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5 [Refresh]
25
잡화점은 밤 8시에 항상 오픈을 하고, 레시아는 30분 뒤에 도착을 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기분이 우울해 보였지만, 내가 한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메이는 오랜 여행길에 지쳐있었는지 졸고 있다가 결국 자버렸고, 침묵이 강림한 이 가게에서 손님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티르빙은 계속된 신세한탄과 혼잣말을 득도했다고, 혼자서 뭐라 떠드는지 모르겠지만, 내 귀에서 붉은 빛이 발광했다.
나는 슬슬 이 침묵을 깨고, 레시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레시아. 똑똑!"
"들어와라."
"잠깐...거기선 "누구세요?"가 정석이잖아!"
"애초에 마왕성에는 문을 두드리면서 오지 않는다. 마계공작들은 자기 멋대로 텔레포트하거나, 짐이 부를 때 빼고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용사들은 성문을 부수니까. 저번에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마왕성을 그냥 오픈 했더니. 놀이기구가 많은 놀이공원으로 바꿔버리자는 몇몇 정신 나간 인간녀석들을 내 쫓아버렸지."
마왕성을 환상의 나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거기서 또 무슨 일 있어요?"
"주인은 몰라도 된다."
"아니 그래도..."
내 마나를 잔뜩 써가면서, 수 많은 육포를 먹으며 화풀이 해도. 위로해 달라는 분위기로 밖에 안보여.
"그래도 세상에는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아요. 레시아."
"호오? 짐이 주인보다 오래 살았는데, 세상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건가? 어디 그 갓난아기의 생각을 잘 들어보도록 할까?"
레시아는 가소롭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하기야 레시아는 마왕이라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살았을 테니까.
"그게 걱정되는 게 아니다. 짐은 마왕이다. 짐은 힘만 쓰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힘을 사용 안 하는 건데요?"
"멸망하니까."
그렇겠죠...
저번에도 최소한으로 줄였던 레시아의 마법해제<Dispel>는 파이론 마을을 전부 덮어버릴 정도로, 광범위하게 작용이 되었으니까. 아직도 육포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레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괜찮아요. 잘 되겠죠."
"흠...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역시 마왕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메이가 드라고니스로 가야 하는 것은 알고 있죠?"
레시아는 "뭐야. 또 그 소리인가?"라고 투덜거리면서 끄덕였다.
"레시아는 드라고니스에 가본적 있어요?"
"거기에는 가본 적이 없다. 애초에 짐은 도마뱀은 싫어한다. 하기사 그 도마뱀들도 짐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튼 싫어한다."
드래곤을 많이 싫어하나 보다. 나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티르빙이 드라고니스를 예전에 상공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해서요."
"저 검쪼가리가?"
"검쪼가리라니! 마왕님도 날 너무 무시하시네! 아이고 슬퍼라! 엉엉엉!"
티르빙은 눈물대신 불빛만 반짝이면서, 일정 간격으로 울고 있었다.
"엉엉엉. 어엉어엉어엉. 엉엉엉."
S...O...S?
"넌 우는 소리가 모스부호냐!"
이렇게 소란스럽게 떠드는 동안, 메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잠옷차림으로 나왔다. 눈을 비비면서 나왔고, 레시아는 메이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계집. 이리오거라."
메이는 레시아를 보고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가갔다. 메이가 가까이 가자 레시아는 메이의 작고 갸날픈 어깨에, 작은 고양이 발을 올리고는 뭔가 진단을 하듯 보였다.
"역시나. 본래는 혼혈마족인가."
"혼혈마족이요?"
"그래. 엘리트리아와 마계공작 중에서 '나태'표식을 가진 녀석의 자손이다."
그러기엔 메이의 식성을 보면 폭식에 가깝지 않아요? 나태의 자손이라면 분명 이럴 줄 알았는데. 잠시 회상 좀 해보자.
"메이야! 뭐하니!"
인자하신 선생님이 혼자 있는 메이에게, 다정히 다가가서 이야기 했다.
그러자 메이의 대답은...
"숨셔."
길게 대답하는 것도 귀찮은지 단답으로 끊어버렸다.
오늘도 이상한 회상이 깨지고 나서야,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나를 거울로 통해 발견했다. 나 늙어가고 있니?
"계집. 어째서 용의 이빨이 필요한 거지?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너희 일족을 멸하러 갈 것이다."
그러자 메이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용의 이빨. 일석이조. 엄마에게 증거. 아빠에겐 내 선물. 재료."
"...주인? 번역 좀 부탁한다."
그러니까.
"용의 이빨이 엄마에게는 증거가 되고, 아빠에게는 자기 선물의 재료가 되니까, 일석이조라는데요?"
대충 이렇게 조합을 하니, 메이는 고개를 3번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건 매우 긍정적이란 표시지?
"그런가...알았다."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레시아에겐, 더 이상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도 대답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여전히 손님이 와야 하는데 오지 않을 무렵. 시간대는 밤 11시. 그러자 입구 쪽에 걸어놓은 작은 종이 신나게 춤을 추면서...
"카일 형제. 오랜만이네."
은빛의 사자 갈퀴처럼 생긴 머리카락과 2M정도의 거대한 장신 실베스 씨가, 한 동안 안보였다가 잡화점에 나타났다.
"오랜만이에요. 실베스 씨."
"와우! 저 사자처럼 생긴 사람 누구야? 카일 형씨?"
"음? 형제여? 귀걸이가 말하고 있다만?"
아무래도 소개는 내가 해줘야 할 것 같다.
"제 귀에 걸린 이 녀석은 티르빙이고, 저기 앞에 있는 키가 크고, 여전히 험악한 표정으로 고정된 남자는 실베스 씨."
분명. 장가보냈을 때는 표정을 겨우겨우 바꿨는데. 어째서 또 고정이 되어버린 거냐. 아무튼 은색의 눈동자가 번뜩하더니 실베스 씨는 팔짱을 끼며, 근육을 과시하듯 입을 열었다.
"하하하! 말 들은 대로. 본인은 긍지 높은 웨어울프의 수장. 실베스라고 한다!"
"반가워! 난 마검 티르빙이야!"
분명 내가 소개한 내용과 다른 말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이름을 주고 받고 있었다. 어째서 인원 하나가 추가됐다고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지? 여전히 사람과의 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 깊은 생각에서 날 깨운 것은 실베스 씨의 질문이었다.
"형제여. 저기 박혀있는 돌덩이들은 뭔가?"
"아..."
저번에 나에게 모종삽 20개 사면서,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메테오 스매셔를 시전한 코볼트들의 짓이었다. 물론 몇몇은 박혀있는 것을 뺐지만, 박혀있는 5개의 돌덩이들은 빼내지 못했다. 물론 힘이 부족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음. 아무래도 보석의 재료가 되는 원석인 거 같은데. 나중에 감정을 받아보면 어떻겠나."
"실베스 씨는 광석에 대해 어느정도 아세요?"
"한 때. 나는 세공사의 길과 광부의 길을 같이 걸어가면서, 곡괭이 하나로 지하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게 된 이후에, 광부의 길은 포기했다네, 거기에는 사각형으로 된 사람들이 청록색 갑옷을 두르며 살고 있더군."
거긴 대체 어디에요?
"그래서 그런지, 돌덩이인지 보석의 원석인지는 보면 알 수 있다네."
그보다 그 사각형...아니 더 이상 언급하지 말자. 실베스 씨 말 대로, 그때 코볼트들이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투척을 한 돌덩이들이 보석의 원석들이라면, 이건 나중에 가공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 걸까? 라는 기대심과 가격이 안 나가는 보석이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무렵. 레시아는 여전히 메이와 뭔가 말을 하는 듯이 둘이서 있었다.
[주인! 도움! 도움!]
메이! 왜 또 먹으려고 하는 거야!
결국 레시아와 메이의 사이를 벌리고 나서, 나는 메이에게는 다시 자라고 부탁했다.
***
실베스 씨는 아기용품을 사고 나갔고, 한 소동이 지나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현재 새벽 0시. 오늘도 가위바위보는 패배했다. 주먹으로 이긴 레시아는 "무다무다무다!" 라는 희한한 소리와 함께 고양이 러쉬를 했다. 아파도 너무 빠른 난타에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3초동안 난 대체 몇 대나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무다!"
레시아의 마지막 외침을 끝으로 나는 날아갔다.
-콰앙!
저 멀리 날아가서 벽에 부딪친 다음에서야, 온 몸에서 타박상 경고를 하듯, 화끈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증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고, 고통을 꾹 눌러 참고 레시아에게 말했다.
"아프잖아! 방금 보호마법 아니었으면, 난 벌써 사신과 함께 배를 타고 강물을 구경하고 있었어!"
"단무지의 재료는 무다!"
"단무지가 여기서 뜬금없이 왜 나오는 거야!"
가면 갈 수록 방향성을 잃어가는 대화에도, 최선을 다해 태클을 거는 나의 모습을 보아하니, 처량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메이가 혼혈마족인데, 제가 볼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나태의 공작이 계집 안에 있는 마기를 봉인해둬서 그렇다. 지금은 인간이라고 보면 더 편하지. 하지만 딸 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주기 위해 그런지 몰라도. 그 녀석은 한 때. 키메라 군단 양성에 미친 녀석이니까."
"그러면 그 용의 이빨은?"
레시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딸을 실험체로 쓰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추측이지만, 만약 그런 짓을 저지르면 가만히 두지 않아."
레시아 또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의 일에는 거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나는 레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 뭘 하는 거냐?"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 같아서요. 이렇게라도 달래줘야죠."
"흐음...뭐. 머리 쓰다듬기가 탑재가 된 마나창고라. 짐은 더욱 환영한다."
"마나창고 이야기 잊혀진 거 아니었어요!"
내 장래 1순위가 마왕의 마나창고가 되는 투표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레시아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듯 나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짐이 이렇게 말했는데, 주인은 그 계집을 드라고니스로 대리고 가서, 용의 이빨을 획득하는 것을 도와줄 것인가?"
"우선 메이가 그러기를 원하니까요."
"흐응...결국 주인 취향은 꼬마 계집인가."
"이봐요! 그게 아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고양이 모습이 아니라, 귀여운 외모를 가진, 어린 여자의 모습으로 지낼 걸 그랬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다시 외형변경을 하려면 많은 돈을 충전하고, 뷰티샵에 들어가서 외형설정을 해야 하다니."
"그건 또 어느 세계에요!"
그러면서 레시아는 "쿡쿡쿡!"하고 작게 웃고 있었다. 이제서야 레시아의 기분이 좀 풀어졌는지. 나도 살짝 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이런 바보 같은 만담을 끝으로 그리고 레시아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그래서 외형을 설정할 때, 키가 작아도 큰 게 좋은가? 작은 게 좋은가?"
"그 얘기에서 좀 벗어나!!!"
아직 만담이 끝이 아니었나...?
다시 레시아는 사키엘의 문을 통한 드라고니스로 가는 방법을 서술했다.
"아무튼 그 검쪼가리의 소유자는 주인이다. 애초에 사키엘의 문은 되도록 한 명이 여는 이유는, 평소에는 각자 가고싶은 장소가 다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이미지와 집중력이 요구 되는 것도 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생각이 섞인 체 여러 사람이 문을 열려고 하면, 사키엘의 문이 혼란스러워서 저 하늘 저 너머에 있는 달로 보낼 수도 있으니까."
평소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막 사용했는데. 사키엘의 문도 알고 보면, 섬세한 물품이었다.
"반대로 여러 사람이 가고 싶은 장소가 일치할 경우에는, 사키엘의 문은 조금 더 능력을 발휘하여, 안전한 위치에 놔주지."
드라고니스가 어디인지 몰라도, 티르빙의 비공정으로 본 드라고니스로 향할 때, 여러 사람이 가고 싶은 장소가 일치할 경우. 사키엘의 문은 스카이 다이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안착시켜 준다는 말이 된다.
"그때 주인과 내가 비니스의 꽃을 꺾으러 갔을 때도. 한 번 그렇게 작용했다. 인원수가 없어서 산 중턱밖에 못간 것뿐이지만. 지금은 인원이 4명이니까, 문은 떨어져도 살아남을 위치로 이동시켜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건 안심이 안되.
그렇게 레시아와 잡담을 하는 동안, 잡화점의 새벽은 여전히 손님이 적은 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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