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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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가 넘쳐흐르는 몸을 강제로 움직여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는데, 몸이 유연해져서 다리를 가로든, 세로든 쭉쭉 찢어도 아프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허리를 뒤로 젖혀서 반대편을 바라본다거나, 허리를 돌리면서 팔도 같이 풀어주고 있는 동안, 루시피나도 옆에서 신기한 듯이 따라 했다.
“야호~!”
“그건 산에서 해야 하는 거잖아요...”
크게 함성을 지르는 루시피나의 외침은, 메아리가 파업을 했는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외쳐도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 멀리까지는 들리지 않지만, 전봇대에서 쉬고 있던 새들은 모조리 흩어져버렸다.
“잡화점의 위치는 산이 아니고, 그냥 단순하게 약간 외진 곳일 뿐이에요.”
“그렇구나. 근처에 건물은 많이 보여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영락없이 소리를 외쳐도 되는 줄 알았는데.”
“외치는 건 상관 없을 거에요. 잡화점의 대결계는 다재다능 하니까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지옥으로 떨어져라!’<Go To Hell>라는 마법을 부여해서, 손쉽게 진행하려는 듯한 그런 느낌이니까요.”
“만능이구나. 주변에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는 대결계구나.”
잡화점으로 벌 수 있는 수입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고, 손님도 그렇게 자주 오지 않고 있을 무렵. 내 어깨위로 뭔가 내려왔기에 입을 열었다.
“시나. 잘 잤어?”
“네. 마스터.”
다만, 하얀 올빼미는 내 어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거울 위에서 인사를 했다.
“레시아?”
“뭐냐? 주인? 짐에게 용무라도 있는가?”
이미 남자로 변한 레시아는, 검은 정장차림으로 책을 한 손에 들며 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읽지, 왜 벽에 등을 기대서 읽는 걸까?
“잠깐만? 제 어깨 위에 누가 올라온 거에요?”
“흐음? 나라네. 잡화점 주인. 그나저나 유연한 몸을 보아하니, 다른 운동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내가 공이 되어서 도움을 줘도 되겠나?”
포도 맛 슬라임 같은 것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와서, 운동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잠깐 동안 머리를 굴려야 했다. 대체 어느 포인트를 집어야 태클을 잘 했다고 칭찬을 받을까?
칭찬을 해주는 입장이 없다고 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해야겠지만, 생각할 시간을 안 주는지 그리티스 씨는 거대한 공이 되면서, 내 앞에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공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운동법도 있으니, 그것부터 하면 되지 않는가?”
“뭐, 그런 것도 있네요. 그럼 실례하도록 할게요.”
“잠깐 기다리거라.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주인은?”
공 위로 올라가기 위해 무릎을 살짝 접었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레시아의 목소리 때문에 잠깐 동작이 멈춰졌다.
“주인. 세간에 눈에는 소녀와 슬라임은 그리 좋은 조합이 아니다.”
“레시아가 말한 정보는 어디서 나온 정보에요?”
사람과 몬스터가 조합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그 전에 그리티스와 지금의 주인이 친해지는 것은, 짐이 참지 못하니 이쪽으로 오거라.”
남자로 변한 레시아의 말은 항상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지금은 이상한 소리를 늘여놓는 바람에 카리스마는 작용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질투하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어도, 질투의 한도가 넘어가면, 지금 내가 레시아를 감당할 수 있을 지가 문제다.
“그런데 그리티스 씨는 얼마나 많은 분신체를 가지고 있는 거에요?”
“분신들은 잡화점 주인에게 있었던 에너지로 통해, 3만마리로 분할이 가능했지. 한 때 창조주가 사용했다던 에너지를 직접 먹어보니, 그게 가장 위험한 일이란 것도 알았고 말이네.”
그리티스 씨 위로 올라가지 않고, 이렇게 질문한 이유도 레시아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지만, 지금 이렇게 듣고 보니, 당시에 그리티스 씨가 내 에너지를 삼키는 것도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감당하지 못하는 에너지가 용량의 허용치를 넘어가면, 폭발하거나 모두 방출해야 하는데, 쉽게 말해 너무 넘쳐흐르는 터라 역류한다고 보면 편하다.
“많은 걸 먹어왔지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은 처음 알았으니 말일세. 나도 아직은 좀 더 성장을 해야 하겠지만, 잡화점 주인은 언제 내 위로 올라올 생각인가?”
여전히 커다란 공 모양을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그리티스 씨는, 레시아가 지금 뒤에서 어마어마한 눈초리로 날 바라보고 있다는 그 자체를 모르고 있나 보다. 아니면 눈치 보는 방법까지 먹어 치우는 바람에, 눈치를 볼 수 없다는 결함을 지니고 있거나.
“괜찮지 않는가? 그리티스가 카일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의외로 이런 짧은 영상이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고.”
마리아가 어느 사이에 끼어들어 사탕을 꺼내 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꼬꼬마 동산에서 노랑이가 가지고 노는 듯한 거대한 공이 되어버린, 그리티스 씨를 이용해서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에 녹화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자연스레 하기 싫어지는 마음이 앞서갔다.
결국 다시 작게 줄어 들은 그리티스 씨는, 내 어깨위로 올라와 허탈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는데.
“허허, 잡화점 주인의 주변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군, 아지 다하카와 둘이서 있는 것은 재미가 없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올까 고민하게 만드는 군.”
“오면 레시아가 내쫓을 거 같은데요.”
슬라임이 어깨위로 올라와서 체액을 흘리고,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강산성을 띄고 있다고 하지만, 그리티스 씨는 마계공작이라서 조절이 가능한지, 어깨부터 젖거나 그렇지도 않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내 어깨가 녹아서 죽어가는 상황은 발생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보니까, 베니가 머릿속에서 문뜩 떠올랐는데, 그 아이는 대결계의 핵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유일하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지울 수 있는 아이인데...
“그리티스 씨. 제가 말한 의뢰는 다 하고 있는 거죠?”
내 어깨 위에서는 굵직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야 당연하지. 마족이든, 마물이든, 마계의 법도에 따라 계약한 내용은 반드시 지킨다네. 그리고 중간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냥 이곳에서 말해도 되는 건가?”
“잡화점 멤버도 다 알아야 하는 정보니까요.”
그렇게 말하니 그리티스 씨는 “흐음.”하고 숨을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우선 천계와 마계의 전쟁양상이 좀 바뀌어버렸다네. 본래 인간의 몸을 점령해서 서로 싸우는 양상에서, 이번엔 선택을 받았다는 그런 명목으로, 마계에 있는 마물들과 싸울 것을 합의하고 있고, 마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지금 정의가 잘못되었다며 계몽이 필요하다고 전파했네. 이곳에서 힘없는 약자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이미 특수한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기나 더 강력한 육체로 강화시켜주는 등. 인간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곳의 전쟁은 천마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 치졸해서 거품만 다 나오는 군.”
슬라임은 한숨을 내쉴 때 거품이 나오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리티스 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실베스 씨는 엘티노스가 말해주던 말던, 상관할 것은 없다. 하지만, 천계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계획을 바꿔버렸으니, 직접적으로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조종하려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설령 그 다음단계가 아무것도 만들어있지 않아도, 지금 당장 구상을 해서 세워야 하는 것이 일이니까.
“그건 그렇다고 해도, 결국 인간들끼리 서로 상반된 사상으로 투쟁을 벌일 테니, 그것도 어처구니 없는 소리이기도 하군. 그보다 그리티스. 주인에게 너무 붙어있지 말거라. 주인은 이쪽으로 오도록 하고. 주인을 위해 자리를 준비해뒀다.”
뒤에 레시아가 쓸 때 없는 소리를 뒤에 붙이지만 않았어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누구나 다 알았으리라 본다. 사람들은 상반된 개념과 상반된 사상, 상반된 성격만으로 격한 분쟁을 일으키는데, 탕수육을 부어서 먹거나, 찍어서 먹는 것만으로도 격한 감정을 지닌 것이 사람이다.
그 차이는 너무나도 사소해서, 일부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 차이만으로 거침없이 싸우는 존재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이번엔 천계와 마계가 직접 개입해서, 각자 손가락질 하며 “저 녀석은 잘못 되었어! 우리가 막아야 해!”라고 부추긴다면, 그 지령을 받은 사람의 입장으로는 어떤가?
어처구니 없게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다른 상위존재에게 지명 받은 것을, 사명감이라고 해석하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단정지어버린다. 토사구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자신에게 지령을 내린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우월한 힘을 가졌어도 부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
용병생활을 해봐서 나도 저 상황과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이런 식으로 추측을 해보았다. 마리아의 계획을 우연히 빗나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레이베리아 쪽에서 계획을 수정했겠지.
내 한쪽 어깨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있어서 봤더니, 어느 사이에 레시아의 무릎 위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했...
“레시아.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뭐가 말인가?”
“저는 분명 여기 서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레시아 무릎 위에 앉아있는 이유 말이에요.”
“그거야 주인이 한동안 생각을 할 테니, 또 반응이 없을 것 같아서 짐이 예정된 일을 직접 해준 것뿐이니라.”
어떻게 생각해도 내 예정은 다른 계획을 만드는 건데?
그 전에, 레시아는 벽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는 게 불편했는지, 내가 자주 앉던 흔들의자에 앉아있었다.
“레시아는 단순히 제가 붙어있기를 바라는 것뿐이잖아요?”
남자로 변한 레시아의 얼굴은 하나같이 날카롭고 카리스마가 있지만, 응석을 부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안 되는가?”
“안 될 것은 아니지만...”
안 될 것은 없다. 부부의 연을 맺긴 했으니까. 정작 바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움직일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인은 마음이 넓은 건지 좁은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나마 허용한다는 거로군.”
“허용? 뭘 허용해요?”
강하게 내 머리를 와락 끌어안은 정장의 매끈한 감촉과, 강한 남자향수가 코끝을 찌르기 시작하면서, 한쪽 귀는 가슴팍에 막혀 심장의 고동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리니뮴을 섭취할 시간이니라.”
“마왕은 그런 정체불명의 물질은 필요 없다고요. 모든 마왕에 대한 동화나 소설에서도, 이상한 물질을 직접 창조해서 흡입하는 모습은 없단 말이죠?”
그 카리니뮴이 세상에 존재했다면, 미네랄 워터에는 꼭 들어가지 않을까?
“그럼 직접적으로 말하면 되는가?”
“뭔데요?”
“주인의 애정이 필요하다.”
아.
심장소리가 빨라졌다.
내 성별과 나이가 바뀌고 나선, 잡화점 멤버도 은근히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분위기로 되었으니, 실질적으로 접촉이 그리 많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남자였을 때도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결혼한 사이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접촉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보았을 땐 지금 이런 모습으로 변했을 때가, 적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니까.
데이터는 그리 상세하게 할 수 없어서 헛소리라고 들리겠지만, 내가 남자일 때는 느닷없이 뛰어들어 붙은 횟수가 많기는 했다.
게다가 시나는 레시아의 행동을 그저 보고만 있는데, 뜯어말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라면, 레시아를 통해 내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고, 허용하지 않는지를 측정하는 거겠지. 레시아는 내가 싫던 말던 저지르고 나중에 생각하는 거고, 시나는 내가 싫어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극적으로 싫어하는 모양이다.
내 말 뜻은 레시아 차례가 끝나면 다음은 시나가 한다는 거겠지...
“붙어있다면야 붙어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니 원래대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 계약서나 찢으시죠?”
“그래도 지금은 주인의 모습이 귀여우니, 당분간은 이러고 있어주면 고맙겠다.”
협상을 통해 호소를 했지만, 행복한 얼굴로 있던 레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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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잤어요.
그래서 더 좋았지요...
잠은 중요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