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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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로 세계정복이 가능하냐고 물어볼 때, 레시아를 보면 가능하다고 말을 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하얀 올빼미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남은 마나석으로 다시 사역마를 소환하려고 했지만, 시나를 다시 부른다는 보장도 없으며, 내 몸 속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마나가 아닌, 다른 새로운 무언가이기 때문에, 거대한 공명을 버티지 못하고 마나석이 깨져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것도 가격이 꽤 비싼 최상급 마나석임에도 불구하고...차라리 상급 마나석이 깨져나갔을 때부터 그만두는 거였는데, 지금 시세로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100골드 짜리가 하나씩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랑. 벌써 6번째야.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내 옆에는 엘티노스가 작성한‘쉽고 간편한 사역마 소환’이라는 이름의 책이 놓여져 있었는데, 7가지 항목 중에 가장 첫 번째인 마나에 오류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그나마 시나를 찾아야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게다가 지금 당장 물어볼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지금 잡화점이 내뿜은 파동만으로 찾을 수 없는 거라면, 자신이 있어야 할 차원으로 돌아갔다는 결과만 남아있을 분이에요.”
“시나는 나름대로 천계에서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시도라도 하지 않을까?”
“지금 천계에 있어요? 다른 차원이 아니라?”
“응.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있어. 마스터는 언제든지 돌아오시는 분이라고, 기다리는 사람이 1명이라도 남아있어야 한다면서 마왕님과 싸웠어.”
“레시아랑 싸웠다면, 레시아는 기다리지 않는 판단을 하고 자신의 업적을 세우러?”
그러자 루시피나는 나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서 부정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더니...
“마왕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야 말로 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2명씩이나 기다릴 필요 없으니 빵조각이나 주워먹으러 가라.”라는 말을 하다가 엄청나게 싸웠거든.”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나를 독점하기 위해 싸웠다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군. 정말 서로 사이가 얼마나 안 좋아야 이렇게까지 틀어지는 걸까? 지금은 멤버들을 어느 정도 모으는 것이 최우선목표인가?
그 전에 호신용으로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하니까. 마법공학으로 이루어진 물품을 가지러 갔다.
“어라? 신랑? 티르빙은 어디있어?”
“티르빙은 지금 엘티노스가 만든 석상 안에서‘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들고 오지 않았어요. 그간 티르빙을 사용하면서 안에 있는 인격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놨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먹어서, 그 안에서 평생 살아달라고 부탁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은 제가 당장 사용할 마법공학 물품이라던가, 제 안에 있는 포켓나이프 이외에 다른 무기가 필요해요.”
“음. 그런 문제라면 그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신랑은 내가 지켜주면 되잖아?”
“만약 지켜주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에요. 아무리 루시피나라도 지금 레시아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드래곤과 마왕군이 격돌을 벌이게 되잖아요. 지금 당장이라도 사이가 틀어지면 안되며, 원활하게 관계를 복구해야지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요.”
루시피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뿐.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잔인하게 들릴 것이다. 과거에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하나의 관계로 얽혀있는 것이야 말로 든든하고 안정적이었으니까. 그런 과거의 안심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현실에는 조금만 비틀거리면 끝나버린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들쑤시고 다녔다.
“1층 바닥에서 사역마를 소환하려고 했으니 실패한 걸지도 모르지만, 3층에서 하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지금은 이 물품을 들고 다니는 것이...”
“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아 깜짝이야! 이게 뭐야!”
하얀 뱀이 내 팔 위로 올라타면서 입을 열자마자, 머리를 붙잡고 다른 곳으로 내던져버렸다. 아무리 내가 모든 걸 잃어도 반응속도와 동작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계기였고...
“아프잖아! 뭐 하는 짓이야!”
“아. 미안. 하얀 뱀. 네가 3층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면“저 나와요!”라던가“저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요.”라는 신호 정도는 줘야지.”
“깜짝 놀라서 날 던진 주제에 잘못을 떠넘기다니.”
고통을 인내하듯 끝부분에 가느다란 바람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뱀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루시피나가 신기하듯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전부 다 지켜봤지?”
“그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지금 당장 머리를 부딪쳐서 까먹은 거 같은데. 어떻게 보상할래?”
“그거 큰일이군. 그래도 다시 집어 던져서 뇌에 충격을 주면 기억날지도 모르잖아? 기억이 날 때까지 던져줄까?”
“아니. 갑자기 다 기억이 났어. 그러니 던지지마.”
죄책감을 이용해서 협박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 의도를 파악한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대화법이다. 하얀 뱀은 “흐음. 그렇네. 우선 이것부터 말해야 하나?”라면서 말하기를...
“마왕과 함께 있는 남자가 선생님이었다는 소리가 들렸어.”
레시아 옆에 남자가 있는 건 둘째치고 선생님이라니?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예전부터 찾아 다녔다는 소식에 나타났다고 하던데? 아니면 카일은 뭔가 잘 알고 있는 건가?”
지금 당장 해머로 내 머리를 내려쳐도 지금보다 멍할 수는 없을 거다. 레시아의 과거에서 영향력을 끼친 것은 나였지만, 시간적 모순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시간의 파수꾼들인지 뭔지 하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을 피하기 위해서, 조력자의 위치만 알려주고 모조리 삭제된 상태였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 것만 알고 있어. 그 선생이라는 존재가 대체 어떤 이유로 나타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짜인 것만큼은 확실해.”
만약 그 관계를 이용해서 레시아를 움직이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면, 이보다 더 비참한 상황은 없을 것이리라. 한시라도 빨리 레시아를 만나야 하겠지만, 문제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형식상 용사라도 인정받아야 마왕인 레시아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서 뉴런들이 난리치고 있어. 뇌세포 하나하나가 모조리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지끈거리는 두통은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과열되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지금 누군가가 선생이라는 존재를 사칭하는 그것만으로도 열이 터지기 직전.
마음만 같았으면 당장 마왕성에 쳐들어가서 아이언 클로라도 날리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까 마음 속에서 불이 일어나 화재로 바뀌어버렸다. 아직까지 어린 마왕이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취약하다는 소리인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아서 큰일이군.
“신랑이 그걸 어떻게 알아?”
“뭐가요?”
“마왕님 옆에 붙어있는 사람이, 마왕님께서 그토록 찾고 있었던 선생님이란 존재가 아니란 것을...”
적어도 하얀 뱀과 루시피나에게는 알려주기로 할까?
“그야 당연히. 제가 과거에서 레프리시아를 가르쳤으니까요. 예전에 제가 티아의 제안으로 과거에 한번 갔다 온 적이 있잖아요? 사실 어린 레프리시아를 만났었어요.”
루시피나의 눈이 하염없이 커지더니“정말이야?”라고 물어봤다. 고개를 내가 한차례 더 끄덕이니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는 붉은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왜 마왕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던 거야?”
하얀 뱀이 나에게 물어본 질문은 루시피나의 질문과 같았는지, 끄덕이는 고개에 맞춰서 붉은 파도를 그려 나아갔다.
“그야 나중에 말하려고 했어. 말하려고 했는데. 이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보다 그때 당장 말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았고, 그 뭐냐? 시간의 파수꾼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난동부리면 저도 수습 못하니까요.”
“그래도 그건 말했어야지! 그렇다면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었잖아!”
루시피나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나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럴수록 해결책을 먼저 생각해야 일이 터져도, 늦지 않게 진압이 가능하니까.
“그러면 그 선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루시피나가 조사 좀 해주세요.”
“조사를? 내가?”
“급한 거에요. 지금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용의자가 좀 많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아낸다면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어요.”
루시피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뱀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는 것은...
“그냥 지금 마왕을 만나러 가는 게 좋지 않아?”
“지금은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니까. 매번 하루에 한번씩 엘티노스 잡화점은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오픈이야. 움직인다면 아침 9시나 10시부터 시작해야 하며, 애석하게도 페어링이 다 끊어져서 부부의 연이 잘 이어져있다면, 마왕성에 아주 잠깐 들리는 것은 가능하겠네. 만나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나지 못하는 이유라면 레시아가 날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라는 존재를 사칭하고 있는 녀석 때문이다. 어린 레프리시아를 너무 정성스레 키운 탓인가? 차라리 절벽으로 밀어버리면서 강하게 키웠어야 했어.
“그런데 이상해.”
“이상하다니 어떤 것이?”
루시피나가 퉁명한 얼굴로 말하기를...
“마왕님은 선생님이란 말만 듣고 신랑을 거의 잊고 살듯이 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신랑은 마왕님을 빼앗겼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초점으로 바라보고 있잖아.”
“아니. 질투를 하기 전에 지금 당장 벌어질 대참사가 걱정되어서...”
“그리고! 나에게도 좀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 오랜만에 만났는데 재회의 키스도 없고! 신랑에게 응석부리고 싶은데 분위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토라진 모습이 귀엽다고 해도, 여기서 기름을 더 끼얹으면 무시무시한 재해가 될 테니까, 땅이 꺼지는 한숨을 억지로 삼킨 다음에, 지금은 오랜만에 만난 루시피나의 응석을 받아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일은 내일 아침에 다시 아침공기를 마시며 생각하면 되겠지.
“알았어요.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죠. 지금 당장 대책을 새워도 실행할 수 없을뿐더러, 오랜만에 만났으니 루시피나의 요리도 먹고 싶기도 하고.”
“음. 나는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겠군.”
신경 쓰는 척하면서 의도적으로 비켜주는 하얀 뱀의 눈을 보아하니, 마구니가 한 가득 들었다고 느꼈다. 뱀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유난히 능글맞다고 생각할 때. 루시피나는 언제 주방에서 다녀왔는지, 간단한 음식을 내 앞으로 가져와 행복한 얼굴로 말하기를...
“아~”
잘게 썰린 고기를 포크로 찍어서 나에게 가져다 줬다.
문제는 주방에 다녀와서 먹여주는 것까지 2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는데, 그 짧은 사이에 가능한 행동인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니, 이건 드래곤이라서 가능한 걸까? 루시피나의 주부9단이 만들어낸 성과일까?
하지만 고기를 입안에 넣자마자 쓸 때 없는 생각은 사라지고, 맛있다는 단어만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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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알바 대타라 오늘은 빨리 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