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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57

FNL-Phantasm 2018. 1. 3. 12:48

557

 

 

 

내 생에 최고의 바보 같은 일이라면 수많은 희생을 내면서까지, 아쿠아리움을 초토화시킨 일이라고 해야 하나? 거대한 해일은 피아구별 없이 모든 이들을 집어 삼켰고, 잠시나마 자유를 느낀 해양생물들은 육지를 뻗어나갔다. 아마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아쿠아리움이기에, 그 안에 들어있는 물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갔을 무렵. 보호막으로 감싸는 것과 동시에 사슬 검 중에 하나인뱀 조종자를 사방에 묶어서 몸을 고정시켰으니, 충격과 휩쓸려나가는 건 어찌어찌 버텼어도, 숨을 가능한 오래 참아야 했고 옷이 젖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부턴 보호막도 방수가 되는 걸로 사용해야 하나...”

 

이끼가 물에 젖으면 쳐지던데 지금 내 꼴도 그러겠지. 어차피 인형으로 바뀌어버린 사람인 만큼, 리제로트를 보호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을 것이고, 근처에 어떠한 인기척도 없으니 안심하려던 찰나에...

 

-챙강!

 

하긴, 네가 남아있었지.”

 

천장에서 급습한 월터가 나를 바라보았다. 월터는 리제로트의 인형이지만 영혼이 있는 존재. 유일하게 허락한 감정은 분명이 있을 터였다. 허공에 흐느적거리는 뱀 그림자를 다시 휘두르며, 8의 머리까지 재정비를 하며 위치를 맞췄다.

 

그전에 머리수가 왜 늘어난 거지?

 

같이 떠내려갔으니 외각을 찾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발상의 전환은 당신이 한 수 위인 건가?”

 

월터의 창백한 푸른 입술은 굳게 입에만 다물 뿐. 서서히 손을 올려 자세를 잡는 모습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뱀 조종자를 움직였다.

 

-촤르르르르륵! 카캉! 카가각!

 

월터의 주먹에 건틀릿 하나가 부딪치자 불꽃이 눈 앞에서 튀어 올랐고, 빠른 연계를 통해 나를 보호하던 사슬을 하나하나 끊으려고 하고 있을 무렵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주인을 위험에 빠뜨린 것 때문에 화난 거 같네? 인형인 주제에 주먹에서 분노와 살기가 서려있어!”

 

자의식이 파괴된 인형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살기도 내뿜지 않기 때문에 방어하는 입장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월터는 달랐다. 굳게 다문 입에 비해 눈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주인을 위험에 빠뜨리다니 용서 못해!’라고 울부짖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있어서 언제나 흑백논리를 벗어날 수 없다. 나에게 있어서 리제로트는 흑의 존재라고 한들, 월터의 입장에서 리제로트는 백의 존재일수도 있다.

 

그러기에 싸움은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 주변에 보호해줄 사람이 없으니, 시간을 끌어야만 하는 입장인데, 이곳에서 사고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분명 그 녀석이 온다. 날카로운 발차기를 숙여서 피하는 동안, 공중에서 비정상적으로 몸을 꺾은 월터는 다른 발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2연격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내가 몸을 비틀어서 옆으로 이동하니, 그 상태로 3연격으로 옆차기를 감행했다.

 

뱀 조종자로 막아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공격과 함부로 속박하려고 들면, 오히려 엉키게 되는 위치에서 끊임없이 송곳처럼 찌르며 들어왔다. 이때만큼은 평화를 원하는 온화한 성격의 나라도, 전투로 인한 고양감이 온 몸에 자리잡아 어쩔 수 없이.

 

확실히 매우 우수하군! 리제로트의 인형이여! 그렇다고 한들 너는 아직까지 멀었다!”

 

아무리 나라도 산전수전은 다 겪고 지내왔다. 설령 본 모습이 아닌 이런 연약한 모습으로 싸울지라도, 손쉽게 제압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기는커녕.

 

-휘이이이이이잉!

 

방금 전의 환도가 기괴한 형태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날에 붙은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회전하고 있는 모습. 손으로 통해 온몸으로 진동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야 말로 이런 상황에 가장 필요한 물건.

 

. 2페이즈다. 최선을 다해 망가지지 말라고?”

 

발을 박차며 튀어 오르면서도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좁혀온 거리에서 긴 다리를 뻗어 나를 제지할 수 있지만, 섣부르게 그런 판단을 하지 않고 거리를 벌리기 바빴다.

 

-카가가가가가각!

 

방금 전에 있어야 하던 월터의 자리에 땅이 깊숙하게 파여있었고, 돌아가는 톱날로 인해 땅이 불규칙하게 긁히고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휘이잉! 치이이익!

 

건틀릿을 단숨에 갈아버릴 듯한 환도를 휘두르며 힘겨루기를 했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를 마주하고도, 월터의 건틀릿이 서서히 깨져나가며 밀리는 경향을 보였다. 힘이 부족하면 다른 요인으로 내 힘을 더하면 된다. 나를 보조해줄 수 있는 걸로 보강을 하게 되면, 여린 소녀의 신체 같은 경우는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는 것이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비록 이게 본 모습은 아닐지라도, 네가 상대하는 것은 여린 소녀와 다름이 없지. 그런데 리제로트를 지키는 최고의 인형이라는 자가 밀리는 것을 보아, 리제로트 또한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군!”

 

말투가 바뀐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것도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수단일 테니까. 도발에 걸린 인형이라는 존재가 있을까? 지금 내 앞에 하나가 존재했다. 오른손에 거대한 마나들이 뭉치기 시작했을 때. 나 또한 검에 내 에너지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일격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일격필살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승리를 거머쥐어왔지만, 항상 하는 일이라도 긴장되고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월터! 그만둬!”

 

아무도 없는 아쿠아리움에 버젓이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목소리. 그것이 월터의 순간을 방심하게 만들었다만...월터는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리제로트의 명령을 무시하고,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도 물론 상쇄를 하기 위해 휘두를 뿐. 본능적으로 알게 된 거겠지. 앞으로 날 살려두면 리제로트에게 무슨 해를 끼칠지 모르는 위험분자라는 사실을.

 

안 돼에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언제나 이런 후폭풍은 싫었다. 나에게 있어선 늘 일어났던 일이고 가장 안전하다던 잡화점 내부에서도 계속 일어났으니. 오랫동안 휩쓸려보면 요령이 생겨서 피해를 거의 없앨 수 있지만 월터의 경우에는 어떨까?

 

폭발에 휩쓸려버린 리제로트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던졌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로 만들어졌는지 사지가 멀쩡하고 흙먼지만 뒤집었을 뿐. 그래도 엉망이 된 정장으로 보아.

 

인형치고는 매우 튼튼하네.”

 

살색으로 입혀진 살덩이들을 날렸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무런 데미지도 없었다. 그럼 피부 자체가 단단한 금속으로 되어있는 걸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유연하게 움직이는 거라면...

 

아니지. 지금은 나를 마주하고 있는 리제로트를 봐야 할 때인가?

 

아무래도 제가 터무니 없는 인간을 제 인형으로 삼으려고 했나 보네요. 카린. 당신이야 말로 어릿광대가 말한 최고의 적이었어요.”

 

카일이라고 부르지 않은 게 기이하네.”

 

그야 당신의 모습은 카일과는 전혀 다르니까요. 겉모습이 아니에요. 지금의 당신은 안까지 뒤틀려버린 다른 자아에 불과하죠.”

 

사람은 양면성이 모두 공존한다고 해. 그도 그럴 것이 흑이 있으면 백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거지. 평화와 평온을 바라는 카일이 있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바라는 카린일까?”

 

아무리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한들 인격이 한 순간에 뒤바뀌어 기억을 잃는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범위 내에서 바뀌는 거니까. 언제나 특정한 계기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평화와 평온을 바라는 주제에, 위험천만한 곳에 목을 잘도 들이민다고 했었으니까. 그렇다면 내 본 모습은 과언 어떤 것일까? 그거야 당연히...

 

아니. 하나를 정하는 것이 아냐. 모두가 나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도. 한 순간에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운데에서도, 잔혹하게 웃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기에 가능한 거지!”

 

잡화점 주인이 되기도 전에 나는 항상 위험에 뛰어들었다. B급 용병시절에서도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지만, 하던 일은 전부 불법에 관련된 것들. 마약도 옮겨보고 내분을 일으키기 위해 잠입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죽여봤다. 그때도 나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일을 끝냈다는 성취감에 웃고 있었겠지.

 

나는 절대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

최근 들어 그 사실을 좀 까먹은 듯 하지만.

 

이번엔 월터와 격전을 벌이면서 그걸 다시 깨달았다.

 

아쿠아리움을 벗어나지 못한 생물들은 이곳에서 말라 죽어갔다. 이것 또한 나의 이기적인 행각에 벌어진 대참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오직 나는 나만 생각해서 희생을 치렀다.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함부로 손을 댄다면, 그에 합당한 벌은 확실히 있어야겠지. 하지만 리제로트? 우리 둘의 결투는 완전하게 뒤집어져서 깨졌으니, 나는 너에게 호감을 보여도 인형으로 만들지 아니하며, 너 또한 나의 호감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유랑극단에 나와 목숨을 끊지 않아도 돼. 그거라면 우리 둘은 확실히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처음부터 당신은 이걸 노렸군요. 제 제안에 승낙을 했으면서도 제가 이런 사술을 부려올 것이라고 이미 계산하고 있었어요.”

 

나를 바라본 리제로트가 탐욕에 눈이 물들었을 무렵. 그것이 기억에 남아 잡화점에서 레시아에게 상의한 적이 있었다.

 

[만약 레시아가 저를 너무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면 어쩌실 건가요?]

 

[주인을 취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상황으로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최고지.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안전이 보장받고 있는 삶을 살고 있으나, 갑작스러운 공격에 매우 취약하여 구해주는 사람에겐 전적으로 신뢰를 가지게 된다. 주인 또한 그런 귀여운 모습으로 전투력이 어디까지 인지 가늠이 안 잡히지만, 보호욕구가 솟구치는 것은 당연지사. 필히 주인을 지켜야 하는 대상으로 볼 것이니라.]

 

[그러면 자작극을 벌여서라도 저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하겠네요?]

 

[주인을 속이려면 꽤 치밀한 자작극이 필요하겠지만, 그렇군. 우선 짐이라면 짐에게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주인과 같이 빠져나가면서 기꺼이 그 암살자를 격퇴한다면, 주인과 같이 다녀서 부적절한 패널티를 짊어짐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그 암살자를 격퇴했다는 사실에 주인은 크게 감동을 받으리라 본다. 사고가 터진다면 그 암살자가 주인을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였을 때. 성공적으로 퇴치하는 것이라면 위험도가 매우 높지만, 그만큼 얻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레시아도 몰랐던 내 전투력으로 인해, 암살자는 나에게 부셔져 리제로트의 계획이 완벽하게 꼬여버렸다.

 

[리제로트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요?]

 

[짐은 운이 좋게도 인간보다는 오래 살아온 마왕이니라. 그 어떤 삶을 살아와도 인간만큼이나 처절하게 살았던 나날이 있지. 이미 한번 잃어서 소중한 것을 알았던 날도 반복되었으리라. 그런데 한낱 그런 계집의 생각을 읽고 꿰뚫지 못한다면, 그게 어찌 마왕이겠는가?]

 

맨 처음에는 레시아의 말을 의심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레시아의 말을 믿었고 그 결과가 내 눈앞에 벌어졌다. 역시나, 나에게는 강한 아군이 함께했으니 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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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죄송합니다.

인터넷이 복병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회사를 통해서 올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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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나래 : http://cafe.naver.com/novu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