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 마법학원의 비서 - 02
02
카멜롯에는 다양한 놀이거리가 넘쳐 흐르는 공간이 아닌, 배움의 종합세트라고 보면 가장 간단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빅터의 소매를 붙잡아가며 창 밖을 보는 경치는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 말이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냐고 한들, 현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보게 된다면, 그것마저도 새로운 시야가 되어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게 된다는 소리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살짝 애매한 감이 있기에 감평의 점수는 70점 정도.
“저기. 학원장에게 너를 소개하러 가는 거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꺼야. 기억상실이라서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면, 이 참에 생각을 해두는 것이 어때?”
빅터는 온화한 미소를 돋보이며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시선을 마주쳤다. 당연히 담담하게 바라볼 뿐인 눈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생각해볼게.”
“힘들면 말해. 꼬마 아가씨. 나도 한번 예쁘고 멋진 이름을 생각해볼 테니.”
예쁘고 멋지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니면 때려도 된다는 소리일까?
이것은 나중에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지금은 너무 어설플 정도로 짧은 스커트가 학원의 복장으로 채용된 사실에 대해 따져야 하니까.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며 이 학원의 풍기를 되찾아오는 새로운 사람으로 먼저 인식이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에 만나게 된다면 맨 처음에 말할 것은 인사 대신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100분밖에 주어지지 않아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게 되긴 하지? 애초에 그 학원장은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된 취미를 가지고 있거든. 그래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
“긴장한 적은 없어. 아직 만나지도 못한 학원장에 대해 멀리서라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중이니까.”
투덜거리는 말이 나오게 된 계기는 역시나 빅터의 말 때문이었다. 애당초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취미에 관해서 얼마나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나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 ‘일부러 나를 놀리는 것인가?’하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빅터의 눈부터 입까지 일심동체로 웃고 있었다.
“빅터.”
나는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는 ‘의도를 알아차렸으니, 한번만 더 놀리면 붙잡은 소매로부터 원심력을 이용해 바닥으로 매쳐버리겠다.’와 비슷한 메시지를 눈으로 보내자, 그걸 단숨에 읽고는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꼬마 아가씨.”라고 달래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가 스스로 화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얼마나 걸어야 나오는 것인지 모르는 학원장실에 대한 거리를 조용히 생각했다.
“참고로 너를 만나고 싶어하는 학원장님은 마법에 관련된 분이시니까.”
“마법에 관련? 카멜롯은 종합기관이라고 했는데, 학원이 대체 얼마나 많이 들어서있는 거야?”
빅터는 천천히 머리에서 내가 알아듣기 쉽게 정리를 하고 나서, 왼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하나 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멜롯은 본래 검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성지와 비슷한 곳이었으니까, 검술 및 병기숙련에 관한 학원장님이 한 분. 마법에 능통한 학원장님이 한 분. 상업과 경제의 흐름을 잘 보시는 분이 한 분. 그 외에는 왕국의 전통과 역사 및 예절을 잘 아시는 분. 총 5명이 카멜롯의 학원지부를 모두 관리하시지.”
“학원지부라니. 카멜롯이라는 곳은 도시 이름이야? 얼마나 넓어야 그런 게 가능한데?”
이미 왼손에 있는 모든 손가락을 다 펴고 있는 빅터가, 정면을 바라보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맨 처음에는 그리 커다란 땅은 아니었는데, 이것저것 붙이다 보니까 땅이 커지고 불어난 기분이라고 할까? 옛날에는 부족들이 이리저리 싸우다가 합쳐져서 커다란 땅이 되었다는 그런 형식이라고 배웠어. 나도 근래 대학원에 들어간 팔자니까 말이야.”
이 말은 결국 옛날 이야기라는 소리인가.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알아서 멈출 것 같은 말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더 좋겠지. 나 또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제발 바람이 불지 않기를 빌어야만 했다. 무릎 위로 6cm는 너무 했으니까.
“애초에 기억상실이라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꽤나 답답한 기분이 들 것 같아. 지금은 어때?”
이번에는 빅터 쪽에서 나에게 질문이 보냈다. 기억상실이라서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답답한 경우는 크게 3가지 경우가 있는데, 단기기억 상실에 경우에는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못 찾을 때 하나. 또 다른 것은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일을 까먹었을 때. 마지막으로 장기기억 상실에서 자신의 눈 앞에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경우에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해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고, 애초에 눈을 뜨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다가 고블린의 마비독이 발라져 있는 침을 맞고 쓰러졌는데, 그런 걸 생각하며 답답해 하는 것이 더욱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구출 받은 것에 더욱 더 집중을 하고 감사를 해야지. 알 수 없는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답답할 이유는 전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잃어버린 기억에는 관심이 없어.”
돌려줄 대답은 이거 하나였다.
매정하게 과거를 찾지 않겠다는 각오.
“꼬마 아가씨는 꽤나 강직하네. 누가 보면 정말 지옥이라도 휘저으며 탈출한 사람 같다니까?”
지옥을 휘저으며 탈출한 사람 같다는 말.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저것에 신경을 쓴다면 분명 뇌세포에 분노가 퍼져서 머리를 뜨겁게 달굴 것 같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의도를 파악하고 빅터에게 화를 내기 전에 무시하는 거다.
저 말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자.
여전히 오고 가는 잡담 사이로 20분을 걸어 다니고 있을 무렵. 거대한 도서관처럼 보이는 문이……아니, 문 앞에 정확하게 도서관이라고 적힌 문구로 보아, 이 곳은 도서관이 확실하다. 설마 도서관이라고 적힌 이 문을 열고 바라본 풍경이 달라지기라도 할까? 빅터는 왼손을 천천히 움직여서 문틈으로 살짝 무언가를 확인한 후에 입을 열었다.
“위험해!”
정확히는 외치면서 나를 감싸고 몸을 문과 반대방향으로 날리자, 도서관이라고 적힌 문짝이 빅터의 등 위로 날아다니며 비행을 하기 시작했고, 거대한 폭발음이 내 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혼란의 연속인 나날을 겪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익숙해지려면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을 때. 빅터는 나를 보며 “괜찮아?”라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은 말이야.”
폭발의 여파는 자신이 대신 받는다는 의지로 나를 감싸며 날아갔는데, 오히려 자신 걱정을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샤워를 한 것인지 아닌지 몰라도, 좋은 향이 내 쪽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너무 많아 파 묻혀버릴 정도로 많은 양이라서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이제서야 무겁다는 거라던가 남이 보면 오해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비켜. 무거워.”라는 말을 했다.
“어라? 미안해~ 잠깐 약물실험을 하느라 좀 터져버렸거든!”
날아가버린 문 넘어 들리는 소리는 여리고 맑은 나의 목소리와는 달리, 농후하면서도 끈적한 성숙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내 손을 붙잡고 빅터가 나를 일으켜주는 동안 높은 구두소리가 한 단계씩 높아지고 있었을 무렵. 또 다시 내 귀를 녹일 듯한 말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옷 정말 잘 어울리네. 데려가서 장식하고 싶을 정도로.”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수도를 휘둘렀지만, 정작 피해를 입고 쓰러진 것은 공기에 떠다니는 나뭇잎들 밖에 없었다. 짧은 거리를 순간이동 하면서 거리를 좁혔다가 다시 벌리다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마법사가 맞는 것 같았다. 그것도 저렇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학원장이라니.
“들어오도록 해. 방은 치우지 못해서 엉망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귀엽게 혀를 내밀며 이야기를 한 학원장의 뒤를 따라서, 천천히 도서관인지 포화지역인지 알 수 없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방금 막 폭발한 곳에서 청소를 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나는 호수와 같은 넓은 마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이제 슬슬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위해 입을 벌리려고 했다.
“안 돼.”
아직 한 단어도 뱉은 적이 없는데.
“보나마나 스커트가 너무 짧아서 수정해주세요. 라거나 그런 거겠지?”
말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단숨에 알아차리고 맥을 끊었는지 몰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말해야 직성이 풀렸다.
“맞아요. 지금 이 스커트는 너무 짧아요. 학원지부가 5개가 있다고 해서, 마법 학원의 복장이 이런 옷차림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쉬워 보이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요.”
“걱정 마. 피임마법은 확실하게 작용하는……”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째서 이 사람은 사건이 터진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학생들을 이미 사지로 내몰아버린 상태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부모사자의 심정을 대신 대변해주고 있는 것? 애초에 절벽에서 밀치는 것은 살아남을 수 있는 정도가 있긴 하니까 밀쳐도, 범죄에 충격에 빠진 여성들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괜찮아. 여긴 다른 지부의 학원보다 연애에 관해서 자유롭거든.”
그걸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해 봤자. 이 사람의 귀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커피 좋아해? 아니면 차?”
“커피로 하죠.”
“설탕이나 크림은?”
“필요 없어요.”
다시 주제를 전환하기 위해 내 앞에 학원장이 꺼낸 비장의 무기는, 향긋한 커피향으로 가득 차 있는 커피포트와 깨끗한 컵이었다.
“나는 ‘켈모리아 마그누스’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여러 가지 의미로♥”
‘너무 개방적인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라는 수칙이 내 머릿속에서 생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학원장에게 전해줄 이름은 만들지도 않았다. 아무튼 커피를 입에 살짝 적시는 그 순간, 상당한 고통이 온 몸을 끈적하게 핥고 지나갔다.
“앗! 뜨거….”
커피를 마그마를 이용해서 끓인 것인지 몰라도, 온도 조절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고양이 혀네. 이게 얼마나 뜨겁다고. 스릅. 앗 뜨거!”
누가 누구더러 고양이 혀라고 놀렸는지 모르겠지만, 혀를 살짝 내밀며 식히고 있을 때. 빅터는 자신의 임무를 위해서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에, 저 불길해 보이는 범죄 예비자와 나만 남기고 돌아가버렸다.
“그래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어디에서 사는지는 모르겠고, 자신에 대해 누군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거지?”
“대체! 당신은 어떻게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거에요?”
“나는 마법사의 길 달인의 경지야. 애초에 마법에 대한 세부적인 분류로 나눠, 원소술사, 연금술, 마법공학, 염동술사 등. 여러 가지의 길이 있지만, 나는 그 모든 마법을 통틀어 달인에 올랐으니, 진정한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그 마법중에는 정신마법도 확실히 들어있기도 하고 말이야.”
한 마디로 내 앞에는 괴물이 앉아있는 것인가?
확실히 즐거운 대화를 하기에는 글렀다.
내 앞에서 불쑥 “어쨌든.”이란 말과 동시에 다른 곳에 팔려있던 나의 정신을, 다시 학원장에게 집중시켰다.
“이름이 없다면, 그럼 이름은 즉흥으로 지어볼까? 앞으로 내 밑에서 일하고 마법을 배울 텐데, 내가 그 정도는 해 줘야지. 학원장의 비서라고나 할까?”
“본래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어떤 수준의 지식을 습득했는지, 시험이라던가 다른 것을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 먼저…. 아. 마법에 능통하다고 했지.”
도중에 내가 할 말을 잃고 힘 없이 떨어진 이유는, 내 앞에 있는 학원장은 이미 나와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끝나있던 상태였기 때문. 더 이상 내 입만 아프다는 슬픈 현실을 깨닫고 마음속으로는 제발 이상한 이름이 아니길 빌어야만 했다.
“아리엘<Ariel>. 어때?”
“상관 없어요.”
“예쁘다거나 마음에 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구나. 아무튼 그걸로 괜찮지?”
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으면 우선 스커트부터 짧게 하
“안 돼. 그게 더 귀여운 걸?”
어느 사이에 내 위로 순간이동을 했는지, 내 목을 감싸며 무릎 위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와아! 나도 이렇게 예쁜 비서를 얻었다!”라며, 어린 아이같이 좋아하는 학원장의 응석을 한동안 받아줘야 하는 내 운명에 나 스스로가 애도를 표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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