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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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 연기가 나려면 불을 피워야 한다. 벽난로일지라도 엘티노스 잡화점에서는 매번 겨울마다 자동으로 온도조절을 하기 위해, 불이 장작을 태우며 이글거리고 있으니,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신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지경. 그리티스 씨의 정보를 듣고 돌아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짧아진 터라 오후 6시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밤이 되기 위해 하늘은 군청색으로 물들었다.
눈을 감고 다시 생각을 해보면 라 캄베리에 침입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보안이 뛰어났으며, 누구의 연이 닿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이 계획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신랑?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하는 거야?”
황색의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걱정스러운지 붉은 눈으로 내 눈을 깜빡 거리며 마주하고 있고, 나를 보기 위해 긴 붉은 머리카락이 방해되지 않도록, 얇고 기다란 손가락을 이용해서 옆으로 스윽하고 넘겼다.
“얼마나 오래했죠?”
“30분정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생각하고만 있었어. 저녁이 다 되었는데 신랑만 요지부동자세로 계속 벽난로만 바라보고 있길래, 혹시 산타클로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산타는 크리스마스에만 와요. 양말을 걸어놓을 시기가 아니니까...아니지. 내 동심은 레시아 때문에 다 파괴되어버렸구나.”
굳이 산타를 믿어왔던 순수한 동심이라면, 저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검은 고양이 때문에 산산조각이 난 뒤에 풍화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화가 나는데?
“응? 무엇인가? 루시피나가 벌써 저녁을...냐아아아아앗!”
안 좋은 추억이 생각난 겸. 아이언 클로를 검은 고양이에게 묻지마 형식으로 베풀었다. 발버둥을 치는 고양이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다가 축 늘어졌고, 내가 바닥에 놨을 무렵엔 루시피나가 당황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기? 신랑? 느닷없이 아이언 클로는 왜?”
“옛날에 순수한 동심을 지켜왔던 저를 죽인 벌이에요. 그보다 저녁을 먹어야죠. 지금 잡화점에 없는 사람들은 밖에서 먹고 올 테고, 시나. 저녁을 먹어야 하니 동화를 풀어.”
내 몸 속에서 빛이 한번 튀어나오더니 하얀 올빼미가 잡화점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 전에 언제부터 올빼미가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걸까? 어떤 올빼미도 거꾸로 매달려서 말을 하지는 않는데.
아. 올빼미는 애초에 말을 안 하는구나.
“루시피나의 요리는 어디 암흑물질만 만드는 냥캣과는 차원이 다른 명품입니다.”
“형광물질이나 만드는 비둘기에게...”
“올빼미입니다.”
“어쨌든! 형광물질만 만드는 네 녀석에겐 듣고 싶지 않노라!”
최근에 아이언 클로가 익숙해졌는지 레시아의 회복속도가 빨라진 것을 체감하면서, 슬슬 다른 필살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가까워졌음을 인지했다. 식탁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와 루시피나, 레시아와 람파시나. 루니아 누나와 루비아. 이렇게 6명이 저녁식사에 참여했다. 저녁식사를 참여했다고 표현을 하자니, 저녁식사가 마치 전쟁이라도 되는 것마냥 비장한 것처럼 보인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는데.
사실 전쟁이 맞다.
“카일~ 누나가 먹여드릴게요오. 카일의 포크와 나이프는 저에게 주세요오.”
“그럼 제가 루니아 언니의 식사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포크와 나이프를 주시죠.”
“혼자서 잘 먹으니까 제발 좀 그만해요.”
분명 식기는 6개고 포크와 나이프는 각각 6개씩 잘 놓여져 있는데, 내 자리에만 포크와 나이프가 없고 다른 사람이 포크와 나이프를 하나씩 더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포크와 나이프로 수건 돌리기처럼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는데, 제발 부탁이니 내 포크와 나이프는 나에게 줬으면 좋겠다. 이 일의 시작은 당연히 루시피나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놀이가 되어버렸는지, 매번 저녁마다 이런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자. 아~”
이번엔 루니아 누나가 내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고기를 썰어 포크를 내 입에 들이댔다.
“저기. 루니아 누나.”
“네에?”
“네에? 가 아니라 제 포크와 나이프는 좀 주고 말을 하...큭! 으읍!”
이번에도 내가 입을 벌리는 타이밍에 정확히 집어넣은 루니아 누나. 다만, 너무 강력한 찌르기라 고기가 목구멍으로 다이렉트하게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다른 곳에 고개를 돌리며 맛도 못 느끼고 기침만 하고 있는 나에게“루시피나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기침밖에 나오지 않나보네요오?”터무니 없는 헛소리를 한 루니아 누나.
음식이 맛있으면 감탄사를 내뱉지, 기침을 내뱉은 적은 전혀 없다. 목에 강타한 충격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될 무렵.
“자. 아~”
“저기. 루니아 누나. 다시 한번 말하...켁! 크윽!”
이제 내가 먹고 있는 게 고기인지 포크인지 분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차라리 먹여주는 것은 좋다고 쳐도, 포크까지 들이밀면서 먹여주지는 않는데, 어린 시절에 감기에 걸렸을 때, 어머니가 나를 간병한 적이 있었는데 스푼으로 목젖을 치는 기괴한 간병은 하지 않았다.
언젠가 고기를 내 입에 쑤셔 넣고 내 목젖이 루니아 누나 포크에 꽂혀서 나오나? 언제부터 이게 고어한 내용이 위화감 없이 끼어있는 거지?
분위기도 환전할 겸 순수하고 청렴한 독백으로 해야겠어.
음...뭐가 좋을까?
“주인이 지금 와서 청렴하고 순수하다는 말을 사용하다니. 위선자나 하는 말 아니던가? 주인은 최고의 위선자 트레이너가 목표인가?”
“그 이전에 제 독백은 그만 훔쳐보고 설령 봤다고 하더라도 그냥 좀 넘어가요! 그리고 위선자 트레이너는 또 뭐에요? 포켓볼에 위선자 넣고 다닐 생각이에요?”
기이한 소리로 말을 거는 레시아나, 그 기이한 소리를 전력으로 받아 치고 있는 나도 좋은 사람 되긴 글러먹은 듯했다.
“마스터는 좋은 사람입니다.”
“내 편을 들어준 것은 좋은데 독백은 읽지 말아줬으면 해.”
하얀 올빼미와 검은 고양이도 정상적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고 있는데, 사람인 나는 포크와 나이프도 뺏기고 독백도 벌써 두 명에게 읽혀버렸으니, 아무도 없었다면 눈물까지 흘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울지 않겠지만.
“카일 씨.”
마음이 침울했을 때도 루비아는 말을 걸어왔다.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캐릭터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람파시나의 경우 확실한 표정의 변화가 드러났지만, 루비아의 경우에는 희노애락이 1mm정도 오차범위만 있을 뿐. 이야기를 해도 마네킹과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과 행동에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욕망이 담겨 있는지 알기 쉬우나, 말과 행동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봐도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마음속을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저와 같이 잡화점을 지키도록 하죠.”
“잡화점을 지킨다니? 나는 규칙 때문에 새벽에 일을 하는 거지만, 너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자도 상관이 없어.”
“아뇨. 저 또한 인간이기 전에 호문쿨루스. 메인터넌스만 제대로 해준다면 이론상으론 1개월동안 잠을 안자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론상이라면?”
실전에서는 변수에 따라 1개월 미만으로 잠을 안 잔다는 거겠지. 여러 생각을 거치는 동안 내 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비아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나게 새벽에 손님을 받는 동안 말상대라도 되겠다는 거야?”
“아뇨. 여장을 하실 때 갈아입을 의상에 대해서 의논을 할 생각입니다.”
“넌 밤 11시되면 곧바로 자러 가.”
고통스러운 저녁시간이 끝나고 후식으로 차를 끓여놓았던 루시피나. 이제 슬슬 잡화점 정문 앞에 있던 ‘Close’를 ‘Open’으로 바꿔놓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오지 않아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기에, 오늘도 똑같이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따듯한 차를 양손에 쥐었다.
-딸랑 딸랑~!
손님을 알리는 종이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울려 퍼졌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연분홍 빛의 토끼 귀가 용수철처럼 상하로 튀어 오르며 나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점프한 달 토끼. 루나 플로니아의 행동에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면, 아이돌 다운 가벼운 옷차림 때문이 아니라, 허공에 점프를 했을 경우 중력으로 인해 바닥으로 내려간다는 점이다.
나에게 뛰어들었으니 지금 이 시간대라면...
-콰지직! 콰당!
어마어마한 고통이 내 몸을 덮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루나는 나에게 껴안긴 상태로, 확인 절차를 걸치고 있는지, 그간 외로워서 그런 건지 4분이 지났는데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루나. 좀 놔줘. 더워.”
“밖은 겨울이라 춥다고요? 그러니 조금 더 붙어있어도 되잖아요?”
“하아...네 알아서 해라. 언제는 내가 말린다고 멈췄냐.”
“헤헤.”
무너진 흔들의자는 내가 증오스럽기라도 한지, 나와 5M정도 떨어진 거리에 수복하기 시작했고, 루비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달 토끼라. 300년 뒤의 달 토끼는 나이를 먹지 않는가 보군요.”
“어라? 300년이 지나서 머리를 염색한 건가요?”
“다른 개체입니다. 그녀는 이미 260년전에 죽었어요.”
260년전에 달의 기술로 되살아난 루비아 씨는 죽었다는 건가? 그 전에 저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녀들은 서로에 대한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소리다.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루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루나. 이제 슬슬 좀 떨어져줄래. 레시아나 다른 사람들이 나 이상으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이제 슬슬 놔줄래?”
“어쩜 300년이 지나도 주인님의 성격은 그대로인지 모르겠네요.”
“실례야. 나는 300년 후의 미래로 미아가 되어온 거라고. 그리고 내 성격이 어디가 어때서?”
한숨만 나온다.
만나서 반가운 것은 당연하지만, 이제 제발 좀 놔주고 볼일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줬으면 좋을 텐데!
“그보다 나에게 찾아온 이유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러 문안인사를 온 것뿐이야?”
“그것도 있지만, 위성으로 보고 있자니 라 캄베리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면서요?”
“그런걸 알 수 있어?”
“당연하죠. CCTV를 전부 찾아 다니면서 주인님을 항상 보고 있었으니까요.”
하늘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머릿속에선 비명횡사를 하기 시작했다. 저 CCTV에 찍혔다는 의미는 다른 곳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 그것에 대한 방안을 다시 새워야 하겠지만, 이런 사실을 빨리 발견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늦지 않았으니 대책을 세우면 그만.
“그런데 달 토끼가 지상에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던데, 지금은 특별한 날이기라도 해?”
“특별하죠!”
루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외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가 의뢰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니까요!”
의뢰라는 단어에 몸이 움찔거렸다. 내 평화와 평온은 항상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져도 커다란 파문을 그리지만, 이번엔 운석 하나가 호수로 날아드는 소리다. 잡화점의 주인이기에 나에게 날아드는 의뢰를 들어줄 필요는 있어도, 꼭 받아주거나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간절히 소망을 한다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던가?
쉽게 쉽게 살아가고 싶은 것도 내 간절한 소망이기에, 루나가 말하는 의뢰에 따라 우주가 직접 나서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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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업도 우주가 직접 나서서 도와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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