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35
235
지옥에서 벗어난 지 2시간이 지나는 동안, 정신적인 충격으로 한 동안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의 처절한 모습은, 우연히 내 앞에 있던 잡화점의 전신 거울로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상이 하도 엽기적이기 때문인지, 요청이 하도 엽기적인지는 몰라도 이 이상 내 정신에 상당히 해롭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으며,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지 2분정도 지날 때, 레시아는 천천히 다가와서 내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인. 몸살이 난 것인가? 아니면 감기라도 걸린 건가?”
“아픈 건 아니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리벌트 산에서 얇은 옷으로 1시간 정도 노출되었다고 해도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애초에 감기에 걸리는 것은 몸의 면역이 떨어져서 그렇지, 춥다고 해서 100%로 다 걸리는 게 아니에요.”
“역시 촬영할 때 입었던 옷이 파격적이어...”
“그 옷에 대해 거론하지 마세요.”
“...알았다.”
지금 당장 엘티노스를 찾아가서 이 잡화점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한참 의욕이 꺾여서 그냥 나중에 찾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사키엘의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다면, 지금은 찾아가고 싶어도 천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기에, 다른 곳에서 소환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잠깐. 소환한 적은 있었지.”
“무엇을 말이더냐?”
“엘티노스요. 그때 릴리스가 만들어낸 꿈의 미로 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엘티노스를 소환한 기억이 있었으니까요.”
“기각한다.”
“...네?”
레시아는 딱 잘라서 내 계획에 반대를 했다. 그리고 내가 의문을 표하자 거기에 살을 더 붙였다.
“지금 릴리스는 주인을 노리고 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거늘, 짐은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그래서 그 끔찍한 의상을 입히기 위해, 루니아 누나와 상의를 해서 저를 구속시킨 거에요? 시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으면 루니아 누나의 말을 그대로 따랐냐고요?”
“저는 마스터의 다양한 모습을 관측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관측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자세히 알게 되는 형태라고 들어서...”
“그 사람이 싫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행하게 만드는 것은 괴롭힘이라는 거야!”
다른 말로 고문이라던가.
어쨌든 이불 안에서 계속 돌돌 말아 나를 보호한 체, 그저 멍하니 뒹굴고 있는 나의 모습에도 레시아와 시나는 자리에 비키질 않고 계속해서 머물고 있을 무렵. 마리아와 루시피나의 행방이 궁금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마리아와 루시피나는 어디에 있어요?”
“루나링과 함께 호문쿨루스를 보러 올라갔노라.”
“달에요? 호문쿨루스가 외발자전거를 타고 칼 5개로 저글링하면서 돌아다니는 광대도 아니고, 구경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있는데...특별한 무언가라도 있던가요?”
“루나링에게 듣기로는 특별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더군.”
특별한 재료? 설마 판도라의 빈 상자를 이용해서 뭐라도 집어넣어서 만든 것일까?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나의 관심도 살짝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인류에 관련된 사건이 점점 크게 키워질 시기인 만큼, 암호를 해독하는 거라던가 이브 센티아에서 갈취한 검에 대한 것. 그리고 되살아나버린 루비아 씨에 관해서도...따지고 보면 상당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럼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
“주인.”
레시아는 생각하고 있는 나를 문뜩 불러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요즘 요청에 보면 카린으로 살아달라고 계속 들어온다.”
“대체 그걸 왜 여기서 말하는 거에요!!!”
뜬금없는 레시아의 말 한방으로 계획을 정리하고 있는 젠가가 철저하게 무너지면서, 여김 없이 나는 태클을 걸어야만 했다.
“최근에는 Ts장르가 많아지고 있지 않는가? 그 뜻은 요즘 대세는 Ts라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은 여성으로 바뀌면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인 만큼, 주인도 요즘 대세에 따라야 할 필요가 있노라.”
“아무리 다른 것이 유행이라고 한들, 이 글의 본질은 개그거든요? 만담이거든요? Ts가 주 속성이 아니라! 그보다 2개월동안 여성으로 살아왔으면 됐고, 비무대회에도 카린으로 활동했으니 충족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매료가 되어있다는 것. 그러니 주인은 앞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방향이 더 좋다고 본다만?”
“늘 말했듯이 남의 성 정체성까지 때려 부셔가면서 억지로 따라간다면, 오히려 추락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거라고요? 흔한 예로 배트맨이 자세히 잘 보여주고 있잖아요? 감독이 바뀌고 나서 엄청 어린애처럼 유치해지니까, 결국 배트맨 포에버에서 멸망하는 꼴이 나왔고요?”
“그건 배트맨을 Ts시키지 않아서 그렇...”
“거기서 배트걸이 포이즌 아이비와 싸웠는데 무슨 소리에요!!! Ts를 시키지 않아도 여성형 박쥐전사가 나왔잖아요!”
“칫! 요새 어린것들은...”
레시아는 내가 보는 눈 앞에서 혀를 찼다. 자신의 주장이 먹히지 않을 때는 가끔 저런 반응이 나오는데, 그 뜻은 나의 저항이 만만치 않는다는 것이며, 곧 레시아가 나에게 밀려버렸다는 소리다.
“어쨌든 인기가 많고 안 많고를 떠나서, 이 글의 중심장르를 멋대로 바꾸면 안된 다는 소리에요.”
“뭐. 주인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틈틈이 주인을 노리고 있는 자객을 잊지 말거라.”
“그건 레시아 하나 뿐이잖아요...”
덤으로 루니아 누나도 조심하면 되는 일이다.
-딸랑딸랑!
손님을 맞이하는 종이 세차게 움직이면서 이런 오후 시간대에 누가 왔는지, 확인을 할 무렵 기묘할 정도로 느낌이 이상한 손님 한 명이 서 있었다. 코발트 블루의 머리카락이며, 하늘을 품은 듯한 눈은 아무리 봐도 조화가 잘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우선 정중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잡화점을 개방한 시간이 아닙니다만...”
“알고 있어요. 다만...”
다만?
“그저 만나러 온 것뿐이니까요.”
누구를?
나를?
“혹시 잘못 찾아 오신 건?”
“아니요. 여기에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묘하게 눈을 마주하면서도 그 눈은 말 그대로 나를 입력해서 저장하려는 듯이, 내 얼굴에 구멍이 나도록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난감한 순간이 아닐 수가 없지만 대체 뭘 호소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사이에, 옷을 봐서는 루나가 흔히 입고 있는 아이돌 옷과 비슷했다.
“잠깐. 설마...달에서 만들어졌다는 호문쿨루스가 당신인가요?”
그러자 앞에 있는 키 작은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여 받은 이름은 카렌. 제 아버지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
오늘 따라 믿겨지지 않는 일만 제대로 일어나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세히 보면 여성으로 바뀌었을 때 내 모습과 닮은 흔적들이 보이는데, 청순하면서도 신비로운 이미지와, 수려한 외모를 보아 하니...
“완전히 주인이 카린으로 되었을 때의 모습이로군...”
레시아와 시나는 내 근처에서 카렌의 모습을, 입력해서 저장하려는 듯이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점이 있다면, 카렌은 태클 캐릭터의 요소가 없다는 점. 그러니까 성격 중에서도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대체 이게 어떻게 되어 먹은 일인지...?
“호문쿨루스를 만들었을 당시에 저는 세포나 그런걸 제공한 적이 전혀 없는...아 그렇구나. 머리카락이 있었지...”
기존에 낡은 연금술로 호문쿨루스를 만들라고 한다면, 까다로운 재료들과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달의 기술력은 몇 백, 몇 천년을 앞선 고위 기술이기 때문에, DNA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무한 양상을 할 수 있는 것이 현재 달의 기술력이다.
“결과적으로 날 만나러 왔다는 의미는, 내가 누군지에 대해 루나라던가 마리아, 루시피나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자주 들었다는 소리네?”
“네. 여장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들었어요.”
웃으면서 말하는 카렌을 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것들 내려오기만 해봐라.
“애초에 여장은 잘 어울리지 않...”
“여기 백장미 1집부터 7집까지 선물로 받은걸요?”
카렌의 존재의의는 나를 괴롭히기 위함이더냐?
내 오른쪽 발 옆에 있었던 레시아는 카렌의 위로 올라가서 맥을 짚듯이, 작은 고양이의 앞발을 카렌의 명치부근에 가져가 대고선 입을 열었다.
“이거 놀랍군. 만약 성별이 같았다면 누가 주인인지 난감할 정도로다. 마나의 친화력도 그렇고 지금 품어서 체내에 회전을 하고 있는 마나의 속도 또한 같다. 마리아와 루나링이 매번 올라가서 호문쿨루스를 보는 이유도 납득이 가는 군.”
“무슨 이유인데요?”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리고 레시아가 침묵을 유지하자 내 머릿속에 있는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또 한가지 경악을 하게 되었는데...
“설마. 저를 능가하는 능력치를 보이고 있다는 말인가요?”
“아무래도 제대로 배웠다고 해야 할까? 달의 교육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 마나 응용력으로도 무기를 다루는 기술도 주인보다 2단계 위에 있다. 애초에 주인은 천부적인 빠른 학습능력과 상상하지도 못할 발상이 특기인 만큼, 그것을 잘 갈고 닦아온 셈이 되겠지.”
이제 저는 제 클론에게도 굴려지는 신세인가요?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1화부터 천천히 봐야 할까요?
“그나저나 저는 아직 20세고 지금 카렌의 모습을 보아 저와 별로 나이차이가 안 나긴 한데, 제가 어째서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거죠?”
“주인의 DNA를 사용한 나머지 자연스레 그렇게 인식이 되는 것이다.”
아마 실질적인 나이로는 1살이라서?
카렌은 느닷없이 눈물을 훔치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뭐랄까 본체인 나를 아버지라 부르고 드디어 처음 만난 가족...비스무리한 그런 기묘한 사람을 만나고도 감동을 먹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신ㄱ
“최근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정말인지 저의 아버지는 많이 허약하셔서 딸인 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저도 잡화점에 머물면서...”
“그냥 달로 올라가.”
내가 태클할 사람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에 접어들면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카렌은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을 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을 허락 맡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랍니다? 루나 언니와 마리아 언니가 아버지의 허락만 있으면, 같이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기회가 생겨서 내려왔다고요? 그리고 이제 저의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면서 달력마다 일과 휴식 바캉스를 잘 조절하고 마지막에는 마왕 엔딩을 보는 그런...”
“난 너를 상대로 프린세스 메이커 안 해! 게다가 왜 하필 마왕 엔딩이야!”
나는 자식 하나 제대로 키울 수도 없는 사람인가?
...아 맞다. 아직 결혼도 안 해봤지?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저랑 승부를 보도록 하죠. 만일 아버지께서 저보다 강하시다면 저는 두말 할 필요 없이 달로 올라가겠어요!”
뭐 이런 적반하장이 다 있나?
달은 마나 수련과 병기에 대해서 알려줘도, 기본 도덕에 개념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소리잖아? 어떤 자식이 부모가 자신보다 강한지 약한지를 직접 때려서 알아야 할까?
그보다 보통 자식은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잖아?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한 것 같으니 파이론에 있는 공원으로 따라 나와.”
나는 천천히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잡화점의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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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손이 뭘 쓰는지 이제 저도 감이 안 잡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