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62
62
시찰을 전부 끝내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질질 끌듯이 걸어, 겨우겨우 도서관에 도착을 했을 때는 나의 몸이 벌써부터 수면을 요구하며 쇼파에 의지했다. 부활동이 마법에 관련되어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들이 하는 일도 기묘하고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나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실험대상으로 만들었으니까. 어린애들이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듯 하나 같이 몰려와서 나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하나 기억하기에도 어려웠다.
“수명을 다해 죽기 전에 과로사로 죽을 것 같아.”
일이 어지간히 많아야 할 텐데…. 켈모리아가 부재중인 이유만으로 거의 이 학원에 있는 서류들을 다 떠맡았으니까 오늘 하루 일은 전부 다 끝났다고 보면 된다. 다만, 아직까지 켈모리아가 돌아오지 않아서 계속 도서관에 남아있는 중. 내가 쇼파에서 쓰러져있는 모습을 보고는 세피르는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안 돼! 아리엘! 지금 죽어서는 안 돼! 의식을 되찾아!”
대체 이건 무슨 상황극이야?
난 뭐라고 말해주면 좋은 거지?
“미안해. 세피르. 이제 내가 깨어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 말 하지마! 지금까지 버텨온 우리 애들을 생각해!”
세피르의 거침없는 드립으로 인해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그 설정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아직 검은 뱀으로 있었던 세피르의 머리를 붙잡고 소리쳤다. 그러자 세피르는 난감한 듯한 어조로 나에게 입을 열기를….
“가상의 우리가 오랫동안 같이 있다는 전제하에, 아이는 둘 정도 있을 거라는 예측으로 그냥 말해봤는데?”
“그 가상설정의 나는 너와 결혼을 한 거였어?”
“응. 6개월동안 연인으로 지내다가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했다는 컨셉으로…….”
“아주 그냥 소설을 써라! 가상결혼 프로그램이 생각나는 기묘한 설정이잖아?”
로맨스 장르로 넘어가도 자동으로 옆에 ‘코미디’마저 따라올 것 같은 이 기분. 결국 애매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비는 내 앞에서 요리조리 날아다니면서 “삑삑!”하고 외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검은 서신 안에 있는 고대상형문자처럼, 도저히 사람의 눈으로는 해독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다시 보고 있었다.
“아르트리옴은 마신이죠?”
“아르트라고 불려줘? 되도록이면 ‘아르트 오라버니~’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저걸 그냥 밟아버릴까?
“아르트리옴은 마신이죠?”
“우와…. 위에 있던 내 말은 그대로 무시해버리고 다시 진행하고 있어. 확실히 힘겹게 얻어낸 성과가 가장 좋은 거니까. 게다가 내가 이 글에 대해 안다고 말해야, 아리엘이 나에 대한 호감도가 살짝 올라가겠지?”
개미 담석만큼 올라가겠지만, 올라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르트리옴은 나에게 입을 열기를….
“그 편지내용은 함정이야.”
“함정?”
“아리엘을 잡아가기 위한 함정이지. 당연히 아리엘을 붙잡아서 뭐에 쓰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크로우라는 남자는 분명 세피르의 정보로 추측을 하면 적이잖아? 그런 사람이 어째서 밀리아라는 소녀를 통해 너에게 주라고 한 거지?”
듣고 보니…….
크로우가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곧바로 습격해서 죽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밀리아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니까 살려줬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지. 하나는 밀리아를 통해 정보를 캐내고 있거나, 다른 하나는 밀리아가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소리……아리엘?”
나는 곧바로 일어나서 아르트리옴에게 입을 열었다.
“빨리 해석해줘요.”
“아까 내 말은 못들은 거야? 아리엘을 잡아가기 위해 함정을…….”
“당장!”
나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얼굴을 보이면서, 아르트리옴은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조용하게 말했다.
“그보다 해석이고 뭐고 그냥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니라고? 악필이라서 잘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해달라고?”
나는 쇼파에 앉아서 서신 안에 있는 악필을 집중해서 보았고, 엄청나게 더러운 글씨 속에서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종이의 옆면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살펴본 결과, 지도처럼 보이는 그림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위치를 보아 마법학원지부처럼 장소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져있는 숲에, 칼 모양으로 마크가 되어있었다. 크로우는 나에게 있어서 3번씩이나 혼자서 만나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인가?
“모두 다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켈모리아가 오면 이 편지를 보여주시고요.”
“정말로 다녀올 생각인가? 의외로 아리엘은 알면서도 당하는 습성이 있구나?”
아르트리옴은 나를 조롱하듯이 옆에서 말을 흘렸지만, 그걸 들은 나의 바보 같은 자존심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도 합리화를 했다.
“맨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한방 먹일 뻔했으니까. 지금 만나면 한 방정도는 먹일 수 있어요. 그리고 설마 날 혼자 두고 두 사람은 잉여처럼 남아있을 건가요? 의외로 이비보다 저를 아끼지 않아서 두 사람에게는 실망이네요.”
그러자 아르트리옴은 어깨를 으쓱이며 내 말을 받아 쳐냈다.
“설마. 이렇게 무관심한 척을 하면서 아리엘이 혼자서 고전하고 있는 사이에, “도와줘요! 아르트 오라버니!”라고 외치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도와줄 준비를 하는 것뿐이라고? 몰래 숨어서 기회를 보는 것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내 여동생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은 이 오라버니의 일이란다.”
“애초에 나는 아르트리옴의 여동생이 아닌데요.”
“의남매니까 괜찮아!”
“안 괜찮아요!”
어처구니 없는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세피르는 이미 내 목을 감아 같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벌써 3번째 만나는 지긋지긋한 인연을 오늘에서야 말로 결판 짓겠다라는 생각을 품고, 이틀째 이어진 나만의 전투를 시작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
밀리아의 반에도 가보고 부활동을 하는 곳에도 가봤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학생회장의 모습으로 인해, 혹시 모를 상황에 있어서 탈로스 씨에게 연락해서, 밀리아를 찾아달라는 내용으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만약 안에서 발견되면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약속된 장소로 가기 전에 발견하지 못한다면, 거의 90%의 확률로 밀리아가 잡혀있다는 소리겠지.
“인질전은 내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인데….”
보통 인질을 쥐고 있는 쪽이 주도권을 잡고 있으니, 그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것은 정말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이다. 게다가 내 성격으로는 인질의 안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쳐왔을 때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추측을 전부 할 수 없으니까.
[세피르와 이비는 이쯤에서 정찰을 수행하도록 해.]
텔레파시로 지시를 내리자.
내 목에 감겨있던 뱀은 허리와 왼쪽 다리를 타고 내려와 숲으로 숨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비는 텔레파시로 [삑삑!]이라고 말하며 하늘로 솟아 올랐다.
잠깐? 이비가 텔레파시로 뭘 보낸 거지?
이젠 텔레파시도 할 줄 아는 건가?
아르트리옴은 정말로 내가 그 바보 같은 말을 외치기 직전까지 안 도와줄 작정인지, 내 근처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누군가는 남아서 켈모리아에게 편지를 보여줘야 하니까. 아르트리옴이 대표로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고…….
“대단하네. 날 위에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나는 허탈감이 섞인 목소리로 발목 바로 앞에 있는 밧줄을 바라보았다. 위화감이 들어서 잠깐 멈추고 밑을 쳐다본 거였지만 이곳에 함정을 설치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마나로 눈을 강화해서 시야를 넓이기 시작하자, 함정은 총 7개정도였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올가미나 그물로 이루어진 것이 많았다.
“당장 이곳으로 나오시지 크로우.”
노기가 서려있는 내 목소리에는 필요한 것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숲을 시끄럽게 했다. 그러자 왼쪽에 있던 나무 뒤에서 나오고는 박수를 치며, 그 재수없는 낯짝을 내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네. 놀라워.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란 소리인가? 무릇 카멜롯에서는 하나 같이 괴물들만 몰려오는 장소라는 것은 알았지만, 성장속도가 괴물보다 더한 사람은 처음 봐. 게다가 다른 간부들도 너를 보며 특이한 케이스라고 말하는 걸 보면, 의외로 우리 둘은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밀리아는 어디 있지?”
나는 크로우의 말을 무시하고 밀리아의 행방에 대해 묻자.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잠깐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해맑게 웃으면서 나의 신경을 서서히 옷장 안에 있는 좀벌레들처럼 긁어내기 시작했다.
“아아. 그렇지. 너의 친구가 지금 큰 위험에 빠져있구나? 그거 정말 큰일이네? 지금 네 친구는 시간이 마감이 되면 슬라임에게 먹힐 운명인데 말이야. 뭐 그렇다고 해도 걱정 하지는 마! 초 강산으로 이루어진 슬라임들이 너의 친구를 1초 안으로 녹여버릴 테니까.”
“거짓말은 작작하시지. 분명 강한 산성을 지닌 슬라임들은 존재해도, 너에게는 그 정도의 시간은 없어.”
거짓말을 간파 당했는지 잠깐 표정이 다시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검은 코트 속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더니, 아까 크로우가 있던 위치에서 팔을 뻗어 포박당해있는 밀리아가 재갈이 물려있는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아는 혜안마저 떠버린 건가? 가면 갈수록 흥미가 동하는 군. 붙잡아서 가둬놓고 모든 것을 알아낼 때까지 괴롭히고 싶어지기도 하고, 아무튼 인질은 나에게 있네. 그렇지?”
다시 한번 나에게 주도권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크로우였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순순히 풀어주는 게 좋아. 안 그러면 후회할 거니까.”
“아이고 무서워라! 이거 무서워서 살 수 있겠나? 내가 너의 친구의 하얀 목에 칼날이라도 들어낸다면 무지막지하게 화를 내겠지?”
크로우의 팔은 뱀처럼 천천히 밀리아의 몸을 기어오르는 듯 단검을 목에 천천히 가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밀리아를 구해내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전신으로 벼락치듯 불안감이 덮쳐왔지만, 냉정하게 판단을 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아직까지 시간을 버티기로 했다.
“요구가 대체 뭐야.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고.”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음, 그건 좀 어려운 질문이야. 하지만 요구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지. 네가 우리 쪽의 일원이 된다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야.”
“검은 높새바람에?”
“맞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우리 단체에 네가 들어오기만 하면 돼.”
힘의 균형보다는 그냥 평화를 다 때려부수는 단체로 생각했는데?
“애초에 카멜롯을 침공한 것은 우연히 너의 복수와 겹쳐진 것뿐이란 걸 알아. 너희들은 더불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그건 단원이 되면 알려줄게. 그리 나쁜 것도 아니잖아? 단순히 친구를 위해서 이직을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고? 아무리 엘리트를 육성하는 수준 높은 카멜롯의 교육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곳에서 성장하기에는 너무 좁고 느려터졌어. 그러니 우리에게 온다면 모두를 뛰어넘을 수 있는 최강자로 육성시켜줄게. 어때?”
사소한 잡담으로 시간도 다 벌었고, 정확한 위치에 도착한 신기루의 병사가 크로우와 밀리아 사이의 땅 밑에서 튀어나오며 둘 사이를 갈랐다. 그 사이에 마나를 휘감은 주먹으로 크로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소리쳤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집에서나 해!”
마나의 파동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통쾌한 타격음으로, 여태까지 당해왔던 울분을 모두 풀은 것도 모자라서 밀리아까지 안전하게 확보했다. 이제 슬슬 나의 페이즈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을 무렵.
“크큭! 크하하핫! 캬하하핫! 정말 제대로야! 아리엘 같은 아이가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학원장의 비서를 하고 있는 거지? 보십시오! 이런 인재를 놓쳐야겠습니까!”
하늘을 향해 외치는 크로우를 보며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진짜 함정은 이쪽인 모양이었다.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칠흑의 로브 7명. 신장과 체격도 제각각 다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기척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군. 상당히 흥미 있다. 크로우. 너의 의견을 존중하지.”
냉소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을 때. 나는 뒤에서 날아들어온 부메랑을 본능적으로 숙여 피했다.
“와! 누나! 봤어! 저 사람 1시간 전에 내가 날려놓은 부메랑을 피했어!”
부메랑이 어떻게 1시간동안 날아?
부메랑이 이 행성의 절반을 돌고 온 것도 아니고.
“저 소녀를 포획해. 그리고 목격자인 금발은 죽이고.”
냉정한 판결이 리더로 보이는 여성의 입에서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 평생 사용하지 않아야 할 그 말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도, 아주 냉철하게 생각을 해보면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기 때문에 외쳐야만 했다.
“구해줘! 아르트 오라버니!”
나에게 달려오려는 7명의 습격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르트리옴은 하늘에서 비어있는 땅을 향해 수도를 내리찍자, 소리가 모두 묻힐만한 폭음과 더불어 거대한 검은 기둥이 나와 밀리아를 제외한 공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늘 같은 오라버니 등장이오~!”
주변의 숲이 황폐화가 된 모습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 아르트리옴의 모습을 보며, 밀리아를 구해내고 이상한 곳에 끌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