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Out Story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크리스마스 특별편
Out Story
어린아이들은 산타의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현실에 물든다면, 산타라는 것은 마음속에 사라지기 마련.
우리는 산타의 존재여부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산타가 우리에게 어떤 상징인가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자각하고 레시아에게 아이언 클로를 걸어버린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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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이 있다.
모든 이들은 그것을 신성하게 여긴다.
다만, 나에게 있어선 이제 전혀 상관없는 일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저 쉬는 날 +1이 되어야 하는데, 잡화점을 운영하기에 쉬는 날이 없으니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새벽. 오늘도 엘티노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기초지식을 쌓을 때였다.
크리스마스. 과연 이 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그리고 누가 지은 걸까?
왜 이것이 신성한 날이라고 여겨야만 할까?
수많은 의문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책의 시야를 가리고, 불필요한 생각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성탄절이라고 해서 죄다 밖으로 나가버린 잡화점 멤버. 특별한 날에 매번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돌아올지 안 올지는 잘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와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술을 진탕으로 마시고 들어온 잡화점 멤버들이 나를 습격하려고 했고, 아이언 클로로 환대하게 맞이해줬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기대는 없고 두려움만 남은 공허함.
“카일 씨? 지금도 책 읽어요?”
아, 아직 미성년이라고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하여 남은 아리엘이 있던가? 새벽이 지났는데도 잠을 안 자다니, 그러다 키가 크지 않으면 어쩌려고 하는지….
“지금 자둬. 그래야 키가 크지.”
“지금보다 키가 크면 카일 씨를 머지 않아 따라잡을 거 같은데요? 그리고 릴리스님의 말을 듣자 하니, 자신보다 키가 작은 사람을 더 선호한다면서요?”
“뭐가 어쩌고 저째?”
아리엘의 산뜻한 도발에 책을 내려놨다. 소악마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빨간 입술을 가리며 웃고 있는 아리엘. 새벽인데도 주홍빛의 눈동자가 눈에 더 잘 띄었고, 잡화점 불빛에 반사된 아리엘의 기다란 은빛 비단처럼 윤기가 나는 머리. 그리고 청색 체크무늬로 되어있는 잠옷이 눈에 띄었다.
“지금 날씨도 추운데 그렇게 입고 있으면 감기 걸리거든?”
“잡화점이 최적온도를 다 설정해주는데 무슨 헛소리에요?”
요즘 어린애들은 왜 이리 영악하지? 눈빛으로 보아 지금 자기엔 심심하고, 막상 눈을 뜨니 피곤해서 나를 찾아온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뭘 원하는 거냐?”
“재미있는 이야기 해줘요.”
터무니 없는 결과로군. 하지만 아리엘은 내 소매를 살짝 붙잡고 촉촉한 눈으로 올려다 보며 몸을 배배꼬기 시작했다.
“빨리이~”
심장에 무리가 가는 애교다. 아리엘은 평상시에 저러지 않는데, 저렇게 애교를 부리거나 목소리를 귀엽게 바꾼다면?
무언가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만둬. 날 죽일 셈이냐?”
“그럼 해주는 고야?”
“말투도 정상적으로 돌아와!”
이야기라. 재미있는 이야기라.
그런 이야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레인에게 가던가!
“레인이라면 수도 없는 이야기 보따리가 있을 텐데. 어째서 너는 나에게….”
“지금 있는 게 카일 씨밖에 없잖아요.”
“하아…….”
“카일 오빠밖에 없자냐?”
“알았으니까! 그 소름 돋는 말투 그만하라고!”
너무 잘 어울려서 소름 돋는다. 고양이 귀까지 썼으면 레시아와 귀여움 배틀을 해도 될 정도인가? 평범한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고 버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치사량에 가까운 귀여움을 받으면 사람은 죽어버린다. 심장이 파괴된다고 해야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라…. 그럼 크리스마스의 유령에 대해….”
“알고 있어.”
“그럼 산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125가지의 방법론에 대해.”
“그건 지루해요.”
“야. 이 이야기는 애초에 나만 알고 있는 건데 네가 어떻게 다 아냐? 125가지에 대해 전부 다 알아? 읊을 수 있어?”
“어차피 보나마나 궤변이나 잔뜩 늘여놓는 뇌피셜성 정보잖아요.”
할말을 잃었다.
보기에는 10대 중반의 소녀가 내가 하는 말마다 다 잘라버리고 있으니, 나는 다른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젠 내 무릎 위가 자기 자리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위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빤히 보고 아리엘. 오랜 생각 끝에 나는 아리엘에게 최고의 비밀을 공유하기로 했다.
“내가 산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뭐.”
“산타에 관련된 이야기? 뻔한 건 아니죠?”
“그것과는 달라. 내가 산타에 대해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한 끝에, 한 가설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거야. 들어보면 후회하지는 않을걸?”
“무슨 궤변이 또 나를 기다리는지 모르겠네요….”
처음부터 실망하고 있는 아리엘에게 아이언 클로를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거대한 우주의 1%정도되는 양의 인내심이 사용되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야기를 해야 하니, 아리엘과 눈을 마주하며 서서히 입을 움직였다.
“산타는 몬스터야.”
아리엘의 눈이 바로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아니. 왜! 대체 뭐가 문제인데!”
“카일 씨는 어린 아이들의 동심을 다 박살낼 생각이에요?”
“애초에 내 동심을 파괴한 사람은 레시아였어! 나도 이제 다른 사람들의 동심을 깨부술 자격이 있단 말이야!”
“왜 다 큰 어른이 어린애처럼 굴어요?”
“내 맘이다! 뭐! 싫으면 너도 카일 하던가!”
잠깐 흥분을 진정시켰다. 아리엘에게 소리치며 고개를 돌렸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리엘이 불 난 집에 기름통을 냅다 던졌다.
“우쭈쭈. 우리 카일 삐졌쪄요?”
“너도 조만간 아이언 클로 리스트에 올라갈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라.”
으르렁거리는 내 얼굴을 보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옆에서 “쿡쿡!”하고 소리가 막히지 않고 틈새로 빠져 나왔다. 아무튼 산타의 존재는 확실히 불멸의 존재이며, 형이상학적인 존재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산타는 대부분 신이나 신성한 존재로 받아지고 있는데, 왜 몬스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아리엘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걸 냅다 받아먹는다.
“만약, 산타가 신이나 신성한 존재라면, 어린 아이들을 위한 신이라는 소리가 되겠지. 하지만 이곳의 신이나 여신 중에는 어린 아이들만 담당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아. 모두 통합해서 가정의 신이 존재할 뿐이지. 그렇다면 우선 산타라는 존재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 틀림없어. 산타 걸이라는 것도 사실상 보면 여신이 아니란 소리야.”
“그래요? 어라? 산타 걸이요?”
“그래. 산타 걸. 요즘 기이한 이미지로 사방팔방에 널려있잖아. 누가 만들어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타 걸의 존재도 힘껏 부정하려고.”
“산타 걸이 필요하다면 저에게 말씀 하시….”
“너의 의도를 읽기 전에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만 잘 알아둬라.”
또 다른 무리수를 내뱉는 아리엘의 말을 차단했다. 다시 조용해진 아리엘을 확인하고 발언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다시 내용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몬스터인가? 첫 번째로는 어린아이들의 선악을 모두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그리고 굴뚝이 있는 집과 양말, 쿠키를 제물로 산타를 소환하는 거지.”
“하지만 뒤집어져 있었던 함정카드 발동으로….”
“좀 다른 이야기로 노선 틀지 말아줄래!”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전혀 집중을 안하고 있군.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하지만 문제라고 한다면 실질적으로 산타를 본 아이들은 없고, 오늘 밤에만 출몰한다는 산타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거야.”
“동시다발적이라는 사실이라면?”
“그래. 산타는 정신계통의 몬스터로,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극에 달했을 때, 그 동심을 잡아 먹기 위해 나타나는 몬스터지. 게다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따지자면, 마왕과 신조차 손도 댈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아닐까?”
“꽤 그럴싸한 궤변이네요. 생각을 하게 만들긴 하니까요. 그럼 몬스터가 아니라 우주적 존재로 갈 수 있겠는데요?”
아리엘은 하는 수 없이 내가 하는 말에 입을 맞춰주기로 한 걸까? 어차피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대충 받아주기로 하는 아리엘의 대답을 토대로 내 머릿속은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럼 산타가 우주적 존재라고 명명한다면, 차원을 넘나들면서 나타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하지. 그렇다면 솔직히 루돌프가 선두로 이끌고 있는 마법의 썰매가, 차원을 넘나드는 어마어마한…….”
-콰지직! 콰과광!
굴뚝으로부터 날아든 굉음이 나의 말을 끊고, 아리엘이 천천히 내 무릎 위에서 벗어났다. 잡화점은 침입자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안에 들어온 것이다. 숯이 만든 검은 연기 때문에 콜록콜록거리며 나오고 있는 여성. 단조로운 붉은 색과 하얀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옷차림과 검은 구두.
“아고고…. 큰일났다. 어쩌지…….”
안경을 닦고 나를 올려다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
“헤헤…. 여러분 메리크리스마스! 저는 산타 정보부 소속의 산타 걸 ‘카를라’라고 합니다!”
산타 정보국? 그보다 이 상황은 또 뭔데?
“저는 아리엘이라고 해요. 그보다 카를라 씨라고 하셨죠? 산타 걸이라고 하심은?”
“아. 이건 기밀이지만, 저는 모든 평행차원을 넘나들면서 어린아이들의 선악과 집의 위치를 알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불시착을 하는 바람에, 평행차원이동장치인 ‘루돌프’의 충전과 수리가 필요한데, 혹시 이곳에 핵융합 발전을 할 수 있는 문명단계가 맞습니까?”
“아뇨. 여긴 마공학이 자주 이용되는 문명단계라서요.”
“아아! 이렇게 되면 조난신호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건가…. 국장님께 또 깨지게 생겼다.”
“구, 국장이요?”
“네. 산타클로스라는 국장이에요.”
요즘. 내가 동심이 깨졌다고 해서 이상한 걸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리엘과 카를라라는 여성의 대화를 통해, 나의 추측이 완벽하게 빗나갔음이라고 생각했다. 산타와 산타 걸 범우주적 존재라는 확실하게 틀리고, 대신 평행차원을 뛰어넘는 기관이라는 것을 보아, 시간의 수호자처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아 다닐 수 있는 고차원적인 존재들이라고 보면 된다.
“카를라 씨라고 하셨죠. 저는 카일이고 이곳은 엘티노스 잡화점입니다만, 이동장치에 대해 잠깐 볼 수 있나요?”
“아. 네. 여기요.”
카를라는 루돌프 모자의 빨간 코 부분을 땠다. 보통 루돌프의 코 역할은 어두우니까 조명을 비춰서 앞길을 나아가는 역할이 아니었던가? 받아 들었던 이동장치인 루돌프에는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구조해석은 대충 이해를 했고, 내 안에 있는 거대한 에너지가 들끓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복구를 하면서 스파크와 연기가 더 이상 나지 않고, 흠집도 모두 지워지기 시작했다.
“와!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수리한 거에요?”
“이것도 기밀이지만, 비록 인간이더라도 이곳 창조주가 사용했던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서요. 구조해석만 되고 고칠 것만 고치고, 필요한 것만 집어넣는다면 간단하죠.”
어쩌면, 저 이동장치를 고칠 수 있는 장소를 간절하게 염원한 것이, 잡화점으로 이끈 것일지도 모른다. 빨간 코 부분을 카를라에게 넘겨주자. 카를라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이번 크리스마스에 갚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산타 국장님께 꼭 말씀 드릴게요!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수호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크리스마스를 수호했다뇨. 당치도 않는 이야기를…. 아무튼 조심이 들어가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루돌프 모자에 코부분을 장착하고, 카를라의 손바닥이 빨간 코를 두 번 툭툭 두드리자. 붉은 빛이 굴뚝을 타고 솟아오르더니, 나와 아리엘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살다 보니 진귀한 일도 겪네요.”
아리엘은 중얼거렸다.
산타는 만나지 못해도 산타 걸인 카를라의 말로, 산타클로스가 실존한다는 것과 루돌프라는 것은 평행차원이동장치였다는 사실.
“정말 누가 급조를 했는지 몰라도 엉망진창이네. 뭐, 어차피 오늘부터 성탄절인데 무슨 일이 있겠어? 너도 슬슬 자러 가. 우리 둘 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것 같으니까.”
“네. 그러죠.”
아리엘은 자러 들어가고 나는 또 다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수마는 여전히 새벽에 나를 괴롭혔고, 책을 보며 집중하자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모두 다 쓸모 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되어버렸다.
***
눈을 떴을 때 실수로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사방팔방 둘러보았다. 그러나 내 무릎 위에는 레시아와 시나가 잠들어 있었고, 바닥에는 루니아 누나와 릴리스가 엉켜있었는데, 편하게 자고 있는 것을 보아 간밤에 무리 없이 들어왔나 보다. 비어있던 방안에 인기척을 감지했는데, 루시피나와 마리아가 잠들었으리라 생각하고 시계를 보았다.
8을 가리키고 있는 시침. 5를 가리키고 있는 분침.
벌써 아침 8시 20분인가. 기지개를 피면서 레시아와 시나를 내가 덮고 있었던 담요에 감싸서 의자에 내려놓고, 밖에 나가서 빗자루를 들고 밖을 청소하기 위해 정문을 열었을 때였다.
-푸우우우욱!
하얀 눈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오지 않았다면, 최상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는데.
“우아악! 뭐야 이거!”
한기가 내 온 몸을 덮어서 끈적하게 인사하기 전에, 눈에서 벗어나 한기보단 눈에 깔려서 익사할뻔했다는 사실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내 비명으로 머리를 붙잡고 일어난 루니아 누나와, 동물적인 감각이라 더 예민하게 반응한 레시아와 시나가 나에게 달려왔다.
“뭔가? 주인. 저 눈은 또 무엇인가?”
“분명 저희가 왔을 때는 눈도 내리지 않고, 이 정도로 눈이 쌓이지도 않았습니다만….”
시나마저 난처한 어조로 나에게 보고를 했다.
“아! 도착하셨군요!”
밝고 활기찬 여성의 목소리.
“어서 오세요! 손님은 꽤 많네요?”
카를라가 우리를 맞이하며 밝게 웃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마저 멍하니 있는 마당에, 루시피나와 마리아가 시끄럽다면서 눈을 비비고 방에서 나왔다.
“손님은 대체 무슨 소리야? 여긴 또 어디야? 초콜릿 공장이라면 환영인데, 여긴 완전히 체험 삶의 현장이잖아.”
수많은 크리스마스 요정들이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산타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까 전에 있던 일을 산타클로스 국장님께 설명 드렸더니, 직접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검은 고양이를 붙잡고 입을 열었다.
“레시아. 이게 무슨 소리에요? 산타는 없다고 했잖아요!”
“지, 짐도 이런 세계가 있는 줄 어찌 알았겠는가!”
“과거에는 산타가 없다면서 내 동심을 깨부수더니! 이건 어떻게 할 거에요! 너무 체계적으로 설립된 세상이라 입을 어떻게 열 수가 있어야죠!”
“흐응? 첩도 가본적이 없는 세계인데. 카일이여 이곳에 우리가 당도한 이유가 뭔가?”
내가 알았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나?
하지만 마리아의 질문을 그대로 무시하고 생각을 그대로 짜내기 시작했다.
“왜 우리를 보자고 하는 거지?”
“그야 산타클로스 국장님께서 당신의 힘을 보고 싶어하시니까요.”
과연, 내가 그 기이한 장치를 수리했으니까 뭐 하는 녀석인지 보겠다는 거로군.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높은 사람이 부르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카를라의 인도를 받아 커다란 건물 안으로 진입했지만, 어째서 잡화점이 이런 곳까지 뛰어넘어 버렸는지는 미지수.
분명 이쪽으로 끌고 오기 위해, 카를라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다. 높은 층의 빌딩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는 거물을 만나러 간다는 뜻인데, 포근하고 따듯한 이미지였던 상상 속의 산타를 그리며, 카를라가 문을 두 번 노크하고 “들어와라.”라는 말과 함께, 나와 잡화점 멤버가 같이 따라 들어갔다.
“그래서 니들이 우리 루돌프 기술을 훔쳐갔냐잉?”
산타 왼쪽 눈에 호랑이가 긁고 갔는지 매서운 흉터와, 이리저리 피어 오르는 하얀 연기. 거대한 덩치와 팔과 다리근육에 살아 숨쉬는 듯한 사슴 문신까지. 뭐, 어떻게 보면 최종병기 산타클로스의 탄생인가?
“국장님! 이분들은 기술을 훔쳐간 적이 없다니까요?”
“나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처음 보는 물건을 고치냐 말이지. 그런고로 아그들 시켜서 이 녀석들의 신상을 좀 조사해야 쓰것다.”
여기에 있는 산타들이 무슨 인신매매 단체냐?
“아니. 신상을 조사하기도 전에, 저는 엘티노스 잡화점 주인입니다만?”
“그런 건 관심이 없고. 카를라야. 혓바닥에 기름칠 칠한 쥐시끼가 니 루돌프를 고쳤다고?”
“네. 국장님.”
저건 일부러 내 인내심을 시험하겠다는 건가?
째려보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포스는 정말 쥐 하나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보다 쥐시끼라니? 아까 전부터 발음이 왜 저래?
“오야. 알것다. 그러면 실험을 좀 해야겠구먼. 거기 처자들은 다 돌려보내고 남자만 남기그라.”
“주인.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내도록 하지.”
“그럼 마스터. 무운을….”
이럴 때는 정말 잘 버리고 간단 말이지. 하지만, 각자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놔두는 걸로 하고, 카를라가 잡화점 멤버들은 인도하며 나가는 동안, 내 앞에 3개의 평행차원이동장치인 루돌프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손가락이 루돌프들을 툭툭 건들이며 잔소리를 늘여놓기 시작했다.
“이 루돌프들은 말이여? 이 몸이 허벌나게 고생하고 만든 장치들이여. 본래 카를라가 너희 집에 불시착했을 때 말이여? 그 뭐시냐? 긴급…프로토콜이었던가? 너는 알고 있냐?”
“모르는데요?”
“그걸 왜 몰러?”
“내가 어찌 아냐고요! 그걸! 어제 카를라가 불시착해서 처음 보는 물건인데! 긴급 프로토콜이건 나발이건 내가 알 리가 없잖아요!”
어디선가 허당의 기운이 펄펄 나는데?
“아무튼. 그런 조치에 따라서? 에…. 심각한 고장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평행차원간에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는 조명탄을 쏘게 되어있다 이 말이야.”
“아. 예. 그런걸 왜 알려주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전에 제가 카를라의 물건을 고쳐놔서 문제가 되었단 소리군요?”
“키야아. 맹꽁이 같은 녀석인 줄 알았더니, 두개골 안에 있는 건 꽉 들어찼구먼?”
산타의 걸쭉한 감탄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
아마 이건 나밖에 없겠군.
“그려. 가장 커다란 문제라고 한다면, 본래 루돌프들은 아직까지 완성작이 아니란 말이여. 근디 니가 카를라의 루돌프를 고치는 바람에, 기존에 있던 작품보다 더 완벽한 완성작이 되어버렸쓰니께. 니가 몸으로 좀 때워야 쓰것다.”
머리가 아파왔다.
카를라가 받은 지령과는 전혀 다른 일이 눈 앞에 펼쳐졌으니까. 아마 저 산타가 요구하는 것은 루돌프의 결함을 찾아내서 카를라처럼 안전한 완성품을 내놓으란 소리일 터. 그러면 결함을 찾아 수정을 하고 생산라인에서 양산하면 되는 부분이다.
“그러면 하나를 완전하게 고쳐놓을 테니, 그 안에 있는 설계도를 뜯어서 그거에 맞게 수정하면 되지 않나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니는 쪼까 머리를 쓰는 모양인가보다잉?”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보다 이런 산타 싫어.
순수한 동심을 한번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무덤에서 끌어올린 뒤에 시체를 절단하고 사방팔방에 퍼트려서 봉인시키는 기분이다.
“어이! 아그들아!”
“예! 국장님!”
저 뒤에서 덩치가 큰 산타복을 입은 한 마초맨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를 살짝 숙이며 힘차게 인사했다. 제발 그러지마….
“이 녀석이 루돌프 하나 고쳐놓으면 그거 허벌나게 까놓고 뭐가 다른지 한번 확인해봐라.”
“알겠습니다요! 국장님!”
혼란스러운 하루를 보낸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루돌프를 고치는 것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안에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나, 방법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결국 잡화점에 있는 물품 중 하나를 꺼내서 설계도와 뭐가 다른지 고민을 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만으로 3시간이 다 지났을 때. 크리스마스 파의 두목…. 아니, 산타클로스 국장이 찾아와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나타났을 무렵.
“일도 똑바로 잘하는구먼. 너 우리 직원 안 될래?”
“저는 잡화점의 주인이거든요. 원래 저와 산타클로스 씨는 평등한 관계를 보고 있어야 한다고요.”
“허허! 이거 참 골 때리는 물건이구마잉.”
어린이들은 왜 저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좋아하는 거야? 선물을 줘서 좋아하는 건가?
“아그들아 이제 얼마나 있어야 다 해결될 것 같냐?”
“내일쯤이면 모든 직원들에게 루돌프가 배급될 것입니다요.”
“오냐. 그러면 이제 너도 본래 차원에 가야 쓰겄지?”
“가야 쓰겄지? 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은데요?”
“그래도 니가 여자가 좀 많으니까. 그 여자들하고 좀 놀다가 가라고 이 할애비가 푼돈 좀 챙겨줄 테니 놀다가 가그라.”
간단한 의뢰를 해결하고 나서 풀려날 수 있었던 나는, 잔뜩 바닥난 정신력을 이끌고 흐느적 흐느적 잡화점이 있던 곳을 향해 나아갔다. 푼돈이라고는 이곳에 화폐인지 금화에 산타클로스 국장의 얼굴이 정면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눈에 있던 흉터마저 똑같이 따라 했다.
처음 보았을 때 그 추운 겨울날씨에 민소매 셔츠와 짧은 반바지로 맞이하더니만….
“카일 씨? 이제 오셨어요?”
“너희는 뭐가 좋다고 거기서 즐겁게 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리엘과 릴리스가 나를 먼저 반겼다.
그리고 숨을 좀 고른 뒤에 입을 열었으니.
“아리엘과 릴리스 어느 쪽이에요?”
“응?”
“아리엘과 릴리스 어느 쪽이 제 꿈에 침입했냐고요!”
이곳이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을 떠나, 내 기초적인 정보로는 산타는 없다는 진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잠깐 잠이 든 사이에 몽마가 침입해서 멋대로 꿈을 조종했다는 사실이라면, 첫 번째로 나와 세린이 링크가 되어있지 않았고, 두 번째로 잡화점이 평행차원을 이동한다는 소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며, 세 번째는 아무리 내가 동심이 무너졌다고 해도 산타클로스의 이미지가 저럴 리가 없다.
“저에요. 카일 씨.”
“아리엘! 대체 이게 무슨 난장판이냐! 날 정신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속셈이라면 대성공 했으니까 이 몰래 카메라는 치워줄래?”
“그렇지만 카일 씨. 이야기 하다가 잠 들었는걸요? 이렇게라도 놀려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쿠훗!”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언 클로를 출격시켜?
“그보다. 잠에 들었으면 깨워줘야지.”
“아. 그게…. 지금 일어나면 좀 그렇거든요. 계속해서 주무시는 편이 더 좋으실 거라 믿고 있어요.”
“지금 자고 있는 편이 더 좋다니? 무슨 일인데?”
“카일 씨가 의식을 차려도 자는 척을 한다는 약속만 지키신다면 여기서 깨워드릴게요.”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무렵. 천천히 귓가에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흐응? 아리엘이 왜 남겠다고 했는가 했더니, 주인에게 다가가려고 한 건가? 어린애라고 해서 무시하다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마스터와 이렇게 다정히 같이 자고 있을 줄은…. 으드득!”
“신랑이 일어나면 그때 잔소리를 하도록 하죠. 그보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 사오신 건가요?”
“당연하다! 일부러 좀 늦을 거 같아서 술자리에 참석한다고 거짓말까지 했건만, 여김 없이 여자가 꼬이는 주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지 않는가!”
크리스마스 선물? 설마 그거 하나 사려고 밤에 굳이 나가겠다고 한 거야?
“누나도 선물 준비했는데에. 아무래도 우리가 카일에게 선물 받을 것은 같이 옆에 붙어서 자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오.”
“그보다 아직 새벽 4시이지 않는가? 누군가는 잡화점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곱게 잠들어있는 자기를 깨워서…. 어라?”
잠깐? 릴리스도 몽마잖아. 내가 안자고 있는 것은 잘 알 거 아냐.
“자기~? 설마 자.는.척.을 하는 건가요~?”
몸이 자연스럽게 움찔거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지만, 매우 조용하게 아리엘의 입에선 한심하다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주인!”
“마스터!”
“잠깐만! 살려……아아아악!”
레시아와 시나의 에너지 볼트가 정확하게, 아리엘을 피해 내 안면으로 직격한 뒤로 의식을 잃었다. 어둠 속으로 물들어가는 의식 속에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릴 때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산타가 되어야 한다면, 나도 어른이기에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 바보 같은 일은 내가 아침에 정신차렸을 무렵. 아리엘의 실토로 인해 다른 잡화점 멤버들은 화를 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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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카일이 잠든 시점이라면, 아리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고민하는 도중에 잠을 잤다는 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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