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5
155
의상실에서 내 눈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수백 단위로 추정되는 드레스들이었다. 나중에 저 옷들의 규모로 보았을 때, 대충 이 성 안에 있는 경비병 대부분을 드레스로 입히고 근무에 보내도, 충분히 남을 정도로 상당히 많았는데, 하필이면 내가 그 중에 40벌을 입어야 하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이 오후 2시니까 5시간동안 드레스를 입고 벗고를 반복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잠깐. 저 멀미 나려고 해요...”
“드레스를 보고 멀미가 난다니, 정말 특이체질이시군요.”
쇼콜라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비꼬는 듯 대답을 했다. 레시아는 아르페 공주님의 어깨 위에서 뭔가 불길하게 서로 상의하듯, 입을 움직이고 있었고 공주님은 레시아의 말에 가끔씩 눈이 반짝이며 별처럼 빛이 났다. 물론 ‘아! 이때를 기다렸어!’하고 도망가는 날엔, 내 바로 옆에 있는 쇼콜라 씨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로 만화에서 나올 법한 바닥에 머리가 꽂혀버리는,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에, 밧줄도 없는데 밧줄에 묶여진 마냥 의자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주인의 의상이 선정되었다.”
레시아는 마치 나에게 사형선고를 하듯, 내 무릎 위에 올라와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유언 하나 써도 될까요?”
“무슨 소리인가? 애초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드레스 정도는 입는 것이, 가난하고 어려운 평민 여성들의 소원이라고 들었다. 그런 드레스를 주인은 오늘 하루 40여벌이나 입을 터인데, 기뻐서 우주로 날아가 생각을 그만둬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있는 것은 드레스에게 수치를 주는 것이다.”
“오히려 레시아는 상당히 신이 나 보이는데요? 드레스를 입지 않는 역할인데도?”
레시아는 내 무릎 위에서 화장대로 도약해서 올라간 뒤, 다시 입을 열기를...
“짐은 마왕성에 있는 드레스는 기분에 따라서 40벌, 소장용 80벌, 전투용 드레스 20벌과 승부용 드레스 640벌이있다.”
“승부용이 너무 많아!”
“전부 가위바위보로 획득한 드레스이니라.”
“얼마나 털어간 거야!”
가위바위보로 640벌의 드레스를 털어갔다는 소리 그 자체가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그나저나 세부적으로 따진다면 대체 어디가 말이 더 안 되는 소리일까?
1. 승부용 드레스가 640벌이라는 점.
2. 애초에 드레스에 승부용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점.
3. 가위바위보를 대체 몇 백명과 했길래 640벌을 보상으로 받은 점.
내 생각으로는...
그냥 전부 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드레스가 무슨 벼에요? 심어놓고 수확하면 많이 들어오게?”
“카일. 움직이지 마세요. 화장을 해야 하니까.”
“공주님! 잠깐만요. 오늘 레시아와 따질 것은 다 따지고 들어가야 할...”
-푸욱!
“윽!”
쇼콜라 씨가 손가락으로 내 목 주변 어디를 찌른 이후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대체 뭐지? 설마 무림소설에나 볼법한 마비혈을 찌른 건가? 그게 대체 왜 여기서 나오냐고!
“거참 쫑알쫑알 시끄럽군요. 당분간 인형처럼 가만히 있으시죠. 그래야 공주님도 기뻐하실 것 같으니까.”
“아...안 돼!”
“돼.”
쇼콜라 씨의 어두운 얼굴이 내 앞을 그늘지게 했다. 섬뜩한 소리로 “돼.”라는 말을 하고 난 뒤에는 아르페 공주님의 왠지 불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화장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화장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별로 설명할 것은 없으나 확실한 것은 남자가 이용하는 화장품보다, 여자가 이용하는 화장품이 더 다양하고 더욱 발전했다는 소리다.
“화장을 잘 먹네요. 카일. 평소에 피부관리라도 하시던가요?”
“한 적이 없...”
“아직 말하시면 안 돼요. 파우더를 바르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머리 모양도 바꿔드릴 까요?”
“아니 머리모양은...”
“말하면 안 돼요. 카일. 그러고 보면 카일은 용병생활을 해왔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있나요?”
“글쎄ㅇ...”
“아이 참! 말하면 안 된다고 그러네...”
그럼 질문을 하지 마세요!
당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이라도 생각해주시던가!
화장하고 있으니 말하면 안 된다고 했으면서, 질문을 왜 하는 거야!
어쨌든...내가 말하는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사이에, 쇼콜라 씨가 다른 쪽을 찌르더니 몸에 감각이 돌아왔다. 아마 마비혈을 풀어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뭘 먹고 자랐으면 저런걸 사용할 수 있는 건지?
그 이후에는 내가 입을 맨 첫 번째 드레스는 내 머리색상과는 약간 연한 드레스였다. 그리고 다른 장신구로는 사파이어가 주로 박혀있는 목걸이, 머리 모양은 포니테일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였다.
“음! 역시 신비주의가 최고지. 그럼 귀여운 스타일로 바꿔볼까?”
아르페 공주님이 들뜬 만큼 내 걱정은 점점 쌓여만 갔다.
정말 이러다 실신하는 것이 아닐까? 근데 생각해보면 아직 나는 첫 번째 드레스만 입었다는 것. 그러니까 아직 천리 길에서 한발자국 밖에 내디딘 것뿐이다.
***
저녁 7시 50분.
이제 슬슬 잡화점을 열어야 했으나, 잡화점을 열기는커녕 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다. 말 그대로 정말 5시간동안 자동으로 옷 갈아입는 인형처럼 지냈더니, 레시아는 안리아스의 수정구로 어느 사이에 녹화를 하고 있었고, 그 녹화가 된 영상은 다른 마법수정에 담아서, 공주님께 선물로 줬다나 뭐라나...
차라리 마라톤을 뛰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이건 그냥 마라톤을 5번 정주행 한 것 같았다. 마라톤의 일화에서는 그 먼 거리를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알리기 위해, 맨발로 뛰었다가 죽었다고 했으나, 지금 나 같은 경우도 드레스 40벌을 갈아입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다행이 아닐까? 아님 기적이라던가?
뭘 그리 엄살이 심하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말도 하지 말 것.
올해 20세에 잡화점의 주인이 되고 나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인생이다.
물론 쓸 때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경험을 하고 있지만!
“신랑이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나요?”
루시피나가 레시아에게 내 상태를 보고는 질문했지만, 레시아는 그 질문에 수정구 하나를 루시피나에게 건네줬다.
“어머나! 우리 신랑은 뭘 입어도 예쁘네요!”
그런 말 하지마.
붉은 두 눈이 반짝이며 보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애초에 그럴 체력이 없으니 지금 10분이라도 조금만 쉬고 싶을 뿐이다.
아니 이제 5분인가?
“마왕님...우선 중간보고를...그전에 루시피나는 뭘 보고 있는 겁니까?”
마리아도 루시피나 옆에서 수정구를 보자마자...
“오오! 사랑스럽구나! 카일이여!”
저걸 그냥...
“주인님은 연회에 등장하게 되면, 모든 남자들에게 혼인 신청 받을 것 같은데요?”
루나는 언제 왔는지 같이 합류해서 수정구에 있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정말 이러다 암이 암에 걸리겠군.
“그나저나 중간 보고라는 것은, 그 어릿광대나 맹수 조련사에 대한 건가요?”
마리아는 잠깐 정신을 차린 듯 레시아와 나에게 입을 열은 것으로는...
“지금 그 자들은 ‘유랑극단’이라는 정체 불명의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전 대륙에 공연할 단원들을 모집한다는, 정신 나간 포스터들이 이리저리 붙여져 있었다고 하더군. 어쨌든 첩에게 봉사하는 사람들 중. 스파이로 유랑극단에 자원을 해서 정보를 캐내오라고 했다네. 그 이후에는 스파이들의 기량에 달렸지만...”
“유랑극단이라...정말 서커스라도 할 생각인가?”
문제는 그 유랑극단의 괴물 같은 전투력에 더불어, 전 대륙을 상대로 공연을 열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냥 이건 전 대륙을 찢어놓겠다는 소리 아닐까? 그 전에 리바이어선과 같은 그런 전설 속에 나올 법한 괴수를 다루는 맹수 조련사나...여전히 월식을 품고 있는 어릿광대나...배일에 쌓여있는 사회자라고 불리는 또 다른 동료...
여전히 정보는 적다. 그래도 검은 달의 여왕에 있는 스파이들이 그 곳에 잠입을 했다고 하니, 조금 더 확실한 정보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 8시가 다 되었다.”
“아...신이시여...”
물이 가득 찬 스펀지마냥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카운터를 향해 느릿느릿 이동했다. 오늘 하루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리 근처에서 강강수월래를 하며 놀고 있었고, 레시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카운터 위에 올라와서 엎드렸다.
“조사는 순조롭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걸리는 것이 몇 개 남아있다는 것은, 주인도 느끼고 있는 중인가?”
“어릿광대는 자신의 본연의 능력을 내지 않았으니까요.”
맹수 조련사는 거대한 괴수도 능숙히 다루고, 자신의 신체에서 다른 동물의 신체나 능력을 가지고 온 것에 비해, 아직까지 어릿광대가 하는 일은 그냥 저주 걸고, 월식과 같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등. 특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최근에 나의 생각이다.
분명 어릿광대도 월식을 얻었을 때, 무슨 수를 부렸거나 아니면 고유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어릿광대의 중요한 히든카드가 남아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을
“어머나~ 못 보던 사이에 많이 예뻐졌네? 마왕님께서 말하신 대로잖아?”
...이 목소리를 분석해보았을 때...
이런 모습의 나를 알고 있다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릴리스...”
“정답! 그나저나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건데도 잘 알아 맞췄네? 자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안경을 끼고, 가죽 방어구인지 옷인지 모르는 검은 색상에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왔다. 누가 보면 어디 첩보 만화에 나오는 스파이인줄 알겠네.
“칸포리우스 제국에 있는 몽화관에서 몽마들이 활약한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그야 당연히 우리 아이들이니까.”
“우리는 빼시죠.”
“너무해! 여태 우리들의 뜨거운 밤은 잊어버린 거야?”
“그런 밤 없거든요!”
최근 나에게 태클을 걸어달라고 저런 말을 먼저 하는 건가? 아무튼 릴리스의 다음 말에는...
“그나저나 그 아이 요즘 열심히 일하고 있어. 여성공포증을 이겨내 보이겠다면서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여성공포증을 가진 인큐버스는 전에, 아이니스로 인해 동기를 잡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살짝 안심을 하고 있었다.
“문제가 딱 한가지 있다면...”
“문제요?”
대체 문제가 뭐길래?
“여성 사제들을 그 아이가 다 현혹하는 바람에, 지금 우리가 개최한 미니 게임의 밸런스가 안 맞게 되어버렸거든.”
어째서 여성 사제들이 다 현혹당한 거야?
이러다 모든 여성들이 그 인큐버스 쪽으로 대거 몰리는 날에는...
“그래서 일시적으로 오늘 하루는 쉬는 중이지.”
릴리스가 저런 옷을 입고 쉬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큐버스는 자신의 본연의 숙명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라고 볼 수 있다.
“릴리스...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어라? 그러면 조건으로 내 침실에 오는 것은 어떨까?”
농염하게 웃으며 내 바로 앞에 눈을 마주치고 있는 릴리스의 웃음은, 또 하나의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그 갈등은...
저걸 때릴까?
때리지 말까?
“아니...그냥 다른 분에게 부탁할게요.”
“역시나 자기는 뻔한 것에는 넘어가지 않는 구나. 어차피 말하려고 한 내용은 잘 알았어. 허무의 공작에게 다 들었으니까 말이지.”
역시나...마리아의 행동이 나보다 더 빨랐다.
유랑극단을 조사하는 일에는 마음 놓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
“물론 내가 저번에 침실에서 남자 3명을...”
“그거 더 이상 말하면 정말 위험한 내용이니까 그만 둬요!”
남자 3명과 같이 진실게임을 했다고 억지로 수정해두자.
=============================================================================================
진실은 언제나 위험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나요?
크흠...크흠...
'취미로 글쓰는 중?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7 (0) | 2016.07.21 |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6 (0) | 2016.07.20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4 (0) | 2016.07.18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3 (0) | 2016.07.17 |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52 (0) | 2016.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