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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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의견을 듣고 레시아와 시나가 벽난로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 무렵. 고요와 평온을 상징하는 마음속의 호수에는, 운석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양 하나가 직접 방문하는 듯한 파멸을 맛보고 있었다.
“주인님? 듣고 있어요? 제가 콘서트를 하고 나서 라 캄베리의 귀인들과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거기서 제 매니저로 당분간 일을 하신다면, 틀림없이 안전하게 접촉을 할 수 있을 거라니까요?”
“아냐. 위험해. 저녁식사 초대에서는 빠져. 그게 내 제안이야.”
“흥! 싫거든요! 그리고 제 의뢰니까 제가 결정하는 거라고요!”
터무니 없는 달 토끼의 제안을 수정하려고 했는데, 내 앞에 있는 루나는 의뢰인이라는 입장으로 거래를 하려는 속셈이다. 매니저로 일하는 대신 그 금발소녀와 대면할 기회를 주겠다는 그런 명목이지만, 아이리스에게 들은 정보를 생각한다면, 말은커녕 관심도 안주겠지.
“그 영애는 동성애자라고 정보가 퍼져있잖아. 근처에서 호위하고 있는 그 남자는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나봤자 질책 당하거나 욕을 퍼먹거나 둘 중 하나야.”
“결국 부정적인 반응을 얻을 거라는 거군요?”
“그리고, 어떤 매니저가 생판 모르는 남에게 치근덕거리는 행동을 할 수 있겠어?”
“주인님이라면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루나였지만,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내가 태연하게 해낼 것이라는 그 생각에 아이언 클로를 출격시킬 뻔했다. 적어도 루나에게 아이언 클로라던가, 귀를 잡아 늘려서 벌을 주기 위해 선행 되야 하는 조건이, 레시아가 없어야 하고 시나가 없어야 하는 공간일 터. 저 중에서 하나라도 무시하면 마법 맞고 날아가는 건 시간문제다.
“옛날에 나는 다재 다능한 마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내 안에 있는 에너지원의 본질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깨우치기 전까지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계를 정하고 마법을 사용하고 있어. 창조주와 같은 힘이라서 조금만 엇나가도 감당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이걸 신성력과 마기, 마나로 분해해서 사용할 수 있기는 한데, 실험 삼아서 해봤지만 껄끄러운 작업이야.”
하나로 뭉쳐진 에너지를 3개의 각기 다른 성질로 분할하고,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그에 맞는 기적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과정인데.
가장 쉬운 예로 들자면 빵의 반죽을 분해해서, 각각 원래의 재료로 나눠놓고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다른 음식에 사용할 재료로 쓴다는 소리가 된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해가 안 가서 골치가 아픈데, 다른 이들에게 설명을 한다고 한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정상적인 사고 방식일 것이다.
“루나는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이해가 안 되는데요?”
“마법을 잘 아는 인간도 이해가 안 될 거야.”
문득 손을 뻗어서 집중을 하자 눈이 타 들어갈 듯한 밝은 빛이 내 손바닥 앞으로 가지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다시 집중을 하기 시작하자, 그 빛은 분할이 되기 시작하면서, 옅은 회색의 신성력과 짙은 흑색의 마기, 푸른 바다 빛의 마나가 3갈래로 튀어나왔다. 각각 상극을 이루던 성질은 본래 하나였으니, 나누는 것도 자유자재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인간의 한계는 이렇게 보이기도 해. 얼마 가지도 않고 무리가 찾아오지.”
머리가 으깨지는 통증이 밀려오는 걸 감안해 집중을 풀었다. 확실히 상황에 따라 합칠 수도 있고 분리해서 따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힘이 너무 들고 비효율적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에게 허락할 정도의 귀찮음만 견딜 수 있는데.
내가 허락할 정도의 귀찮음은 폭이 너무 좁았다. 루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건 실망감. 그러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제 너를 지켜줄 정도로 넉넉할지 잘 모르겠다. 터무니 없게도 내가 나를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 물론 레시아나 시나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지만, 내가 너를 보호하기엔 힘들다는 거지. 그래서 너에게 저녁식사나 그런 곳은 참여하지 말라고 했던 거야. 300년이 지나도 내 방침은 다르지 않거든.”
최대한 변수를 지우고 확실하게 일 처리를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 말로 내가 가장 원하는 일.
“그러니까 위험한 곳에 일부러 뛰어들 생각하지마.”
“왜요? 주인님은 예전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잖아요?”
루나의 실망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렸다.
“저는 이번만큼은 주인님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저를 보호해줄 때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낭랑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더 아팠다. 차라리 역정을 내고 멋대로 나가버렸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오히려 나를 설득하기 위해 화를 내지 않고, 더 상냥하게 이야기 하고 있으니 미쳐버릴 판이었다.
“네가 날 생각한다면 제발 그러지마.”
“아뇨. 주인님께서 사라지시고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는 받은 것이 많아도 갚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쳤어요. 그리고 주인님께서 이곳에 시공간 미아로 헤매고 있을 때도, 지금도 절 걱정하고 도와줄 생각만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제가 어떤 위기에 빠질지라도...”
자리에서 박차 일어나버렸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내 몸이 멋대로 반응하더니,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밖은 추워도 속이 너무 뜨거워서 뒤집어질 지경이다. 얼마 가지도 않아서 머리를 거칠게 감싸면서, 겨울의 한기가 제발 내 머리를 식혀주길 기도했다.
“하아...”
위험한 일에 자진해서 뛰어드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차라리 획기적인 자살방법을 하나 더 생각하는 게 편할지도 모르지만, 이러나 저러나 루나의 눈빛을 보아하니, 내가 거절해도 그 의뢰를 멋대로 진행할 것이 뻔하고, 내가 거절해도 루니아 누나 아니면, 레시아가 따라가겠다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차라리 1주일 전에 사전통보를 해준다면 제대로 검토를 하겠지만, 느닷없이 이런 일을 만들고 의뢰를 하겠다는 말에 한숨만 나왔다. 사냥감에게 너무 성급하게 다가가면 도망가기 마련, 대놓고 다가가도 도망을 치지 않고 맞서는 이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사냥꾼이다.
아니면 하룻강아지라던가.
영하로 떨어진 찬바람은 순식간에 내 몸을 식히기 시작했다. 검은 목티 하나 입고 밖에서 오래 있기는 무리가 있기에, 잡화점으로 다시 되돌아갈 뿐일 뿐. 그 안에는 루비아가 무표정한 흑안으로 루나와 대면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면 카일 씨 대신 당신이 저의 매니저가 되는 건가요?”
“네. 카일 씨의 성격을 고려했다면 분명 1주일 전에 사전통보를 해야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지금 와서 당장 이 일을 하자고 꼬드겨도, 막 나가면 모두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시겠죠. 다만, 카일 씨도 성급한 면이 있다면...”
루비아는 나를 바라보고 냉정하게 말했다.
“상대도 꽤 오랜 기간 생각해온 계획이었다는 소리였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런 일을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것이야 말로, 머리에 그려놓은 청사진이 있으니 이론상으로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카일 씨라면 그 누구보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점에서, 믿고 부탁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남은 변수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잘난 듯이 떠드는 루비아의 말을 막아 세웠다.
“그건 제가 아니라 의뢰인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사실만 말하니 마음속에서 상하는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인정하기 싫지만 네가 옳은 소리만 하느라 내 마음이 상했다. 왜. 떫어?”
“아뇨. 막 나가는 카일 씨도 신선해서 좋네요.”
이번엔 루비아 때문에 열 받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건 내가 조금이라도 냉정하게 판단하면, 오히려 루비아가 나와 루나의 사이를 조율해서 비틀어지지 않게 힘써주고 있는 것이니,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야 한다. 그리고 루니아 누나는...
“카일~ 들었어요오? 제가 루나의 코디 담당이래요오! 와아!”
루나의 코디네이션을 담당하게 된 루니아 누나는 신이 난 듯 떠들고 있었다. 결국 이번 일은 잡화점 측에서도 승낙해야 하는 의뢰이며, 루비아의 말을 믿고 루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럼 내가 그 사람하고 만나서 무슨 정보를 알아내야 하냐?”
그리고 루나가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달 토끼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주세요. 덤으로 주인님께서 원하는 정보를 얻으신다면 얻으시겠지요?”
아직까지 달 토끼들이 다 돌아오지 못한 걸까? 달 토끼들이 납치당했다고 난리 친 해프닝 뒤에, 누군가가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달 토끼를 납치했나 보다. 그런데 루나가 라 캄베리를 대놓고 지목한 거라면...
“납치당한 달 토끼들이 전부 라 캄베리에 납치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저는 항상 위성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곳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좀 늦었지만, 이제서야 겨우 움직이게 되었으니. 제발 부탁 드립니다. 주인님. 이번 의뢰는 너무 막 나간다고 생각하실지 몰라요. 하지만! 저에게도 생각이라는 것이 있으니, 주인님께서 무리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 앞에 대놓고 버티고 있었던 건가.
마지못해 손을 움직여 루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줬다.
“많이 성장했네. 300년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래도 저는 나이가 많다는 의미의 성장은 좀 꺼려지네요. 헤헷.”
의뢰를 받아들이기 했으니 세부적인 내용은 잡화점을 운영하며 들었다. 어차피 새벽 5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 몸이고, 5시 이후에 마당을 쓸고 아침을 먹은 뒤에 잠을 자게 되면, 오후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몸. 그 이전엔 루니아 누나가 루나를 따라다니면서 코디네이트를 하고, 일정에 맞춰서 이벤트나 행사에 참여한다고 했다.
늦은 오후에는 내가 합류하면서 같이 다닌 뒤에, 저녁에 콘서트를 한 뒤 밤 11시쯤에 라 캄베리에서 초청한 저녁식사에 루나가 참여를 하게 되고, 나까지 들어가면서 시설을 둘러 보거나, 경비가 삼엄하다 싶으면 루나의 곁을 지키면 된다.
계획이 순조롭다면 잘 진행하겠으나, 가장 큰 문제는 본래의 목적인 달 토끼들의 생존여부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누가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혹은 유랑극단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나, 증인을 어떻게 확보를 하느냐다.
침투까지는 좋지만 원하는 목적을 얻지 못하면 시간낭비만 하는 셈이고, 비어버린 해결 방법을 확보하기 위해 레시아와 시나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그냥 거기 간부 중 하나를 납치해서 이곳으로 끌고 와 고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주인.”
“회사의 반감을 사고 있는 인물을 적출해서 이쪽에서 회유를 해보죠. 마스터.”
고문을 해서 얻어내거나 회유를 해서 알아본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보는 너무 한정적이라, 누가 누군지 전부 구별할 수도 없는 일이다.
“충성도가 높아서 회유는 통하지 않을 것 같고, 고문을 한다고 해도 그들이 손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거에요.”
말 한마디에 레시아와 시나의 계획을 무산시켜버렸다.
루나도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긴 했지만, 결국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오지 않았는가?
“결국 직접 부딪칠 수 밖에 없나?”
“그런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내일이 되길 기다리며 피로해진 눈을 잠깐 감는 것으로 회의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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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타고 집에 오는데 얼어 죽겠네요...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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