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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사람을 잡화점에 데려와서, 의자에 묶어놓고 의식을 차릴 때까지, 이렇게 묵묵히 기다려본 적은 난생 처음이다. 레시아 또한 언제 왔는지 기절해 있는 인형사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루나는 다시 정체불명의 상자를 자신의 방에 가지고 갔다. 아무래도 책이 들은 것 같은데...저것까지 수색해서 압수해가면, 너무 불쌍해질지도 모르니까, 그저 모르는 척을 했다.

 

루시피나는 저녁을 차릴 준비를 했으며, 마리아는 목욕을 끝낸 뒤에, 힘차게 우유를 단숨에 들이켰다. 람파시나는 잠에서 깨어난 후에, 내 어깨 위에서 가만히 아무 말도 없이, 기절해있는 인형사를 직시하고 있었다.

 

오징어 덮밥!”

 

힘차게 눈뜨며 일어난 인형사는 특정 메뉴를 외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커다란 눈으로 주변을 쭉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집의 메뉴는 오징어 덮밥인가?”

 

아니...그건 아닌데? 애초에 오징어를 사지 않았고.”

 

그러자 인형사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안 돼!! 제발!! 제발!! 아우리스 여신님!”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그 정열의 남자가 이상한 무공을 펼치는 기묘한 만화. 어쨌든 나는 절규하고 있던 인형사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정보를 필히 알고 싶은데, 그쪽은 용도를 알고 있다고 말한 기억이 있지?”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덮밥으로 해준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이 정신 나간 양반아! 아까 전에는 옥수수더니 이번엔 오정이 덮밥이냐! 그만 정신 차리고 스토리 진행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바로 마계로 보내버린다!”

 

그러자 인형사의 오정이 덮밥에 대한 패닉이 어느 정도 해결된 듯. 정신을 차리며 나에게 이상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큷큵큶.”

 

그거 어떻게 발음하는 거야?

 

아무리 나를 고문하고 고통을 줘도, 시간손해일 뿐이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이도록 해라! 너희들에게 알려줄 바에 죽음을 선택하겠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인형사에게, 레시아는 곧장 거대한 마기를 내뿜으며 하얀 손톱을 드러냈다. 짙은 살기에 인형사도 겁을 먹어서 벌벌 떨고 있었고, 그 표정을 보고 있던 레시아가 말하기를...

 

호오? 짐 앞에서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은 많았으나, 죽여달라고 간청하는 자는 없도다. 그대는 죽음으로 헛된 명예를 유지해나가려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있을 뿐.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을...그런 바보 같은 허세로 명을 끊어달라고 하니,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그러자 인형사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 대본을 잘못 외웠어! 원래 이 장면에서 말하는 대사가 아냐!”

 

대체, 댁은 뭘 외우고 다니는 거요?

아무튼, 레시아의 살기만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한발자국을 옮겨갈 뻔한 것을, 잘 무마시켰는지 아직까지 레시아의 손톱은 건제했으나, 살기는 빠르게 지운 듯 했다. 인형사의 대본이든 각본이든, 중요한 것은 판도라의 상자에 관한 정보뿐.

 

물론, 레시아 일행이 심연의 도서관에서 찾아낸 정보도 있지만...

 

그 판도라의 상자는 비어있던가?”

 

인형사가 맨 처음에 드디어 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말은 위와 같았다. 애초에, 이 인형사가 판도라의 상자가 비어있는지, 가득 찼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다면,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신화에 대해 말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비어있는 상태냐고 물어봤다는 의미는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다.

 

내가 집었을 때부터 비어있었는데, 혹시 비어있으면 좋지 않거나 그런 건가?”

 

우선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 인형사는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인형사는 말했다.

 

아니. 오히려 판도라의 상자가 탄생하기 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애초에 다른 신화의 신인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항아리든 상자든 일단, 엄청 나쁜 것들을 채워 넣고, 밑바닥에 깔려있는 희망을 집어넣기 전. 그 빈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판도라의 상자다.”

 

판도라의 상자라고 해서 안에 이상한 질병, 죽음 뭐 이런 거나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 전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선, 어처구니 없는 물건을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안전하게 가져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레시아에게 확인을 하듯 얼굴을 살펴보자. 레시아는 두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레시아가 부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모든 것을 집어넣고, 모든 것을 내뱉을 수 있는 그런 물건 중 하나다. 당연히 이 물건은 신화에 나왔던 진짜 판도라의 상자와는 좀 다른 녀석이지만, 이 상자에, 죽음, 질병, 기근 등. 인간계에 대 혼란을 줄만한 것들을 집어넣고, 누군가 열었을 때는 온 세상이 난장판이 되는 물건이지. 사상이든 뭐든 전부 다 집어넣을 수 있다.”

 

지금은 뭔가 집어넣어야 하는 모드라는 뜻. 판도라의 상자는 텅 비어있는 만큼,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 추상적인 것도 담고 상자를 열어 온 세상에 퍼트린다는 것. 뭔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라 크툴루 신화에 더 가까울법한 물건이다.

 

두 번째로 물어볼 것은 저기 있는 인형사는 대체 무엇이 필요하길래, 판도라의 상자를 뺏어가려 했는가? 그러자 인형사는 후후후...”하고 낮게 웃으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인형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꿈은, 최강의 인형을 만드는 것. 거기에 필요한 것이 판도라의 상자다. 판도라의 상자에 집어 넣을 것은, 무한한 동력. 그 동력을 이용하여, 내가 직접 제작한 건★을 만드는 것이다.”

 

★담? 그 거대하고, 우주에서 활동하고, 장식품으로 다리 두 개가 붙어있는 그 마장기를 만들었다고? 그걸로 대체 뭘 하려고?”

 

당연히...온 대륙을 내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지!”

 

넣으면 뭐하게?”

 

“......글쎄...”

 

뭔가 목표가 뚜렷한 야망이 아니라, 일단 점령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악당 유형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가져가서, 무한한 동력원을 집어넣고, 그 이상한 로봇에게 부착시킨 뒤에, 자신이 대륙을 자신의 손아귀를 넣으려고 노력하려 했지만, 다음에 대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인형사는 생각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고, 2분간 시간을 준 뒤에 들려온 답은 이러했다.

 

아니, 최근에 제가 악당 커뮤니티를 하는데, 거기서 인형사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물품을 본 이후에, 침공하려고 하는 것뿐이거든요? 그렇게 대륙을 제 손아귀에 넣은 후에는,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인형사에 대해 재평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악당 커뮤니티는 뭐야...

거기에 어릿광대도 가입 되어 있는 건가?

 

아무튼 저는 이제 제대로 발동하는 인형이 없으니, 이만 집으로 보내주시죠? 안 그래도 월세 내라고 집주인이 난리를 치던데...”

 

너무 현실적인 악당이잖아. 아무튼 밧줄은 내 명령에 따라 스르륵 하고 풀렸다. 몸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인형사는, 나를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름을 못 들었는데, 나는 베리타네시아 가문...지금은 몰락해버렸지만, ‘사브누아 베리타네시아라고 한다. 사실 이곳이 아니라 다른 제국에서 쫓겨나온 몸이니까.”

 

다시 후드를 깊게 눌러쓰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자신을 알리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다른 지역에 왔으니, 풍습이나, 계율이나, 습관 같은 것이라고 보도록 하자. 지금은 여름이라서 엄청 더워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입을 열었다.

타인이 소개를 했으니, 나도 소개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니까.

사실, 그런 것은 별로 신경 쓰지는 않으나,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좋으니까.

 

나는 카일. 여기 엘티노스 잡화점의 현재 주인이야.”

 

엘티노스라면, 500년전에 죽은 그 전설의 대마법사인가? 나의 조상이 엘티노스의 동료라고 들었는데, 여기서 이런 기묘한 우연을 보게 되는군.”

 

그 조상님도 엘티노스에게 시비를 걸은 건가? 아니 애초에 간판에 이름이 걸려있는 걸 안보고 인형에게 다짜고짜 명령부터 내렸다는 건가? 어디를 습격하는지는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것 아냐!

 

분명...이것은 조상님께서 더 이상 악행을 멈추고,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계시임이 틀림없다.”

 

조상님께서 무덤에서 기어 나와서 겁을 준 것도 아니고...

 

아니, 그건 잘 모르잖아? 애초에 무덤에서 튀어나와서,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말을 한 적도, 가능성도, 그게 벌어질 일도 없다고 생각해.”

 

확실히.

아직까지 나는 이 자를 신용할 마음이 없다. 늘 스토킹을 해오면서 나를 지켜봤던 사람이지 않는가?

 

그리고, 저번부터 나를 계속해서 감시하던데, 제발 그거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사브누아라고 불린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누구도 스토킹한 기억이 없다. 애초에 판도라의 상자를 입수했다는 정보만 받고, 바로 그쪽 잡화점에 습격해서 뺏어가려는 것뿐이다. 물론,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입수 정보는 검색 사이트인 구★에서 알아냈을 뿐이다.”

 

★글은 그런 거 안 알려준다고!”

 

애초에 그게 뭔데!

그렇다면 예전부터 느껴지는 그 시선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일까? 인형도 인형사도 나를 스토킹 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면, 이번엔 대체 어떤 사람이 날 보고 있는 걸까?

 

***

 

인형사를 그냥 돌려보내줬다.

판도라의 상자는 2층에 안전하게 보관을 하고 있고, 인형사도 내 실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고, 여전히 창문 밖에서 스토킹을 하고 있다는 건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여전히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때, 레시아 입을 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같은 경우, 아직까지 새벽 3 40. 아직까지 밤은 짧고 해가 길게 강림하게 된다. 아무튼 레시아가 말하기를...

 

아직까지 그런 정체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리 위축될 필요 없다. 짐이 나중에 주인이 나갔을 때, 경호원으로 하나 둘씩 붙여놓으면 될 것이다. 솔직히 그것만으로 대부분의 걱정은 다 끝나리라 본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야.

 

괜찮습니다. 마스터는 제가 지켜드립니다. 그 어떤 외부의 침략이 올지라도 말이죠. 설령 저런 무지개 빛으로 날아다니는 우주 고양이라던가.”

 

뭣이? 그 깃털 하나하나 뽑아서, 마왕성에 화살을 하나하나 만들어 줘야 할 텐가!!”

 

또 싸우기 시작하면, 이 둘을 말리고 자야 하는 시간이 과연 오는 것일까? 오늘도 레시아와 람파시나는 서로 눈에 불꽃이 튀어나갔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결국 내 양손이 출동해야 했다.

 

냐아아! 아파! 아프다! 주인! 그렇게 터질 듯이 조르지 마라!”

마스터. 아픕니다. 빨리 놔주실 것을 권장합니다.”

 

레시아와 람파시나를 괴롭혔다는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 소문이 튀어나온 것은, 고양이의 실험도 모자라서, 올빼미들을 전부 납치해서 깃털을 전부 뽑아 버리고 고문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만들어졌다.

 

진짜 이 사람들은 틈만 나면 남의 잡화점에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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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면서 썻어요.

19시간째 깨어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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