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38

FNL-Phantasm 2017. 3. 18. 13:11

38

 

 

 

무료하게 돌아다니는 부활동의 시찰을 빠르게 마무리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어느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해야 했기 마련. 원래 정해져 있는 시간에 서류정리마저 미리 다 해버릴 정도로 게으른 성격이기에, 아무도 모를 법한 옥상에 올라가서 아까 입고 온 로브를 돗자리처럼 편 뒤에, 그대로 따스한 오후 햇살을 만끽하며 눈을 감았다. 도서관에서는 마음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1시간씩은 자둬야 다음에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아리엘? 꽤나 좋은 모양인데?”

 

시끄러워. 베개는 말하지마.”

 

바닥에 눕기에는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세피르의 무릎을 대신 빌리고 있었다. 사역마와의 친밀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은 명목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내 소지품에서 개인 베개를 가지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한 점 때문에,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세피르는 늘 그랬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도 아직 꽃샘추위가 물러간 것이 아니라서 허구한 날에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괜찮아. 해가 따듯하니까. 1시간동안 누워서 좀 쉬는 것도 있고. 정 추우면 결계를 하나 만들어도 상관 없겠지.”

 

세피르가 날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머리를 지압해주고 있었다. 마사지가 특기라고 해서 그런지 지압된 부위를 중심으로 시원한 감각이 퍼져나가고 있었고, 피로도 빠르게 풀리는 듯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아리엘! 승부에요!”

 

뜬금없이 옥상으로 올라온 밀리아가 내 앞에서 소리를 쳤지만, 지금은 움직이기 싫은 내가 순순히 밀리아의 승부를 받아들 일리가 없다. 그 전에 대체 무슨 승부를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눈 앞에서는 신문부가 출간했다고 낙인이 찍혀있는 종이 한 장에, 인기투표에서 내 얼굴이 커다랗게 나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보다 누가 내 사진을 찍어서 넘긴 거지?

 

승부라니? 이미 결론이 난 종이를 들고 왜 그래? 밀리아?”

 

인기투표에서 미스 카멜롯에 나가서 확실하게 자웅을 겨루어보죠!”

 

잘 해. 난 안 나가.”

 

아리엘!”

 

미스 카멜롯인지 어디인지는 잘 몰라도, 기본적으로 나의 움직임은 휴식을 위주로 한 움직임. 나의 마음 가짐은 신성한 휴식의 몸을 담그고 있는 선지자와 같은 이치다. 다음을 위해 항상 체력, 정신을 비축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미스 카멜롯에 뽑힌 사람은…….”

 

어떤 이득이 따라도 난 나가기 싫어. 설령 세상을 지배하게 해준데도 난 안 나가.”

 

역시 아리엘이 나가면 너무 쉽게 끝나긴 하겠지?”

 

세피르는 덤으로 나를 옹호하는 말로 이 회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딱히 자신이 없다거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자리에 내가 나간다면 대부분 정신오염에 저항이 없는 사람들이 멋대로 현혹당할 것이 뻔하다. 나에 대한 가치를 진짜로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이 심사를 해야 할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은 마법 기초반과 밀리아, 켈모리아, 빅터 이외에는 없으리라 본다.

 

레이몬드 또한 한 차례 현혹될 뻔한 것도 내가 스스로 풀어준 것이지, 자신의 의지로 풀려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예쁘다고 잘난 척이나 기고만장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런 곳에 나가기 싫어. 게다가 켈모리아가 무슨 일을 긴급적으로 줄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 그저 밀리아에게 투표하고 돌아가면 되는 거잖아?”

 

미스 카멜롯에 뽑히면, 빅터 씨가 널 다른 눈으로 볼 수도 있잖아?”

 

빅터는 아직까지 과거에 사로잡혀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라던가, 아직까지 찾고 있는 과거의 연인을 만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고 난 뒤에 움직여야지. 게다가 사람이 좋아하는 데 서로를 마주하며 좋아야 하는 거야.”

 

그런 할머니 같은 소리를 넌 어떻게 잘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나는 어디서 경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은 나지 않아도,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로 보아, 내 첫사랑은 빅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애매한 관계는 첫사랑이라기보단, 그냥 이라는 마법의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게 만드는 관계 아닐까?

 

그보다 아리엘은 내가 찜 했다고?”

 

꼬마는 좀 빠져!”

 

너무해…….”

 

세피르는 밀리아에게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다가, 역으로 격파 당한 뒤에 시무룩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내 머리를 지압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하느라 밀리아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눈을 뜨면 상당히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내 얼굴에 그림자가 지는 걸로 봐선, 밀리아가 나를 향해 내려다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눈을 뜨고 여김 없이 화난 얼굴을 마주한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내가 미스 카멜롯에 나가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너는 스스로 숨어살려고 하니까. 공식적인 자리도 별로 안 나가고, 세상에 대한 재미를 그대로 놓치고 있잖아?”

 

나의 유일한 라이벌은 너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오히려 나는 다른 곳에서 눈에 띄거나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 너 하나만으로도 벅찬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이 이상 친구를 만들게 된다면 힘들겠지. 오히려 나는 일부러 안 나가는 거야. 그래야 너와의 친분도 계속해서 소홀하게 하지 않고…….”

 

밀리아는 나의 구차한 변명을 꿰뚫었는지 말을 자르고 말했다.

 

시끄럽고 본심은?”

 

귀찮아.”

 

너 정말!”

 

귀찮은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혹은 귀찮아질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너도 피곤할 테니 내 옆에 누워서 쉬던가?”

 

나는 누구와 다르게 일을 건성으로 처리하지 않는 성격이거든! 좋아! 억지로라도 네가 나갈 수 있도록 학원장님께 말을우아앗!”

 

발을 헛디뎌서 내 위에 쓰러진 밀리아를 끌어안아 붙잡아 놓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상 내가 발을 걸어서 넘어진 거지만, 자세한 것은 생략하고 세피르에게 입을 열었다.

 

세피르. 밀리아의 입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확실히 너무 거친 말을 해도 막상 입술은 부드러워 보이긴 해.”

 

잠깐! 아리엘! 그만해!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나는 나 나름대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밀리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놔주지 않고 귀에 바람을 불었다. “히잇!”하고 몸이 떨려오는 감각으로 보아 귀가 약한 것을 확인하고, 나는 천천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속삭여도 민감한지 계속해서 몸을 떨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우선 내 할말부터 하도록 하자.

 

나는 밀리아가 뭘 원하는지 몰라, 밀리아가 나에게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모르고, 만약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조기에 잘라버리는 것뿐이야. 나는 아주 특별한 사역마를 가지고 있지. 그 사역마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 밀리아에게 있어서는 악몽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야. 만약, 켈모리아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이 다음 상황은 진행되지 않아. 나는 너를 풀어줄 것이고, 덤으로 꿈까지 쫓아가지 않도록 할 거야. 근데 켈모리아에게 알리려고 한다면, 나는 너의 본성을 끄집어 낼 것이고, 찾아낼 거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꼴사나운 모습을 공개시켜주지.”

 

알았어! 알았다고! 제발 놔줘! 부탁이야!”

 

결국 들려온 것은 밀리아의 항복이었고, 팔에 힘을 빼자마자 밀리아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내가 말한 것은 어디에서 나왔을 법한 명대사였음이 기억이 나는데, 정작 중요한 제목이 기억이 안 났다. 분명 특수부대원 출신의 아버지가 납치된 딸을 찾는 스토리였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밀리아는 느닷없이 다시 내 쪽으로 눕더니, 그냥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밀리아? 왜 다시 내 앞쪽으로 쓰러지듯이

 

뭐랄까? 잠깐 생각을 한 건데 아리엘을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뭔가 포근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거 단순히 네가 피곤한 거 아냐? 아니면 세피르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걸 수도 있고, 애초에 내가 안고 잘 수 있는 인형은 아니잖…….”

 

~”

 

팝 타르트에 던져버릴까?

 

밀리아도 학생회라던가 다른 일 때문에 많이 피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소녀는 소녀라고나 할까?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는 듣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세피르는 한 가득 미소를 담으며 그런 말을 했다.

 

그보다, 무릎은 힘들지 않아? 무게도 무게일 텐데?”

 

나는 괜찮아. 신경 쓰지마.”

 

오후에 휴식은 그렇게 즐기는 것으로 끝이 났

 

-퍼엉!

 

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번의 폭발음으로 밀리아와 나는 화들짝 놀래서 일어났다. 어디서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부활동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길 빌며, 학원 옥상으로부터 떨어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추락하기 직전에 환영체를 소환하고 그 자리에 몸을 옮겨서, 착지보다는 더욱 안전하게 내려간 뒤, 검은 여기가 튀어나오고 있는 마법요리 연구부에 도착하자마자 경악하기 시작했다.

 

저 쿠키는 대체 뭐야?”

 

글쎄…….”

 

밀리아의 질문에도 내가 정확하게 대답을 못할 정도로 거대한 사람모양의 생강쿠키가, 거대한 포효를 지르면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입체기동장치를 달아서 쿠키 거인의 뒷목을 날려야 할 정도.

 

그래도 쿠키는 쿠키니까 물에 적셔서 녹인다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거야.

 

가라! 밀리아! 물대포!”

 

저기? 아리엘? 나를 지금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취급한 거 아냐?”

 

?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단지 아쿠스타라던가 꼬부기와 같은 취급은 하지 않았다.

 

가라! 거북왕……. 아니, 밀리아! 하이드로 펌프!”

 

아리엘!!!”

 

착각할 수도 있지 뭐.

아무튼 밀리아는 물 속성 마법을 준비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워터 블레이드!”

 

거대한 수압으로 뿜어져 나오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땅의 밑부분을 날카롭게 베어 들어가 6M 앞에 있는 쿠키 거인의 발목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오른손을 휘두르자 높아 보였던 목의 위치가 가까워졌을 무렵, 정확하게 목과 머리를 분리시킨 밀리아는, 마법 연구부원에게 다가가서 자세한 상황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당차게 해결하고 학생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부하직원이 실수 했는데 뒤처리를 끝낸 리더의 모습이었다.

 

역시 학생회장이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지만, 학생들을 단숨에 진정시키는 일은 밀리아가 할 수 밖에 없어.”

 

세피르는 나의 말을 듣고는 응답했다.

 

아리엘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사람을 통솔할 카리스마가 없어.”

 

밀리아는 다시 내 앞으로 다가오고 나서 자신의 볼을 살짝 긁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리엘? 미스 카멜롯의 건 말이야.”

 

? 그건 왜? 그보다 저 쿠키 거인하고는 관계가 없잖아? 아니면 저 쿠키 거인이 미스 카멜롯에 나온다는 바보 같은 농담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거기에 대해 받아 쳐줄 수 있는 내용은 생각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아니, 학원장님께서 이미 아시는 모양인 것 같은데? 이 쿠키도 네가 미스 카멜롯에 나간다는 축하기념으로 만드는 중이었다고 그러더라고…….”

 

이 학원장을 진짜 정신머리를 뜯어 고쳐야…….

 

? 누구의 정신머리를 뜯어 고친다고?”

 

히끅!”

 

언제 뒤에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으로 작성중인 독백까지 읽은 켈모리아는,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더 정확하게는 악마라고 느껴질 정도로 사악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