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18

FNL-Phantasm 2017. 2. 24. 03:24

18

 

 

 

빅터는 나의 최면을 받고 내 무릎 위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빅터가 깨어날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최면은 단숨에 풀어줄 수는 있어도, 이런 기회는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모의전투실의 배경설정을 초원으로 바꾸고, 신선한 바람과 푸른 풀들이 자라나고 있는 한 가운데에서, 천천히 여유와 휴식을 동시에 만끽하고 있었다. 세피르는 내가 좋다고 하면서도 이 남자에게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본래 인큐버스와 서큐버스가 동일하다고 했고, 자신을 너무 챙겨주지 않으면 서큐버스로 변해, 빅터를 가로채서 같이 붙어있을 수 있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상식에 벗어나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역마에게 관심을 주는 것쯤이야 가끔 다리나 핥아.”라고 말하면 될 정도로 간편한 일이다.

 

…….

농담이다.

어떤 사역마가 주인의 다리를 핥는 것을 낙으로 살아갈까?

 

그건 그렇고 나를 보는 눈과 빅터를 보는 눈이 전혀 다른데? 나를 볼 때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엄격한 분위기라면, 빅터를 볼 때는 성녀라도 되는 마냥 온화한 모습이야. 그렇게 빅터가 좋은 거야?”

 

상대적으로는 너보다 빅터가 좋지. 하지만, 빅터에게도 여자친구라던가 그런 쓸 때 없는 피조물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사랑은 나이에 상관이 없다는 켈모리아의 말은 동의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나의 정체를 몰라. 그런 상태에서 빅터에게 고백을 하면, 어디선가 날아올법한 바보 같은 일에 모든 것을 잃거나, 빅터가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제대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 전까지, 이렇게 감정이나 꾹 눌러 참으며 가만히 있는 거야.”

 

그래? 빅터는 애인이 없을 텐데?”

 

그래? 근거는?”

 

감이지.”

 

역시나. 뱀은 믿어서 안 되는 거짓의 존재다. 그럼에도 뱀을 좋아하는 이유는 외견과 감촉 때문일까? 어느 사이에 내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검은 뱀 세피르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는 나에게 또 다른 사실을 알려줬다.

 

그런데 빅터라는 사람은 왜 좋은 거야?”

 

이런 멋진 남자가 내 목숨을 구해줬거든. 누구나 그런 전개에 다 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왜 그때는 잠을 재웠어? 그대로 이어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텐데?”

 

널 뱀탕의 재료로 사용하기 전에 조용히 하고 있어. 애초에 의식도 제대로 없어진 사람에게 그런 일을 당하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기억될 확률이 더 높아. 아무리 끈적한 관계를 가지고 싶다고 해도, 우선 플라토닉한 관계부터 가져야 오랫동안 연애를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빅터는 날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겠지.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가장 좋은 거야.”

 

세피르는 내 말에 꼭 한번씩은 태클을 걸었다.

 

그러기엔 빅터의 욕망을 단숨에 끌어올릴만한 몸은, 어린아이의 규범이 아닐 정도로 성숙했는데 말이야.”

 

너는 오늘 선짓국에 담가져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선짓국? 그게 뭐야?”

 

몰라. 머릿속에 있는 잡다한 지식들 중에서 아무거나 꺼낸 거야.”

 

어째서 이런 이상한 지식이 내 머리에서 맴돌까? 정말 창조주라도 만난다면 이 일에 대해 깊게 토론을 하고 싶어졌다. 빅터가 최면에서 슬슬 깨어나려고 하는지, 몸을 뒤척이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나마 내 나름대로 치유를 받고 있었는데, 언제나 즐거운 시간은 재빠르게 지나갈 뿐이었다.

 

어라? 언제 내가 잠들었더라?”

 

아까 흉포한 늑대처럼 달려왔던 분위기와는 달리, 순한 양처럼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빅터는, 내 무릎 위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이런 조그마한 상황에도 남자들은 손쉽게 반응을 하는 것일까? 빅터는 잠깐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서서히 무거운 몸을 움직이면서 내 무릎을 떠났다.

 

내가 언제 자고 있었지? 꼬마 아가씨?”

 

이곳에 오자마자 매우 피곤한 모습이었어. 그러더니 나에게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그대로 쓰러져서 나는 모의전투를 그만두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무릎베개를 해준 것뿐이야.”

 

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난장판이 될 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빅터는 이상하다는 얼굴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꿈에서 아리엘을 억지로 넘어뜨리고 키스했던 꿈을 꾼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꿈으로 취급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긴 폭주상태인 상대에게 강한 최면을 구겨 넣는 것은 힘든 일이지. 오히려 그 상황에서는 최면이 먹힌 게 이상했어. 그나마 약하게 걸려서 그 상황이 전부 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보네.]

 

세피르는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나저나 빅터는 여기에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러. 요즘 마법 무투제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잠깐 번화가에서 뭐라도 사먹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좋아. 따라와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따라가 줄게.”

 

그래 주면 고맙지. 꼬마 아가씨.”

 

처음으로 빅터와 밥을 먹는 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 카멜롯의 다른 구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이 기회에 밥이나 얻어먹으면서 둘러보는 것으로, 천천히 이 세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

 

[솔직하게 빅터와 밥을 먹는 것이 좋다고, 독백에 써 넣지 그래?]

 

[넌 참견하지마. 대머리 독수리에게 저녁밥으로 던져버리기 전에.]

 

사역마에게 독백으로 태클이 걸려올 줄이야. 하지만 아까와도 말했다시피 이걸 빅터와 데이트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탐사의 목적으로 이동하는 것. 빅터는 거대한 건틀릿으로 손을 뻗어서 나를 일으켜줬다.

 

그전에 잠깐 기다려줘. 씻고 나와야 하니까.”

 

본부대로 하지. 아리엘.”

 

내 어리광이든 막무가내로 나가는 행동이든 다 받아줄 것 같은 천사의 미소로, 답을 한 이 남자를 어느 여자가 싫어할까? 나는 좀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서관 안에 있는 모의전투실에서 나왔다.

 

***

 

카멜롯의 번화가는 행정학원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곳에는 5개의 학원이 평소에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다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관찰지점이기도 했는데 기사학원의 문양은 은색을 바탕으로 한 방패모양. 마법학원의 문양은 보라 빛으로 물든 지팡이모양. 행정학원은 금으로 바탕으로 한 동전모양. 예술학원은 백색의 조각상 얼굴이 있었고, 역사학원은 붉은 빛의 책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겉옷 상의 색상은 이곳에 올 때만 구별하기 쉽게, 문양과 비슷한 색상으로 변한다고 하고, 원래 녹색이었던 내 겉옷은 이곳에 도착했을 무렵 연보라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건 전부 켈모리아가 생각해낸 거야?”

 

모든 학원장님들이 회의를 하고 만들어낸 번화가라서 그래. 설령 학생들끼리 사소한 시비가 붙어버릴 경우에는, 그것을 구별하고자 따로 색상이 변화가 되는 옷을 입는 거고, 사복을 입고 돌아다닐 경우에는 자신이 어느 학원의 소속인지 밝히기 위해, 항상 앰블럼을 챙겨야만 하지.”

 

챙기지 않으면? 징계당하는 거야?”

 

그렇지. 나는 이미 대학원생이라 방패모양이 아니라, 3개가 서로 맞닿아있는 모양이지만.”

 

중무장을 해서 그런지 키가 더 큰 빅터를 올려다 보면서, 나는 짧은 한숨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학원 근처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그게 전부 학원들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니, 괴물들이 모여있는 장소는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음식점에 도착을 한 뒤에 빅터가 나 대신 주문을 하러 가는 동안, 세피르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주제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 상태로 여관에 진격을 해서 방 하나를 잡으면 게임 끝이라니까? 애초에 의식이 없을 때 강제로 하는 것이 싫다면, 아리엘이 꼬셔서 유혹하면 되잖아?”

 

세피르. 대체 왜 이런 일을 계속 답 없게 추진하려는 거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나는 어느 누구와도 정을 섣불리 줘선 안 된다고.”

 

역시 내가 좋구나? 사실은 나에게 반한 거지? 아리엘?”

 

비늘을 벗겨서 신형 가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세피르의 짓궂은 농담에 대응하고 있는 사이에, 내 앞자리에 누가 앉아서 빅터인 줄 알았는데. 금색의 겉옷을 입고 있는 남자 세 명이 내 앞에 앉았다. 문양은 역시 행정학원을 알리는 금화의 문양.

 

안녕하신지요? 처음 봐서 그러는데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잠깐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충격을 받고 머리가 일시적으로 정지 되었다가, 한숨을 작게 내쉬면서 유명한 대사를 생각해내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남의 이름을 듣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라는 것은, 행정학원에서 알려주지 않던가?”

 

내가 차갑게 쏘아붙이며 입을 열자, 화를 내지도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짧은 금발이면서도 댄디한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를...

 

저는 행정학원의 학생회장 레이몬드 브레체투스라고 합니다.”

 

아리엘. 마법학원장의 비서에요.”

 

악수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무의식적인 신호이지만, 행정학원에서는 대부분 장사와 이익을 저울질 하는 경향이 많고, 거래가 성사되면 앞으로 더욱 친하게 지내보자는 의미로 건네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경우는 아무런 거래나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저들의 입장에서는 나에 대한 이름을 듣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는 지불과 그에 따른 이익이 맞물렸기에, 앞으로 더 많은 교류를 하자는 신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친하게 지네요.’라는 뜻이겠지.

 

아리엘이라...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로 미인이실 줄은 몰랐군요.”

 

나는 이곳에 온지 1개월도 안 되었는데 명성이 나올 리가 없다. 날 품평하는 녹안은 계속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미인인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지만, 그런 말을 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그런데 옆에 둘은 누군가요? 친구?”

 

친구라기보단 제 가문의 시종들입니다.”

 

가문? 브레체투스 가문은 대체 어떤 가문이길래, 저 도련님과 같은 사람을 2명씩이나 졸졸 따라다녀야 한다는 거지? 나중에 켈모리아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렇군요.”

 

나는 이 말을 한 뒤에 대답을 끊으려고 했지만,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내 앞에 있는 남성은, 밝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아름다움의 가치는 거대한 성 3개를 받쳐도 모자랄 판이네요. 나라 하나를 잃어도 될 정도로 진귀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말에 저희 가문에서 열리는 파티의 초대장입니다. 만약 오시게 된다면 파티장에 커다란 주역으로 띄워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대가는요?”

 

제안을 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 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미소. 아리엘 씨의 미소를 보고 싶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대가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피어 올랐다. 말 그대로 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에게 제대로 된 허점이 찔리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이 되어버렸는데,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천천히 자리를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파티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리엘 씨.”

 

켈모리아도 같이 데려가도록 하죠. 그럼 안녕히.”

 

져버렸다.

협상에서 져버렸다.

정말 능숙하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남자가 있을 줄이야. 행정학원의 학생회장이란 자리를 그냥 앉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당해버렸네. 그래도 좋은 친구 얻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

 

뒤에서는 양손의 거대한 장갑이 음료를 들며, 빅터가 웃는 모습으로 나에게 입을 열었다.

 

좋은 친구?”

 

브레체투스 가문의 재력은 제국 하나를 살 정도로 뛰어나거든, 애초에 행정학원장의 아들이니까. 좋은 친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좋아.”

 

행정학원장의 아들?

부잣집 도련님을 뛰어 넘은 초월적인 존재라도 되는 건가?

나는 방금 전에 괴물을 상대로 싸워왔다는 소리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