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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72

FNL-Phantasm 2018. 2. 12. 22:55

572

 

 

 

세상에 화나게 하면 안 되는 부류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애국심이 강한 사람.

하나는 권력이 강한 사람.

또 다른 하나라면...지금 당장 나를 지옥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꺼림칙한 분위기에 시공간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시공의 눈을 개방하는 그 순간부터,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는데, 거대한 낫을 든 무언가가 내 허리를 향해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히드라!”

 

-촤르르르르르륵!

 

왼팔에서 출격한 9개의 검은 사슬 중 3개가 내 주변을 보호하고, 6개가 전방으로 돌격하는 적을 저지했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지 못했다면 영문도 모르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어지는 마법 같은 일을 겪었겠지.

 

정말 아빠야! 내 공격을 이렇게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고 했잖아요!”

 

하아...어쩌다가 본인이 저 아이 때문에 두통에 시달려야 할지. 이것도 전부 너 때문이니 형량추가다!”

 

뜬금없이 형량을 추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 이전에 안리아스의 수정에서 봐왔던 소피아가 나를 직접 처형하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혹시 그건가? 너무나도 사랑하니까 죽여서 같이 있고 싶다는 그런 거? 생각을 해보니 그건 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 전에 뱃사공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뭐 하는 거야? 명계로 가서 죽은 자나 인도하라고.”

 

...나는 늘 평화롭고 정상적인 환경을 맞이한 적이 없지. 그래서 내 가정환경도 뒤틀린 시공마냥 난장판인가 보다. 아무쪼록 지금은...

 

살아남는 게 더 우선이니까.

 

그야 당연히 아버지를 데리러 왔지! 금화는 준비 됐어?”

 

밝게 웃으면서 곡선을 그리는 대형 낫을 막아 세우며 정신 없이 공방전을 벌였다. 염라대왕은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협공할 마음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낫을 휘두르기만 할 뿐. 별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뭔가 비장의 수라도 있는 걸까? 가속이 붙은 몸을 이끌고, 왼발을 땅에 디뎌 살짝 턴을 돌아 멈췄다. 제발 싸울 때는 여장이라도 풀게 해주지.

 

저기. 소피아. 잠깐만 기다려줄래?”

 

? ?”

 

섬뜩하게 웃으며 내 질문을 받아 쳤다. 누가 저렇게 키운 건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레시아. 대체 미래에서 무슨 일을 했길래 애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요.

 

소피아의 살기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옷 좀 갈아입자. 차라리 죽더라도 정상적인 남성용 복장을 입고 죽고 싶거든. 느닷없이 이 공간이 사라지고 현실 세계에서 내가 죽었는데, 여장한 상태로 죽으면 그보다 더 한 치욕은 없다고. 남자가 여장을 하다가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상태로 죽었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걸쳐지는 건 싫어. 분명 윈디가 너무 웃은 나머지 정령계로 역소환 당할지도 몰라. 나는 그런 피해를 주기 싫으니까 제발 남자 옷을 입게 허락 좀 해줘라.”

 

으음~”

 

소피아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했다.

아니? 그게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되는 거야? 그냥 알았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면 될 텐데? 내가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 기습을 하던 말던, 진지하게 고민할 사항은 아니라 생각했다.

 

흐으음~”

 

염라대왕마저 어느 사이에 소피아 옆에서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당신은 명계에 가서 일이나 더 하고 오라고.

 

으움~”

 

루니아 누나는 또 그 옆에서...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

 

루니아 누나의 존재는 염라마저 놀라게 할 정도로 인기척 없이 다가왔다. 명계의 지배자마저 놀라게 하는 움직임이란...대체 정체가 뭘까?

 

루니아 누나? 여긴 어떻게?”

 

그야 시공섬으로 찢은 다음에 그 단층을 넘어서 온 거에요오.”

 

보통 기사라고 한다면 한 평생 검을 갈고 닦으며,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마법적인 면이나 초자연적인 부분에서는 인식이 약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지만, 그건 단련이 되지 않은 기사들을 말하는 거고, 실질적으로 루니아 누나는 검사의 길을 달인 급 이상으로 단련했기에, 그에 따른 혜안이 항상 존재했다. 유일무이한 시공섬을 이제 이동하는 용도로도 응용할 줄 알게 되었다는 소리니까.

 

괴물이 더욱 더 강한 괴물이 된 것은 손쉬운 일이구나.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요오? 명계에서 온 사람들치고는 너무 자유로운 거 아닌가요오?”

 

염라대왕이 순간 움찔거렸다. 루니아 누나의 살기가 공간까지 일그러뜨릴 기세로 짓눌러왔는데, 시공의 눈을 개안한 상태였던 내 눈에는 루니아 누나의 움직임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레임단위로 쪼개지는 시간 속에서 저런 평소처럼 똑같이 움직인다는 소리는...

 

현실에서 볼 땐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거다.

 

! 염라대왕님! 저 언니는 저보다 강하잖아요!”

 

심지어 영혼을 인도하는 뱃사공보다 여기사가 더 강한 사례를 생생하게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대체 여기사는 언제부터 직업개편을 받은 거지?

 

바보 같은 일이로군.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심판하는 본인마저 뒤를 잡히다니.”

 

염라대왕도 적지 않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으나, 0.2초후에는 의젓하고 당당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대들은 이 시간대에 있어야 할 자들이 아니다! 모든 세계가 한 곳으로 융합되어 난장판이 되기 전에 어서 떠나야 한단 말이다!”

 

솔직히 지금 당장 본래 시간대로 가는 건 별 상관 없지만, 대체 어떤 원리로 모든 세계가 한 곳으로 융합되어, 평행차원잡탕밥이 만들어지는지 꼭 알아야만 했다. 억울하게 지레짐작으로 퇴출당하거나 죽으면 나는 뭐가 되는가?

 

적어도 융합이 되는 원인부터 알아야죠. 적어도 마나의 축복 하나로 모든 것이 다 섞인다는 말은 아닐 거고. 진짜 제가 원인이라면 저만 과거로 가던지, 아니면 보이드만 해결하고 가든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무턱대고 가라는 말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그렇다고 형량을 추가하지 마시고요.”

 

염라대왕이 입 밖으로 무언가를 내뱉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말이 없는 걸 보아 무턱대고 형량을 올리려고 했나 보다. 염라대왕의 정신연령부터 체크를 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내 일에 집중을 하도록 하자.

 

염라대왕님은 모든 평행차원이 하나로 융합된다고 하셨죠?”

 

그러자 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라고 말을 했는데. 본래 없어야 할 사람이 몇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그 여파로 모든 차원이 융합된다는 말은 믿지 못하겠다. 설령 있어도 내가 부정할 거니까. 하지만 모든 시공간의 개연성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들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아, 아직까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된다는 사실이 그나마 입증된 상태.

그렇다면...적어도 나보다 더 강한 존재가 이 시간대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레시아나 시나, 루니아 누나는 제외하는데. 이것도 파수꾼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하니까.

 

어쩌면 루니아 누나는 너무 강해서 파수꾼이 일부러 파견을 안 나올 수는 있어도, 경고나 귀띔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잡화점 멤버가 아니라면, 잡화점이 이곳에 2개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차고로 잡화점은 중추인격체인 세린이 강한 것이 아니라, 잡화점 그 자체가 너무 강력해서 우편으로 날아온 편지봉투를 못 찢게 만들 수도 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내 손으로 찢지 못하는 편지봉투라니!

 

그런데 그 일을 실제로 겪은 적이 있으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자.

 

엘티노스 잡화점이 2개라서 이 현상이 생기는 거군요?”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염라대왕에게 슬쩍 던져줬다.

제발 미끼를 물어달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대의 존재뿐만이 아니라, 잡화점의 존재도 문제가 된다. 본인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대를 명계로 떨어뜨리거나, 잡화점에 있는 모든 이들을 명계로 떨어뜨리고 싶지만...”

 

왜 거기서 루니아 누나의 눈치를 보는 거에요? 염라대왕님?

 

애석하게도 네가 매우 딱하기 때문에, 너를 직접적으로 명계에 떨어뜨리는 것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루니아 누나의 얼굴을 살짝 보더니 , 이러면 되는가?”라며 물어보고 있었다. 명계의 지배자마저 한 수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여기사라니. 요즘 사기캐릭터에 여기사 태그가 붙어져 있는 건가?

 

어쩌면 모종의 거래가 있을지도 모르고...

루니아 누나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제때 신경 쓰지 못한 염라대왕의 당황한 얼굴이 비춰졌을 무렵. 한숨을 쉴까 말까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우선 한숨명절세트는 아끼기로 하고, 생각을 다 잡아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저를 죽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려주니 고맙군요. 그런데 염라대왕님은 다른 차원을 관측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에요?”

 

죽은 자는 예외 없이 명계로 떨어진다. 하지만 자네의 영혼만큼은 아직까지 명계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있더군. 게다가 죽어도 명계에 가지 않고 검은 달의 여왕으로 인해 떠돌아다니며 환생하지 못하는 삶이 되겠지.”

 

잠깐만요? 그러면 어째서 저를 명계로 보낼 생각을 한 거에요? 저기 있는 소피아는...어라?”

 

소피아가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사한 웃음으로 나에게 죽음을 선사하려던 뱃사공이, 내가 가리킨 방향에는 없고 다른 방향에서...

 

소피아라고 하는군요오? 잘 부탁해요오. 저를 부를 때는 언니라는 말을 꼭 뒤에 붙여야 한답니다아?”

 

쓰러진 소피아에게 검을 들은 상태로 이야기 하는 걸 보아하니, 무턱대고 소피아를 제압한 뒤에 요구사항을 늘어뜨려놓고 있는 중인가? 이미 하늘엔 별인지 소용돌이인지 모를 정도로 기절한 소피아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며 상대 생각은 안하고 자기 할말만 하고 있는 루니아 누나.

 

인간이 프레임 단위로 움직이는 게 가능하지 않지만, 저기 있는 잘난 여기사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능했다.

 

저기는 놔두고...우선 아까 전에 대한 제 질문부터 해결하도록 하죠. 이 모든 게 잡화점이 2개라서 그런 거에요?”

 

엘티노스 잡화점은 언제나 어느 시간대에서 1개여야만 한다. 명계의 지배자인 본인이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번 상급신이 되어 돌아온 엘티노스가 그리 말한 적이 있지. 결국 2개가 되고 나면 하나로 뭉쳐지려는 잡화점의 특성 때문에, 그 여파로 모든 평행차원이 움직이게 될 거라고 했다.”

 

꼴랑 잡화점 2개가 하나로 합쳐진다고 한들 모든 평행차원이 하나로 뭉쳐지는 일이 가능할까? 애석하게도 잡화점의 미스터리가 한 가득 쌓여있으니 가능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규칙에는 엘티노스 잡화점이 2개 이상인 경우, 하나가 남을 때까지 파괴하거나 다른 시간대로 보내라는 말은 없었다.

 

그야 당연히 엘티노스가 잡화점을 운영하던 옛날에는 2개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마법사 시절의 엘티노스는 상급 신 시절보다 더 예리했다고...자서전에 적혀있는데...잠깐만? 이 자서전은 그럼 상급 신이 된 이후에 쓰여진 거야?

 

차라리 소설을 써라...

 

아무튼. 인간이었던 시절이 더 예리하고 조심스러웠다고 한다면,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엘티노스가 잡화점이 2개가 되는 재앙도 예측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모든 평행차원이 다 섞여버린다는 의미라면, 우리가 경험하지도 못한 수많은 재앙이 한 번에 펼쳐진다는 의미다. 그 전에 유랑극단을 어떻게든 날려보내던가. 아니면 내 잡화점이 본래에 있었던 시간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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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올리는데...

다음화는 언제 다 써야할지...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