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500화 외전
Out Story
모든 게 끝나고 잊혀진 시간 속에 잠들어있는 잡화점은 정지장에 갇힌 상태로 끊임없는 꿈을 꾸게 되었다. 바라보고 있는 달 토끼들은 잡화점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같은 유전자로 이루어진 호문쿨루스 또한 자신의 본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잡화점은 봉인 당해버렸고, 결과적으로 유랑극단의 각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랑극단에도 치명적인 피해가 있었으니, 사회자가 소멸되어버린 탓에, 각본가 하나만 남게 되었고,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는 유랑극단을 배신하고 빠져 나왔으니, 각본가는 사회자 없이는 각본을 쓸 수 없기에 유랑극단 또한 붕괴 당했다는 걸로 결론이 났다.
다만, 아직까지 세상에는 적이 많으니. 천계의 수상한 움직임은 오직 엘티노스만 알고 있으리라.
-각본가가 쓴 듯한 각본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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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와 천계, 그리고 인간계의 커다란 재앙이 사라지고, 우주에 떠 있는 달 토끼와 호문쿨루스는 잠을 얼마나 안 잤는지 눈 밑에 다크서클의 영토가 볼까지 내려갈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커다란 에너지 반응과 함께 잡화점이 시간상 잠겨버렸기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는 모르는 상황.
달의 기술력으로 계산을 하며 예측을 했을 때는 희망적인 시간은 5개월정도로 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주인님께서 최소 5개월동안 정지장에 꼼짝없이….”
“그래? 막상 잡화점이 잠겨버렸으니 씁쓸하네. 그래서 희망사항을 버리고 얼마나 오래 걸릴 것 같아?”
나는 달 토끼에게 물어봤더니 돌아온 답은 이렇다.
“아마. 2년정도 걸릴 것 같아요.”
“아버지를 2년동안 못 만나는 건가…….”
옆에서 청초하고 장난끼가 많았던 여자애마저 한숨을 쉴 정도였으니, 카일이 퍼드린 영향력이야 말로 어마어마한 모양. 세린을 깨우고 내가 잡화점을 맨 처음 열었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잡화점의 주인을 보았을 때 카일만한 녀석도 없었는데.
“그런데 엘티노스 씨? 천계에서 일하라고 부르지 않아요?”
연분홍 빛의 귀가 솟아오르면서 한 질문이 그것뿐이더냐?
뭐 좋아. 그거 정도는 답해줄 수 있지.
“천계에서 일하라고 부르긴 해. 인간계가 난장판이 되어버렸고 잡화점은 작동불가능. 게다가 13대 마왕이 움직이지 못하는 시점에서, 마계가 비어버렸으니 마계도 엉망진창이 될 위기로 봉착할 거야. 그래도 실베스가 내 말에 따라서 마신의 옥좌를 향해 시험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나오겠지.”
시간이 흐르면 모든 이들의 상처가 아물고 약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이렇게 의지하는 생각도 지긋지긋하다.
“하우…달에 오는 것도 힘드네.”
“페어리 퀸이 이곳에 올 줄은 몰랐네.”
“엘티노스? 당신이야 말로 이곳에 왜 있는 거죠?”
손바닥보다 작은 날파리만 한 것이 나에게 존칭으로 부르지 않다니. 아니, 지금은 바쁘니까 그 정도까지는 용서하기로 할까? 금발의 머리카락이 달에 가까이 있기에 은발로 서서히 변하는 페어리들의 여왕. 티아 메르세데스가 커다란 눈으로 쳐다보며 질문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당신도 카일을 노리고 있는 건가요? 미안하지만 카일은 제가 접수할거에요?”
“누가 누굴 노려? 카린의 모습이라면 마음이 없지는 않다만, 그래도 나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너야 말로 임자 있는 녀석을 납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음흉한 계획 같은 거나 세우지마.”
카일이 대체 뭐길래 주변에 여자들이 저렇게 몰려올까? 나는 남자답게 여자와 만나려면, 사전계획에 시간을 들이면서 미끼까지 물기를 기다리기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카일의 경우에는 노리고 있는 여자가 더 많을 정도로 이상한 녀석이다. 나도 카일의 인생으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엘티노스?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
“아니. 난 지극히 남자로서 해야 할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보다 너는 카일이 왜 좋은 거냐? 그거나 물어보자.”
“그야 귀엽잖아. 가지고 놀기 딱 좋은 정도?”
장난감 취급을 받고 있는 거냐.
무슨 인생이 그래?
어쨌든 욕망이 가득 찬 티아의 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는 불쌍해 보일 정도로 처량한 모습의 카일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의식과 무의식을 다루는 상급신이기에, 무심코 보고야 말았지만 눈을 뜨고 볼 수 없었으니, 지금 티아의 무의식에서는 생크림 범벅이 된 카일을 묶어놓고 전부 핥고 있는 동안, 나는 눈을 다시 돌려서 꺼림칙한 것과는 달리, 카일을 걱정하고 있는 카렌이라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카일이 걱정된다고 한들 이곳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너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거지?”
“잘 모르겠네요. 달에 조용히 살아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숨어서 살기에는 네 재능이 너무 아까워. 네 아버지처럼 용병이나 뛰는 게 어때? 호문쿨루스라서 달에 올라가 정기적으로 메인터넌스만 받는다면, 그 상태에서 영구적으로 살 수 있잖아. 카일의 수명과는 다르게 너는 별일 없으면 열 번째 천년기까지 살 수 있어. 그때 동안 루니아를 뛰어넘을 만한 검사가 되어봐라.”
인재는 계속해서 굴려야 늘어나니까. 앞으로 300년동안 유지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면, 내가 본래 행해왔던 마법의 대중화를 더욱 간편하게 만들어야 하겠지.
“그럼 나는 가볼 테니까. 티아는 날 좀 따라와. 상담할 게 있으니까.”
“상담? 설마 그런 말하고 뒷골목에서 날 꼬신다거나?”
“나는 임자 있는 사람은 건들이지 않아. 애초에 상급신이 되면서 어느 정도는 청렴한 삶을 살고 있다고.”
“청렴이 다 죽었어? 예전에 인간으로 활동했을 때 장로 드래곤의 부인을 뺏어간 거 생각 안나?”
제길. 저 녀석은 뭔데 저런 것까지 다 기억하냐?
“그때는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남자라면 로망이 있는데. 레드 드래곤의 폴리모프가 가장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고, 그 경우에는 내가 꼬신 것보단 나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 반한 쪽이 더 나빠.”
“인간과 드래곤이 서로 싸우는데, 제 3자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양쪽을 모조리 박살내는 모습을 본다면 나라도 반할 거야. 그래 그건 인정할게. 그래서 상담할 내용은?”
리베리티아 고원으로 좌표를 잡아 천천히 걸어가자, 달의 내부에서 리베리티아 고원이 연결된 것처럼 풍경이 이어졌다. 풍경이 단숨에 바뀌고 뒤를 돌아봤을 때는, 달에 있는 건물 내부는 찾아볼 수 없고, 고원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나무 하나만 존재했으니, 나는 그곳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근에 내가 보았을 때는 직접 영향을 주는 천계의 영향이 너무 커.”
“언제나 인간의 편에서 좋은 일을 하다간, 천계와 마계가 전부 붕괴될 거야?”
“그래도 인간계의 주인은 인간이 되어야 해. 언제까지 창조주 앞에서 인형처럼 움직이게 만들 수는 없지.”
“창조주도 너의 계획을 알고 있어?”
작은 요정은 정신 사납게 이리저리 날고 있었지만, 내가 계획하고 있는 정보는 저 녀석에게 처음 공개하는 중.
“당연히 모르지. 내 계획은 인간이 스스로 독립하기를 바라는 것뿐이니까. 종교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과 더불어,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순수한 발전을 하게 만드는 것뿐이야. 왕가에 휘둘리는 인간들이 없고, 특수한 힘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거지.”
“그런 어린 애와 같은 꿈을 아직도 꾸고 있을 줄이야. 뭐, 그런 편이 엘티노스답긴 하네. 불가능이 있으면 가능할 때까지 노력하는 모습. 카일과 전혀 다른 면이 있어서 나름대로 귀엽기는 해.”
이 날파리가 지금 상급신에게 귀엽다고?
지금은 바쁘니까 넘어가주지.
“그래서 창조주에게 권한을 조금 이어받아 몇몇 인간들의 유전자를 살짝 변형시키려고 하고 있어.”
“하지만 발전의 끝에는 언제나 멸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 강해지면 주목을 받아버리니까.”
“괜찮아. 현재진행형이니까. 조금씩이나마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능력을 사용하는 이른바 ‘초능력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또 멋대로 한 거야?”
요정은 경악했다.
자신이 들은 뉘앙스로는 “내가 앞으로 이런 걸 할 거다.”였으나, 내가 이미 말을 뱉어버린 이후로는 “나는 이미 이 일을 진행 중이다.”라고 개념이 교체된 순간이었으니까.
“다른 여신들은 전부 모르지? 그보다 대체 누구에게?”
“우선 옛 카멜롯에 있던 역사학원장 ‘토리스 베르트리히’에게 사이코 메트리를 선물했지. 실제로 유전변형으로 인한 능력발현 실험이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야. 지금은 베르트리히 가문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찾기가 좀 곤란한 상황이 있지만 그 가문을 중심으로 세대와 자손이 계속해서 번영하고 있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거야? 만약 다른 여신들에게 발견이라도 되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내 신경을 긁지마. 당연히 알아서 되겠지. 지금은 마나를 이용하지 않아서 불경스러운 힘이라고 천대받을지 몰라도 괜찮을 거야. 역경이 있으면 더욱 억세지는 것이 인간이니까.”
지금 당장은 내 걱정부터 해야 할 차례니까.
이런 일을 해서 좋게 볼 신은 1명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 부탁한 일은 뭐야? 카일에 관한 거야? 아니면 엘티노스에 관한 거야?”
“둘 다야. 첫 번째로 파이론에다가 카일의 묘지를 미리 만들어놔. 타입캡슐이라고 속이고 백장미를 1호집부터 앞으로 찍을 것들 전부.”
“그런 이유라도 있어?”
나는 투명한 필름을 주머니에서 꺼낸 뒤에 티아에게 주며 말했다.
“이게 17호집 백장미에 끼어져 있어야 해. 정확한 메시지는 주지 않았지만 이거야 말로 도움을 구할 수 있게 엮일만한 계기가 될 거야.”
“17호집? 그건 없잖아?”
“달에서 받아왔는데 요즘은 특수처리로 사람처럼 만들더라고, 네가 좋아하는 만화가인 루나 선생의 최신작이니까. 꼭 이곳에 필름을 끼어 넣어라.”
“30번만 정독하고 하도록 하지. 그런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메시지를 집어넣어도, 의미심장한 물건을 보내도 될까?”
“그 녀석은 천운이 타고나서 알아서 할 거야. 어떤 불리한 상황도 뒤집을 수 있는 발상의 천재잖아?”
“으흠? 너무 잘 만든 거 아냐? 카일이 충격을 먹겠는데?”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러면 약속이 있으니 천계로 올라가도록 하지.”
“약속이라면?”
“개인적인 사생활이야. 남자의 일정을 일일이 확인하지 말라고?”
***
“엘티노스 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아무것도 아냐. 샤이어.”
“어제 다녀간 발키리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길. 들켰군.”
사실 여자생각하기에는 머리가 바쁘기 때문에, 그냥 샤이어의 질문을 멈추도록 거짓말을 했다.
“어쨌든 마계로부터 밀서가 들어왔는데 실베스가 14대 마왕으로 되었다는 소식이에요. 마계의 군세는 더욱 더 밀집이 되기 시작할 것이고, 천계와 전면전을 할 날만 머지 않았군요.”
“최대한 천계와 마계가 전쟁을 하면서 인간계에 신경을 끄도록 만들어야지. 마왕이 교체되기 시작하자마자 마물들을 몰아내기 위해, 프리트론의 릴리 기사단을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배회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어. 인간계 곳곳에서도 전쟁이 발발하기 시작할 거야.”
세대가 교체 되면서 긍지를 높게 사는 늑대인간의 수장인 실베스라면, 인간들과 싸우면서도 자비를 바라는 적을 가차없이 죽이지는 않으리라. 전쟁은 피할 수 없지만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초능력자들의 세상이 오기에는 너무 약하고 볼품없으니.
“저는 아직까지 엘티노스 님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아요. 인간들이 우리들로부터 독립하면, 결국 신앙이 쌓이지 않아서 천계가 힘들어 질 것 같은데요?”
“샤이어. 나의 큰 그림은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거야. 신이라는 이름도 꽤나 지루한 거라고, 언제까지 자만하면서 인간을 무시하고, 마물이 불결하다고 경멸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엘티노스 잡화점에는 내가 바라는 이상이 실현되고 있다고. 카일도 그렇고 그 주변에 있는 녀석도 그렇고, 전부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잘 살아가는 모습에 가능성을 찾은 거야. 그러니 초능력자를 대두시켜서 힘을 끌어올리고, 천계와 마계, 그리고 인간계가 동등한 힘으로 협약을 맺는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귀찮은 일의 60%가 줄어들지.”
그래야 내가 여자를 꼬시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니까.
……본심은 그게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바라고 있는 멋진 남자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연구에 매진하는 사이에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샤이어가 내 집을 떠나고 나서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상향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다.
자신이 일을 잘 하고 있는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면, 근처에 있는 이웃을 관찰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언제나 사소한 불길함은 내 근처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진실을 꿰뚫는 여신인 레이베리아가 나를 찾아왔다.
“엘티노스? 요즘 자주 성역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 무슨 일 있는 겁니까?”
“그야 집안에서 뒹굴기 바쁘기 때문이지. 이곳에 찾아올 정도로 한가하다면 차라도 한잔 하겠나?”
작고 아담한 육체이지만, 부드러운 실크로 몸 전체를 가린 여신은 내가 반갑지 않나 보다. 그 이유라면 영체가 아니라 인간인 상태로 승천하여 상급신이 된 것이기에, 레이베리아는 내가 인간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레이베리아는 자신을 숭배한 인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좋지 않게 평가를 하고 있으니 그 이유는 모두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레이비스 가문도 거짓말을 하지만 자신에게만 진실을 말하는 거라서 봐주는 건지.
“요즘 기이한 인간이 포착되고 있다는 심판자의 말이 자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피로 이어지는 능력도 그렇고, 영혼으로 이어지는 능력도 그렇고, 월식의 파편으로 힘을 이어받는 것도 이상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능력을 사용하고 있더군요.”
“그렇군. 좀 이상하네.”
싸늘한 냉기가 솟구쳐 오르는 단어가 레이베리아 입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시치미 때지 마시죠. 당신이 인간들을 개조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감히 저에게 거짓말을 하시려고 하다니.”
“그러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문재라도 되는 건가?”
“당신은 지금 스스로 천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 그건 너의 오만한 생각이 불러온 오역일 뿐이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들이 공존을 이루며 살 수 있게 되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자기 종족 이외에 공존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카일의 경우에는 특수한 경우일 뿐. 대다수의 인간들은 전혀 그렇지 않지요. 인간으로 살아온 당신이 그 사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지 않나요? 아니면 신으로 너무 오래 생활한 나머지 인간성이 다 없어진 것입니까?”
“인간에 대해 함부로 짓거리지 마라! 레이베리아! 인간은 천계와 마계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한 존재가 아니야! 나야 말로 천계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어째서 내 앞길을 방해하려고 하는 거지!”
앞에 있는 여신이 한숨을 내쉬면서 뭔가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내 몸이 어느새 반대편으로 날아가선 바닥을 기어야만 했다.
“망할…. 힘이 안 들어가다니….”
“한 때 비니스를 봉인했던 장신구였죠. 당신에게 이걸 쓸 줄은 몰랐는데. 정말 유감이에요.”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내 힘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이번엔 내 존재를 흡수하려고 들겠지. 절대적인 봉인을 가동하는 목걸이라서 그런지, 터무니 없는 외통수에 당해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뭐가 그리 기쁜지, 레이베리아는 조소를 띠며 천천히 작은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 각본에 어긋나는 사람은 살려주는 타입이 아니지만, 당신은 상급신이라서 죽일 수 없으니 얌전히 잠이나 자고 있으시죠?”
“그렇군. 거짓말을 싫어한다는 진실의 여신은 사실 거짓말쟁이라니…….”
“진실은 언제나 위험하고 무거운 법. 거짓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법이랍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마지막 소리가 이런 거라니….
어둠이 나를 삼키면서 누군가가 나를 깨워줄 때까지 잠을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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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실을 꿰고 그 뒤에 있는 일을 적을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각본을 쓰기에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