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42

FNL-Phantasm 2017. 12. 2. 15:07

542

 

정보를 얻는 자는 이미 이기고 들어간다.

하지만 나의 대한 정보는 많이 뿌려졌고,

라 캄베리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으니.

이미 패배를 한 상황을 어찌 되돌려야 하는 걸까?

-라 캄베리의 회사를 본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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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건물은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잘 알려주듯이, 밖에서 신분증 같은 무언가를 확인하는 경비원들이 불철주야로 감시하며, 또 다른 보안체계로는 그 카드를 기계에 찍는 것으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내 코트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검은 고양이는 앞발을 핥으며 말을 걸어왔다.

 

짐이 봐도 정면돌파는 무리수다. 루니아의 제안은 보류로 해야겠군.”

 

그러게요.”

 

정면돌파를 하기엔 방어를 하는 규모도 너무 크고, 우리를 지원해줄 나라나 기관이 없는 이상, 위장잠입을 하거나 유출된 정보를 가져오는 수단이 존재한다. 아리엘이나 릴리스는 꿈속에 있는 대상의 사진과 이름, 사는 장소만 알려주면 꿈의 미로에 가둘 수 있다고 하는데, 어차피 인연이 없는 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간부인지 알 리가 없다. 고위직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안에 있는 비밀정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마스터. 제가 제안한 방법은 어떻습니까?]

 

내 몸에 동화된 소녀의 맑은 목소리가 뇌에서 직접 울려 퍼졌다. 다만, 그 제안은 이미 내가 거절했을 터.

 

[시나가 제안한 방법은 이곳에 위장취직을 하라는 소리잖아? 그러기에는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는 규칙을 지키지 못해. 애석하게도 아침에 일하고 밤에 들어와서 다시 새벽을 새고 아침에 나가라는 소리잖아. 솔직히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인간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해.]

 

잠을 안자고 1주일간 버틴 기억도 있지만, 그때는 백장미를 찍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런 극한의 상황을 버텼던 것뿐이다. 최후에는 절망적으로 잡히는 바람에...아니, 이건 마음속에 파묻어버리고 그냥 꺼내지 말자. 가장 평화적인 방법은 없을까? 지금은 한 명이라도 위험에 빠지면 매우 곤란하니, 머리를 계속해서 굴리게 된다.

 

그렇다고 사기를 쳐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야.”

 

신분을 조작해서 들어갈 바에야, 나라는 존재를 알려주고 친해진 다음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지인을 통해 들어간다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일이지만, 글쎄...

 

단기간에 그럴 일이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네.”

 

저곳에 대해 누구를 알고, 누구의 지인으로 들어갈지도 막막했다. 무턱대고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친하게 지낼 사람이 있는가? 처음 보는 상대방의 마음을 간파하려고 경계를 하지, 진실된 마음으로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늘 그렇듯. 누구의 친구라고 해서 곧바로 친해질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징검다리 하나 놓는다고 해서 그 다리가 튼튼한가에 대해 또 고민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에게 떡이 굴러와도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떡에 대해도 의심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니까.

 

언제나 인간은 의심과 목적을 지닌 상태로 행동한다. 그 이외에는 무시를 하기 전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 따라서 저 안에 멋대로 들어가고 나가고의 사이가 되려면, 목표를 매우 크게 노릴 수 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신분을 조작하거나 그 위치까지 올라가기에는 백장미에 대한 진실을 퍼트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저 위에 있는 사람이 백장미를 읽는지 안 읽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지금은 백장미의 존재가 전설에만 내려오는 기이한 성서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는 터라, 최근에는 세상에 퍼지기보단 자신만 알고 즐기는 용도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백장미 모델이 300년 뒤에 나타났다고 해서 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라도 하면, 저는 모든 계획을 수정하고 저곳을 다 때려 부셔야 할 겁니다.”

 

백장미를 알다니! 너희들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라고 외치면서, 내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잔해까지 부셔버릴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라면 적어도 돈은 벌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럼 마스터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대답을 재촉하는 시나의 음성에 빠른 생각의 속도가 더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면 저들 위치에 내가 나란히 서 있는 것. 그렇다면 루시피나의 아버님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루시피나의 아버님께 부탁이라도 한다면, 300년 미래의 지금도 유명인사가 될 수 있는 빠른 기회가 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을 하다간 빚이 생겨나게 될 거야.]

 

[빚이라면?]

 

[매번 얼굴을 볼 때마다 손자나 손녀를 원하는 장인어른의 눈빛이 얼마나 버티기 힘든 줄 알아?]

 

[마스터는 진정으로 평화의 시기가 지속되었을 때, 그제서야 저희들에게 맹목적인 관심을 보이겠다고 하셨죠?]

 

시나의 말대로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서 틈을 못 내고 있지만, 나중엔 결혼식부터 다시 하면서 지금까지 못다한 이야기라던가, 애정공세를 받아들일 준비는 다 되었으리라 생각은 했는데...막상 이렇게 말하고도 현실에 눈을 돌리니, 잡화점 멤버가 좀 많다는 진실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마스터? 왜 아무 말도 없으시죠?]

 

뭔가 질책하려는 듯한 시나의 어조. 그 말에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아냐. 아무것도. 미래의 내가 어떤 고생을 하는지 예측을 좀 해봤어.]

 

주인. 저 소녀. 그때 마주하던 자가 아니더냐?”

 

검은 광택의 늘씬한 곡선을 그린 차가 길가에 또 멈췄다. 저번에는 반대편에서 봐왔지만 지금은 라 캄베리 정문 앞에 있던 의자에서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을 뿐. 존재감을 낮추는 마법도 활성화중이니 이곳을 봐도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게 맞다.

 

연예인이야?”

정말 귀엽다!”

저 남자가 내 보디가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이곳이 번화가이며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기에 50명중에서 8명정도가 입 밖으로 자신의 감상에 대해 표현을 늘어뜨렸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대다수가, 그 소녀와 경호원인지 집사인지 하는 남자에게 집중되어있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

“......”

 

나와 시선이 잠깐 마주치고 웃어 보이는 그 소녀. 금발의 소녀는 검은 밍크코트를 감싸며, 천천히 라 캄베리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방금 전에 눈빛교환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호의가 담긴 웃음이 아닌, 명백한 비웃음으로 자리잡았다.

 

그 잠깐 사이에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꺼져버려.”라며 나에게 눈빛을 보내왔는데, 그렇게 추측이 가능한 이유라면, 입술만 웃지 않고 눈은 전혀 웃지 않았으니. 진심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눈웃음도 살짝 보여야 정상이다.

 

레시아. 우선 이탈하죠.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몸이라도 녹여야겠어요. 그 전에 인간형으로 되돌아갈 마음 없죠?”

 

지금 주인의 품이 따듯하니 말이다. 그러니 근처 고양이 카페에서 짐과 노닥거려달라.”

 

코트 속에 들어가서 편하게 있는 고양이를 지금 당장이라도 밖에 꺼내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레시아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날아든 대화의 주제가 나를 당황시켰는데.

 

주인. 생각을 해보니. 저번에 짐에게 반말로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 제가 그런 적이 있던가요?”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을...아니, 설마!

 

그렇다. 라 캄베리에서 왼쪽으로 돌면 고양이 카페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 주인은 짐에게 허울 없이 친근하게 반말을 했던 기억이 있노라.”

 

기분 탓이겠죠. 제가 레시아에게 말을 놓을 상황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때는 소녀의 모습으로 있었으니까, 아마 심층적인 변화로 인해 오류를 범한 것일지도 모르고요. 마리아가 암시를 빼줬어도 바늘을 뽑듯 확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잔재가 천천히 사라지게 되는 거라서, 어쩌다 보니 반말로 이어졌나 보네요.”

 

과연. 소녀로 변했을 때의 주인의 관점이 변화할 뻔했다는 거군. 만약 소녀다운 모습의 주인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노라.”

 

그럴 리가요. 아마 레시아에게 도망치며 다닐걸요. 원인은 수줍어서? 아무튼 그때 반말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태연하게 넘기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제대로 넘겼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질문을 창의적으로 대답한 기분이라고 할까? 내가 해명한 것에 절반은 맞는데, 남은 절반이 틀린 이유라면, 내 관점은 아주 약간 비틀렸던 것뿐. 완전하게 변화하지는 않는 범위에서 마리아가 암시를 걸어놨다. 그러니, 기본으로 카일이라는 관점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 그러나 레시아에게 반말을 했던 이유라면, 저쪽에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다른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당황한 나머지, 과거에 어린 레프리시아를 다뤘던 것처럼 반말을 해버렸다.

 

사과할 필요 없다. 짐의 주인이니까. 어찌 이야기하던 짐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노라. 그리고...”

 

레시아는 처음에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며 입을 열었으나, 끝에는 향수를 불러 일으켰는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오래 전에 행복했었던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때 짐의 선생처럼 허울 없이 다가서며 이야기를 했던 일이 있었으니까.”

 

레시아의 말을 듣고 마음 한쪽 구석이 아련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레시아를 가르쳤던 선생이라고 이야기하면 될 일이지만, 지금에서야 이야기 해도 믿기는커녕 거짓말이라고 화를 내겠지.

 

그래도 짐은 주인이 반말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보고 있노라.”

 

정말요?”

 

그때도 주인이 짐과 같이 잤을 때 내뱉었던 단어들을 생각한다면...”

 

웃기지 마시죠. 그런 일은 전혀 없었으니까.”

 

언제나 도가 넘어가려고 할 때 말을 끊는 사명감으로 전력을 다해 태클을 걸었다. 고양이 카페에 걸어가는 길목에는 눈이 쌓여있는데, ‘뽀드득하는 소리가 기분이 좋아. 고의적으로 눈이 쌓여있는 길가에 다니고 있었는데.

 

주인. 그거 아는가? 눈에서 뽀드득하고 소리가 나는 것은 눈의 요정이 그 안에 숨어있다가 밟혀서 터지는 소리...”

 

어떻게 하면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전혀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을 해도, 내 발은 눈이 없는 길가로 자연스럽게 빠져 나왔다. 눈 때문에 아직까지도 젖어있는 짙은 회색의 인도를 걸어가며,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 몸을 따듯하게 녹이기로 했는데.

 

어라? 카일 씨?”

! 아저씨...”

 

괴상한 가면을 쓴 남자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댔다. 맞은편에 있던 은발의 소녀는 나를 바라보고 인상을 왕창 구기기 시작했다.

 

레인. 그리고 아이리스. 아저씨가 아니라고 했지?”

 

어쩌다 보니, 아이리스가 꾸민듯한 데이트 계획을 나도 모르게 부셔버리긴 했지만,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일어난 아이리스는 자연스레 레인의 옆자리로 바짝 붙었다. 그 와중에도 저런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나는 합석할 계획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인 아이리스의 호의를 받아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착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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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우면 집밖으로 나가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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