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58
58
“그러니 우리는 결혼식을 어디서 할까? 이곳에서도 하면 상관은 없는데?”
“무슨 결혼식 타령이에요? 당장 돌려보내주세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마신이라고 부르는 남성은, 내가 계속해서 거절과 거부를 거듭해서 거룩하고도 거창하게 거론을 했지만, 내가 산 제물이니 명계의 여왕자리가 비었다니 입을 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마신에게 산 제물로 잡혀온 몸이었을지라도, 그건 과거의 나일 뿐이지 지금의 내가 아니다. 나는 뱃사공 씨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부탁을 했지만, 뱃사공 씨는 계속 아르트리옴의 눈치만 살피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흐음. 곤란한데? 어떻게 하면 아리엘이 나에게 넘어올까? 살짝 허리를 부여잡고 키스를 한다면?”
“다시 발로 차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시죠?”
아르트리옴은 나의 반응을 보고 주머니 속에서 ‘여자를 꼬시는 10가지 테크닉’이라는 작은 책을 활짝 피면서 눈으로 내용을 훑고 있었다. 설마 “안뇽! 난 마신이얌!”이라는 인사법도 저기서 나온 건가?
“10가지를 다 사용하고 싶지만, 아리엘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네.”
최근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레이몬드, 빅터, 트릭스 씨 밖에 없는 것 같다.
“장래에는 저 강을 꼭 함께 건너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당장 안 놔요?”
나는 한시라도 빨리 레이나 씨의 독극물로부터 의식을 차려야 한단 말이야!
“여보~”
“누가 그쪽 아내에요!”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지만 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르지가 않았다. 실제 육체는 보건실에 있으니까, 지금에서야 알아차린 것은 이게 나의 영혼상태인가?
“하지만 500년 전에 아리엘은 나에게 시집을 와야 하는 것이 맞는걸?”
계속 나도 모르는 500년전을 들먹여가면서 머리가 아파지려고 하는 사이에, 궁금한 내용이 머릿속에서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아르트리옴에게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내용을 입으로 통해 말했다.
“산 제물이라면 저는 원래 명계로 가야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왜 제가 눈을 뜰 때는 몬스터가 배회하는 숲이었죠? 그리고 과거의 저에 대한 기억은 철저하게 봉인 당하고, 몽골리안 벌레의 필살기가 몽골리안 춉과 비슷한 말도 안 되는 잡지식을 기억하는 건데요?”
“글쎄. 그건 네 스스로가 기억을 봉인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그 기억의 봉인이 풀려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의외로 정상적인 답변을 듣고 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마신의 피를 이어받아 산 제물이었을 당시에도 나는 각성을 해서 권능을 휘두를 줄 알았나 보다. 그래야 내가 스스로 기억을 봉인하면서, 이런 세계에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렇다는 가정 하에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나는 분명 산 제물이 되기 싫어서 도망쳐 나온 것. 그리고 자신이 마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기 위해, 내 기억을 철저하게 봉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이만 지상으로 갈 거니까. 뱃사공 씨가 돌려 보내줘요.”
“지금은 안 되려나? 그럼 어쩔 수 없지. 기회는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리엘을 지상으로 보내줘.”
“알겠습니다.”
뱃사공 씨는 거대한 낫을 등에 짊어지고는 나무로 된 노 하나를 집어왔다. 그러니까 나는 지상으로 가고 싶은 건데? 어째서 저걸 들고 오는 거지?
“아픈 건 한 순간이야. 아리엘.”
훈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마신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했던 찰나에, 뱃사공은 시원하게 노를 크게 휘두르며 나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쳐버렸다. 거대한 두통과 함께 눈이 번뜩 떠지면서 주변을 바라보니, 노을이 지고 있는 양호실 안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맛은 명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맛인데, 효능은 의외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방금 전까지 움직여도 욱신거렸던 나의 몸이, 지금은 깃털처럼 가벼워질 정도로 완쾌가 되었으니까.
양호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이불을 곱게 접은 뒤에 양호실 밖을 나갔다.
“안녕? 기다리느라 지쳤다고?”
등 뒤에서 음침하고도 사나운 목소리를 감지하고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정찰을 했을 당시에 나를 맨주먹으로 때려눕힌 자의 목소리와 같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검은 까마귀 깃털을 오른손에 들면서 나를 노려봤다.
“당신은 크로우? 어째서 마법학원의 대결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거죠?”
“글쎄? 그건 중요하진 않고……지금은 모두 없는 상황이라는 건가? 그러면 잘 됐군.”
천천히 다가오는 크로우를 경계하다가, 나는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가 할 일은 아마 저런 사악한 남자의 손에 붙잡히지 않는 거니까.
“음? 술래잡기가 하고 싶은 거야? 그럼 10초정도 센다? 10, 9…….”
술래잡기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서서히 마나를 끌어올려서 몸을 강화하고, 환영체를 달리는 길목마다 나누기 시작했다.
“찾았다.”
“아직 10초 안 지났거든요!”
내 앞에 곧장 나타난 크로우는 단검을 휘둘러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은색의 실선에 벗어나지 못한 옷의 일부는 찢겨나가기 시작했고, 따끔거리는 통증이 다시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 안에 신음으로 새어나가는 동안, 두 번째, 세 번째의 참격이 순식간에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마법 방패를 꺼내 크로우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불꽃이 일어나면서 금이 가고 있는 것은 나의 마법방패.
나는 도중에 흩뿌리듯이 설치한 환영체로 몸을 이동했다.
정면으로 달려서 왼쪽의 계단으로 교전이 일어났었으니, 나의 환영체는 거기서 멀리 떨어져있는 중앙 계단. 이동하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던 사이에, 이번엔 내 머리 위에서 거대한 검은 부츠가 날아왔다.
-파악!
“크훗!”
-와장창!
두 팔을 교차해서 막았지만, 어마어마한 힘으로 1층에 있는 교사의 창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유리파편이 내 손등을 찔러도 몸은 계속 살고자 움직여야만 했다.
“신기루!<Mirage>”
“잔재주가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푸욱!
“꺄학!”
분명 본체를 쫓으면 절대로 닿지 않는 환영마법인 신기루를 펼쳤지만, 크로우는 이미 내 어깨를 들쑤시고 칠판으로 꽂아 넣고 있었다. 크로우는 핏발이 일어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잡.았.다.”라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얌전하게 잡혔으면 이런 일도 안 했을 텐데.”
“병상에서 지금 막 일어난 소녀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당신은 인간쓰레기로군요.”
-팡!
“크훅!”
나의 독설은 어느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지만, 지금은 괜히 도발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배로 묵직하게 꽂아 넣은 남성의 주먹으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어깨에 박혀있는 단검 때문에 제대로 주저앉는 모습도 아니지만, 나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 올리면서 강제로 내 고개를 들어올리게 했다.
“요즘 너 같은 애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독설을 퍼붓냐?”
“흥! 죽일 거라면 죽이시죠. 이 짐승.”
나의 말에 뭐가 재미있는지 크로우의 얼굴은 미소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흥미 가득한 눈과 고양되는 감정을 숨길 수 없는지, 어린애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어조가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오호라? 이거야 재미있군. 보통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 절망에 빠지거나,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의외로 정신력이 상당히 강인한 아이잖아?”
이 상황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적당히 아픈 걸로는 울지 않겠군. 아무리 구타를 해도 이 아이에게 켜진 불꽃은 꺼지지 않아. 다른 절망감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방금 나더러 짐승이라고 했던가?”
크로우의 기분 나쁜 웃음을 직시하는 것으로, 나의 등골에는 소름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하게 기어가고 있었다. 크로우가 거칠게 Y셔츠를 붙잡더니 내 평생 듣지도 못했던 옷이 뜯겨져 나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온 몸에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이야! 그만해!”
“왜 그러시나? 지금은 봄이라고? 봄에 짐승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여주는 거잖아?”
최악이다.
이 남자는 지금 나를 범하려고 하는 건가?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나를?
용서 못해.
“죽여버리겠어!”
거대한 파동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곧 이어 방출이 되자마자, 음흉한 손으로 내 몸에 가져다 대는 남자를 저 멀리 날려보냈다.
“신기루의 군대여!”
내 몸은 마나를 가득 담을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역류현상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벌레만도 못한 남자를 죽일 수만 있다면, 아직까지 실실 웃으면서 내 앞에 단검을 겨누고 있는 저 남자를 죽일 수만 있다면!
“돌격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 사람의 형체들이 모조리 뛰쳐나갔다. 거대한 흙먼지가 사방에서 터지기 시작하면서, 내 앞으로 흙먼지에 뒤덮인 크로우의 모습이 튀어나와 나를 찌르려고 했지만…….
-채앵!
“이런 빅터. 예전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나의 걸림돌 노릇이나 하고 있군. 안 그래?”
“크로우. 어린 소녀에게 험한 짓을 하다니. 안 본 사이에 쓰레기가 다 됐네.”
크로우는 조소를 하며 빅터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흥. 어차피 이건 내 임무일 뿐이야. 그건 그렇고 장난치다가 저 소녀에게 정말로 죽게 생겼군.”
교착상태에서 움직임이 멈추고 있는 크로우의 등과 양쪽 옆구리를 노리는 신기루의 병사들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거대한 충격파가 울려 퍼질 무렵엔, 검은 깃털 하나만이 그 자리에 남겨졌다.
“윽! 크훗!”
과도한 마나의 생성으로 온 몸이 부셔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덩달아 상처들마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서히 마나를 최소화 시키며 인내를 하자, 하늘이 나의 뜻을 알아주었는지 천천히 고통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마나 역류현상이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빅터의 품 안에서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자, 들리지 않았던 빅터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리기 시작했다.
“꼬마 아가씨! 제발 정신차려!”
“흔들지마. 빅터. 아프니까.”
다음 마법은 항상 생각만 해왔지,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마나를 담아야 하는 그릇이 너무 작기 때문. 따라서 이번의 신기루의 군대는 처음으로 사용했지만, 3명밖에 소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꼴이 되어버렸다.
“그보다. 지금 다들 어디에 간 거야? 왜 아무도 없는 건데?”
“모두 싸우고 있었거든. ‘검은 높새바람’이라는 이상한 녀석들하고. 아무래도 크로우가 그 조직 안에 들어간 것 같아.”
“그래?”
정말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나는 고통만 남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과거의 나 또한 고통만 남아있는 세계에서 도망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꿋꿋하게 맞서지 않는다면 고통 다음에는 절망뿐이겠지.
“지금 마법 기동반에……우읏!”
몸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뒤로 넘어갔지만, 다시 빅터가 나를 받아내면서 넘어지는 꼴사나운 모습은 피할 수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꼬마 아가씨.”
“미안해. 빅터. 대려다 주지 않을래?”
빅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고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