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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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모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세피르와 어디서 만났는지 같이 들어왔다. 그 시각 나는 레이나 씨가 멋대로 접촉을 하려는 것을 방지하고자, 나름대로 필사의 저항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레이나 씨의 실을 다루는 기묘한 기술 덕분에, 나는 결박을 당한 상태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대체적으로 이 상황에서는 거미 앞에 놓여진 피해자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지금 내 상황이 그 상황이었다.
레이나 씨의 고운 손가락이 한 차례씩 움직일 때마다, 파렴치하고도 부끄러운 포즈를 취해야 했던 내 입장에선, 세피르와 켈모리아의 귀환이 너무나도 반가운 셈. 덤으로 설명하자면 파렴치하고도 부끄러운 포즈에 관해서는, 어디 가면 라이더의 변신 장면을 그대로 연출한다는 거지 다른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럼 파렴치하다는 말을 빼야 하잖아?
“어라? 레이나. 오랜만에 인형사 시절로 돌아가는 거야?”
“항상 연습을 해야 클래스는 유지되니까. 그이가 나와 잠자리를 피하려고 했을 때, 억지로 곁에 두기 위해 사용한 것 이외에, 사람에게 직접 사용하는 것은 아리엘이 두 번째야.”
“빨리 풀란 말이야! 이 마녀가!”
내 온 몸에서 화가 뿜어져 나와 입 밖으로 폭언을 뱉었지만, 귀여운 아이를 보는 마냥 다시 약지 손가락을 살며시 올리자. 내 손이 저절로 Y셔츠 단추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취소할게요! 제발! 그만해주세요! 제발!”
맨 위에 있던 단추가 풀어지기 직전에 멈춘 내 움직임에 안도하고 있는 사이, 세피르는 흥미로운 눈으로 천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내가 결박 당해서 조종 받고 있다고 무시하고 있는 거야?”
“아니. 뭔가 2차 창작으로 나올 것 같은 소재잖아? 아리엘의 레이나 씨에게 조종 받으면서 옷이 한 차례씩 벗겨지고 천천히 에로틱한 전개에 빠져드는 거.”
“시끄럽고! 너는 주인인 나를 돕기나 해!”
세피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레이나 씨에게 곧바로 다가가서는…….
“레이나 씨. 지금 아리엘을 풀어주면 오늘 밤에 찾아갈게요.”
“어머나 정말?”
-스르르륵!
“좋아. 해방이…….”
-쾅!
머리에 울리는 고통과 진동을 꾹 내리 참아가며, 입안에 막아놨던 고통의 신음이 새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런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나는 세피르에게 소리쳤다.
“그 전에 오늘 밤에 레이나 씨의 집에 찾아가서 뭘 하려고!”
“그야. 어린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
“웃기지마! 불순한 행동을 하러 가겠다고 하면, 내장을 꺼낸 뒤에 베어 그릴스에게 던져버릴 거야!”
“그건 누구야?”라고 물어보는 세피르의 말은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레이나 씨는 다시 한번 켈모리아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핸드백에 술병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후에 술 마실 생각부터 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나, 알고 보았더니 그냥 선물로 주는 것뿐이었다.
“자. 파이론 산 적포도주 20년 산이야.”
“내가 보기에는 오늘 아침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벌써 20년이 흘렀나?”
“유능한 시공간술사가 내 앞에 있으니까. 곧 20년으로 바뀌겠지?”
아. 그냥 숙성시켜달라고 찾아온 거구나…….
“그건 그렇고 아리엘의 서큐버스 복장 봤어?”
나는 켈모리아가 저 소리를 함과 동시에 이 안에서 이탈을 했….
-철퍼덕!
“뭐 하는 짓이에요! 찰과상 입었잖아요!”
“그건 내가 핥으면 되니까 걱정 마. 그나저나 서큐버스 복장? 처음 듣는데?”
내 발목을 언제 또 실로 감아놨는지 천천히 나를 끌어 당기면서, 여유롭게 켈모리아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에, 나 또한 악에 받쳐서 어떻게든 실을 끊기 위해, 마법검으로 긁어보고 양손으로 붙잡아서 강제로 실을 끊으려고 했지만, 전혀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견고하게 엉키기만 했다.
“켈모리아. 이 일은 언젠가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에요.”
진심으로 증오가 서린 내 눈을 보고도, 켈모리아는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 사이에 마법인지 아니면 정말 손기술인지는 몰라도, 내 옷은 다시 기묘한 향수처럼 좋은 향이 뿜어져 나오는 가죽옷으로 바뀌게 되었고, 레이나 씨는 눈에 별이라도 박아 넣었는지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안주로 써도 될까? 응?”
“남이 들으면 오해할 소지의 발언은 그만해주시죠.”
기분이 최저로 가득 떨어진 나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 나중에 화려한 옷만 봐도 경기를 일으켜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이비만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와서 울음소리를 내고는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작은 뱁새가 내 볼을 얼굴에 비비면서 그나마 치유를 하고 있으니, 내 정신적인 회복속도는 그나마 박차를 가하고, 다시 본래의 컨디션으로 되돌아오고 있을 때쯤. 미스 카멜롯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켈모리아는 어느 사이에 20년으로 숙성되어버린 와인을 빈 잔에 따르고 있었다.
나는 레이나 씨의 무릎 위에 올려져서 인형 취급을 당하고 있었고, 그 둘의 술자리에 강제 참석을 하게 된 이후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술이 들어간 이후에, 의식이 끊어졌고 눈을 뜰 무렵 한 침대에 켈모리아와 레이나 씨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누워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앙대……. 세피르…….”
뭐 하고 있는 거냐! 세피르!
레이나 씨의 잠결의 한마디로 나는 세피르가 과연 꿈속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2초정도 고찰해봤지만, 그건 쓸 때 없는 일인 것을 알기에 머리를 휘저어 고찰을 중단했다. 천천히 그 둘의 사이에서 빠져 나와 욕실로 향해 이동한 나는, 그나마 부드럽고 풍성한 포도 향과, 내 속을 아직까지 괴롭히고 있는 묵직한 알코올 향을 뒤로한 체, 따듯한 물이 어째서 인지 모르겠지만 채워져 있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우.”
온 몸이 뜨거운 열기로 감싸이고 있지만, 곧 천천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오늘 하루 제대로 움직인 적도 없는데 피로가 풀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고, 이비는 뒤늦게 내 앞으로 날아오면서 “삑삑!”하고 입을 열었다.
“입을 연다기 보단. 그냥 울음소리를 내는 것에 가깝구나. 너도.”
“삑!”
이곳에 와서 이제 슬슬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미성년자에게 술을 느닷없이 먹이는 것은 아니지. 그냥 의식이 끊어진 것으로 보면 이 몸은 술에 너무 약한 것 같은데,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잡지식의 개그에서는 “저 자취하고 잘 취해요.”라는 말장난이 생각났다. 그건 솔직히 이성을 유혹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 지금 이 상황에서 사용하는 그런 말은 아니다. 그 외에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이 존재했다.
“라면이라. 먹고 싶긴 하네. 이 세상에 있기나 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으로 이 세상과 어긋난 잡지식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세계에서 떨어진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수면이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살던 고향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슬픔으로 가득 차서 내 눈에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졌다.
“아니. 나는 지금 울지 않았는데? 어디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자라나라 머리머리. 자라나라 머리머리.”
천장에 붙어있는 것은 보라 빛의 거대한 슬라임이었다.
“꺄……으으우우웁!”
순식간에 보라 빛 세상으로 바뀌었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라, 내 얼굴 전체를 그 슬라임이 덮으면서 나와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여. 소리지르고 잠깐만 30초만, 30초만 내 말을 조용히 듣는다는 조건에서, 풀어주도록 하지. 어떤가?”
나는 별 다른 말할 방법이 없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말하는 슬라임은 천천히 벽면으로 붙어서 입을 열었다.
“아아. 안녕 하신가? 힘세고 강한 저녁. 만일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리티스. 폭식의 표식을 받은 마계공작 중에 한 명이라네. 내가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마왕님께서 보고 싶어하시거든.”
“마왕이라고요? 그보다 지금 당장이요?”
그리티스라고 말한 슬라임은 ‘O’라는 모양을 만들며 나에게 긍정을 표했다.
“잠깐만요. 우선 옷은 입고 갈게요.”
“음? 그대는 마기로 옷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인간인데! 그전에 왜 마왕이란 사람이 저를 부르는지 그 이유부터 알고 싶은데 말이죠.”
“음. 그건 가보면 알게 된다. 아무튼 지금 내 분신은 마왕님 앞에서 입을 벌리며 기다리고 있으니, 옷을 갈아입으면 그대로 나에게 삼켜지면 된다.”
대체 그 꺼림칙한 이동수단은 뭘까? 어쨌든 마왕이라고 불리는 자는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세피르의 말로는 검은 고양이라고 했던가?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는 그리티스라고 불리는 보라색 슬라임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이게 함정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이비가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의외로 짧은 거리에 불빛이 밝혀지면서 출구로 나가고 있을 때, 물고기를 한 가득 뿌려주고 있는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를 볼 수 있었다.
“오. 아리엘이라고 부르는 소녀여. 이곳이다. 짐의 선물을 받거라.”
어째서 잡화점 주변에 물고기가 이렇게 많이 뿌려진 것일까? 다른 곳에서는 백상아리 하나가 팔딱팔딱 뛰면서 이게 수산시장인지, 아니면 인어공주에서 봤던 Under the sea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그리고 제가 있던 시간은 분명 저녁이었는데?”
“그리티스는 시간개념도 잡아먹어서 자기가 원하는 시간대에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노라. 그 정도는 먹어 치워야 폭식의 공작이라고 볼 수 있지. 따지고 보면 그리티스의 나이는 짐도 역시 가늠하기 힘들군. 비둘기는 알고 있는가?”
“올빼미입니다. 냥캣. 그리고 시간개념까지 집어먹은 단세포 생명체에 대해선 저도 잘 모릅니다. 아무튼 마스터가 일어나기 전에 어서 주변에 있는 물고기를 제거해야 합니다.”
작은 올빼미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질문을 했다.
“마스터라면 분명 카린 씨……아니. 카일 씨라고 했던가요? 그 사람은 지금 뭐하고 있길래?”
그러자 검은 고양이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내 앞에서 입을 열었다.
“설마 주인을 노리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에요. 그저 궁금해서 묻는 거에요. 그리고 원래 남의 남자를 뺏어가려고 하면, 살기를 내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흥미로운 눈으로 반짝여주지 마실래요?”
내가 태클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는 마왕 때문이라니. 마치 레이나 씨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뭐. 주인은 최후에 짐을 선택할 것이니 상관이 없다만, 애석하게도 물의 정령왕이 폭주를 일으켜서 한 여성을 막기 위해, 불과 바람의 정령왕의 힘을 빌리고도, 시공의 흐름을 보면서 오닉스의 불꽃을 사용하는 바람에, 마나가 증발해버려서 지금까지 의식을 잃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루 정도 꼬박 자야 일어날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주인이라서 부작용이 약한 거지. 실제로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 본다.”
그냥 정령도 아니고 정령왕을?
그것도 2개씩이나?
“어떻게 정령왕 2명과 계약을 맺은 건데요? 카일 씨는 정령사가 아니잖아요? 마스터 볼로 잡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보는데?”
“마스터 볼이 뭔가요?”라고 물어보는 하얀 올빼미의 말을 자르고, 마왕은 나의 질문에 천천히 답했다.
“그야. 마나의 친화력이 뛰어나기도 하고, 그간 주인이 너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바람속성의 친화력과 어쩌다 보니 친해져서, 결국 바람의 정령왕 본인이 직접 계약을 맺으러 온 것이 크다. 게다가 불의 정령왕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신이 직접 계약을 맺었으니, 지금은 정령사의 길 초급자라고 보면 되겠지.”
내가 전에 봤던 것보다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다니.
“그보다. 잠깐 시간이 있는가?”
마왕이라고 불리는 검은 고양이는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