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332
332
날려진 시간은 어차피 날려진 시간이니 뒤로하고 정신을 차렸을 무렵, 본격적으로 칸포리우스 제국에 침공할 준비를 하는 것일까? 하고 30일정도 빠른 생각을 한 나는, 하멀 씨와 만나기 위해 왕국 중앙 시장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유독 손님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추운 날이고, 시간대도 배고픈 시간대이기에 분명 식사를 하러 온 것이리라 생각을
“저기 봐! 여우 귀와 여우 꼬리야!”
“귀엽다! 가지고 싶다!”
하리라...믿어야만 했다.
애석하게도 이곳의 사람들은 동물 귀와 꼬리가 달린 어린 아이를 보고도, 뭐라고 놀랜 표정을 짓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남녀가 다 모여서 나에게 다초점 레이저를 발사하는 듯한 효과를 지니고 있으니, 송곳처럼 뾰족한 시선은 따갑다 못해 아팠다. 애석하게도...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약속을 잡아놓고 하멀 씨에게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저만 쳐다봐서 못 있겠네요. 다른 곳으로 옮겨서 만날래요?”라고 물어보면 “어이, 평민. 네놈은 날 똥개훈련 시키는 거냐?”라며 황금빛의 굵고 아름다운 빛 줄기가 지금 내리고 있는 함박눈 대신 쏟아져 내릴 것이라 본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이 유부인지 아니면 골판지인지 모를 정도로 시선에 대한 압박을 의식할 때, 아랑은 나에게 태연할 정도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기적을 4번 사용할 만큼의 신앙이 모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베가프와 같이 다니는 것도 좋지만, 카일과 같이 다니는 것도 좋군. 아무래도 요일을 편성해서 붙어있어야겠다. 휴일은 베가프에게 붙고, 평일은 카일에게 붙는...]
[평일에 레시아와 시나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저는 시간이 되면 없어질 존재라고요. 운명의 여신 데모르테가 그리 말했으니 저는 아마...]
[그런 섭섭한 말 하지 말거라. 살아있는 동안 좀 더 많은 신앙을 모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니. 베가프에게 말하면 빠르게 부활시켜줄 것이라 믿는다고?]
아우리스를 믿는 빛의 대성당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하고 있는 베가프에게는 부활 주문이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내가 죽는다는 말에 이는 부활이 효과가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크크큭. 왠 여자들이 모여있길래 봤더니 꼬마 하나만 있잖아?”
왠지 모르겠지만 덩치 큰 아저씨 3명이 나를 둘러싸고는 험악한 분위기로 입을 열고 있었다. 한 명은 오른쪽 눈꺼풀에 베이기라도 했는지 흉터가 콧등을 내려와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뺨에 X자 표시로 흉터가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내 시야상 뒤에 있으니 볼 수 없어서 패스.
“형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걸 준비해라. 이 꼬마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저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초면인 것 같은데, 대체 무엇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애초에 이야기를 할 때는 기승전결 중에서, 기와 승은 절대적으로 구체화가 되어있어야 하지 않는가? 나를 만나자마자 둘러싸고는 미리 ‘전’에 해당하는 내용을 말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라고 물어볼 것이 뻔하다.
한 명이 품 안에서 거칠게 무언가를 뽑아 올렸고 입을 외쳤다.
“백장미에서 나온 모델 중에서 한 명 맞지! 싸인 해줘!”
지금 당장이라도 시공간을 찢어서 이 곳으로부터 머나먼 곳까지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단숨에 들었다. 애초에 13호는 언제 냈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느닷없이 14호라고 적힌 종이의 맨 앞장부터 어린 나의 사진이 시야에 비추었을 무렵. 그 3명의 남성이 각자 내밀고 있는 백장미인지 뭔지 하는 저주받아야 마땅할 물건에 어쩔 수 없이 마나를 이용해서, 내 이름...까지는 아니고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그을리기만 했다.
날려진 시간에는 루니아 누나가 14호집을 찍는다고 뭐라 한 것까지 날아간 것일까?
“드디어 평생의 가보가 나타났다! 와!”
“두목! 이걸로 우리 집단에게 자랑하러 가죠!”
“오늘 할당량은 다 채웠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각각 다른 말을 하는 저 3명의 남자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맨손을 집어 유부초밥을 먹기 시작하도록 했...
“저기! 나도 싸인 부탁해!”
“어디서 많이 봤다고 했더니!”
제길. 태연함이 부족했던 것인가? 그 남자들 때문에 몰려온 여성들의 인파로 이미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가게에서는, ‘이곳이 음식점인가? 싸인회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최대의 난중을 겪게 만들었다.
[아랑. 이거 신앙으로 어떻게 못해요?]
[인기 있는 자의 숙명이다. 어서 싸인이나 해주거라.]
도움 안 되는 여우 같으니.
통제가 안 되는 공간에서는 무서운 공간 속에서는 싸인 뿐만이 아니라, 사심을 가득 품고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존재하려나 싶었지만, 음식점 문 밖에서 거대한 발포소리와 함께 황금빛의 마탄이 지붕을 뚫자, 모두가 조용해지며 문 쪽으로 시야가 쏠리기 시작했다.
“평민이 가는 곳은 항상 시끄러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다 자리에 앉아. 아니면 체포하기 전에 머리부터 뚫는다?”
하멀 씨의 상놈기질...아니, 상남자기질이 모든 이에게 치명상처럼 남아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기까지는 2초라는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 검은색의 제복으로 사신처럼 나타나, 거대한 황금빛 살기를 내뿜는 두 눈과, 태양에게 이어받은 듯한 곱슬거리는 황금색의 머리카락을 총구로 긁으며 내 앞에 천천히 강림했다.
“요즘 따라 평민이 나를 묘사하는 구간이 상세해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제정신이 아닌가 보죠.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제 어디로 수사를 해야 하는 겁니까?”
“다른 잡화점 멤버들은 너를 대리고 사건 조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너는 할 마음이 가득하니 특별히 말해주도록 하지. 루노아가 오랜 추적 끝에 신인류의 최종본부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한 것 같으니, 그곳을 습격해서 정보를 빼내올 거야. 당연히 무너뜨린다거나, 파괴한다거나, 지도에서 지우는 방법이 효과적이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밤에 습격을 하는 거지.”
“밤에 습격을 하기에는 최종본부라면 꽤나 경비가 삼엄할...”
“윈디 메르아하고 같이 가면 괜찮아. 바람의 정령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니까.”
바람 그 자체인 윈디와 같이 빛의 대성당에 있는 지하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도, 실컷 떠들면서 태클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은 신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엘리시아가 전에 파르온에게 발각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거기에 윈디와 잠입하기에는 꽤나 어려울 것이라고 봐요. 엘리시아가 좀 엉성해 보여도 이제 아카드 가문의 권능과 힘을 다 이어받았잖아요? 게다가 엘티노스도 증거를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들어서, 지금 증거를 계속해서 모아봤자 종이가 더 아까울 지경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평민의 말에도 일리는 있네. 이제 수사관 해도 되겠는걸? 네가 수사관 할래?”
“아뇨. 사양하죠.”
하멀 씨는 그래도 농담이나 비꼬는 말투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 증거로 하멀 씨는 황금을 녹여 만든 눈동자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지금 빛의 대성당에는 아우리스 여신님의 신탁을 받아서, 칸포리우스 제국에 불길한 움직임이 보이면 직접 응전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애초에 증거를 모은 것은 너뿐만이 아냐. 네가 말한 엘리시아도 증거를 모았고, 어릿광대와 더불어 맹수 조련사도 분명히 활동을 했지. 각 나라에 있는 지도자들도 비밀리에 움직이면서 말이야.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포리우스 제국은 굳건하다는 거야.”
모두가 칸포리우스 제국에 대해 한 순간에 반격할 준비는 끝마쳤다고는 하지만, 칸포리우스 제국은 너무 대범하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있다는 점.
“마장병기를 10대나 보유하고 있는 최강의 전투력이라고 해도, 마왕이 한번 나타나면 그건 거의 물거품으로 사라지거든, 애초에 타락의 마왕 레프리시아 이전의 마왕 전투력은 분명 마장병기 3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따라서 지금은 칸포리우스 제국이 아직도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거야. 정확히는 신인류의 본진까지 들어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싸움에서는 항상 비밀카드를 숨겨놓는 것이 당연하지만, 전 대륙을 적으로 돌려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칸포리우스 제국만이 가지고 있는 대담함이라 생각한다.
“그럼 그 이유를 찾으러 가보자는 소리죠?”
“그야 당연히 그래야지.”
가게 주인이 손을 벌벌 떨며 커피잔을 하멀 씨에게 천천히 내려놨다. 방금 마탄을 자기 멋대로 쏴서 천장을 뚫어놨으니, 신고하고 싶어도 프리트론 왕국의 수사관이라서 신고도 못하는 모양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겁을 먹은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는 하멀 씨는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한가지만 물어보자.”
“어떤 건데요?”
“정말로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뒤로하고, 떠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거냐?”
나는 잠깐 고민을 했다.
지금에 와서 모두를 놓고 떠나는 막막한 심정이 자리잡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정지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하멀 씨에게 이상한 소리 한번 제대로 잘못 날리면, 지금 저 총구가 내 이마 앞으로 나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니까.
“이걸로 딱히 영웅이 되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애초에 운명의 여신이 말했다고요? 제가 희생을 하는 것으로 이 지긋지긋한 신인류와 트리니티를 끝장낼 수 있다고. 그것은 절대적이라고 이미 들은 제 입장에서는, 신과 여신은 숭배하지 않지만 한 가지의 신탁이란 소리는 맞잖아요?”
하멀 씨는 의외로 나에게 성급히 총을 겨누거나 그러지 않고, 가만히 내 말에 경청을 하고 있었다.
“모두를 뒤로하고 떠나는 것은 슬픈 일이죠. 당연히 슬퍼하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니까요. 그래도 그런 감정 때문에 지체되어 사태가 악화되는 그런 일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니 괜찮아요.”
“뭐 그렇네. 지금 당장 죽을 운명이었다면 내가 직접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었겠지.”
그러지마.
무서우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 어처구니 없는 운명이네. 마치 영웅 엘티노스를 그대로 이어받으려고 하는 그런 느낌이잖아? 잡화점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삶을 산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영웅과 같은 일을 업적을 남긴 것일지도 모르지.”
분명 잡화점의 전 주인 중에 한 명은 미쳐버려서 감옥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가봐야 할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에게 가도 될까요? 분명 잡화점을 운영하다가 미쳐버려서 감옥이든 집이든 어디든 숨어서 ‘이불 밖은 위험해!’를 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하멀 씨는 어느 사이에 커피잔을 다 비우고 난 뒤에, 나보다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으면서, 나보다 일찍 계산하고 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가게 주인에게는 “커피에 설탕 1스푼 더 넣어. 안 그러면, 다음에는 지붕이 아니라 네 머리에 구멍을 뚫는다?”라고 계산인지 협박인지 분간이 안가는 말을 한 뒤에 나에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신인류의 본진을 습격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해볼까? 엘티노스 잡화점에 전 주인이 어떻게 미쳐버렸는지 확인이라도 해봐야 하니까. 언제 개복치마냥 죽어버리는 운명을 받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하러 가야 하는 것이 도리지. 안 그래?”
흔쾌히 승낙한 하멀 씨의 대답에 반응하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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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 근무 후에 부할 주문서를 쓰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