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435
435
뜬금 없지만 옛날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부터 나타났다고 전해지는데.
그릇 표면에 빗살같이 길게 이어진 무늬가 보여져서 빗살무늬토기라고 한다.
만약 그 빗살무늬토기를 발견하면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사역마에게 무기로...!
-월요일이 좋다며 노래 부르고 있던 검은 고양이를 본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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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넷째 주 곧 있으면 파이론 근처에 열려있는 용사들의 연회가 마무리되고, 신성제국인 아우리온 국경 안에 있는 도시 ‘시나론’으로 인구 대이동을 할 준비를 마치고 있을 때. 잡화점에서는 규칙을 깨고 오늘 하루는 오전부터 열어야 했다. 새벽에 깜빡하고 잠이 들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지금 용사들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많은 물품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니,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지금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현자의 비약인 엘릭서부터 끓인 물에 그나마 향을 더해주는 허브까지 팔려나가는 것. 꽉 채워진 잡화점의 제고를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 내 목적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어째서 잡화점을 열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냈다. 생각을 해보니 아침에 잡화점 근처로 오는 사람이 전혀 없었으니까.
“주인. 그냥 문을 닫는 것이 어떠한가? 파리들만 들어오기 시작한다.”
“엘티노스가 낮에만 작동하는 대결계로 만들어놨나?”
“그보다 비니스 여신이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충돌시킨다는 물증을 잡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일단 벌어먹고 살아야죠.”
검은 고양이가 빗살무늬토기에 머리가 끼어있는 상태로 앞발을 핥기 위해 들어올렸다가, 천천히 내리고는 나에게 기우뚱한 모습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보다 저 빗살무늬토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물어본들, 그냥 잡화점 물품에 있어서 이렇게라도 써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
“그런 하찮은 독백이나 할 시간이 있으면, 이거나 벗겨주고 말하거라. 짐이 월요일이 좋다는 노래를 부르자마자 슬램덩크로 짐의 머리에 이상한 거나 꽂아 넣다니?”
“빗살무늬토기는 이상한 게 아닙니다. 냥캣. 그건 기원전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문화에 관련된...”
“시끄럽다! 비둘기!”
“올빼미입니다.”
하얀 올빼미가 날아오면서 검은 고양이에게 태클을 걸어왔다. 사소한 것만으로도 물과 기름처럼 싸우는 이 앙숙관계도 어느 정도 완화된 것이 이거라니. 어쨌든 지금은 비니스 여신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떤 범죄자라도 “네. 제가 그랬습니다. 잡아가주세요.”라고 실토하지 않는다.
최소한 빠져나갈 구멍 하나라도 만들어서 도망치는 것이 모든 생물의 심리.
“그런 틈을 남기지 않고 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상대는 여신에다가 검은 높새바람이라는 단체가 있다. 잘못하면 모든 이들에게 적이 될 수 있는 이 섬세한 문제는 일이 결국 모두 터져야 움직일지. 초기에 무리를 하더라도 진압을 해야 할지.”
“어떻게든 인류의 적이 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섣부르게 여신을 시해하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게다가 그 마신이 하는 말에는 뭔가 꺼림칙한 것이 걸려있으니까요.”
뒤에서는 작은 요정날개로 이리저리 활공하고 있는 요정들의 여왕인 티아 메르세데스의 말을 듣고, 차분하게 대답을 하고 있는 나는 단 한가지 의문...잠깐만? 왜 여기 있지?
“티아? 언제 온 거야?”
“그러니까 짐이 말하지 않았는가. 파리가 들어오니까 문 좀 닫으라고.”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머리 위에 있는 빗살무늬토기를 때어내지 못하고 있는 체 투정을 부리고 있을 무렵. 티아가 빗살무늬토기를 쓰고 있는 레시아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면서 환호하고 있었다.
“와아! 카일 드디어 시공간마법에 대해 이해력이 높아졌구나! 빗살무늬토기하고 마왕님의 머리를 공간으로 접착시킬 줄이야. 이래서는 물리적으로는 절대로 때어낼 수 없고, 마법적인 면에서는 공간마법만으로는 부족하지. 왜냐하면 공간마법으로 억지로 때어내도 그 시간으로 다시 돌려보내기 때문이니까.”
“요정전쟁<Fairy War>에서는 이기고 왔나 보네. 그나저나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냐?”
“곰돌이 인형을 잔뜩 얻고 백장미까지 얻었거든.”
그래 테디 베어로 시작된 페어리 워에 전리품으로 백장미라는 기묘한 잡지까지 얻었다고? 요즘 백장미가 너무 많이 퍼지고 있는 것 같은데? 뭐 그 바보 같은 잡지는 내가 거론하는 일은 없으니까 다른 이야기로 하도록 하자.
“그래도 카일은 비니스 여신에 대해 너무 매정한 거 아냐? 비니스 여신은 카일을 한번 살려준 여신이라고? 아니면 카일은 남의 말만 듣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슬슬 카일도 성장을 많이 했는데, 한 번쯤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른 관점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말만 쉬운 거지. 아이디어가 없으면 그거 나름대로 골치가 아픈 건데. 그러니까 지금 잡화점 아공간에서 노래연습하고 있는 엘티노스나, 느닷없이 내 꿈에서 기타를 내려찍는 마신 아르트리옴의 주장을 모두 뒤로 날려버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생각이란 건가?
“그냥 쉬고 싶은데.”
“...카일?”
아니 솔직히 이런 일은 정말 용사들이나 영웅들이 해야지. 잡화점에서 그냥 물품을 팔아야 하는 상인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는 그런 지극히 정상적인 관점으로 말했는데. 티아가 엄청나게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손바닥만한 작은 체구에서 어마어마하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나는 잠깐 움츠리기 시작했고, 티아는 목소리를 높여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만들어줬다.
“과거로 간다는 생각은 해본 거야?”
“과거를 돌아가려면 드로리안이 필요하지 않나? 괜히 과거로 가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말이지?”
“괜찮아. 어차피 조금만 보고 오는 건데. 시험 삼아 과거로 한번 다녀와볼래?”
나보다 더 뛰어난 시공간술사인 티아가 이렇게 말한다면 시도할 가치는 있다. 과거로 가서 방관자 놀이나 하면 되는 일이니까. 생각을 길게 잡을 필요 없이 비니스가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만 알아내면 된다.
“좋아. 우선 예행연습을 할 겸 시험 삼아 과거로 갈게. 그래서 얼마나 걸려? 티아?”
“지금.”
지금?
***
과거로 간다는 건 나 혼자뿐이라는 말을 왜 하지 않은 걸까? 게다가 장소도 마기가 한 가득 모여있는 마계라서 마기를 마나로 정제하려고 했는데, 지금쯤이면 레시아와 시나의 페어링이 전부 일시적인 차단 되었으니까. 정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독자적인 마법으로만 살아야 하는 건가? 페어링은 끊어져도 체질이 바뀌는 경우는 없으니 마기를 다행히 담을 수 있구나.”
과거 마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봐도 갈라진 대지와 생명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에 태양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검은 구름들. 이런 곳에서는 약자들이 먹히고 강자들만 살아남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자체가 강자니까.
“인, 인간!”
아무리 과거라고 해도 레시아가 집권하는 마계가 아니니까.
“그 피와 살을 나에게 받쳐라!”
아마 이게 당연하겠지. 날아오고 있는 작은 생명체라고 해도 마족은 마족이니 적당히 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마기로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없으니까. 그냥 평소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써볼까?
“방패.”
-파아앙!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지만 검은 방패에 막혀버리는 바람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정지된 체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내하려는 듯 천천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마기로 응용하는 마법에도 기본적으로는 방패나 화살은 사용할 수 있다는 실험을 성공했지만,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하던 습격자는 이내 어마어마한 울음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먹이가 날 때렸어!”
마계에서는 인간=먹이감이라는 공식이 있지만, 공식은 늘 깨지라고 있는 법이지. 어린 소녀의 목소리로 울고 있었으니 어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지금 저 아이가 나보다 더 오래 살았을 지도 모르겠으나, 겉모습으로는 얼마든지 어른처럼 보여야 하는 법.
“자. 날 건들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어른답게 어린 아이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는데...
잠깐? 이 소녀 낯이 좀 익다?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 못된 인간이 저를 먹으려고 해요!”
“인간은 마족을 먹지 않아! 어째서 식인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인간에게 엉망진창으로...!”
“거기까지 해! 그보다 이름이 뭐지?”
마족중에서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모르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어보니 대답은...
“레, 레프리시아. 인데요?”
얼마나 과거로 날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60년 내외로 이동한 것과, 아직 마계가 통합되기 전이니까 마계공작들이나 마왕이 모두 사나울 시기였다. 덤으로 인간계로 침입하는 마족들은 너무 제각각 놀고 있으니까. 천계에서 파견 나온 발키리와 심판자. 그리고 갯지렁이 수보다 더 많은 용사들에게 토벌 당하고 있는 시기인가.
“그렇군. 레프리시아라. 이제 최후를 맞이할 준비는 됐겠지?”
“히끅! 사...살려주세...”
평상시에 레시아에게 하도 당하고 살아서 그런가. 본심이 아닌 말이 튀어나왔지만 평상시의 내 분위기로 인해 잔뜩 겁먹고 떨고 있는 소녀를 보아하니, 빠른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농담이야. 그보다 여기는 마계 맞지?”
“그런데요? 누, 누구시죠?”
“나는 미래에서 온 T-800이라고 한다. 아니, 그냥 존 스미스라고 하는 게 더 좋은가? 뭐 나에 대해서는 그렇게 확실할 정도로 알 필요는 없어. 그냥 나는 아주 잠깐 이곳에 놀러 온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너에게는 우선 기억소거부터 시작하는 게 더 좋을 거라고 보고 있지만, 기억소거 마법은 내가 사용할 수 없으니 물리적으로 뇌에 충격을 가한다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아픈 건 싫어요!”
작은 몸으로도 최소한의 저항을 하고 있는 레프리시아에게 죽지 않고 단기기억을 만들 정도의 힘 조절을 할 수 있을 지가 더 문제인데. 게다가 어린애가 기본적으로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다.
“대신 나와 만난 것은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그러면 나는 다른 곳에 가볼 테니까. 너는 알아서 잘 살도록 해.”
그런데 나는 언제 현재로 다시 되돌아가지?
이 허허벌판을 그냥 돌아다니면 위험한 일인데.
“이런 우울한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자체가 기묘하네. 옆에는 그 흔하다는 슬라임마저 살기 힘들다니.”
“슬라임은 없고 마족들은 많은데.”
“넌 대체 뭘 먹고 사는 거냐?”
“가끔 자라난 풀이라던가...마기를 흡수하고 사는데...”
정상적인 요리는 먹지 못하고 사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마계에서는 요리를 할만한 곳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인간계로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이 근방에 인간계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지? 그 나이에 자라난 풀이나 먹고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우선 제대로 된 먹거리라도 먹여야겠네.”
“하지만, 마족은 지금 인간의 최대의 적인데...”
“그런 인간에게 꼭 붙어있는 이유는 뭔데?”
어린 레프리시아는 내 바지자락을 붙잡고 가만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지금 마족에게 있어선 최대의 적인 인간이니까. 하지만 레프리시아는 나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그럼 어째서 저에게 음식을 먹여주려고 하는 거죠?”
“어리잖아.”
“이상한 인간...”
아마 지금 시간대라면 데모르테가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여신으로 올라갔을 무렵이니. 레프리시아 홀로 마계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시간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혀 이야기 해주지 않았는데...
설마 내가 개입되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내 본명은 이야기 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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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48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