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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바다인지 개울인지 내가 못 본 환상의 장소에서 돌아온 뒤. 잡화점 내부에는 거대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어릿광대는 아직까지 죽어가는 월식을 등에 짊어지고 버티고 있었을까? 게다가 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검은 달의 여왕 단체가 그 행적을 찾아냈다는 소리는, 그렇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긴 하다. 분명 그 근처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마리아가 그 소식을 내 입으로 들었을 때는, 뭔가가 늦었다는 표정으로 잠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첩의 추격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거늘, 벌써 몬스터의 숲에 있는 오크 무리의 절반이 날아가다니...”

 

마리아는 자신의 실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곳부터 철저히 수색하지 못한 실책에 곧이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행적을 찾아낸 곳은 이곳과 그리 멀지도 않는 몬스터의 숲.

등장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가까운 곳에서 어릿광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월식의 목숨을 연명하면서 집단 학살을 한 것. 이렇게 되면 매번 실전훈련을 나가는 릴리 기사단에게도 알려졌다는 것이기에, 지금쯤 루니아 누나가

 

카일! 야호!”

 

언제나 마이 페이스로 오는 군...

 

지금 몬스터의 숲에 있는 이상현상을 조사하고 온 것인지, 루니아 누나의 찬란한 금발 위에 나뭇잎이 이리저리 붙어 있었다. 아니면 머리카락이 나뭇잎을 삼킬지도 모르지, 하하하. 이런 농담도 다 있

 

-아그작 아그작!

 

잠깐! 진짜 금발 머리카락이 나뭇잎을 먹고 있잖아요!”

 

? 숙녀의 머리카락은 그런 이상한 일 하지 않아요오?”

 

어라? 내가 환각을 본 것일까? 루니아 누나의 머리 위에는 나뭇잎이 없었다. 다행이네, 내가 제대로 잘못 봤으니까...그런데 이 위화감은 대체 뭐지?

 

그나저나 카일! 다음 잡지에 찍을 의상이 정해졌어요!”

 

어째서 저를 만나자마자 그런 이야기부터 흘러나오는지 잘 모르겠네요. 뭔가 잘 지냈느냐, 아니면 몬스터의 숲에 있는 대규모 학살현상이 터졌다던가, 화제는 상당히 많을 텐데, 어째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그 저주받은 잡지의 의상이야기를, 제가 두 눈을 뜨고 인생을 살아가는 도중에 최악의 상황으로 만드시는 거죠?”

 

그거야 카일이 귀여우니까아?”

 

...말이 안 통하는군. 느긋하게 웃으면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야 말로, 이미 이야기는 끊임없는 의상이야기로 갈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억지로라도 분위기로 끌고 갈 수밖에 없지.

 

몬스터의 숲에 어릿광대가 지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나...”

 

루니아 누나는 짧은 탄성을 내며, 잠깐 움츠러드는 분위기를 보였다.

 

루니아 누나의 기사단은 피해가 없나요?”

 

. 피해는 안타깝게도 없네요오.”

 

?

 

잠깐 뭐라고요?”

 

피해는 다행히 없었어요오~”

 

아하 다행이다.

 

가 아니라! 안타깝게 없었다는 말은 무슨 무서운 말이에요! 마치 기사단장이 자신의 부하가 갈려나가길 기대하는 분위기잖아요!”

 

루니아 누나는 내가 소리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요새 기사단원들은 하나같이 남자친구가 있단 말이에요오...그래서 기사단 일 끝나면 저랑 놀아주지도 않고, 카일과 이챠이챠하고 싶어도 이 곳은 수위를 높일 수가 없고.”

 

이챠이챠라고 하지마.

수위를 못 높인다고 불평하지마.

 

수위라는 단어가 지나가서 생각난 것인데, 이번 카일이 입을 의상은 상당히 수위가 높은 의상...”

 

어째서 다 돌려놓은 이야기의 진행방향을 다시 탈선시켜서, 철이가 엄마를 찾아 오리엔트 특급열차로 타는 거냐고! 애초에 이번 상황은 비상사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고, 어릿광대가 무언가 꾸미고 있으니까, 아직까지 포기를 하지 않고 월식의 목숨을 유지하는 거라니까요!”

 

은하철도 999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겠다!

 

목숨의 유지라...”

 

루니아 누나는 잠깐 숨을 멈추고 생각하듯이 입도 열지 않는 상태로, 가만히 6분동안 깊게 고민하는 듯 보였다. 월식이 새긴 여동생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상처에, 잠깐이나마 경직을 당했을 것이라 생각ㅎ

 

그럼 카일의 다음 백장미 잡지는 야생에서 찍어볼까요오!”

 

그만 이야기의 본래 주제로 돌아와!!!”

 

차라리 정글의 법칙을 찍으라고 해라.

어쨌든 어릿광대의 행적을 발견한 이상, 곧바로 추격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내가 여행을 보낸 매리와 마리에게도 하나의 과제로 남겨줬다. 아직까지 어릿광대가 다른 국경으로 가지 않는 이상. 월식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

 

아직 서두르지 말거라.”

 

레시아는 루시피나의 무릎 위에서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여태 잠잠해온 어릿광대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몬스터의 숲에 대량으로 학살하지는 않았을 터. 이것은 분명히 주인을 꾀기 위함이리라.”

 

마왕님의 말은 저의 신랑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네요?”

 

짐의 마나창고를 노리고 있는 것이니라.”

 

천천히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것은 어릿광대가 나에게 향하는 도발이라고 보아야 하겠지.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그 도발에 응답하지 않으면 또 다시 대량의 학살극이 나올 것이고, 그렇다고 응답하자니 왠지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첩이 몬스터의 숲을 돌아다니는 중에, 이 쪽지를 발견을 했다.”

 

녹색의 피가 이곳 저곳에 얼룩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크들을 죽여가면서 느긋하게 쓰여있는 글을 확인했다.

 

하피의 언덕

-누굴까?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어릿광대가 맞다. 물론 다른 이가 사칭할 수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굳이 적지도 않는 곳에, ‘누굴까?’라는 이상한 사족까지 붙이는 걸로 봐선,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판단 하에, 어릿광대가 라는 것에 확신한 순간이다.

 

어릿광대가 이상한 사족을 많이 쓴다고는 하지만,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판단할 정도라면, 주인의 머리는 여김 없이 우리들도 정상, 비정상이라는 태그를 붙여왔겠군.”

 

레시아가 또 내 독백을 읽었는지 내 앞에서 그리 말했다. 잡화점의 주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속이 편할 정도로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구나. 그보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내 독백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우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릿광대가 하피의 언덕이라는 글만 남긴 체, 몬스터의 숲을 빠져나갔던 것이라면 둘 중하나.

 

이미 하피의 언덕에 있다.

혹은 하피의 언덕으로 가는 중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선 만나봐야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릿광대가 아니라는 가능성을 1%정도를 걸고, 내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200번의 상황을 예측했다. 하피의 언덕이라면 가본적이 있기 때문에, 사키엘의 문을 통해 이동하면 되겠지.

 

그럼 하피의 언덕으로 가볼게요.”

 

그렇게 준비하려고 움직이는 찰나에, 레시아의 목소리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그냥 부르는 것이라면 무시하고 갈 수 있지만,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면 사람은 잠깐 멈추고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 짐에게 더 좋은 생각이 있노라. 들어볼 텐가?”

 

잠깐 가만히 서 있는 나는 말해보라는 손짓을 레시아에게 선보이자, 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만일 어릿광대가 주인이 죽거나 실종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한 적은 있는가?”

 

어릿광대가 제가 없을 때요? 그건 또 처음 듣는 발상이네요?”

 

이건 뭐 배트맨이 죽었을 때의 조커의 반응이 되려나? 아직까지 상상이 가지 않는데...

 

그러니까 어릿광대가 도발함으로써 주인을 자신이 있는 위치로 끌고 오려고 하는 것을, 주인이 오히려 역으로 도발을 하여, 어릿광대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게다가 그 가면은 주인의 제자들에게 주지 않았는가? 어릿광대는 확인할 방법이 없노라.”

 

그렇다면 나에게 일시적으로 사망하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없어진 척을 하란 소리인가?

 

...

따지고 보니 전자는 그냥 죽는 거 아닌가?

 

그래서 주인에게 제안하는 방법은...”

 

레시아가 내 귓속으로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하피의 언덕.

예전에는 용사들의 연회에서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하피들의 왕국이었으나, 카일이 메르티아와의 깡통차기를 한 끝에 겨우겨우 사건을 해결했던 곳이다. 물론 지금은 여름에 맞춘 도발적인 의상만을 지닌 어릿광대가, 자신만의 가면을 쓰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 오늘도 천천히 포식을 해야 하는 건가. 슬슬 먹이를 줘야 할 시간이잖아?”

 

혼잣말을 하는 듯한 명랑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소녀의 모습과, 말도 안 되는 잔혹한 학살자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고 찢는 소리가 나타나면서, 신비한 연보라 빛의 긴 머리카락을 가졌고, 붉은 눈은 공간을 뚫을 기세로 섬뜩했으며, 칠흑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성. 여성이라고 보기에는 거대한 마기가 그녀의 주변을 요동쳤다. 어릿광대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 시작했고, 어째서 이런 녀석이 내 앞에 나온 걸까? 라는 생각만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죽어가는 가짜 신을 몸에 담고 살아가는 것인가?”

 

내 취미가 뱀을 키우는 거니까!”

 

레시아는 저런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어릿광대를 보며, 크게 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애초에 저렇게 가벼워 보이는 자가, 자신의 마계에 있는 주민의 실종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서, 몬스터의 숲에 있는 오크의 절반을 학살한 자다.

 

그나저나 나는 카일을 부르기 위해 이런 일을 행한 것이라고, 추측까지 전부 다 하게 만들어서 불러온 건데...카일은 어디 있어?”

 

카일인가? 물론 그쪽이 짐의 주인을 찾는 다는 것은 알고 있노라.”

 

주인.

그렇게 들었던 어릿광대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애초에 저 마왕의 태도마저 달라지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아직까지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니, 다시 되묻는다는 선택지가 존재했다.

 

전 주인이라니? 마치 우리 자기가 죽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러나 레시아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요염한 입술은 호를 그리며 상대를 바보 취급하는 눈빛.

 

짐은 마왕이다. 언제까지 그에게 종속될 것이라 생각하는 가? 그저 마왕의 유희라고 한다면 유희일 뿐. 고작 인간 하나가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한들, 짐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어릿광대는 순식간에 몸을 박차고 일어나듯,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했다. 어릿광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레시아는 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떤 의미로는 확실히 죽긴 했던가.”

 

레시아는 허공을 바라보듯 한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방향으로 그대로 진행한다면 자신의 주인과 자신의 부화, 그리고 자신이 동경하는 아이돌이 같이 살고 있는 엘티노스 잡화점이 있는 방향.

 

돌아가면 주인에게 어떤 소리를 들을지 큰 걱정이로다.”

 

혼잣말로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레시아의 목소리는, 주변에 있던 차분한 공기들을 서슴없이 그리고 잔잔하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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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트북이 왔습니다!

물론 게이밍 노트북이지요.

따라서 고급시계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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