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82
382
“귀여운 마리아(이)가 싸움을 걸어왔다!”
“거기. 멋대로 다른 곳의 패러디를 끌고 오지 마요.”
마리아는 그저 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달려와서, 검은 계약의 돌을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불꽃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것은...
“어라? 이프리트! 방에만 틀어박혀있다는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아, 실피드. 안녕.”
서로 사대 정령왕의 진명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여성체로 보이는 불의 정령왕이 피곤한 눈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불의 정령왕은 왜 잡아온 거야?
“크흐흐! 보아라! 첩의 유능한 재능을! 첩의 당돌한 기개를! 첩의 확고한 의지를!”
“““우와아아아아아!”””
뒤에는 아마 마리아가 이끌고 온 검은 달의 여왕 무리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마리아가 흉내 내는 것은 어디 중2병이 걸린 누군가가 생각나지만, 한쪽의 눈을 가리며 낮게 웃고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일이여. 정령 계약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페어링이 약한 상태인 것을 직감하면, 지금의 이프리트를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그 전에 이프리트는 언제 잡아온 거에요! 불의 정령들이 난동 부릴게 뻔하잖아요!”
“뭐,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거라. 이것도 잠깐 빌려온 소품대용이니까. 이 의뢰가 성사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그냥 풀어주기로 했으니, 지금 이프리트가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이러고 있는 거 아닌가?”
뭐, 맥이 빠지긴 하지만 그렇긴 하네.
그래도 마리아는 적당하게 하는 방법을 모르는 만큼 선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가라! 이프리트! 홍염질주!”
거창하게 필살기 이름까지 외친 마리아의 부름에 이프리트는 눈이 번쩍 떠지더니...
“잘래...피곤해...땅바닥이 기분 좋아...”
정말 말은 더럽게 안 듣는 정령왕이었다.
“저기 윈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지만 너는 기술이 몇 개나 있는 거야?”
“저요? 단단해지기하고, 방어, 튀어오르기, 명상, 총 4가지의 기술이 있네요.”
“공격 기술들은 믹서기에 갈아서 조합재료로 만들어버렸냐!”
“기술머신을 잘못 사용했거든요.”
저 쓸모 없는 녀석을 어디다 버릴 수도 없고, 어처구니 없게도 이 상태로 정령 배틀을 계속 진행한다면, 영겁회귀를 계속 할지라도 끝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거라 생각한다. 그 전에 윈디는 비무대회에서 엄청난 공격기술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 바보 같은 모양이 되었을까?
“분명 너는 인간계에서 100%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서!”
“그거야 계약을 맺기 전이고요. 계약을 맺는다면 저와 카일 씨의 친밀도에 따라, 기술이 해금되는 그런 설정을 따라가야, 카일 씨와 같이 붙을 수 있는 계기가 성립될 수 있잖아요?”
“뭘 설정을 따라가! 100%사용할 수 있는 거 맞잖아!”
“절대로 제가 귀찮아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귀찮은 거 맞잖아!”
차라리 하급정령에서 상급정령까지 올라가기 위해 친밀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은 이해해도, 정령왕이 고작 나와 붙어 다닐 수 있는 계기를 성립시키기 위해, 일부러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정령왕끼리 힘을 사용한다는 그 자체는, 그 속성에 대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리이긴 한데, 바람과 불은 상극이면서도 서로 시너지 역할을 하는 속성. 바람이 불면 불은 더 화려하게 타오르기 마련이다.
“혹시 이프리트하고 친해?”
“뭐. 친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도 없긴 하겠네요.”
“왜 그렇게 빙빙 꼬아서 말을 하는 거야. 결국 친하다는 소리잖아?”
윈디는 회색 빛의 머리를 긁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서 무안한 감정을 나에게 감췄다. 덤으로 내가 마리아에게 시선을 돌리자. 기껏 이프리트를 깨우는 줄 알았지만...
“마리아. 동화책.”
“알겠다. 옛날옛날 호랑이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다가, 단군 할아버지에게 걸려서 벌금딱지 물고 철창에 갇히던 시절에...”
“그 리얼한 동화책 설정은 또 뭐야!!!”
“이거? 말 그대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꿈과 희망이 담긴 동화책이다.”
“아니.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시점으로부터 꿈과 희망이 사라졌잖아요!”
그보다 이프리트에게 덮어준 이불이 묘하게, 양과 달과 별이 난잡하게 그려져 있는 군청색의 이불이라, 마리아가 정령왕을 데리고 온 이유가 잠을 재우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 마리아는 느닷없이 “앗!”이라고 외치더니, 연한 초콜릿 피부가 돋보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삿대질을 했다.
“감히 나의 이프리트에게 슬립을 사용하다니!”
“윈디는 공격마법 없거든! 마리아가 사용한 거지!”
“후후후! 저의 놀라운 위용을 봐주시죠!”
“넌 자랑스럽게 입 열지마!”
이거 계속 진행하면 할수록 바보 같아지기 때문에 나는 마리아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일단 좀 쉴까요?”
“그러지. 그보다 이프리트가 잠들었노라. 억지로 깨우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지니까, 여기까지 오는데 모두 지쳤으니 쉬도록 하지.”
결과적으로 정령 배틀은 물 건너가고 서로 앉고 쉬면서 대화가 이리저리 주고 받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검은 달의 여왕이라는 단체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마리아. 대체 이 인원들은 다 뭐에요? 그보다 마일론과 멜시스 씨는 어디에?”
“아. 그 둘은 따로 임무를 하고 있다. 첩이 직접명령을 내렸으니 당분간 못 보겠지. 그보다 이 인원들은 그저 정령들을 구경하러 온 학자들일 뿐이다. 각자 하급정령을 계약의 돌로 붙잡아 놓고 있지만, 저들도 좀 외로운 사람들 중 하나라 말 상대가 좀 필요하거든. 대부분은 중년이거나 노인들이다.”
“다른 관점에서는 정말 착한 일이네요. 자원봉사자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애초에 정령사는 출중한 재능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이런 계약의 돌 하나만 있으면, 자신이 죽기 전까지 평생 말동무할 정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죽을 때까지의 삶은 쓸쓸하거나 외로운 생각은 하지 않겠지. 애초에 악용이 되는 것은 첩 역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저들의 표정을 보거라. 저들도 과거에는 사회에 있어선 중요한 구성원이었지만, 세월이라는 이름 앞에 쫓겨나거나 혼자 지내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니라. 그러니 첩은 이들을 데리고 정령몬 Go를 할 생각을 했고, 때 마침 천칭들의 모임에서도 그와 같은 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실질적인 목적은 중년층과 노년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거고, 그게 바로 계약의 돌이라는 물품이지.”
나는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마리아는 환하게 웃으면서 내 손길을 받아들여주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고양이라도 되는 마냥, 고개를 움직여서 계속 이리저리 비비고 있는 마리아의 진짜 모습은, 그 세계의 재앙이 일어났을 때 자신을 받드는 모든 자를 이끌고, 다른 이상향을 향해 움직이는 구원자의 역할. 마리아는 애초에 나쁜 일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일은 이제 그만 하세요.”
“뭐. 본래 계획은 카일에게 토벌을 당하는 걸로 끝나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프리트가 이런 모습으로 자고 있으니.”
“그러게요. 윈디도 이프리트 옆에서 자고 있으니, 이건 정령 배틀이고 뭐고 없네요.”
붉게 타오르는 듯한 오렌지 빛의 긴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를, 사랑스럽게 껴안고 자는 윈디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러면 이제 슬슬 해연 씨가 시련을 다 맞췄는지 확인이나 해볼까요?”
“아. 물의 정령왕을 찾으러 온 것이었지 분명. 첩도 우선 따라가겠다.”
나는 마리아에게 따라오라는 말과 동시에 엘라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거대한 물살이 휘몰아쳐 거대한 소리와 함께 내 근처로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마리아! 전부 밖으로 피신시켜요!”
나는 순식간에 마법방패를 내 정면으로 가득히 쌓아놓아도 천천히 밀리기 시작했으니, 윈디는 이프리트와 자다가 “어라? 무슨 일이에요?”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었고, 나는 윈디에게 곧바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잠은 다 잤냐? 그럼 지금 당장 나를 도와줘야 할 거 아냐!”
저 멀리 눈동자에는 푸른 빛이 일렁이고 있었고, 해연 씨의 모습이 천천히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윈디. 이건 무슨 일이야!”
“음. 아무래도 담아내는 것은 성공했는데 이겨내지 못하고 폭주한 걸로 보이는데요?”
“너는 안 도와주냐! 뭘 그리 태평한 소리로 설명을 하고 있어!”
나는 죽어라 막고 있었지만, 윈디는 휘파람이나 불면서 내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도움이 되라고 계약을 맺었더니 도움이 안 되어 조만간 곧바로 파기할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우선 의식이 없는 듯한 해연 씨를 제정신으로 돌리고 나서, 천천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물의 흐름으로 가속이 붙은 해연 씨의 언월도가, 견고한 마법방패를 순식간에 4장이나 부셔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윈디의 손을 붙잡고 “태초의 샘에서 이탈해!”라는 말을 하고 난 뒤에서야, 저 멀리 밖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일단 말을 해두겠는데. 너와 계약한 것 중에서 지금이 가장 잘한 것 같긴 해.”
“그렇죠? 저 윈디는 항상 카일 씨의 도움이 된다고요?”
“그런데 내가 독백으로 저 멀리 밖으로 이동했다는 말을 했잖아?”
“네.”
“근데 여긴 어디야?”
“음. 중간권 정도 되네요?”
그러니까 과학에서 대기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이라고 나뉘어지는 4개의 층을 말한다. 그 중에 3층에 속하는 중간권은 대략적인 높이가 약 50km이상 80km미만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대략적으로 영하 50도 미만의 혹한과 맞먹는 추위가 내 온 몸을 강타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마나로 내 몸을 회전시켜서 강화를 하니까 죽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누구 죽이려고 여기까지 끌고 올라왔어! 너무 멀리 와버렸잖아!”
“아 참. 저도 모르게 힘 조절이 안 돼서. 이야, 정말 친밀도 많이 쌓아야겠네요.”
태초의 샘이 마치 작은 점이라도 되는 마냥, 너무 올라와버린 나는 난감한 호박색 눈빛을 지닌 윈디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웃기지마! 너 일부러 여기에 데려왔지!”
“아무튼 추락합니다! 바지에 지도 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내 말은 60%정도 무시하면서 다시 내 손을 꽉 붙잡은 윈디가, 밑을 향해 가속하기 시작하면서 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 칼람바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악!”
제발 눈을 뜰 때는 제발 내가 살이 있길 빌면서,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던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기도의 대상은 아우리스 여신과 비니스 여신,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젤나가님까지 다양하게 기도를 드린 이후에, 불안전한 착지도 아니고 곧바로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내려와 땅을 밟는 순간,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식은땀을 닦아냈다.
“어라? 설마 정말로?”
윈디의 의심하는 눈초리로 인해 나는 소리쳤다.
“웃기지마! 내가 나이가 몇인데 고작 이런 일로 바지에 지도를 그리지는 않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릴 뻔했다.
그릴 뻔한 거지 그린 건 아니다.
“그보다.”
의식이 없이 나를 바라보며 언월도를 겨누고 있는 해연 씨를 직시하면서,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윈디에게 물었고, 터무니 없는 목소리로 “글쎄요?”라는 대답이 내 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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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마법은 위대해. 중간권에서도 살아남게 해주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