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50
450
잡화점에 돌아오고 나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했다. 모두를 모아서“우리는 더 이상 검은 높새바람과 비니스 여신을 추격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소리를 하자마자 레시아와 시나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데모르테는 “아 그래?”라는 말을 남겼으며, 루시피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2층에서는 이프리트와 윈디가 자고 있으니까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팔랑크스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말했다.
“갑자기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길 바람.”
“말 그대로. 검은 높새바람을 찾으러 가다가, 우연히 그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을 보아하니 전부 아군이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대단한 오라클이 있다고 말했는데 별의 아이가 개입하고 있었어. 지금은 마신 아르트리옴을 잡기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너무 갑작스럽군. 주인은 그 이야기를 믿도록 하겠다는 건가?”
검은 고양이는 나와 눈을 마주하고 질문을 던졌다. 레시아마저 혼란스럽게 하는 나의 결정에 대해 자신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지만, 지금 당장 고쳐서 수정해야 할 점은 많이 있다. 검은 높새바람에게 습격을 받았을 때도 비니스 여신을 향해 외치고 죽은 사람이라던가, 지금 비니스 여신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
어쩌면 비니스 여신의 힘을 최대한 올라갔을 때. 아르트리옴은 그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시나는 샤이어에게 무슨 말 듣지 못했어?”
“천계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데모르테가 사키엘과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중죄를 지어 봉인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우리스와 비니스를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어지고 있으니까요.”
천계가 분열하기 시작했다면 마계의 상황은 왜 이리 조용한 걸까?
“역시 천계는 틈나면 질투하는 녀석들 밖에 없군. 짐은 상당히 유능한 마왕이기에 내 부하들은 이간계가 통하지 않게 되어있거늘.”
검은 고양이는 꼬리를 천장위로 쭉 펴면서 자신감을 표출했다.
“그러면 지금 당장은 그리 큰 위험이라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네요오?”
“아니. 지금 당장 크나큰 위험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마신 아르트리옴이니까요. 어떻게든 이 마신을 불러서 적당하게 때려서 성격을 고치거나, 봉인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소멸을 시켜야 할 정도로 매우 위험하니까요. 기묘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제 앞에 나타나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지 말아줄래요?”
“그래도 지금이야 말로 시간이 나는 것이 아니에요오?”
지금 루니아가 내 앞에서 웨딩드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시선을 보내고 있으나, 최대한 무시를 하고 내 의견을 말하기 위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빼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말로 바쁘게 움직여서 예방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때죠. 아르트리옴의 본체가 있는 위치부터 찾아 다녀야 하고, 지금 당장 어디서 노래 자랑하고 있는 그 바보 같은 동상을 찾아야겠네요.”
“그 동상은 왜? 신랑에게 중요한 거야?”
“당연히. 그 사람이 엘티노스인지 아닌지를 판독하기 위해서죠. 아무리 생각해도 도플갱어가 무엇이든 흉내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상급신인 엘티노스의 권능이나 힘마저 흉내 낼 수 있는 생각은 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버렸거든요. 유니콘이 얼룩말 사이에 자라났다고 해서 얼룩말의 얼룩을 따라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누나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 결혼인 걸요오?”
아무래도 회의는 이 이상 무리인 것 같군. 지금 루니아 누나를 끼고 회의하는 것은 멍청하거나, 위험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멍청할 정도로 위험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폭주를 하면 어마어마해질 여파를 생각하고, 내가 먼저 원형 책상에 일어나서 회의를 마친다는 것을 무언의 행동으로 전파한 뒤에, 루니아 누나가 커다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옆으로 뛰어왔을 무렵.
“카일은 지금 당장 마주해야 하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오? 누나는 결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답니다아?”
“마신 아르트리옴에게 주먹 한방 날리기 전까지 보류로 해두면 안 되요오?”
“당연히 안 되죠오. 오늘 오후 4시에 결혼식인데에?”
오늘 오후?
왜 나는 그 소식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지?
“대체 누가 오늘 오후 4시에 결혼식을 연다고 했나요?”
“누나가요오.”
“그냥 멋대로 열어버린 거잖아!”
“잡화점에서 열거에요오. 모의전투를 할 수 있는 그 방안에서 결혼식장으로 설정하면, 의외로 멋진 분위기에서 결혼식을 열 수 있으니까요오.”
그렇군. 잡화점은 가상의 환경에서 모의전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이지만, 부수적인 면에서는 잘 수 있는 아득한 공간이 될 수 있고, 원한다면 저렇게 결혼식장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러니 여기다 싸인을...”
“그건 노예 계약서라니까요! 혼인신청서가 아니라!”
결혼식은 조용히 잡화점 안에서만 조용히 진행하려는 것은, 루니아 누나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배려 넘치는 모습일 지라도 지금 당장은 이런 시간이 없을 터인데.
***
하객은 잡화점에 있는 멤버들뿐이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는 절차는 매우 간단하게 했다.
...라고 하려고 했는데.
“카일! 어서 웃어요오!”
“이 드레스 입고 저번에도 찍었잖아요! 결혼식이 메인이 아니라 백장미가 메인이였냐!”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백장미 19호에 덧붙일 사진이 필요하다면서 찍어야 한다고 말한 시점으로부터, 지금 이 장소는 혼돈의 도가니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누군가로 인해 세상이 멸망해도, 루니아 누나는 잠깐만 멈춰보라면서 백장미를 찍기 위해 나를 여장시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겠지. 그 정도로 고집불통에 독선적인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그 말은, 스스로 자살하겠다는 소리와 뭐가 다르냐는 소리다.
정신적으로 자살을 하든 육체적으로 자살을 하든 루니아 누나에게 걸렸다면, 둘 다 시도를 해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그 전에 누가 신부에게 수갑을 채워서 사진을 찍게 만드냐고요?”
“그야 당연히 카일이 도망가니까요오.”
“도망가게 만드니까 도망가는 거 아니에요!”
덩달아 퀸 사이즈에 해당하는 침대에 양손이 구속당했으니 이 촬영이 끝나고, 내 주변에서 눈을 번쩍이는 레시아라던가 시나, 루시피나의 시선을 받으면서, 불안감이 산불 번지듯이 번져나가고 있을 무렵. 페트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눈빛을 보냈지만,“카일 씨 정말 예뻐요. 흑흑! 이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은 처음이야.”라며 울고 있었다.
내가 왜 저 녀석을 잡화점 멤버로 받아줬을까?
지금 당장 검은 높새바람으로 되돌아가라고 하고 싶어지는군.
“대체 이 결혼식에 신랑이 없어서 어쩌자고! 당장 내 옷이나 되돌려주고 다시 시작이라도 해요!”
“하지만 주인. 원래 결혼식에는 신랑과 신부가 있는 것이 정석이고, 신부만 찍혀있는 결혼식은 허상에 가깝지만, 인간은 현실에 지친 나머지 허상을 쫓기 마련이다. 주인이 이렇게 여장을 하고 우리와 같이 사진을 찌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모든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원소는 이와 같은 운명을 만들기 위해, 행성과 항성을 만들고 진화하는 동물을 만들었으며...”
“이상한 헛소리 한 번 할 때마다 아이언 클로가 나갈 테니 조심하시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풀리지 않는 수갑부터 어떻게 해야겠지만, 침대 위에 있는 기둥에 고정을 당한 터라 자연스럽게 한숨만 한 가득하게 나왔다.
“그럼 단체사진으로 우리 모두 카일 옆에 붙어볼까요오?”
레시아와 시나도 언제 본 모습으로 되돌아갔는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옆에 달라붙기 시작했을 때.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외각을 장식하고 있었으니, 이 바보 같은 기념사진을 다 찍으려면 20분 정도 소비한 결혼식 절차의 10배는 더 걸릴 것 같았다.
“주인. 좀 더 웃어보거라? 아니면 주인을 웃게 만들 수도 있는데 간지럼을 태운다면 말이지?”
“잠깐만요. 이 상태에서 간지럼을 태운다면 그거 장난이 아니라 고문이 되어버리거든요?”
“마스터는 어느 부위가 가장 민감하십니까? 역시 발바닥?”
“시나? 내가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니?”
루니아 누나는 커다란 새의 깃털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이리저리 내 눈동자를 움직이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거 의외로 재미있겠네요오. 카일을 한계까지 간지럽히면 좋은 사진이 나올지도 몰라요오.”
각자 깃털 하나씩 받아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고 다가오는 4명과 팔랑크스와 베니는 참혹한 모습은 도저히 못 보겠다며 뒤를 돌아 벽을 보고 있었고, 페트리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깃털을 그냥 흔들기만 할 뿐이었다.
“미, 미쳤어요? 정말 한다고? 아냐. 그러지마. 그만해! 그런다고 해서 제가 행복해 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안 돼! 제발! 살려줘! 페트리! 루나! 카렌! 마리아! 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바쁘길래 이런 중요한 순간에 구해주지 않아!”
-잠깐 작업중입니다.
내가 가쁜 숨을 고르고 눈물로 인해 흐려진 시야가 서서히 되돌아왔을 땐,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만족이라는 단어를 숨기지 못하며 만끽을 하고 있었다. 온 몸이 신경이라도 벗겨져버렸는지 아직까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에 한숨만 나왔지만, 부작용으로 발바닥이나 옆구리라던가 목 부위가 따가운 통증으로 화끈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왕님! 여전히 카일이 비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아!”
“그렇군. 주인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아, 이번 고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노라.”
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극이야.
내가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자. 주인? 이번에야 말로 저번에 아이니스가 왔을 무렵, 육포를 받아놓고 어디에 숨겼는지 그 진실을 고할 시간이니라. 쉬는 시간은 그리 많이 주지 않는다고? 비둘기 또한...”
“올빼미 입니다. 냥캣.”
여전히 눈보다 더 하얀 백발과 백은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태클에 걸린 레시아는, 고개가 얼마나 빠르게 돌아갔는지 연보라 빛의 긴 머리가 뒤늦게 따라 움직이며 소리쳤다.
“어쨌든! 그대도 육포가 오는 줄 알고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니스에게 준 돈은 신문보다 더 많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육포를 샀을 거라고 확신했으니까요.”
그 놈의 육포는 대체 무슨 마력을 가지고 있길래, 내가 고생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육포라는 존재가 끼어있는 걸까. 지금 당장이라도 인생에 대해 되돌아 볼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깃털을 들고 있는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잔인하고 사악해서 지금 이 곳이 악몽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 어서 말하지 않으면 깃털과 손으로 직접 고문을 해주도록 하지.”
“마스터.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알았어요! 제가 따로 아공간에 모아놓고 있었어요! 이제 됐죠!”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고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
“으음? 주인. 이건 그저 상황극일 뿐이니라. 거기에 맞는 대사는 “차라리 날 죽여라!”라는 비장한 소리이지 않는가?”
도 실토를 한 것뿐인데 유도심문에 걸려버린 꼴이 되었다.
“마스터가 육포를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니, 제 마음속에는 마스터가 일방적으로 보낸 배신감으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따라서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주인? 루시피나! 루니아! 공격하라!”
““와아아~””
한편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내 온 몸이 살려달라고 꿈틀거렸지만, 결국에는 수용할 수 있는 자극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린 터라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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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