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65
365
스스로 자신이 여체화가 되고 난 뒤에 고양이 귀를 쓰고, 참담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삶의 행복은 과연 긍정적이게 될까? 부정적이게 될까? 적어도 나는 부정적이게 되는 것으로 한 표를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이 이리저리 이동하게 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스트레스에 쌓이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태클을 거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스트레스를 한 가득 받고도, 또 받아서 넘쳐버리는 참담하고도 암울한 미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생명이 주어진 이상 살아야 하기에, 마지못해 살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잡화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쪽에는 모의전투를 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창세의 여신인 시나를 포위하며 경계를 잔뜩 하고 있는 제자들은, 시나에게 마법화살을 견제하며 사용해도, 닿기도 전에 나타나는 빛의 장벽으로 깨끗하게 무산이 되어버린다.
“너무 견고하잖아요! 선장님!”
“나에게 묻지마.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맨 처음에 제자들이 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시나가 불쑥 나에게 찾아와서, 자신도 연습에 동참해도 되냐고 물었을 무렵.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흔쾌하게 승낙을 한 뒤에, 한참을 명상하듯이 앉아있더니 그대로 빛의 벽을 세워버렸다. 시나를 보호하고 있는 빛의 벽은 무슨 수를 써도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시나를 제압하기 위해서 빛의 벽을 깨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유는...
오늘 새벽에 보여줬던 시나의 최대 이변을 보여줬던 마법. 빛을 모조리 제거하고 모든 생명을 재워버리는, 정체불명의 기술이 카운트 다운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적은 제자들이 잠에 빠지기 전에 시나의 방벽을 부수는 것. 느긋하게 방벽 안에서 조용히 있는 시나는, 마치 수면 위에 떠오른 연꽃과 같은 인상을 줬다.
“벌써 반이나 어두워졌어! 파르시아! 마법부여를 하고 있는 것 맞아?”
루크는 급하게 파르시아에게 소리를 쳤고, 파르시아 또한 루크에게 소리를 쳤다.
“벌써 30회째야! 3번 중첩으로 30회!”
당연하게도 시나가 견고한 방어벽을 만들 때마다 소비 되는 것은 내 마나라고 하지만,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보다 마나를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몸. 이제서야 8분의 1이 줄어들었으니 8분의 2정도 줄어들 때쯤, 제자들이 모두 불을 끄고 자는 아이들처럼 강제로 수면에 빠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나도 이 참에 낮잠이나 자볼까?”
아마 자고 일어난다면 시나가 자연스럽게 날 깨울 것이라 생각하고, 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만끽하며 천장을 보고 있었다.
“편지가 도달했습니다. 카린 님 맞으신 가요?”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
윈디는 루나에게 빌려 입은 듯한 아이돌 의상의 모습으로 내 앞에서 편지를 건네줬다. 나는 편지를 받고 뜯기 전에 윈디에게 한 소리를 하기로 했으니...
“윈디. 그런 각도로 있으면 속옷 보인다고.”
“괜찮아요. 보여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거니까요. 아아~ 카린 씨!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안 돼요♥”
대체 이 녀석 머리는 어떻게 되어먹은 걸까. 나는 윈디를 한 가득 무시하고 초대장을 펼쳤을 무렵. 나도 모르는 이름으로부터 파티 초대장이 왔다. 하지만 마법 무투제에 대한 내용으로 보아, 이 서신은 카멜롯에서 전해져 온 것인가?
신성한 마법 무투제를 열기 전에 브레체투스 가문의 파티로 초대합니다.
-레이몬드 브레체투스
“매우 간단하게 적혀있네. 그나저나 브레체투스 가문?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확실하게는 많이 들어본 것이 아니라, 많이 봐온 것이라고 해야 적절한 문장이 될 정도로, 신문에서 매번 거론된 가문 중에 제국을 살 정도로 재력이 뛰어난 가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브레체투스 가문에서 파티를 연다는 소리라면, 많은 귀빈들이나 괴물 같은 엘리트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긴 하지만, 마음 한 곳의 귀찮음이란 단어가, 나의 결정을 계속해서 흐리기 시작했다.
“카멜롯에 가서 대체 뭘 하라고? 차라리 나중에 따로 켈모리아 씨를 만나는 걸로 해야지.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지 설명이나 해주실까?”
윈디의 눈이 너무 찬란하여 밤하늘의 별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기대를 가득 채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브레체투스 가문의 초대장을 받을 정도로 카린 씨를 보고 싶은 거겠지요. 카멜롯 행정학원의 아들이 이곳 엘티노스 잡화점으로 직접 보낼 방법이 없어서, 저를 통해 전달할 수 있도록 손을 쓴 거라고요?”
“하긴 잡화점에 도달하는 편지는 의뢰내용밖에 없지. 그럼 윈디는 카멜롯에 가본적이 있다는 소리잖아?”
윈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언제 카멜롯에 갔다 온 거지? 역시 바람의 정령왕이기 때문에 아무리 먼 거리라도, 빠르게 다녀올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하겠지.
“분명 브레체투스 가문의 파티는 호화로움의 극치를 자랑할 거라고요? 파티 하나만으로도 모든 이들에게 극찬을 받을 정도겠죠? 그렇겠죠?”
“심심하면 혼자 가. 나는 그날 잡화점에 단체 손님이 몰릴 예정이니까.”
호화로운 파티장에는 그에 걸맞는 사람이 가야 하는 법이고, 나의 경우에는 그에 걸맞지 않는 사람이기에 가봤자 필요도 없는 하루가 될 것이리라. 윈디는 반짝이는 호박색의 눈동자로 나를 재촉하듯이 계속 떼를 쓰기 시작했다.
“가요! 카린 씨! 카린 씨라면 분명 그 안에서 주역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파티장에서 꿀벌과 나비들을 동시에 유혹하는 카린 씨의 고양이 귀라던가, 꼬리라던가!”
“응. 안 돼. 돌아가.”
“어째서요! 가끔 사람이 사교적인 면도 있어야 소문이 퍼지죠!”
“이런 모습으로 사교적인 면을 강요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와. 애초에 본래 성별이 남자인 나에게, 여성의 모습으로 인기가 잔뜩 많아지면, 나중에는 하기 싫어도 카린의 모습으로 계속 변해있어야 하잖아? 조만간 내가 내 정체성을 부수고 카린의 삶을 살겠다는 그런 일을 예방하고자, 이 모습으로는 절대적으로 어디 유명해지거나, 파티장이라던가, 절대적으로 갈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잠깐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이 한계로군.”
“네? 뭐가요?”
-털썩! 툭! 투둑! 털썩!
“생명들을 평온한 잠으로 인도하는 어둠, 시나의 방벽을 결국 깨부수지 못했단 소리인가.”
발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나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할 무렵. 사무적이고 담담한 목소리로 한 소녀가 입을 열었다.
“마스터. 제자들을 모두 재웠습니다.”
“하아. 알았어.”
한숨밖에 내쉬지 못하는 나에게 천천히 껴 앉기는 시나는 나에게 마음껏 응석을 부리는 듯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내 몸을 문댔다. 윈디는 그런 나와 시나의 모습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자들이 지면 빛의 여신님이 마음껏 응석을 부리는 조건이었나요? 게다가 힘이 매우 안정적으로 된 걸로 봐선, 대체 언제 카린 씨에게 필살기를 집어넣은 거죠?”
“나도 대체 그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니까, 되도록이면 거론하지 말아줘.”
“마스터. 헤헷.”
시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계속해서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만끽했고, 이럴 때는 창세의 여신인지 빛의 여신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귀여운 여동생이 응석부리는 기분이었다.
절대 뚫리지 않는 빛의 장벽이라던가, 모든 생명을 잠으로 인도하는 빛의 소멸은, 정확히는 오늘 새벽 이후로 나에게 공유한 마법이다. 페어링이 강화됨에 따라 시나의 마법은 더욱 더 안정적으로 다루게 되었고, 최소범위가 마을 하나에서 드디어 작은 방 하나로 줄어들었으니, 이제 빛의 소멸이 시작되었을 때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전부 쓰러지는 이상현상을 겪지 않아도 된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잡화점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세상이 떠나가라 교성을 질렀던 것이 빛의 여신님께서 지르신...끄아아아아앗!”
윈디는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항상 거론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나가 어디선가 만들어낸 빛의 구체가 계속해서 윈디를 때리고 있을 무렵. 천천히 소멸했던 빛은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고, 10분동안 응석을 부리던 시나는 천천히 나와 거리를 벌리며, 제자들을 깨워야 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낮잠이라도 잘 생각으로 누웠는데,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거늘.”
아직도 쓰러져서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며 오른손을 펼친 후에 힘껏 마나를 모았다.
“마나 캐논.”
-팡!
온갖 비명과 놀람이 가득 찬 제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잠은 다 잤겠지? 빛의 벽을 부수라는 것은 테스트의 일환이 아니라, 그냥 시나가 자신의 힘을 시험하려는 것이었으니 그리 풀 죽어 있지는 마.”
아르메는 벌레 먹은 사과를 산 듯한 불만이 한 가득 차오른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빛의 방벽이 깨지질 않아요! 선생님의 사역마는 왜 이리 강한 사역마만 있나요! 애초에 마왕에다가 빛의 여신이라니! 선생님은 제대로 사역마를 다루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사역마에게 끌려 다니는 건가요?”
“그야...”
끌려 다니는 편이지. 어떻게 보면...
그래도 제자들 앞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으니, 다른 말을 하도록 해보자.
“수평적인 관계로 사역마의 계약을 맺으면, 주종관계가 그리 명확하지는 않으니까. 끌려 다니는 건 절대로 아냐.”
“맞습니다. 마스터는 남성으로 돌아가셨을 때에도, 저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강한 필살기를...”
“시나. 어린 애들에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실언했습니다.”
지금 시나가 하는 소리는 제발 잊어주길 바라며, 모의전에서 더 할 것은 없어 보였고, 연습도 4시간째 계속 해왔으니 슬슬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자. 이제 슬슬 그만하고 오늘은 이걸로 마쳐보도록 하자. 하루 정도 쉬면서 자신의 몸에 익히는 그런 시간도 있어야지. 그런데 너희들은 브레체투스 가문의 파티장으로 가고 싶어?”
“““파티장이요?”””
4명 전원이 단합이라도 했는지 동시에 외쳤다.
“그래. 저기...”
나는 손으로 가리키면서 윈디를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아아! 시나 님! 안 돼요! 거기만은 제발! 꺄항♥”
아직까지 시나에게 기묘한 빛의 구체로 두피마사지를 받고 있는 윈디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소개를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며 거대한 내적 갈등을 하고 있었다. 겨드랑이 밑부분이 훤히 보일 정도로 손을 올리면서도, 하얀 스커트라던가 검은 스타킹이 눈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도 많이 날뛰다 보니 그냥 보이는 것이 그것밖에 없는 것. 한숨을 짧게 쉬고 나서 시나에게 그만하라고 지시를 내리자, 윈디는 “어라? 어째서! 아! 방치플레이인가!”라며 더욱 좋아...
“뭐가 방치 플레이야! 어린 애들 앞에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파악!
제자들 보는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더 하기 전에, 윈디의 머리를 밟고는 소리를 쳤으나, 역효과라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를 챘을 때는 윈디가 힘껏 소리 높여서 외치고 있었다.
“끄아앙! 카린 씨께서 저를 직접 밟으시다니요! 황송해서 이대로 가버리겠어요♥”
“발할라로 가버려 그냥!”
아무래도 제자들에게 윈디를 소개 해주는 것은 10분 정도 미루도록 하자.
지금은 이 바보 같은 정령왕을 어떻게든 되돌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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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해머3 베타 당첨되서 그거 하려고 쓰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