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527
527
천계와 마계가 전쟁하는 소식은 아직까지도 퍼지지 않고 있었다. 가을의 마지막 달로 접어든 11월에는, 싸늘한 공기를 잠깐 동안 맞는 걸로, 졸음이 줄행랑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거대한 건물의 창가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맡은 일에 씨름을 하고 있겠지. 나 또한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기에, 지금도 안자면서 밤공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입가에서 나오고 있는 하얀 연기는 근심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언제쯤 돌아가지...”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가야 하지만, 300년을 넘은 시간대라도 적응했기 때문에, 돌아갈 마음이 천천히 줄어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는 잊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거니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이렇게 망설여지게 된다.
본래는 엘티노스나 티아를 찾아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300년의 시간이 지난다고 한들 골치 아픈 일이 조금씩 터졌고, 아주 조금만 확인하려고 했던 결과는, 어느덧 천마전쟁이라는 바보 같은 이름 하나 때문에, 발이 묶여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 되어버렸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레인이나 다른 이들의 얼굴을 만나지도 못하고, 곧바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갔다면, 지금쯤은 레이베리아의 계획에 모두 농락당하고 있었을까?
“레이베리아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하얗게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남자에게 흘려 보냈다.
지금까지 잘 살아가고 있었던, 마계와 천계, 그리고 인간계의 조화를 억지로 깨뜨리기 시작했지만, 초기에 조치만 잘 취해놓으면 전쟁은 무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엘티노스와 내가 움직이게 된 것이지만, 결과를 두고 말하자면 너무 이상할 정도로 잘 진행이 되었다.
살아생전 모든 일에는 고비와 고통, 그 끝에 얻어지는 성취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조용히 흐르는 것만으로도 초조해졌다.
“신랑. 그래도 지금은 추우니까 들어가자?”
루시피나가 흘려 보낸 말을 어디로 날려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걱정을 먼저해주는 성격이니, 루시피나가 흘려 보낸 말을 이어 나아가기로 하자.
“이런 모습으로 있다고 해도, 제 안에 있는 에너지는 오히려 양이 늘어난 상태니까, 자연스럽게 몸을 보호해주기도 해요. 지금 이 정도의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아주 잠깐 동안 더 생각 좀 하고 갈게요.”
이런 소녀의 모습으로 있어도, 신랑이라고 제대로 말해줘서 내 성 정체성은 남자라는 사실을 계속 알려주고 있었다. 생각을 해보니 신랑이라는 호칭은 신혼 초의 남자를 말하는 것일 터인데, 1년이 좀 지나서 2년을 향해 바쁘게 뛰어가는 시간 동안, 바꾸지 않고 꾸준히 불러왔다.
“루시피나는 절 신랑이라고 부르면 불편하지 않아요?”
서릿빛을 머금은 듯한 달빛이 루시피나의 미소를 밝게 비추었다. 너무나도 선명하고 깨끗해서 뇌에 각인될 것만 같은 매력적인 모습에, 잠깐이나마 내가 한 질문에 대해 바보 같다고 느껴졌지만, 그런 질문도 나를 위해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신랑이라는 호칭을 계속 사용하면, 계속해서 처음과 같은 기분으로 지낼 수 있잖아.”
초심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말인가?
“그래도 언젠가 초심은 잃게 되어있어요. 루시피나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 나도 초심은 잃었을 거야. 세상에 초심을 잃지 않는 생물이 어디 있겠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괜한 배려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지식을 쌓아간 드래곤인데. 한낱 인간이 세월과 궤변으로 이기려고 들기에는 역부족이겠지.
“운명에 맡겨서 흘러가는 것보단, 자신이 직접 뛰어다니는 것이야 말로, 초심을 잃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모든 생물은 자신이 괴로웠던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미래가 두려워, 현재의 상황을 관찰하고 확인하려고 한다. 초심이 무엇인지 전에 이미 사람은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성찰하기도 전에 초심을 찾으라는 것은 별 볼일 없는 말이다.
“지금은 잘 나아가고 있을까요?”
“당연히 아닐 거야. 신랑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였잖아?”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초기에 차단하고 다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나에게 만약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기고만장했던 나로 다시 돌아가는 게 좋겠지.
지금은 너무 고생하는 바람에, 사고방식이 어른을 뛰어넘어 늙은이가 되어버린 터라, 초심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태다.
“짜잔!”
붉은 트렌치 코트가 내 몸을 삼키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루시피나가 “히힛.”하고 웃으며 행복하게 감싸 안았던 것뿐이지만, 그나마 밖에 있던 한기마저 루시피나의 애정은 뚫고 오기 어려웠나 보다.
“따듯해?”
“그야, 밖은 추우니 따듯할 수 밖에 없죠.”
직설적인 물음에 입은 자연스럽게 돌려 말하도록 설계되어있는 걸까? 자연에 맞춰서 낮아진 기온을 탓하고 있었더니, 느닷없이 내 오금과 옆구리에 팔을 걸어 들어올린 루시피나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내 양팔이 자석처럼 루시피나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제 슬슬 들어갈까? 공주님?”
“루시피나마저 놀리면 마음고생이 더 심해진다고요...”
루시피나에게 한 소리를 하려고 해도, 얼굴만 마주하면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잡화점에 돌아와서는 레시아와 시나가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 상태로 있었는데, 그나마 저런 모습으로 있으니 묘한 압박감이나 긴장감이 없다.
느닷없이 바라보며 하는 말은...
“소녀틱 하군.”
“소녀틱 합니다.”
“대체 그 단어가 뭔데요. 없는 단어를 만들어서 쓰지 마시죠.”
미래의 문명에 맛이 들리더니, 이상한 단어를 창조하기 시작한 지금, 새벽에도 안자고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새벽에 깊어서 달마저 감출듯한 늦은 시간에도, 3명은 나의 말상대가 되어주고, 불의의 습격으로 지켜주기 위한 것일까?
“레시아와 시나는 왜 안자고 있어요? 혹시 강도나 그런 사람들이 올 거 같아서 그래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는 검은 고양이를 보며,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 설명을 하는 레시아.
“그런 걸로 걱정했다면, 짐은 벌써 죽었을 것이니라. 그보다 주인의 그 모습을 1초라도 더 담고 싶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게다가 마왕은 1주일동안 잠을 안 자도 무리 없이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인의 품속에서 자는 것만 뺀다면 짐은 계속 눈을 떠있을 것이니라.”
“그럴 바에 그냥 좀 주무시죠.
간곡한 부탁을 하는 내 목소리의 억양은 건성이 5%정도 혼합하여 배출되었다. 하얀 올빼미는 내 말에 끄덕이며 말하기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터. 그러니, 저 냥캣은 버리고 저를 재워주시면서, 잡화점 업무를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됩니다.”
“언제부터 현명함이 일을 늘리는 거라고 배웠어?”
조만간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재워달라고 한다면, 저 둘에게 아이언 클로를 먼저 집행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크나큰 소란은 피우지 않고, 오늘도 새로운 소식이 오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띵!
잡화점 정문 위에는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왜 카운터에서 나기 시작하는 거야? 누가 할리갈리 할 때 쓰는 종소리로 바꿔놓으래? 이건 손님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하는 종이잖아?
기묘하게도 손님이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을 때, 맑고 청량한 음이 내 앞에서부터 퍼져나가, 자연스레 잡화점 정문을 보게 되고 있을 무렵.
“자라나라 머리머리...? 어라? 잡화점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리티스 씨!?”
보라색 슬라임의 멋진 남성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경악하면서 부르자, 포동포동하게 카운터로 뛰어올라오면서, 느닷없이 내 손에 밀착한 상태로 비비기 시작하더니...
“이런! 300년 뒤의 잡화점 주인은 아리따운 소녀가 되어있었군. 300년 전에는 분명 내가 탈모방지 체액을 뿌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부작용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니, 이건 마리아의 못된 장난까지 섞인, 기이한 현상이라 그리티스 씨의 탈모방지 체액은 상관 없어요.”
보라색 슬라임이 “허허! 그런가? 그거 그나마 다행이군! 부작용이 없다는 게 좋지!”라며 떠들었다. 슬라임이 어떻게 떠드는지는 둘째치고, 그리티스 씨는 폭식의 공작을 지니고 있는 마계공작 중 한 명. 먹어 치우지 못할 것들은 없고, 먹을 것에 대한 욕망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게다가 슬라임이기에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조만간 우주도 삼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지만...
“음? 그리티스. 과거에서 온 것인가?”
검은 고양이가 그리티스 앞에 서 있자, 그리티스 씨는 포동포동하고 매끈매끈한 몸을 유지하며, 근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마왕님. 과거에서 잡화점 자체가 봉인 당했다는 말을 듣고, 수 차례나 시간을 도약하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군. 지금 마계의 상황은 어떻지?”
“마계는 지금 Yee.T 보드게임이 한창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안전하군.”
아니, 그게 어딜 봐서 안전하다는 소리가 나와?
Yee.T 보드게임을 하지 않으면 마계가 붕괴되기라도 해?
“그리고 또 한가지 소식으로는, 좀 기이한 소식이지만...”
그 뒤로 그리티스 씨의 말이 없고, 검은 고양이는 눈을 감은 체 끄덕이고만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그리티스. 당분간 잘 감시하거라. 짐의 자리를 넘보는 자가 있다면 가차없이 먹어 치우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왕님? 직접 과거로 돌아가시지 않으십니까?”
“지금은 300년 뒤의 문명을 즐기는 것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은 천마전쟁을 빌미로 인간을 줄여나가는 기이한 사건에 휘말렸노라. 이곳의 일이 해결된다면, 그때 다시 부르도록 하겠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러고는 공이 바닥에 튕겨나가는 소리가 몇 번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정문의 문을 열고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과거에 레시아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있었나요?”
“마계는 짐이 집권해도 경쟁은 항상 있는 법. 그래도 그리티스라면 알아서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실베스 씨가 마왕이 되잖아요? 만약 그리티스 씨가 실베스 씨와 싸워서 이기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시간적 모순이 되는 거에요.”
내가 걱정하는 바를 말하자, 검은 고양이는 앞발을 핥기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짐은 Yee.T 보드게임 1위 자리를 말하는 것을...”
“그 바보 같은 보드게임을 하루라도 안 하면 마계가 망하냐!!!”
보드게임의 최강을 두고 싸움을 하기 시작한다는 그 자체는, 지금 인간을 줄여나가겠다는 천계의 계획보다 다른 의미로 놀랍기 시작했다. 그보다...
“그런데 그리티스 씨는 어떻게 이쪽으로 올 수 있는 거에요? 게다가 과거에서 왔다는 건 어떻게 아신 거죠?”
“애초에 그리티스는 시공간의 개념까지 먹어 치운 포식자라서, 미래에서 오든 과거에서 오든 전혀 놀랄 필요는 없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시공간을 먹는 게 가능할까?
그런 궁금증은 뒤로하고 그리티스 씨가 이곳에서 활동한다면, 부탁할 것이 필요했는데...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는가?”
“꺄앗!”
나도 모르게 소녀다운 비명을 지르면서, 천장에 붙어있는 그리티스 씨를 뒤늦게 보고 있었다.
“돌아간 거 아니었어요? 그보다 독백은 언제 읽은 거에요!”
“나에게는 분신체가 많으니 굳이 본체가 직접 가지 않아도 상관 없다네. 감시나 전투력은 어차피 다 동일하니 말일세. 그나저나 그렇게 비명을 지르니 심장은 없지만 잠깐이나마 두근거리긴 했는데...”
“그건 요동치고 있는 거겠죠. 그보다 지금 당장 돌아갈 생각이 없으시다면, 정보 좀 모아주세요.”
보라색 슬라임은 보라색 물음표로 바뀌면서 의문을 표했다.
“무슨 정보를?”
“호문쿨루스나 복제 인간실험에 대해서요.”
“마스터. 그걸 왜 알아보는 겁니까?”
시나도 내가 한 말에 질문을 했지만, 지금 이렇게 조용히 잘 지나가고 있는 그 자체가 위험하다. 천계든, 마계든, 등잔 밑의 인간계든 알게 모르게 진행하는 계획을 사전에 먼저 찾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리티스 씨에게 부탁을 하는 거다.
“하지만 대가가 따르는데 괜찮겠나?”
“대가라뇨?”
“나는 비록 슬라임이지만 마계공작이기에, 인간의 말을 따를 수는 없다네, 주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도 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원하는 게 뭔데요?”
인간의 말을 듣는 것은 체면에 서지 않으니, 대가를 요구한다는 말은 레시아가 마왕이지, 내가 마왕이 아니라는 소리와 같다. 따라서 그리티스 씨의 요구에 따라 달라지겠지.
“내가 허기가 좀 져서 말이네. 잠깐 손 좀 뻗어줄 수 있는가?”
“아무리 요구라고 해도, 손이나 팔 하나를 자르라는 건...”
“그게 아니라, 안에 있는 그 창조주가 사용했다던 에너지를 먹을 거라네. 아무리 시공간의 개념을 먹어 치웠다고 해도, 움직이면 배가 고프니 말일세.”
과연. 그걸 대가로 한다면 별 상관은 없겠지.
“좋아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가져가세요.”
“고맙네.”
나는 슬라임의 피부위로 손을 올려놨고, 그 순간 불이 꺼진 듯 암전에 휘말렸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니, 해는 이미 떠있었고 뒤늦게 몰려오는 피로감이, 눈꺼풀의 무게를 더욱 증가시켰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주인. 일어난 건가? 몸은 괜찮고?”
“괜찮긴 한데...잠깐만, 저 기절했었나요?”
“폭식의 공작이니 말이다. 주인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 대부분을 가져갔노라. 짐이 중간에 말렸으니 다행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죽을 뻔했다. 대가는 잘 지불했으니 열심히 일하겠다고는 하더군.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기준을 말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리티스는 모든 것을 앗아갈 때까지 먹어 치울 테니 말이다.”
느닷없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기준을 정하고 말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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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조심하세요.
물론 전 아직 감기에 안 걸렸습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