정도면, 아직까지 실력은 나보다 높은 수준이 아닐까? 로버트 씨의 마중을 받고 나온 나와 레시아, 시나는 이브센티아에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다. 물론 여전히 따가운 남녀의 시선이 버티기는 힘들지만...산 위에서 등산을 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과거와 겹쳐지는 모습도 있고 겹쳐지지 않는 모습도 서서히 보였다.
“주인이 전에 의뢰를 했을 무렵. 저 위로 그냥 절벽을 올라가지 않았는가?”
“그때는 빨리 의뢰를 해결하고 싶었고, 장비도 충분하게 가져왔을 때니까요. 지금은 이런 간호사 복장으로 대체 뭘 하란 소리에요? 간호사 복은 허공을 뛰어오를 수 있는 마법의 아이템이 아니라고요? 물론 마법부여가 되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시나는 왼쪽 어깨에서 말을 걸어왔다.
“마스터. 그러면 맨 위에는 사람이 살았습니까? 건축물로 보이는 구조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시나의 탐지능력은 대체 어디까지 인지...빛이 닿는 곳이라면 전부 파악이 가능한 걸까? 말 그대로 지금은 태양빛에 가려진 구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산 전역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살았었지. 분명 아랑을 섬겼다고 했는데, 엘티노스에게 잘못 덤빈 아랑이 어디론가 봉인되고 나서부터, 꽤나 힘들었던 시기를 넘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이고...”
끝까지 올라가는 집념의 등산코스를 마친 나는, 확실히 보이는 거대하지 않고, 조그마한 목재로 건축된 절을 볼 수 있었다. 사당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묵념을 하며, 천천히 내가 쌓아놨던 돌무덤이 있는가 확인을 하려고 했다.
이브센티아에 있던 그 수많은 돌무덤은 분명히 마을을 다시 지을 때 치웠어도, 이런 산속 깊숙하게...그리고 비밀리에 있는 돌무덤까지는 치우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길을 잘못 들었나? 대략 이런 경치가 보이는 위치에서 돌무덤을 쌓아놨을 텐데?”
아무리 약 2년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같은 장소에 오면 저절로 기억이 떠오르는 법.
“비바람에 휩쓸려서 사라진 것이 아닌가? 사람은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세상이 변한다는 소리가 있노라. 이미 2년이나 지난 세월인데 같은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렇긴 하죠?”
이미 2년동안 수많은 비바람과 이변이 휩쓸고 간 세월에, 그런 돌무덤이 튼튼하게 버텨줄 일은 없다. 하이힐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발도 빨리 쉬게 해줄 겸. 슬슬 돌아가려던 찰나. 옆에 있는 시나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마스터. 저 건물 안에서 생명체가 감지됩니다.”
“생명체? 어디 팬더라도 살고 있나?”
어쩌면 그 집 안에 있는 것이 동물일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빨리 내쫓으려고 천천히 다가갔다.
-끼이익.
앞으로 10M정도 남은 장소에서 문뜩 내 발은 멈췄다. 레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나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움직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거기!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막 들어오는 거에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머릿속을 헤집어서 억지로 꺼내고,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붉은 머리핀이 그날의 참상을 다시 각인 시켰다.
짙은 검은 머리카락에 흰색이 바탕이 되어있는 무녀.
붉은 눈을 하고 있는 모습이야 말로...
“아. 이런. 아무도 안 사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금방 나갈게요.”
지금 여기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으니, 발바닥이 아프다고 불이 나는 것도 잊어버린 체, 미친 듯이 뛰어가서 사당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재회의 기쁨이 아니라 이건 확실히...
“주인과 같이 있어서 알 수 있는 것은...확실히 호문쿨루스가 존재하긴 하는 군. 이브센티아라는 마을에 말이지.”
레시아는 담담하게 오른쪽 어깨 위에서,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다가 마음속은 세척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저렇게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호문쿨루스인 것은 확정이니라. 분명 아직까지 대기상태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지금은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믿는 거겠지.”
“제길...왜 하필...루비아 씨가 저렇게 살아있어야 하냐고요?”
“짐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가도록 하지.”
“아뇨. 일단 평상복을 입고 다시 만나봐야겠어요. 절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레시아의 무게가 느닷없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지자 마자, 휘청거리던 내 몸은 이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크학! 아프잖아요!”
“지금 주인의 상태로는 절대로 그 무녀와 만나게 둘 수는 없노라. 지금 주인의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나 알고 말하는 것인가?”
시나가 내 어깨에서 내려와 얼굴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마스터. 많이 창백하십니다. 거대한 정신적인 데미지가 우려될 수 있으니, 우선 잡화점으로 돌아가서 쉬는 것을 권장합니다.”
***
월식의 포식.
지워버리고 싶은 내 흑역사.
거기서 분명 월식을 봉인하던 무녀, 루비아 씨는 내 손으로 죽였었다.
당시에 월식의 조종을 받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감각은 손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신랑...”
루시피나가 내 모습을 보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나머지,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접어들게 되면서, 저 멀리 달려가서는 “어떻게 해요! 저러다가 신랑이 굶어 죽게 생겼어요!” 라고 레시아에게 따지고 있었다. 그에 레시아는 “아니...아직 저녁시간대가 아니기에 저녁을 먹지 않는 것뿐이지 않는가? 그대는 침착함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노라.”라며 타일렀다.
내가 충격을 먹어도 우선 배가 고프면 식사가 먼저이고, 굶으면서 실연에 빠지거나 그런 일은 없다.
다만...
생각이 좀 많이 하게 되는 것뿐.
어째서 루비아 씨가 호문쿨루스로 되살아 난...아니 솔직히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것은...불가능 하지 않을까? 이건 마치 사람을 복제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호문쿨루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이런 말인가?”
파내면 파낼수록 더욱 복잡해지는 이 바보 같은 사건...
마리아는 저 멀리 뒤에서 “그렇군. 지금 카일에게 필요한 것은 수분이니라! 어디보자...소다. 오렌지 주스. 보라색 음료...서니 D! 예!”라는 말을...
“그 서니 D는 요즘 유행하는 음료에요? 어째서 우리 집에도 있는 거야!”
“덤으로 20%가 주스인 쿨에이드도 유행이니라. 카일이여.”
“20%가 주스인 것에 열광하지 말라고!”
마리아에게 태클을 걸고 있는 동안, 레시아는 천천히 다가와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도 꽤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군? 분명 호문쿨루스의 제조방법은 죽은 자를 살리거나 할 수 없는데. 루비아인가 하는 그 무녀가 있는 모습을 보면...지금 그자는 죽은 사람의 표본을 이용해서, 호문쿨루스를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시아의 말을 끝으로...
다시 한번 찾아가기로 결심을 했고, 나는 레시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빠르게 답을 했다.
“그 전에. 기프트피어스 내놓으시죠? 지금까지 간호사 복장으로 입혀놓는 것은 무슨 심보에요!”
“...호에에에에~~??”
“모르는 척 하지마! 당장 내놔!”
물론...지금은 늦었으니 잡화점을 운영하고, 일반적인 복장을 입은 뒤에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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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 가면 다크소울3를 지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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