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37
437
어처구니 없게도 티아가 나를 과거로 내던져버리면서 막상 알아서 돌아오라고 연락을 받은 지 1주일이 지났을 무렵. 꾸준하게 신체를 과거로 돌려보내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과거 시간대에 있는 티아에게 따지면서 현재로 가는 방법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 내가 돌아가기에는 어린 레프리시아가 눈에 밟혔다. 혼자서 살아갈 힘을 넘어서 마왕의 길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이번에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음. 역시나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혼잣말을 늘어뜨리면서 초목이 모두 파괴되고 그을린 자국만 남은 장소를 바라보며, ‘내가 진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 멧돼지를 사냥하고 있는 게 맞는가?’라고 의문이 3번씩이나 반복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레프리시아와 함께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마기가 희미해져서 곧 사라진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나 때문에 몸 안에 누적되어있는 마기가 레프리시아를 성장시킨 것.
게다가….
“선생님! 멧돼지를 잡아왔어요!”
“멧돼지에게 무슨 마법을 날리면 그게 암흑물질로 되는 거냐.”
미다스의 사촌이라도 되는 마냥, 사냥을 하면 전부 암흑물질이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만약 주기적으로 내 신체를 과거로 보내지 않았다면, 영양실조로 금방 시들어서 죽어버리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겠지. 게다가 마계공작이 있는 인간마을에 보호자나 레프리시아를 가르칠 다른 선생님을 구할 이유는 없고, 레시아가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경우 다른 마을에서 찾아주는 것이 좋다.
덤으로 그 마을에는 윤회의 조각을 얻을 수 있는 정보나, 아니면 과거에 있는 티아에게 찾아가서 현재로 돌려달라고 하면 좋은 계획이라고 볼 수 있지.
“그 멧돼지도 나중엔 네가 다 먹어라. 인간이 먹기에는 이미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니다.”
“선생님은 배 안고픈 거에요?”
“아사직전의 거지가 저걸 본다면 식욕이 사라져서 굶어 죽을 걸?”
암흑물질의 일부를 뜯어먹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레프리시아를 보면서 다시 생각을 했는데, 루니아 누나의 요리는 저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는 소리지? 예전에 레시아가 루니아 누나의 요리를 먹고 기절했었으니까.
“선생님?”
앞에 있는 레프리시아의 붉은 눈망울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면서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내리면서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를 걱정하려고 하다니. 1억하고도 2천만년 더 걸리는 짓을...너는 지금 어떻게 혼자서 살아갈지 궁리를 잘 해둬야 해.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니까. 물론 네가 스스로 일어나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나나, 아니면 다른 보호자들이 알아서 돌봐줄 거라고 생각해.”
“선생님이 계속 곁에 있어주면 안 돼요?”
레프리시아의 작은 손은 여전히 바지자락을 잡고 불쌍하게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입을 열었다.
“늘 말해왔듯이 나는 미래에서 건너왔어. 내가 미래로 가게 된다면 계속 같이 있어주지는 못해. 내가 나의 시간대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너를 보살펴주긴 할 거야.”
이렇게 말해주면서도 계속 같이 있어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레시아에게 제안을 했다.
“그럼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정하자.”
“가위바위보?”
아직 어린 시절이라서 가위바위보를 모르는 건가? 어쩔 수 없이 상세하게 나는 주먹을 쥐면서 가위바위보에 대한 규칙을 설명했다. 3가지 형태에 따라 물고 물리는 간단한 경쟁은 어린 레프리시아가 이해하는데 5초의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가위바위보야 말로 약자나 강자를 나누지 않고, 손만 있으면 모두에게 평등한 투쟁이라는 거야. 지금의 나와 레프리시아의 전력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마법으로 대련을 한다면 십중팔구로 지게 되겠지만. 이런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간단한 손 모양으로 날 이길 수 있다는 거지.”
“해볼게요. 그런데 뭘 정하는 거에요?”
레프리시아의 질문에 예약된 단어들을 입으로 내뱉었다.
“가위바위보에서 네가 이기면 너의 소원대로 어디에 가지 않고 계속 곁에 있을 거야. 다만, 내가 이긴다면 너는 빠른 시간 안으로 강해져서 날 뛰어 넘어야 해. 그렇든 그렇지 않든 나는 돌아갈 기회가 된다면 곧바로 사라질 거야.”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시작했고 작은 손이 가위를 냈을 때 나는 주먹을 내서 이겼다.
잠깐? 이겼어? 드디어 레시아에게 1승을 가져갔다고?
승률이 그나마 0%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올랐다니!
비록 어린 시절의 레시아지만 그래도 이긴 게 어디야!
“크크큭! 크하하하핫!”
기쁨에 통제되지 않는 나는 광소를 온 세상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사실 시작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으로 멋대로 이야기 한 거지만, 졌을 때는 뭔가 수많은 대비책을 생각해야 했는데, 이겼으니까 그런 까다로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상황을 봐서 내가 돌아가도 별 탈이 없을 정도로 레프리시아가 성장을 하면 그때 돌아간다.
“우으...”
“자. 레프리시아. 벌칙이야.”
“벌칙?”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그 사람은 벌칙을 받게 되어있지. 아까 내가 제안한 거하고는 별개의 내용이니까. 이건 꼭 참고하도록 해.”
나는 레프리시아의 볼을 꼬집으면서 살짝 늘렸다. 말랑말랑한 볼이 늘어나기 시작함에 따라 레프리시아의 목소리와 비명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요! 선생님! 아프다니까요!”
“매번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이렇게 당할 것이다! 어떠냐! 가위바위보에 무서움이!”
벌칙이 끝나자 빨개진 두 볼을 어루만지며 달래고 있는 레프리시아의 모습을 뒤로 하고, 슬슬 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마을로 내려가는 이유는 레프리시아에게 세상을 구경시켜준다는 목적보단, 지금 당장 돈을 구할 곳이 없어서 벌어들일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한들 대체 뭘 하면서 돈을 벌지?”
“원래 산에서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삼은 이유는 자급자족을 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선생님이라면 분명 욕심도 없고 수수하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애석하게도 인간은 욕구와 욕망에 이끌려 사는 동물이란다.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
레프리시아와 손을 잡고 마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마법이야기라면 마법이야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내가 일부러 피하고 있는 이야기라면 나에 관련된 모든 것. 마을에 있는 시장에는 정말 마계공작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먹거리나 옷들이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아스모데우스를 섬기는 사람들은 보물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는데, 마계공작의 영토라서 그 영향이 일반사람들에게도 끼치는 모양이다. 그걸로 사치를 하게 되고 유흥에 써버린다면 이 마을의 순환구조는 대략적으로 파악완료.
“이곳은 돈을 벌어먹고 살기에는 좀 힘든 구조였군. 정말 네 말대로 그냥 산에 올라가서 자급자족하고 사는 게 더 좋겠다.”
어쩔 수 없이 한 바퀴만 돌고 해산하려고 했을 때.
“혹시 여행자이신가요? 최근에 이상한 사람이 출몰한다고 들었는데?”
내 앞에는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주변에 있는 마을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으로 보아 나는 조용히 말했다.
“색욕의 공작인 아스모데우스로군.”
무의식적으로 레프리시아의 강하게 붙잡고 직시하게 시작했다. 하늘 빛의 눈동자와 짙은 푸른 색의 머리는 가르마를 한쪽으로 내고 앞머리를 빗어 올려서 고정이라도 시켰는지 광택이 나기 시작했다.
“설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눈치채시다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보통 머리부터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비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오해를 사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혹시나 딸 아이 앞이라고 허세를 부린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허세를 부리는 건 내 앞에 있는 상대의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지.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보다, 이 아이를 노리고 온 거라면 이곳이 사라져도 좋다는 생각을 좀 해둬야 할 거야? 너희들 마왕군은 어차피 오합지졸이니까.”
마왕군을 거론하자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은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희 마왕군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혹시라도 물어보는데 마족은 아니신 것 같고...?”
“인간은 맞아.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애는 마족이 맞지.”
“그런데도 인간이 마족을 기르시다니 꽤나 무섭겠네요. 마족은 언제 어디서든 지식이 쌓이기 시작하는 생물. 인간에 대한 추잡함이나 불결함에 대해 알게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먹어 치우려고 할 것 같은데요? 마족의 힘의 원천은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니까요.”
잔인하게 웃고 있는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은 나에게서 레프리시아에게 옮겨졌다.
“어린 아가씨? 이런 인간 밑에 길들여지면 훌륭한 마족이 될 수 없단다.”
미묘하게 빛나고 있는 아스모데우스의 눈과 마주한 레프리시아는 급하게 내 다리 뒤에 숨었다.
“어라?”
“미안하게도 너의 매료를 뿌리치고 나에게 숨은 걸로 보아, 나에게 길들여져도 훌륭한 마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승리의 미소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승리는 이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보면 되겠지.
“설마 이런 시시한 말싸움으로 나에게 말을 걸은 거라면 무척이나 실망할 것 같은데. 아스모데우스. 나를 멈춰 세운 이유라도 있지 않던가?”
“멈춰 세운 이유는 언제까지나 장래가 유망한 그 어린 소녀를 제 밑으로 위함일 뿐.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제 매료에도 걸리지 않을 만큼 성장한 아이라면 더욱 더 탐이 나긴 하군요.”
탐이 난다는 것은 레프리시아가 나중에 마왕이 될 그릇이란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다는 건가? 확실히 지금 20대 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남성이지만, 얼마나 살아왔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오래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쪽은 이 아이의 잠재능력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나 봐?”
“당연하죠. 제 매료를 피해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급마족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라면 오히려 저의 반려가 되어, 저의 야망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반려? 난 그 결혼 반대인데?”
귀걸이에 있던 티르빙을 빼낸 뒤에 사브르로 변형시키고 아스모데우스에게 겨누며 말했다.
“시아버지에게 잘못 보이면 큰일난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나? 애초에 너 같은 녀석에게 이 아이를 맡길 바에, 서벌캣에게 던져서 새로운 프렌즈를 만들어주는 게 좋겠어.”
마계공작에게 이런 식으로 막 나가는 사람은 없겠지만...그래, 있다면 나 하나 뿐이겠지만,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레프리시아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싸울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상대도 나도 전력차이에 대해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 아스모데우스가 현명하다면 지금은 순순히 물러날 것이다.
굳게 다짐한 내 눈을 마주하며 한숨을 내쉰 아스모데우스 옆에,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서 나를 더 기겁하게 만들었다.
“아스모데우스 님. 슬슬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만?”
“아. 릴리스 미안해. 친절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
달빛보다 요염한 기다란 은발, 남자가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보라 빛의 눈동자. 그런 릴리스가 내 앞에서 적대하며 아스모데우스에게 곁에 서 있었다.
=============================================================================================
레인보우식스 시즈하다 늦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