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7
157
“아르페 알프레이드 공주님께서 들어오고 계십니다!”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공주님은 살짝 내 앞에서 걸었고, 나는 우측에 서서 같이 걷기 시작했다. 발자국을 맞춰야 더 절도 있다는 소리가 있기에, 계속 왼발만 머릿속에서 생산하듯이 떠올렸고, 공주님께서는 그 와중에도 품위 있는 발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왕가의 자손들은 어린 시절부터 예절교육이 남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기 옆에 있는 여자는 누구지?”
신경 꺼.
“공주님과 잘 어울린다! 키아! 취한다!”
벌써부터 술 드셨어요?
“어쨌든 저 애보다 내 미모가 한 수 위야!”
그럼 네가 어그로를 끌어보라고!
아무튼 가지각색의 남녀들의 차별된 반응을 맞이하고 나서, 공주님은 프리트론의 왕. 즉 내가 있는 영토를 다스리는 왕의 앞에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인사를 했다.
“소녀는 대연회에서도 건강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상당히 기쁩니다. 앞으로 이 왕국의 큰 번영을 일으키기 위해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알프레이드 왕의 생김새를 보려고 했으나, 고개를 들지 말라는 공주님의 조언이 있었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이번 대연회에는 참석해줘서 아버지가 기쁘구나. 그 옆에 있는 친구도 부디 즐기고 돌아갔으면 좋겠네.”
“황송합니다.”
“황송합니다.”
목소리에 위엄이 넘쳐 흐르다 못해 이 연회장을 전부 질식해서 죽일 생각일까? 왕이 말할 때마다 한 순간에 모든 잡담이 촛불처럼 꺼져버린다.
“두 사람은 고개를 들라.”
느닷없는 왕의 소리는 내 고개를 저절로 들게 했다.
그런데 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푸근한 인상의, 고깃집 아저씨와 같은 인상이 보이는 걸까? 아니 그러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어서옵쇼! 뭘 도축해드릴까요!”라는 인상이다. 그렇다고 뭐 위엄이 없어졌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알프레이드 왕은 왕이 되기 전에 고기를 도축했던 직업을 가지고 있었나? 이것도 나중에 가설을 새워서 고찰을 해보도록 하자.
“공주의 말만 듣고 믿기지 않았는데, 실로 아우리스 여신님과 동급으로 신비로운 미인이군. 자네 정말 인간은 맞는지 의심되네만?”
멋들어진 팔뚝으로 검은 턱수염을 쓰윽하고 쓸어 내리며 왕은 나의 눈을 직시했다.
그러니까 그 눈은 가축을 도살할 때 나오는 눈이라니까요?
“과...과찬이십니다.”
“조만간 짐의 아들에게 그대를 소개시켜드리겠소.”
제기랄...
내가 어디 외계인도 아니고...
그보다 왜 소개를 시켜줘? 어차피 이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텐데.
어쨌든 그 다음의 순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레이비스 가문에서 크로이츠 레이비스 공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크로이츠 씨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위풍당당이란 단어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주변의 시선에도 흔들림이 없는 태산과 같은 움직임은 모든 이들로부터 시선이 집중 되었고, 밤보다 어두운 검은색의 정장에 황금색 깃을 세워 자신이 상남자라는 것을 표현했다.
사실상 목에 있는 깃을 세운다고 상남자는 표현되지 않을 텐데, 크로이츠 씨는 그냥 딱 봐도 상남자 스타일이다.
그런데 루니아 누나는 여기에 오지 않았
“언니에요오.”
언...
“잠깐! 언제 내 뒤에 온 거에요! 그보다 루니아 누나는 명단에 없었잖아요?”
“저는 언제까지 크로이츠 씨의 호위기사로 온 거랍니다아.”
호위기사라고 보기에는 진홍빛 드레스에 화장까지 풀 커스텀을 한 것으로 보아, 그냥 놀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크로이츠 레이비스 씨의 인상은 눈부터 확연하게 들어났다. 레이비스 씨...그러니까 하멀 씨와 같이 냉철한 금색의 눈동자. 그리고 건장한 체격에 최소 나이가 4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먹는 듯한 30대 초반의 젊은 외모. 레이비스 집안에는 괴물들이 사는 건가?
“신 크로이츠. 오늘 같은 좋은 날에 건강하신 폐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상당히 감격스럽습니다.”
“허허. 다른 이가 들으면 허약한 줄 알겠소.”
“하지만 폐하? 최근에 약의 구매 숫자가 늘지 않았습니까?”
“그건 짐이 좋아하는 배즙이라네. 절대 몸이 허약해져서 다른 보약을 달여 마시는 것이 아니라네.”
“그래도 폐하께서 구매한 약품 중에서 “불끈불끈 솟아나는 정력제!”라는 품목...”
“야! 크로이츠! 너 나중에 나 좀 따라와! 이 정신 나간 산적두목 녀석아!”
...
이건 대체 뭔 상황이냐?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은 공기를 알아차렸는지, 왕은 헛기침을 중요하니까 2번 뒤에...
“크로이츠 공. 나중에 짐이 부르면 달밤에 두들겨 맞...아니. 같이 산책이라도 할 테니 그때 꼭 나오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닌 왕은 이마의 혈관이 튀어나오는 것을 감추지 않은 체, 계속해서 들어오는 참가자들을 보고 있었고, 그 사이에 루니아 누나는 내 옆에서 설명을 해줬다.
“저희 아버지는 국가의 예산이나 재정을 관리하는 행정부를 총 감독하시는 분이세요오. 물론 법무부에 있는 얼간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법무부까지 건들고 계시는 분이지만 말이죠오.”
나는 오늘 부로 국가의 예산 중에 일부가, 왕이 좋아하는 배즙과 정력제로 나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아마 이걸 말하게 된다면 왕에 대한 능멸이라며 붙잡혀간 뒤에, 화형을 당하든 고문을 당하든 하겠지. 그 고문관은 레이비스...그러니까 하멀 씨가 될 테고.
“에드워드 가문의 일리오스 에드워드 공과 장남 바리스 에드워드 공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일리오스 씨와 바리스 씨의 크로이츠 씨와는 다르게 사뭇 달랐다. 온화하고 평온한 발걸음은 주변의 공기를 조화로 꾸몄고, 하얀색 정장과 정결한 옷매무시 같은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유전인듯이 머리카락은 은발과 벽안을 지니고 있고, 크로이츠 씨와 같은 수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평상시에도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듯한 모양.
세상에는 양면이 항상 공존하는데,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듯이 크로이츠 씨가 있으면 일리오스 씨가 존재했다.
크로이츠 씨는 왕의 오른쪽 편에 앉고, 좌측이 비어있는 것으로 보면 일리오스 씨의 좌석이겠지.
“대연회에서 폐하의 아름다운 존안을 확인하자, 신은 마음속 깊이 안심했습니다. 무병장수하여 언제나 늘 그래왔던 것처럼 프리트론을 수호하고 지켜봐 주시옵소서.”
입에서 울리는 소리는 정말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일리오스 공과 바리스 공은 언제나 봐도 모습이 정결하고 질서가 있어 보이니 참 좋군. 그전에 누가 들으면 정말 짐이 아픈 줄 알겠소. 허허허.”
왕국의 예절이 돋보이는 낮고 위엄 있는 웃음을 한 왕.
그러나 일리오스 씨가 입을 열었을 때는...
“하지만 폐하께서는 신에게 “한방에 원샷하면 솟아나는 정력제”를 구매하라고 했을 때,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것을 감지했...”
“아나 진짜...일리오스. 너도 그냥 크로이츠와 같이 맞을 준비하고 있어! 햐안 거머리자식... ”
다시 2차 정적.
그냥 뭔가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크흠...짐의 뜻은 크로이츠와 같이 달밤에 몽둥이질...아니 산책이라도 할 텐데, 같이 참여해줬으면 하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이 나라 괜찮을까?
망명갈까?
“일리오스 공은 군무부를 맡고 있어서, 병법과 전략전술, 무기수출 수입을 맡고 있어요오. 아버지에게 들었을 때는, 23세때 나라에 대한 공격이 들어왔을 때, 단 300명의 전사들로 100만대군의 발을 묶어서 시간을 벌었다는 실적이 있다고 해요오.”
무슨 스파르타에요?
“다른 칭호로는 ‘전략의 신’이라던가 ‘제갈공명’이라는 소리도 듣고 있지요오.”
“삼국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요? 당장 돌려보내요.”
아무튼 병법이나 군사에 대한 것은 일리오스 씨가 휘어잡고 있나 보다...물론 귀족들의 사병까지는 아니지만,전투력 밸런스는 일리오스 씨가 통제하는 거나, 왕실에 있는 정예병사들을 자유자제로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까지, 루니아 누나가 설명해줬다.
“언니에요오.”
“집착하지 마요! 누가 들으면 여자라고 오해할라!”
“지금은 여자잖아요오?”
빨리 남자로 돌아가고 싶다.
그보다 레시아는 또 어디 있어?
그 이후에 다시 여러 사람이 지나가고 나서 사회자는 아직 한 사람이 도착하지 않은 듯. 식은 땀을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고 있었다.
“아직까지 더스크 맥커드 공이 오지 않은 관계로...”
“멈춰랏!”
사회자의 말을 막은 거대한 굵은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에 맞춰진 거대한 갑옷이 마나를 부스터로 삼아 내뿜으며 날아가다가, 왕의 바로 앞에서 멈추고 안착을 했다.
‘푸쉬이~’하는 소리와 연기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입을 열기를...
“신 더스크.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오므라이스를 먹고 낮잠을 자다가, 연회시간에 아주 약간 늦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왕은 인자하게 더스크에게 “고개를 들라”라고 입을 열었다.
아직 투구에 가려져서 오므라이스를 먹고 잤는지, 아니면 그냥 오기 싫었는데 왠지 안 오면 또 뭐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이유야 어떻든 그래도 연회에 도착했으니 그게 다행이지 않는가? 실로 왕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고 없이 이렇게 도착해서 짐은 그 무엇보다 기쁘오. 그러니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시오.”
“하지만 폐하. 저번에 약속시간 2초정도 늦었다고 해서, 몽둥이를 들고 1주일동안 신을 때리려고 하지 않았...”
“아나...진짜 너희 셋 오늘 짜고 왔냐? 너도 나 따라와 이 자식아. 정신 나간 아이언 맨 코스튬녀석아.”
이번이 3번째인가...
보면 볼수록 이 나라가 괜찮은지 생각하고 있었다.
“흐음...그러니까 일리오스 공과 크로이츠 공도 맞을 준ㅂ...아니. 짐과 같이 산책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대도 짐을 따라 달밤을 즐깁세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그 이후에 여러 귀빈들이 들어왔지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없는 듯이 사회자는 속사포 랩을 하기 시작했다. 숨은 쉬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거 나름대로 역량이 아닐까? 말을 빨리 하는 것도 무서운데 발음까지 정확한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이 일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봤을 때는 일리오스 씨가 뭘 꾸미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감추는 사람일 수록 갈고 있는 칼은 날카로운 법.
“휴. 드디어 찾았군. 짐의 안식처를...”
내 어깨에 부드럽고 약간 묵직한 무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레시아가 나를 드디어 찾은 듯이 어깨 위에서 입을 열고 있었다. 뭔가 이리저리 쫓겨 다닌 모양인 것 같은데...
“큰일날 뻔했노라. 하필 그 메이드 자매에게 쫓겨 다녔더니 길을 잃고, 정원에 나가보니 다른 시녀들이 짐을 쫓아오지 않는가? 만일 육포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노라. 그러니 육포를 달라 주인.”
나는 레시아의 목덜미를 잡은 뒤에 귀를 잡아 늘렸다.
“어이. 아까 나를 두고 도망갔겠다?”
“냐아아! 아프다! 아프다! 주인!”
우선 레시아도 돌아왔고, 연회를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말이 내 귀에 들렸으니.
정보수집을 향해 움직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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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오늘따라 약을 많이 하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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