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41

FNL-Phantasm 2017. 11. 30. 21:56

541

 

 

 

들쑤시면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장소라면, 역시 라 캄베리 밖에 없을까? 아리엘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생각한 바로, 어차피 백장미를 제작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아직까지 계획을 실행할 세부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다. 천천히 생각하면 되는 일이며, 역으로 지금 당장 골머리 썩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자리에 일어나서 산책이라도 할 겸 일어나려고 했다.

 

주인. 움직이지 말거라.”

마스터. 온기가 달아납니다.”

카일 씨.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요?”

 

차라리 내 주변에 마나가 소용돌이치는 축복받은 체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달라붙으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주변에 몸에 이로운 마나가 회전하며 주변에 있는 생명체들에겐, 쾌적한 환경과 안정된 심리상태를 가져다 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30분째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3명의 여자들 때문에, 한숨을 크게 쉬고 싶어도 묘한 압박감에 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도 사람인데 밖에 나가서 뭐라도 구경이나 좀 하자. 너희들만 밖에 나가냐?”

 

아리엘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는데.

 

카일 씨가 걱정되니 저도 같이 따라나갈게요.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걱정의 범위가 완전하게 빗나갔거든? 내가 네 애완견이냐?”

 

주인은 애완견이 아니다. 짐의 신부다.”

 

레시아. 신부라는 단어는 정말 사전에서 찾아보고 오는 길이에요?”

 

사방팔방에서 태클을 혼자 걸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실로 말을 잊지 못하는 외로움의 길. 모든 이들이 바보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던지면, 나는 불합리하게도 센스가 넘치는 대답을 곧바로 내놔야 한다. 생각 없는 말을 생각 있는 말로 받아 치는 것이야 말로 불공평하다.

 

그 전에 이 흔들의자는 1인용이라고.

4명이서 같이 흔들거리라고 있는 게 아냐.

 

그 전에 언제 또 모습이 변한 상태로 양쪽에 있는 거에요.”

 

주인은 아리엘이 붙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정작 남편인 짐에게 이러는 것인가?”

 

아니. 붙어있는 건 상관이 없지만, 흔들의자는 1인용이라고요. 위험하잖아요. 벌써 제 뒷머리가 바닥에 닿기 직전이에요. 그리고, 남편과 신부에 대해 다시 사전검색이나 해보고 수정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수정할 필요도 없다. 주인과 짐의 성별을 바꾸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 될 일이 아닌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 일이잖아.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는 거지.

 

마스터의 말처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마스터가 다쳐도 저희 모두가 다치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전혀 안심되는 일이 아니잖아. 모두가 다쳐도 무사할 테니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이 흔들의자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잡화점의 물품이라서 언제 어디서든 수복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건을 막 쓰면 안 돼. 옛날부터 아껴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물건 하나라도 소중히 다루어야 오랫동안 튼튼하게 관리할 수 있는 거야.”

 

그렇군요. 마스터도 소중하게 다룬다면 오랫동안 튼튼하게...”

 

날 물건취급 하지마.”

 

단칼에 잘라버리는 대응은 가급적이면 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 더 튀어나올지 몰라서 도중에 끊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가라앉자 한숨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양쪽 팔은 레시아와 시나가 이미 점령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3명을 다 밀쳐버리고 나서 이 자리에 일어나는 것. 아니면, 그냥 가만히 생각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

 

라 캄베리에 관심이 있는 건가?”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우며 쓸어 내린 레시아가 입을 먼저 열었다. 도도하게 바라보는 붉은 눈과 마주하며 내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본다면, 그곳을 습격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300년 뒤의 세계는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하면서 빠져 나오는 것이 힘들다. 곳곳에는 감시를 할 수 있는 카메라가 항시 녹화하고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보안장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니 말이다. 적외선으로 감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안장치를 부수기만 해도 비상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닐지어다.”

 

기술이 좋아진다고 한들 빈틈은 반드시 있다. 마법이 몰락까지는 아니지만, 마법사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애초에 그리티스 씨만 있어도 이 대륙의 한 곳 정도는 지도상에서 삭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리티스 씨에게 명령을 하는 최상위 포식자인 레시아와 다른 차원에서 세상을 창조한 람파시나가 있으니. 침투와 빠져 나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의식세계를 장악하는 릴리스나 아리엘에게 부탁해도 되겠지.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꼭 확인해봐야 할 것은 확인해야 하는데.

 

여전히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 소녀.

유랑극단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을 법했다.

 

레시아. 시나. 저번에 라 캄베리로 간 금발의 소녀 기억하죠.”

 

확실히. 짐의 마법을 꿰뚫고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 자다.”

 

시나의 작은 고개가 끄덕이자 하얀 눈과 같은 백발이 일렁였고, 레시아는 담담한 목소리 대답했다. 아리엘은 금발의 소녀라고 말한 뒤에 잠깐이나마 기나긴 생각에 빠졌을 무렵.

 

그 애를 조사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명 뭔가가 연결 되어있는 건 맞겠죠.”

 

그런가? 하지만 주인이 딴마음을 품고 그 소녀를 납치할 생각이라면, 짐은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

 

사람을 대체 뭐로 보는 거에요!”

 

범죄자.”

 

이 마왕이 진짜...

그 전에 마왕에게 범죄자라는 질타를 받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짐의 마음만 가져갔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잡화점에 들어오는 멤버들마다 모두 주인에게 마음이 빼앗긴 자가 아니더냐? 그러니 주인은 범죄자에 가까운 수준이니라. 저 루비아라는 여자도 주인의 애교에 넘어가버린 것 아닌가? 역시 사람은 겉으로 볼 수 없다고 하더니, 주인에게 그런 이면이 자리잡고 있을 줄은...냐아아아앗!”

 

결국 그 좁은 공간에서 아이언 클로를 사용해야만 했고, 고양이의 모습도 아닌데 얼굴이 붙잡힌 여성은 고양이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기왕 마왕의 모습인데 마왕답게 질러보시죠.”

 

먀아아아아앗!”

 

마왕이라서 그런 비명으로 바꾼 거에요?”

 

3분간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땅바닥에 추락한 한 송이의 낙엽으로 전직한 레시아는 바닥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 상태로 소리가 대부분 묻혔지만, 내 귀에는 똑바로 들어오도록 입을 열기를...

 

정말 너무하지 않는가? 신부가 되어서 짐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다니. 밤에는 가만두지 않으리라. 누가 싫다고 할지라도 오늘 밤은 주인을 절대 편히 재우질 않을 것이다.”

 

마스터는 새벽에 주무십니다. 냥캣.”

 

그럼 아침 해가 떠도 끈적하게 달라붙을 것이다!”

 

무슨 슬라임도 아니고...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푸는 것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 하기도 전에, 레시아는 다시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던 흔들의자는 결국 힘에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면서, 나와 아리엘, 시나는 바닥으로 내려앉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알고 있어도, 너무 빨리 일어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고, 모두 내 위에서 엉키듯 넘어지는 바람에, 내가 바닥에 깔리는 쿠션 역할을 했다.

 

대낮부터 소란스럽다! 첩이 책을 보고 있으면 조용히...어라?”

 

연한 갈색 피부를 가진 마리아는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소리치려 했지만, 나 외에 3명이 햄버거처럼 쌓인 것을 보며 !”하고 웃어버렸다. 너는 이게 웃을 상황이냐?

 

카일이여. 그대는 밤낮이 없는 겐가?”

 

무슨 헛소리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 말하지마. 사고가 제대로 났을 뿐이니까.”

 

사고라? 쿠쿡. 그거 제대로 났군.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건 사고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런 끈끈한 애정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어디 그 잘난 입으로 한번 변명이라도 해보거라.”

 

생각해보면 변명이고 뭐고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난감해 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하거나, 태클을 걸어달라는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내 위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치우고 천천히 일어났다.

 

설령 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지금은 다른 사람이 없잖아요.”

 

그도 그렇군. 꽤나 대담해지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가녀린 여성들과 남자 하나가 한곳에 섞여서 엉망진창으로...”

 

일방적인 날조로 절 괴롭히고 싶다면 그만해두시죠!”

 

하다못해 관능적인 소설글귀까지 뽑아올 법한 마리아의 말을 차단했다. 한숨을 내쉬면서 라 캄베리에 대해 생각하며 창 밖을 보았다. 하얀 눈이 아직 쌓이지 않은 길목에 갈피를 못 잡고 흩날리는 눈꽃들을 바라보며, ‘내가 돌아갈 시간대에도 눈이 내리고 있는가?’로 생각이 바뀌었다.

 

야속하게도 이곳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과거의 그리움이 밀려왔다. “눈을 보고 있는 건가?”라고 물어보는 마리아가 내 옆에 다가서면서 책을 덮었다.

 

그리 감성적인 이유는 아니에요. 눈은 질리거든요.”

 

그런가? 그렇다고 첩에게 숨기려고 들지 말거라. 정신상태의 변화는 그 누구보다 잘 꿰뚫어보니까.”

 

여전히 키가 작은 외형으로 어른스러운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마리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지 않는 것은 카일의 선택이니라.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야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겠지만, 더 나아가서 언제 위험이 닥쳐올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계획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저는 평화와 평온을 언제나 존중하고 사랑한다고요.”

 

속으로는 그렇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문제가 된다?

 

그러면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하나요?”

 

카일이 선택한 길에 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일이여. 설령 이곳에 있는 잡화점 멤버 전원이 그만두라고 막아도, 그대는 그것을 그대로 행할 리가 없지 않는가? 어차피 이번 일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모두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지.”

 

기대요? 레시아. 시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기대를 한다고요?”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인 마리아.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덕에 어질러진 검은 옆머리를 스윽하고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우리들을 이끌고 거대한 사고가 터지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 평온과 평화를 울부짖기 위해 스스로 사지에 내몰고 있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사지를 스스로 내몰고 있는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해석이 되니 제가 지금까지 한 행동모두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지경이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나 스스로가 원해서 이곳에 남아 또 다른 불씨를 만드는 걸까?

마리아의 말은 지금까지 나를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잡화점의 주인이 분쟁과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존재는 아니지만...

 

이곳에 남아 내가 해결하려고 움직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혼돈을 야기하는 걸까?

항상 해결사처럼 생각해왔지만, 나야 말로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면?

그래도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다.

 

원인이던 뭐던, 이곳에서 끝을 보고 돌아가야 후련해지리라 생각하기에...

 

“...그래도 저질러보고 생각해야죠.”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마리아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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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멀리서 공유압 특강을 듣느라 늦었네요.

덤으로 글쓰며 페그오 리세마라 돌리다 길가메쉬가 나오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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