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36
336
절대적인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항상 옳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명의 여신이 데모르테가 본 나의 최후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 가를 추측할 때, 잡화점 안에서는 내 주변에서 레시아와 시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멀뚱멀뚱하게 보는 검은 고양이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주인?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숨 셔요. 아니, 어떻게 해야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 말을 들은 레시아와 시나는 뭔가 반가운 기색이 없이, 아직까지 나를 멀뚱멀뚱 보기만 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스터. 공중을 떠다니시면서 생각하는 것도 가능했습니까?”
“응? 아니? 내가 아직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
-콰앙!
아직 가능할 리가 없는 일을 해낸 내 자신에게 깊은 저주를 내리고 싶었다. 아니면 이번에도 잡화점이 나에게 장난을 한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지.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방치하는 차원에서 소매로 닦아내고, 레시아에게 천천히 물어보기로 했다.
“생각을 해보면 절대적이라는 말 자체는 고정형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분명 어딘가 죽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는데, 가장 간단한 것은 제가 신인류 사건에서 멀어지면 괜찮아지지만, 애처롭게도 그런 일을 하면 세상은 크나큰 혼돈에 휘말리게 되어버려요.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역시 주인도 살아남을 수 있고, 세계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백장미를 찍는 것인가?”
“사진 하나 찍는 걸로 잘도 살아남겠다!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껏 싫다고 해도 나를 강제로 여장시켜 찍어놓은, 불 태울 때 사용해야 할 장작대용인 그 잡지가 이룬 업적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마저 백장미를 찍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뭔가 좀 더 기발한 방법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터. 팔랑크스는 3층에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 육중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줬다.
“마스터. 어제까지만 해도 죽음에 대해서?”
시나는 나의 태세변환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에 대해, 차분히 말로 설명을 해야만 했다.
“아까 엘티노스를 만나고 왔어. 여태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은 옳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었지만, 지금 엘티노스가 없었다면 계속 틀린 생각을 맞는 답이라고 우기고 파멸로 갈 뻔했지. 지금 당장은 살아남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야.”
시나는 “마스터...”라며 감동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0.3초후에 “그래서 본심은 뭔가요?”라고 시나가 물어보자 나는 즉답했다.
“죽어서도 백장미를 찍는 것은 사양이야.”
분명 아우리스 여신이 주도하면서 이것저것 찍어버릴 것이 분명해. 설령 아우리스 여신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어라? 죽었네. 자 부활. 끝.”이런 감정도 양심도 없는 3단계의 인지단계로 나를 되살려낸 뒤에, 뭣도 모르고 부활한 나에게 무서운 일을 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베가프만 하더라도, 이미 추기경 후보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를 찾아내서 부활시키는 것은 베가프도 가능하다. 부활을 해야 할 때의 시간 제한이 너무 촉박하지만 가능한 것은 가능한 일이다.
“살아서도 찍을 것은 찍어야 한다.”
레시아의 말 한마디에 나는 “시끄러워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래도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주니, 두 사역마는 평소와 같이 나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본래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명언이 존재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필사적으로 살고 봐야 그 다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 말은 전쟁이 터졌을 때 부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한 말이지. 지금 사용해서 적용할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지금 신인류들의 움직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내 질문에 시나는 입을 열었다.
“상황이 좀 심각해졌습니다. 마스터. 지금 칸포리우스 제국에 있는 병사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부터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은 승산이 없는 싸움일 터. 그렇다면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초월의 의식 재료로 전쟁을 벌일 생각이네요. 전쟁협정이고 뭐고 전부 무시하고 가장 약한 곳부터 침공하려 들겠죠.”
“가장 약한 곳이라면? 어디인가? 주인.”
“이곳이에요. 파이론.”
내 머릿속에는 이미 간의 지도가 나타난 상태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륙에서 북부 쪽에 위치한 이곳에, 가장 위에는 리벌트가 있고 그 아래는 칸포리우스 제국과 하란국이 각자 영토를 지키고 있다. 칸포리우스 제국 밑에는 실버 크라운과 몬스터의 숲. 하란국 밑에는 곧바로 아르칸 제국의 영토가 맞붙어있다. 거기서 또 살짝 밑으로 가면 프리트론이 있고 프리트론 남부로 살짝 만 더 내려가면 파이론이 있는 위치. 하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칸포리우스 제국이 우리를 먼저 치기에는 복잡한 절차를 걸쳐야 한다는 지리적 우의를 점하고 있다. 게다가 몬스터의 숲이라는 곳은 크기가 너무 커 칸포리우스 제국 밑부분부터 프리트론을 감싸고 파이론을 휘감아, 남부까지 뻗어나가 카멜롯이라는 복합 기관까지 나타나있으니. 평범하게 생각하면 파이론부터 칠 수 없다.
“하지만 적은 아직까지 파이론에 누가 살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제일 먼저 비공정에 마장병기를 태워서 탭댄스를 출 생각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 잡화점이 있다는 소식은 전혀 못들은 것 같네요.”
“하지만 마스터. 적은 이미 잡화점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시 잊어버리는 것이 가능한지요?”
시나는 내 어깨 위에 날아오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야 말로 잡화점의 미스터리지. 잡화점은 주기적으로 잡화점 멤버나,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잡화점에 대한 인식을 계속해서 초기화 하고 있어. 따라서 적은 이곳에 잡화점이 있는 것을 확인해도, 얼마 후에는 잡화점의 존재는 없어진 상태이고 무조건 빈 공터라고 생각하겠지. 저번에 티르가 호문쿨루스들을 이끌고 공격한 이유는, 그나마 티르의 정신이 정상적이었을 때라서 그래. 지금은 트리니티에게 조종 받고 있으니까 제정신은 아니지.”
여전히 잡화점에 미스터리는 끝도 없지만, 잡화점의 방어기능은 말이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
“하지만 파이론 마을 주민은 잡화점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건 잡화점이 알아서 한 거겠죠.”
아직까지 해명하지 못한 잡화점의 기능들을 멋대로 생각하는 게 가장 머리가 아픈 일이다. 어쨌든 비공정과 마장병기가 존재하는 칸포리우스 제국의 전투력은 으뜸이라고는 하지만, 제국 2곳과 왕국 하나를 사이에 끼고 전쟁을 벌여서 승리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금 교황과 내전까지 벌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전쟁에서 이길 확률은 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하겠다는 소리는, 초월의 의식재료로 사용하겠다는 소리이지만, 아직까지 기묘한 것은...
“그럼 어떻게 그 많은 희생자들을 초월의 의식 마법진 안으로 넣을 생각이지?”
초월의 의식은 마법진의 크기만큼 범위이고, 그 범위만큼 제물이 필요하다. 생명을 가졌던 모든 것들을 제물로 받칠 수도 있고, 그 제물은 크면 클수록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는 것을 바치는 일. 전에는 어릿광대가 기절한 병사들을 한 가득 먹어 치우고 발동한 기억이 있었지만 지금은 과연 어떻게 될지.
“전쟁이 시작되어 파이론부터 공습이 시작하는 것이 제 생각에 맞는다면, 저도 다 계획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애초에 전투에 관한 지휘는 레시아가 총감독으로 하면 될 테니까요.”
“전쟁은 아직 경험이 없는 주인을 대신해서, 짐이 대신 지휘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게다가 짐은 운이 좋게도 마왕이다. 앞에 놓여진 공공의 적을 보고는 그 적을 분쇄하는 것이 짐의 취미 중 하나이니라.”
여유만만한 고양이는 가벼운 목소리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보다 취미가 아니라 특기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나저나 주인. 언제부터 주인의 몸 안에 여우신령이 없어졌는가?”
“아. 이거요?”
천계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아랑을 불러서 다시 베가프에게 보냈다. 아랑이 말하기를 오늘쯤이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시간이라며, 나에게 한가지 기적을 선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천천히 변화하는 것을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천계에 다녀온 탓인지 피로가 느닷없이 몰려왔다.
“제길! 왼쪽 무릎이 하품하고 있어!”
사실 무릎이 하품을 할 일은 없지만 순식간에 다리가 풀려버렸다. 온 몸에 피로와 무기력함이 어깨동무하며 쳐들어와, 내 온 몸의 기능을 순식간에 저하시켰다. 말을 거창하게 하면 이렇고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눈떠 있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도 내가 쓰러지기 직전에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듯이 누군가 감싸고 있었다.
“왼쪽 무릎이 하품할 일이 없지 않는가? 주인은 가끔 보면 정말 이상한 소리를 잘 한다.”
“비유가 그렇다는 거죠...그보다 낮잠을 아직 안 자서 그런지 몰라도, 눈을 좀 붙이고 있을 게요. 그냥 어디 대충 잘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곳에 던져버리세요. 땅바닥이라던가 책상 위라던가 그런 곳에다가.”
지금은 마냥 눈을 감고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기에, 조용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막상 ‘내가 자고 있었나?’라고 혼동하기 쉬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시간은, 몸에 상쾌한 기분과 더불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알아차렸을 때. ‘아. 나는 자고 있었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은 잠을 자기 전과, 자고 난 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정신세계에서는 그냥 0.5초정도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 붙이는 감각. 뭔가 포근한 기분이 들고 있는 것은 두꺼운 이불을 덮어줬다고 생각하여 기분 좋게 눈을 뜨며 바라봤다.
“아. 주인 일어났는가?”
“마스터. 일어나셨습니까?”
두 명의 사역마가 나를 올려다 보며 인사했다.
두 마리라고 붙이지 않는 이유는 레시아와 시나가 전부 인간형으로 변해있었기 때문.
두꺼운 이불 안에서 머리만 나온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말했다.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
너무 절묘하게 가려져서 정말 머리만 있는 줄 알았다. 주온인가? 그 이불 속에서 나타난 귀신과 비슷한데? 오늘 부로 이 장르가 공포 장르로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너무 놀라서 이불 밖으로 튀어나갔을 때. 내 다리와 팔의 길이가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걸로 봐선,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본래의 21세인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 팔 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더니, 강력한 힘으로 다시 이불 속에 끌어 당기려고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기겁한 체 물어보기 시작했다.
“잠깐! 레시아! 시나!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에요!”
나는 바닥에 손을 붙잡고 버티고 있지만, 레시아는 나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주인이 없으니까 춥지 않는가? 빨리 이불 안에 들어와서 난로역할이나 하거라.”
“뭘 들어가요! 이제 저녁 7시인데! 잡화점을 열어야죠!”
어째서 저 둘 사이에서 숙면을 취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레시아와 시나가 힘을 더 강하게 주자, 내 발목이 한 순간에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마스터. 5분만 더. 아니 5일만 더 같이 있어주세요.”
“5일은 또 뭐야!”
“잘못 말했습니다. 5년만 더.”
“내가 어디 동면중인 드래곤이냐! 5년은 어떻게 자야 하는 건데!”
공포만화나 소설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목숨을 위협받는 기분을, 여기서 지금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내 모습을 우연히 떨어져 있는 거울을 통해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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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체험 제대로 하는 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