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03
203
하루가 지나고 나서 새벽에 잡화점을 운영하는 나의 모습은, 여전히 가위바위보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고통이란 글자가 각인 되어버릴 무렵. 기왕 이렇게 지는 거, 한 번이라도 이겨보자고 오기로 덤빈 것이 큰 실수였다고 한다. 이제 곧 3000전...아 이제 숫자가 너무 커져서 외우기도 힘들 무렵. 여전히 승률은 0%를 기록하는 기적의 확률을 맞이한 체, 시나는 내 어깨 위에서 조용히 고개를 까딱거리며 시야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허구한 날에 시계는 넘어가 화요일에 접어드는 시간에, 이렇게 외롭고 지친 날에는 나무늘보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제에 멸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에 비해 사람이란 동물은 늘 일어나면 고통을 받기 시작하고, 그 고통에 비해서 받아야 하는 행복은 너무나도 작다.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짧은 휴식이 길게 느껴지고, 지나가면 또 아쉬워지는 법인만큼, 어처구니 없게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것뿐. 비록 손님은 예전에 비해서 조금 늘어난 추세이고 마법사들이 질 좋은 마나석을 구입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파이론에 있는 모든 사람은...아니 아이니스와 베가프는 제외하고 이 잡화점에는 눈도 들이지 않기에 매출은 자급자족해서 살 수 있다.
서론이 길었군. 지금 내가 이렇게 길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알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지랖이 크고 노파심이 많은 내가 먼저 입을 열자면...
-콰직!
입에서 욕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온 세상을 멸망시키는 크기로 불어날 정도로 고통이 다시 엄습했다. 뒷목에 여전히 송곳과 같은 어금니가 박혀있고 내 혈액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힘차게 빨아들이는 엘리시아의 숨소리가 세어나갔다. 그렇게도 맛이 있던가?
“하아~ 오늘은 스크럼블 에그 같은 맛이야.”
피에서 그런 맛이 날 정도면, 나는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것일까? 분명 신이 나를 창조하기 전에 계란 4개와 버터 한 조각, 소금으로 간을 했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처량하다고 생각할 때.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주인은 체력이 없어서 문제로군. 마나에 의지하다 보면 기초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기초체력은 일반인보다는 좋은 편인데요...”
“애초에 고대 흡혈귀에게도 물렸을 때,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하느니라. 엘리시아는 어쩔 수 없이 주인의 피를 마시며 살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또한 주인에게 있어선 흡혈귀에게 물렸을 때도 전투를 속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판가름 한다. 즉, 다시 말해 주인은 이제 반헬싱의 뒤를 이어...”
“언제부터 여기가 흡혈귀 때려잡고 불에 태우며, 심장에 말뚝을 박는 장르가 되었는지 설명부터 해주시죠? 그보다 애초에 제가 사람이기에 스펙이 낮다고 하더라도, 지금 레시아는 마왕이잖아요? 여신들의 은총을 받고 신들의 가호를 받은 용사마저 때려잡을 수 있는 그런 마왕. 게다가 마계를 가위바위보 하나만으로 평정했으니 저보다 강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레시아의 기준으로 말씀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시나는 곧이어 나의 말에 뒤를 이었다.
“마스터는 애초에 신체적인 스펙은 낮을지 몰라도, 신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충만한 상태이며, 영혼이 강해서 정신방어가 뛰어나다는 것은 냥캣도 알고 있지 않나요? 애초에 마스터에게 얼마나 고생을 시킬 생각인 겁니까?”
시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노란 부리에서 말소리를 내뿜자, 레시아는 그것에 대해 반론을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우리들의 적은 아직 미지의 적과 같다. 지금은 반란군을 선동해서 모든 국가들에 반기를 사고 있는 유랑극단이 언제 어디서 그 거대괴수를 이끌고, 작은 나라를 침략할지도 모르고, 어릿광대를 이용해서 다른 이들을 타락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애초에 그것들은 인간이면서도 이미 인간이 아닌 자들이거늘, 주인의 응석을 받아주면서까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비둘기.”
“비둘기 아닙니다. 그리고 기왕 트레이닝을 하는 거, 제가 오히려 마스터의 성향에 잘 맞춰서 일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네로. 어서 터보에게 불려지기나 하시죠.”
“그대는 어서 베어 그릴스에게 튀겨지기나 할지어다.”
“그만 싸워요. 둘다.”
엘리시아는 내 등 위에 앉은 상태로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듯 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더 상위개념인 존재들이 어린애처럼 말싸움을 하는 것이 신기한 것인가? 그보다 목덜미가 아직도 아파 죽겠다.
나중에 확인을 했을 때는 시나는 그저 묵묵히 내 어깨 위에서 침묵을 유지했고,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엎드린 체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듯이 조용했다.
“여전히 남성의 피는 다양하고 풍부한 맛이 나오네. 그나마 혈액을 공급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군. 무거우니까 이제 그만 내려가줄래?”
언제까지 내 등 위에서 앉아있을 것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여성에게 무겁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고 싶었으나 힘이 없으니 늘어져있을 수 밖에.
“무겁다니! 나처럼 가벼운 사람도 없을 걸? 난 마법으로 5kg까지 체중을 줄일 수 있다고?”
“네가 어디 소설에서 나올법한 게에게 무게를 빼앗긴 히로인도 아니고, 나중에는 문구점에 있는 모든 물품을 옷 속에다 집어넣고 다닐 거냐? 그리고 마법으로 체중을 줄이는 것은 반칙이야.”
“뭐? 한번 더 물어달라고?”
“아니. 잘못했다. 봐줘라.”
엘리시아의 표정은 볼 수 없으나, 지금 여기 있는 것이 만족스러운 듯이 행동하고 있을까?
“최근에는 멜시스 씨와 자주 움직인다면서?”
엘리시아는 “어. 맞아.”라고 즉답을 했다. 그러기에 내가 권유를 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그러면 멜시스 씨와 같이 살아도 될 텐데?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야?”
“그야. 네가 내 하인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물리는 그 순간에 뭐 이상한 것이 적용되었다고 했더니...
“게다가 네 피가 아니면 더 이상 입에 들어가지도 않고, 물론 내가 많이 활동을 하다 보니까 너와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흡혈하러 오니까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누가 들으면 네가 적십자에서 온 사람인 줄 알겠다? 나는 그럼 매번 새벽에 헌혈을 강제로 참여해야 한단 소리더냐? 그냥 혈액팩 다 줄 테니까 그거라도 마시라고!”
“너 아니면 이제 먹기도 싫은 걸?”
쓸 때 없이 입만 높아가지고!
“아무튼! 마왕님도 우리들의 피로 이어진 맹약을 허락할...”
“허락하지 않는다. 주인은 짐의 곁에서 언제나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느니라.”
엘리시아는 “어라?”라고 당황을 상징하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레시아는 그 이외에 말이 없으니 침묵이라는 이름이 잡화점에 강림을 했다. 천천히 빈혈기가 사라지면서 몸을 자유자제로 통제할 수 있게 된 나는, 엘리시아에게 비키라는 듯이 손짓을 했고 엘리시아는 일어남과 동시에 추진력을 얻어, 레시아 앞으로 곧장 달려가 입을 열었다.
“마왕님은 저 남자를 저에게 상으로 주는 것이 아니었나요?”
“언제 그리 말했는가? 그리고 그대가 말한 피로 이어진 맹약은, 이미 짐이 다 때려 부셨노라. 물론 용족 혼인의 문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짐의 나름대로 그거마저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제 피의...뭐시기를 어떻게 때려부순 거지?
“주인이 짐의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력으로 진하게 키스를 하던 날. 그때 주인에게 속박 되어있던 맹약을 부수고, 더 이상 짐 이외에 어떤 자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노라.”
그 짧은 시간에 그 일을 다 했단 말인가?
“비록 저 올빼미가 걸어놓은 기묘한 힘은 부수지 못했지만...언젠가 주인은 짐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대체 그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하나하나 따지려고 했지만, 우선 제가 피곤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클하기가 이제 귀찮아졌으니까요.”
천천히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회복하고 있던 찰나에, 잡화점에 있는 손님을 알리는 종이 여김 없이 큰 소리로 울려 퍼졌고, 손님을 확인을 하던 찰나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니...
“어라...? 안녕...자기...”
기묘하게 생긴 가면과 더불어 반반을 나눈 검은색과 하얀색을 바탕으로, 옷을 입은 어릿광대가 피투성이가 된 체 잡화점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물론 엘리시아는 알지 못하니까 멍하니 있는다고 해도, 나와 시나, 레시아는 터무니 없이 광경에 잠이 죄다 날아갔다.
“...어릿광대잖아요?”
“어릿광대로군.”
“어릿광대입니다.”
...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어릿광대였다.
“...이거 어쩌죠? 치료는 해야 되나요?”
“그 후에 심문을 하면 된다. 하지만 묘하군? 어릿광대가 적의 본진으로 들어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은...?”
“마스터. 어떠한 추적마법이나 장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 이곳 밖에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이쪽으로 몸을 피신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추격자는 누구길래 그 어릿광대가 이런 일을 당했을까?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르겠네요. 미지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유랑극단의 일원이 우리에게 느닷없이 다가와서 치료를 하러 오고...기왕 이렇게 된 거 맹수 조련사가 우리들에게 잠시 동안 숨겨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이거 완전이 일이 개판오분전으로 되겠는...
-딸랑! 딸랑!
“후욱...! 후욱! 드디어 따돌렸군. 미안하지만 이곳에 잠시 동안만 숨겨줄 수 있는가?”
나는 즉시 공책에다 메모를 했다.
“멍청한 소리를 말하지 말 것. 그렇게 되면 멍청한 소리가 현실로 변한다.”
메모를 끝낸 후에 다시 어릿광대와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검은 후드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맹수 조련사에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너희들은 저번에 적으로 오다가, 이번에는 느닷없이 살려달라고 찾아오냐!”
“이럴 때일수록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차고로 전 대륙의 규모로 형성되고 있는 반란군의 일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는 것만을 알아두도록 하거라. 우리는 단지 한가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 있던 것뿐이니까.”
그렇게 정중히 엘리시아에게 붉은 장미를 주며 말하고 있는...
“내가 말했으니 내 쪽을 봐야지 인간아!”
“흠? 아름다운 꽃이 여기에 있는데, 선인장 같은 네 녀석을 보고 입을 열 수 있겠냔 말이다. 애석하게도 너는 남자이기에 나의 시야에서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저게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군. 도망치는 도중에 머리를 해머로 맞은 거냐? 적어도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대답을 하려면 그쪽을 향하고 입을 열어야 할 것 아냐?”
“뭐...언젠가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 언젠가는 얼마나 걸리는데?”
“내가 닌자 거북이를 다 볼 때까지다.”
저걸 진짜 코와붕가하게 때릴까?
그 전에...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는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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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 생각을 못합니다.
알바하는 곳에 손님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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