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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39

FNL-Phantasm 2017. 5. 24. 10:06

439

 

 

 

뭔가 하나에 이렇게 열중한 적이라도 있을까? 잡화점에서는 시간이 안 가서 많이 힘들었는데, 어린 레프리시아의 옆에서 계속 선생님 노릇을 하다 보니 3개월이라는 세월이 지나가버렸다. 당연히 그 3개월동안 꾸준하게 신체를 과거로 보내서 내 몸의 시간은 3개월 전의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가기 전의 모습이라는 소리. 여기서 내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레시아의 성장속도였다. 마법과 체술이 대부분 나를 뛰어넘기 시작하는 것도 놀랍지만...

 

선생님! 아무리 실전지향이라고 해도 너무 아프잖아요!”

 

내가 맨 처음에 레시아를 만났을 때는 10대 초반의 모습이었을 터인데, 이제 10대 중반을 넘어선 모습으로 나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린아이의 티는 벗어 던지고 성장을 하고 있는 건 좋은데. 대체 마족이란 건 뭘 먹으면 단기간 내에 성장을 하는 걸까? 내가 먹인 건 고기와 채소, 과일 밖에 없을 텐데. 저런 모습일지라도 나보다 나이를 많이 먹어서 원래는 저런 모습이어야 하는데, 영양분과 마기가 부족한 터라 몸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실전지향이라는 것은 언제나 연습할 때도 실전처럼 한다는 소리야.”

 

생각을 해보니 레시아가 나의 연습을 도와준다고 해놓고, 죽어라 때리거나 마법을 날린 것은 나 때문이었던 건가? 아무튼 아침에 있던 훈련은 여기까지로 하고, 사브르로 변형시킨 티르빙을 귀걸이로 되돌렸다.

 

. 이제 슬슬 되돌아가볼까?”

 

라고 했지만 뒤에서 순간적인 살기가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뒤를 돌고 있는 상태에서 급습한다는 거야말로 적절한 실전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익숙해지는 시공의 눈을 개안하고, 1초마저도 10분처럼 느껴지도록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레프리시아의 발차기를 피하고 아이언 클로를 사용했다.

 

시공의 눈을 해제하고 앞을 바라봤을 때는 레프리시아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아파아앗! 아파요!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선생님!”

 

기습을 할 때는 살기를 드러내면 안 되지.”

 

20초 정도 집행을 한 뒤에 바닥에 내려놓았을 무렵. 레프리시아는 자신의 얼굴이 변형이 되었는지 아닌지 양손으로 더듬어서 확인하고 있었다.

 

빨리 씻기나 해. 아침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네에~”

 

대답은 길게 하는 게 아닌데.

지금은 봐주도록 하자.

 

그런데 선생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는 선생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레프리시아는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를 풀어 비단결과 같은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걸 보고 있을 틈도 없이, 지금까지 내 이름에 대해 절대적으로 안 물어본 아이가 느닷없이 그 질문을 던지니까. 머릿속에서는 상당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너는 지금 나를 그냥 사람취급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엄청나게 특수한 케이스의 시간여행자라고만 알아둬. 그래서 내 이름은 절대로 말해줄 수 없는 노릇이고, 파란 경찰박스로 시간을 여행하는 그 사람도 진짜 이름대신닥터라는 이름을 쓰잖아? 그러니까 그냥 나를 부를 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돼.”

 

하지만 이름으로 부르는 게 편하단 말이에요.”

 

그냥 내가 내 이름을 까먹었다고 하자. 그러면 더 편하지 않을까? 시공간여행의 후유증으로 그런 거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지.”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

 

그렇다고 알려주기에는 아직까지 위험성이 너무 크니까.

 

카일도 정말 짓궂어. 3개월 전만해도 어디 딸 바보 마냥 손과 발이 시공의 폭풍으로 사라지는 멘트를 아낌없이 날렸는데.”

 

티아가 나무 위에서 훼방을 놓으며 그 내용은 내가 들을 때마다 우주 높이 이불을 차버리는 흑역사를 들춰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어린아이를 안심시켜야 하니까 그런 말을 한 건데. 그걸로 인해 현재 시간대에 있는 티아를 피해서 안전하게 복귀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빨리 돌아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얼마나 오래 있으려고? 이제 슬슬 과거의 마왕님을 독립시키고 빨리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 레프리시아는 티아를 인지할 수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 마음껏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고, 티아에게 대답을 할 때는 텔레파시로 보내야 했다.

 

[아직은 부족해. 이대로라면 그냥 내 옆에 붙어있기만 할 거야. 독립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할뿐더러 지금의 마계를 송두리째 바꿔버리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내가 너무 오래 있던 탓에 나를 의지하면서 자라온 레프리시아에게 질문했다.

 

그나저나 너는 언제 마왕이 될 생각이야?”

 

. 그러고 보니 선생님과 같이 살려면 마왕이 되야 하는 거였죠?”

 

애초에 시공간술사가 과거에 오래 있어서 얻는 페널티는 없지만, 어릴 적에 레시아가 품었던 그 야망의 화살은 마계를 바꾸겠다는 그 장대하고 근엄한 목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나와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화살을 가리키고 있었다. 언젠가 사라지는 나를 영원히 붙잡아 놓으려는 듯이. 역으로 마왕만 되지 않으면 평생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빠른 재촉할 수 밖에 없는데.

 

레프리시아. 사실 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말을 시작해도 마왕이 되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늘릴 방법을 찾아올 것 같으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시장에나 다녀와야겠군. 따라갈 거야? 아니면 집에 있을 거야?”

 

씻고 싶으니 집에 있을 거에요. 그런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저를 상대할 때는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게 말이 되요?”

 

마나로 몸을 계속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으니까. 레프리시아가 보기에는 싸우는 내내 땀도 흘리지 않는 괴물로 보였나 보다. 분명 레프리시아도 마법을 이용해서 몸을 청결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는 목욕을 하는 것이 피부에 더 좋다는 걸 알고 집에서 씻으러 가는 것뿐.

 

아무에게 열어주지 말고, 만약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면 싸울 생각하지 말고 도망가도록 해. 언제까지나 지금은 내가 알려준 방법을 사용하는 건 최후의 최후까지 가서야.”

 

알았어요. 선생님. 잘 다녀오세요~”

 

여전히 붉은 눈으로 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레프리시아를 뒤로 한 체, 마을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인간 마을로 내려오는 이유야 레프리시아의 성장을 예측할 수 없어서 옷을 훔쳐...아니, 사려는 것이고, 지금쯤은 선물 하나 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티아는 혹시라도 몰라서 레프리시아의 옆을 지켜달라고 부탁을 했고, 3개월째 애용하고 있는 긴 금색가발을 쓸어 넘기고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물건을 구매하려고 했을 무렵이었다. 위화감이 어느새 일을 하기 시작할 무렵...

 

나야 사람들을 치워주면 계산을 안 하지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어떤 것이 너무한지 모르겠네요?”

 

적대인지 호의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릴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10대 중반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긴 은발은 신비로움을 품고, 보라 빛 눈동자는 요염함을 품는다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남자를 유혹하는 페로몬을 주변에 가득 뿜어내고 있는 몽마.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릴리스는 색욕의 표식을 가졌다고 했는데...

 

아스모데우스는 레시아를 자신의 반려로 삼아서, 자신의 귀중한 전력이 될 거라고 이야기한 걸로 보면, 릴리스는 성장하는 도중에 아스모데우스에게 붙잡혀서 이상한 사술에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마나로 강화된 눈에서는 릴리스 몸 속에 발견된 낙인이 하나와 이상한 기생충처럼 돌아다니는 저주들이 5.

 

다행인 것은...그 낙인과 저주 때문에 릴리스가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란 걸 잘 알게 되었다. 꿈의 미로마저 설치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몽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재를 족쇄와 사슬을 채워서 약하게 만들면 안 된다.

 

당연히 너무하지. 초기에는 내 꿈에 침입하려고도 했었고, 결계도 3개월동안 72번을 건드렸고. 암살을 목적으로 한다면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텐데?”

 

그걸 다 알고 있었나 보네요? 저도 당신을 죽이려고 시도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죽이라는 이유는...

아스모데우스의 명령이겠지.

 

그래도 의문이 드네요. 당신과 같이 정신방어가 너무 높은 사람은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하면 그 귀여운 얼굴에서 꼴사나운 목소리가 나오게 하려면, 얼마나 제가 노력을 해야 할지.”

 

나도 의문이 드는 것이 하나 있어. 네가 아스모데우스 밑에서 일한다는 거야.”

 

그야 저는 아스모데우스의 약혼자니까요.”

 

약혼자?

 

그렇군. 이해했어. 다만, 지금 나를 건드리면 가장 후회하게 될 거야.”

 

애석하게도 저는 몽마중에서는 최상급에 속하...”

 

마나 캐논.”

 

-파아앙!

 

누가 대사를 끝까지 다 하게 해준데?

선제 공격을 한 사람이 싸움을 지배하는 거지.

 

! 비겁한 인간!”

 

릴리스의 검은 실크드레스가 조금 흠이 난 상태로, 일부분은 찢겨져서 새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라? 살아있던가? 그보다 실크드레스는 옷이 잘 찢어지니까 입고 오지 말지. 아니면 저 곳에서 다른 옷이라도 입고 올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릴리스는 오만상을 다 부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릴리스의 허리에서 뽑아져 나온 사슬검이 나를 포위했지만, 티르빙을 뱀 조종자로 변형시켜서 6개의 사슬이 내 주변을 감싸면서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연약해 보인다는 핑계로 단독으로 나와서 날 처리할 생각을 하는 거라면...”

 

사슬검이 뱀 조종자의 사슬에 얽혀서 무용지물로 만든 상태로 릴리스의 앞에 천천히 걸어나가서, 주먹에 마나를 한 가득 담기 시작했다.

 

큰 착각이야.”

 

겁을 먹은 이판사판으로 릴리스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지만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피하고는 릴리스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바다색의 마나가 릴리스의 몸 속에서 휘젓고 있는 사이에, 아스모데우스가 걸어놓은 사술부터 조잡한 저주까지 모조리 다 제거하기 시작했고, 새벽빛을 담은 마나가 서서히 허공으로 올라갈 무렵. 모든 사슬을 전부 거두고 나를 가둔 결계까지 전부 날려보냈다.

 

어라? 방금 나에게 무슨 짓을?”

 

그야. 낙인도 해제하고 몸 안에 있는 기생충도 제거했고, 주변에 펼쳐진 결계도 싹 날려버렸지. 애석하게도 내가 마나로 눈을 강화하면 기묘한 것까지 꿰뚫어보기 시작하거든.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협박을 받아가면서 살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네.”

 

릴리스는 고개를 한차례 숙이다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 아이도. 그렇게 될 거야.”

 

그 아이?”

 

당신이 지금 보호해주고 있는 아이 말이야! 이곳에서는 어차피 나는 시간을 끌고 있는 역할이었어. 그 동안 아스모데우스가 직접 그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고!”

 

릴리스로부터 실토를 받아낸 나는 다급한 마음에 티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전혀 응답이 없었다. 지금의 티아는 아직까지 실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소리인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군. 시아버지의 허락 없이 딸을 가져간 도둑놈의 최후는 항상 다 똑같던데. 그건 아스모데우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 릴리스.”

 

나를 직시하고 있는 릴리스의 몸이 작게 떨고 있었다.

 

나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이라던가, 살의로 가득 찬 눈보다는 드디어 아스모데우스를 합법적으로 때려죽일 수 있다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스모데우스에게 안내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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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아스모데우스에게 너무 미안하네요. 작가 입장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