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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46

FNL-Phantasm 2017. 12. 10. 16:52

546

 

 

 

일은 일이고 잠은 잠이다.

하루 일을 끝마치고 자는 잠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잠을 자면 언젠가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에 살아가는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잠깐이나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을 준다. 그렇다면 그건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는 증거. 나 또한 자고 일어나면서 충분한 잠을 안 잤으니, 눈을 뜨자마자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허탈감과 절망감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 그래도 하루 아침의 일을 시작하기 앞서, 어떤 마음을 가져도 내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

 

적어도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오늘은 루나의 의뢰로 아침 일찍 루니아 누나가 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루비아가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저녁에 잡화점을 봐달라는 내 부탁을 거리낌 없이 들어줬다.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히 지나가면서 알아낼 정보를 찾는 것. 그걸 위해선 마리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신시대의 문물인 지능형 휴대전화인지 뭔지를 사용해서, 멀리 있어도 문자를 날렸더니 알았다면서 반응하는 마리아. 사실 텔레파시를 이용해도 거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마나 증폭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이번 일은 상당히 편리하다고 생각했...

 

-부스럭.

 

방금 내 이불에서 나던 소리였나? 아니겠지.

 

-부스럭 부스럭.

 

레시아가 고양이 모습을 하고 내 위에서 자고 있는 건가? 아니면 시나가 하얀 올빼미의 모습으로? 아침부터...아니, 늦은 오후부터 나를 사이에 두고 싸웠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는 형태의 시나리오는 아니겠지.

 

내 목까지 침범한 두꺼운 이불의 끝자락을 잡고 슬며시 올렸다.

 

카일이여...춥다...”

 

이불을 다시 내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이건 꿈일 거야. 그래 꿈. 꿈에서 깨어나기 전, 비몽사몽을 하고 있던 우리들은 생각대로, 혹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환상처럼 비추어진 기억이 있을 터. 그러니 이건 꿈이다. 방금 전까지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니 이것 또한 환영이겠지. 이제 슬슬 누가 진범인지 알아낼 시간이기에, 이불을 붙잡고 거칠게 날려보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잡화점의 주인. 이제 일어났는가? 꽤 늦잠꾸러기이군.”

 

점잖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라색 슬라임이 위로 올라와도 나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점. 그리고 만약에 진짜 마리아가 내 위에서 자고 있었다면, 레시아와 시나의 인사가 마법폭발로 이루어졌겠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저 멀리 분수대까지, 폭발로 날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티스 씨. 제 위에서 뭐해요.”

 

늦은 오후에 일어난다고 하길래 마나를 좀 흡수하고 있었네. 잡화점의 주인에게 휘몰아치는 마나들은 전부 자연상태의 마나라서 더욱 좋다네.”

 

내 주변에 있는 마나를 여김 없이 포식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게 평생 마나만 흡수하면서 살면 자연계에 있는 마나가 소멸하겠네요.”

 

아니. 그렇지도 않지. 마나는 흡수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으니까. 마법이든 무엇이든 3개의 자원을 사용한 이후에, 목적을 달성하면 곧바로 자연계로 되돌아가니까. 그 전에 특수한 체질 중에서 마나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자들도 있다네. 릴리스 옆에 같이 붙어 다니던 그 여자애도 그런 걸로 알고 있다만?”

 

아리엘이 특수체질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리티스 씨.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장롱으로 몸을 향했다.

 

그 소녀가 자체적으로 마나를 생산하면 무한정으로 마나를 집어삼켜도 될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인공적인 마나 생산은 자연상태로 녹아들 때까진,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고 봐야겠지.”

 

기본적으로 마나 연공법을 수련하는 이유는 자연 상태의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 따라서 자연계열의 마법사들에겐 잘 나타나지 않지만, 검사의 길이나 각자 자신만의 특기를 갈고 닦아야 할 경우, 마법이나 검강<Aura Blade>를 사용할 때, 다양한 색상의 투기가 나오게 된다.

 

내 경우에는 새벽<Daybreak>로 인해 연파랑인지 약간 청록색인지 모르는 바다 빛의 마나와 루니아 누나의 경우 붉은 빛의 검기가 서리게 되고, 아리엘의 경우에는 청색의 마나가 눈에 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지만, 이렇게 자신만의 마나로 만들 경우에는 자신의 기술에 자신이 피해 입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무방할 정도. 특수한 경우 빼고는 초 근접거리에서 파이어 볼을 사용했을 때. 상대는 죽고 나는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마법을 쓴 뒤에 자신의 마나는 자연상태로 환원하게 되고, 시간은 일정하게 이틀 정도 소비가 된다. 이틀 뒤에는 다시 마나 연공법으로 흡수를 하거나, 이틀 전에 마나를 재활용 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재활용을 하기 위한 마나는 전세계로 사방에 흩어진 뒤니까. 3분전에 재활용의 여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타인의 마나를 공급받는 경우도 있으니. 자연상태의 마나로 변환해서 포식하는 건 비효율적이지 않나요?”

 

그래도 자연상태의 것이 더 맛있으니 말일세.”

 

단순히 맛 때문에 그런 불필요한 과정을 매번 하고 있는 건가?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이 미학이니 아무리 번거로워도 기다린 보람이 있지 않는가? 인내의 끝에 도달하는 성취감은 말할 수 없지.”

 

얼마나 인내 하는데요?”

 

“3분요리만큼 인내한다네.”

 

성취감에 비해 너무 쉽게 살아가려고 하잖아...

 

“3분정도 인내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짙은 갈색의 장롱을 열었을 무렵. 이상하게도 내 옷은 전혀 보이지 않고 왼쪽부터 메이드 복, 고딕 롤리타, 여우무녀, 여성용 정장 등.

 

말도 없이 내용물을 바꿔놓은 이유는 없을 것이며, 다른 의미로 나를 그냥 놀리기 위해 이런 옷들만 진열해놨을까? 미스터리 전문가도 이런 의문은 풀지 못하고 있던 찰나에...

 

저녁식사장소가 금남구역이기에 이런 옷을 입고 위장하라고 하더군, 그래서 장롱 안에 여성용 복장밖에 없다고 했네.”

 

저 중에서 골라서 입으라고요?”

 

그렇다고 하지. 물론 나는 잡화점 주인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상관은 없지만, 다른 멤버들에게 거리낌없이 자신의 미학을 인정하게 만들 줄은 전혀 몰랐다네.”

 

아냐. 아니에요. 그리티스 씨. 이건 제가 좋아서 입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절 순전히 가지고 놀기 위해서 이런걸 입히도록 유도하는 거라고요. 그리고 철저한 금남구역에는 분명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겠죠. 차라리 방침을 변경해서 루니아 누나에게 수신기나 염화로 이야기 하도록 하죠.”

 

이제 와서 저걸 순순히 입는다는 거야 말로 크나큰 오류. 쉽게 당할 내가 아니기에 약속장소에 맞춰 옷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창조주가 세상을 널리 이롭게 사용했던 힘이, 나에겐 옷이나 만들며 롱 패딩의 지퍼를 올리게 만들었다.

 

보라색 슬라임은 오오!”라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감탄하는 이유라면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는데, 하나는 물질을 창조해서 활용하는 모습에 놀라움. 아니면, 그런 위대하고 커다란 힘을 겨우 옷 만드는 일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 이 둘 중 어느 것이든 상관 없다.

 

차라리 지금 이런 힘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옷이나 물품을 창조하는 걸로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한다.

 

자네는 항상 마법을 실용성 있게 사용하는 군.”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순수한 힘을 추구하기 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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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을 얻기 위해선 더욱 강력한 마법을 배우거나 수련을 하면서, 마나 역류나 중독증상에 걸리긴 하지만, 자네야 말로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며, 다른 방향으로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야겠군.”

 

마법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멋져서다.

남들이 힘을 들이는 일조차, 마법의 주문만 외우면 손쉽게 해치우니까. 그 모습을 보면 당연히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마술도 멋지지만 차이라고 한다면, 마법은 오랫동안 수련하면 더욱 더 강해지고, 마술은 오랫동안 연습하면 더욱 더 능숙해지는 차이.

 

따라서 마법은 멋진 것이다. 검사의 길 달인들이 적진 한복판에서 3시간을 버틸 수 있다면, 마법사의 길 달인까지 들어선 현자의 마법 한방이, 적들을 싹 다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러니 마법사는 멋져서 하는 맛에 다른 이들이 배우는 거지만, 이곳에는 초능력자의 대두로 손쉽게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마법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과목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이 세계는 마법공학의 발달이 크게 이루어진 곳이라, 제가 마법을 실용성 있게 사용하는 게 아닐 거에요. 오히려 이렇게 사용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해야 맞겠죠.”

 

잡화점의 정문을 열었더니 어마어마한 한기가 나를 후려쳤다.

 

이렇게 추운데 꼭 밖으로 나가야 하나? 그런데 레시아와 시나는 벌써 나갔어요?”

 

방금 전 루나링과 같이 나갔다네.”

 

루나링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그리티스 씨도 루나의 팬인가?

. 그건 둘째치고.

 

눈이 어느 정도 녹은 길거리를 걷기 시작하면서, 후드까지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그리티스 씨는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로 내 머리 위에 올라가, 균형을 이리저리 잡아가면서 느긋하게 있는 모습. 만일 누가 보면 내 머리 위에 슬라임을 보면서 주문은 슬라임 입니까?”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니 괜한 생각은 하지 말자.

 

어디에 가는지 알고 있는가?”

 

아뇨. 그래도 반지가 이끌어 주긴 해요. 반지에 마법부여를 했을 때. 여러 가지 부여한 것 중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 끌어당기게 해주는 작용도 하니까요. 서로 향하고자 하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죠. 마리아의 경우에는 평행차원을 넘나들기 때문에, 저에게 받은 반지야 말로 나침반 역할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반지원정대를 이끌어서 운명의 산까지 가는 건가?”

 

이곳은 사우론이 없으니 운명의 산은 가지 않아요.”

 

신호등에 걸렸다.

붉은 빛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무렵.

 

카일!”

 

검은 밍크코트를 몸에 두른 마리아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겨울이라서 스웨터와 치마, 스타킹과 부츠까지 대부분 검은색으로 도배해버린 마리아는, 성인여성이라고 불려지는 게 놀라울 만큼 작은 키로 앙증맞게 뛰어왔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건 장갑을 끼지 않는 손이나, 추위로 붉게 물든 볼 말고는 연한 초콜릿과 같은 피부가 눈에 띈다는 것. 모자를 쓰지 않고 검은 귀마개를 하고 있어도 마리아의 검은 머리카락과 동화된 것처럼 보였다.

 

늦지 않게 왔네요.”

 

남들이 보면 친한 오빠와 여동생으로 보일만한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존댓말을 하는 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레시아가 없으니 존재감을 낮추는 마법이 깔려있지 않는 것이 당연하여, 사람들의 시선은 나와 마리아에게 이어져버렸다.

 

당연하지 않는가? 오늘은 마왕님과 빛의 여신님을 제외한 단 둘만의 데이트이니 말이지. 첩은 이날을 항상 기다려왔다. 어디부터 갈 것인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을 테지? 그러면 슬슬 호텔부터 가도록 할까?”

 

무리수는 두지 맙시다. 호텔에 가서 뭘 하려고요?”

 

스테이크를 먹을 것이다!”

 

스테이크를 먹는 목적이면 음식점으로 한정 지으라고.

설마 5성급 호텔요리를 먹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지금의 마리아를 만든 건가?

마리아가 내 앞에 손을 뻗었다.

 

손 정도는 잡아주지. 미아가 되면 안 되니 말이다.”

 

마리아가요?”

 

아니. 카일이 미아가 되면 안 되지 않는가?”

 

저를 뭐라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묻기 싫지만 이건 따지고 넘어가봐야겠다. 아직 루나가 이벤트에 참여하기까지는 1시간정도 남았으니, 근처에 음식점 하나를 잡고 몸을 녹이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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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14시간이 지난 뒤였다니...

난 이제 잠을 만들어서 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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