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34
234
어떤 독에 중독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잡화점에서 팔고 있는 해독초의 효능은 끝내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분 정도 경과했을 때, 호흡이 안정되었고 혈색이 돌아오는 것으로 봐선, 이 사람은 저승으로 떠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이며, 다시 이승에서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아무 말 없이 불에 몸을 녹이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의 눈에서는 연민이 느껴졌는데,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있는 것은 심심하니 물어보기로 하자.
“그 남성분은 누구에요? 많이 친근해 보이는데?”
그러나 내 앞에서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남성의 목소리가 문득 튀어나왔다.
“평민인 네가 함부로 입에 담을 분이 아니다.”
“이름을 모르니까 제가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이름으로 말한 기억도 없고, 댁한테 물어본 기억도 없거든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는 남성의 얼굴 표정은 매우 사나운 모습이었고, 조금이라도 더 도발을 했다면 허리에 있는 검을 뽑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거 참. 싸가지가 대단할 정도로 치솟는 꼬마구나. 이름이 뭐냐?”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 그쪽 이름부터 말씀 하시는 것이 예의 아닌가요? 아니면 요새 기사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념을 개밥그릇으로 줘버렸어요?”
“그만들 싸워요!”
...간호를 하고 있던 여성이 소리치자 나와 그 남자는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침묵의 시간이 다 지나갈 무렵. 그 남자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꼬마야. 내가 기사인 것은 어떻게 알고 위와 같은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거지?”
“맨 처음으로 저기 쓰러진 남자를 높은 사람으로 모시는 것하고, 두 번째로는 검을 뽑기 직전의 그 모습이에요. 손에 플레이트 건틀릿을 착용하며 검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모습이라면 기사가 당연한 거겠죠. 그럼 이제 제가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라.”
내가 질문할 요소는...
“여행중인가요? 아니면 도망을 치는 중인가요?”
“여행을 하고 있었다면 이런 낭떠러지까지 일부러 떨어져서 헤매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은 일부러 이곳에서 추격자들이 우리들을 포기하도록 기다리고 있는 거야. 물론 독을 해독하려고 했지만, 그건 사제가 해야 할 일이지 우리와 같은 기사와 시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냐. 그래도, 네가 준 그 이파리 때문에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감사를 표하지.”
낮은 중년의 목소리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자,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막말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렇게 도망쳐 나왔다는 것은 결국 우리는 몰락귀족의 길을 걷고 있는 거야. 나는 그 귀족을 지키는 검이고...”
“몰락이라뇨?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모닥불은 조용하게 타오르다가 “타탁!”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서 불씨를 내뿜었다. 마치 내가 이 사람에게 듣고 난 뒤에 정신상태처럼...
“신인류...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그 빌어먹을 호문쿨루스 그룹들 말이야. 내 생전에 그런 녀석들은 처음 봤다고...”
신인류 때문에 몰락을 당했는지 은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짙은 살기로 가득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인류라면 저도 알고 있어요. 지금 조사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어처구니 없는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는 남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사를? 잠깐만...꼬마야. 아까 방금 전에 카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 이름은 대체 어디로 흘려 들었어요? 그리고 아직 전 당신의 이름도 모른다고요?”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입을 열었다.
“죠니라고 불러라. 지금은 그게 내 이름이니까.”
“...지금은?”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몰락귀족 옆에 붙어 다니는 이름없는 검사라고, 롱소드도 아니고 이런 카타나 종류나 사용하고 있으니까.”
“카타나라면...그 얇은 도검을 말하는 거죠? 잘 부러지게 생긴...”
“네가 생각한 만큼 잘 부러지지는 않더라. 적어도 좋은 재료를 사용했으니까.”
그렇다고 저 검 맨 앞에 +15라는 숫자가 붙지는 않을 텐데...어쨌든 죠니 씨는 한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신인류라는 녀석들은 의외로 우리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껴있는 경우가 많아. 내가 거느리고 있던 부관도 알고 봤더니 호문쿨루스였고,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세옹지마라고 하더니...이런 우연도 다 있었구나.”
“아까 제 이름은 왜 확인한 건지 그거나 묻죠.”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말할 거다. 루멘이라는 꼬마가 2개월 전에 너에게 도움 받을 거라고 말을 했거든, 영웅이자 전설이며, 대마법사인 엘티노스가 만든 잡화점의 주인인 카일에게...”
루멘은 어디까지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지만, 2개월 전에 죠니 씨를 만났다는 그 정보만으로는 행방을 찾기가 묘해졌다. 만일 루멘이 나중에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 혹시 다른 말도 남기지 않았을까?
“혹시 루멘이 다른 소리도 했던가요? 지금 제가 루멘을 찾고 있는 중인데 말이죠?”
“다른 소리라면...카일. 네가 루멘을 찾는 것을 막으라는 말 밖에 듣지 못했다.”
“...어째서?”
“다음에 만나는 날은 자신의 최후가 찾아오는 날이라고 하더군.”
최후? 루멘이 죽는다고?
“대신...다른 방법으로 엘티노스와 만나는 방법을 나에게 알려줬다. 하지만 내가 기억력은 좀 자신이 없어서 글로 대신 써달라고 했지.”
약간 구겨진 것으로 보아하니, 이 종이를 계속 품속에 넣어놓고 남은 2개월동안 같이 지내온 모양이다. 구깃구깃한 종이를 펼치며 내용을 읽었고, 다름이 아닌 사키엘의 문을 통해서 엘티노스와 만났던 천계로 떠나라는 말만 적혀있었다. 내가 오래 전에 장난 삼아 말을 했지만, 이게 실제로 가능한 방법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나저나 그 대마법사가 남긴 잡화점의 주인이면, 마법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저도 지금 마왕...아니. 제 사역마에게 배우고 있어서...”
덤으로 시나까지 버리고 루니아 누나에게 도망쳐 나왔으니, 시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구나. 오늘은 그냥 정말로 단독행동이네.
“사내인데도 검을 볼 줄 아는데 마법까지 사용한다면, 너도 꽤나 거물이 될 녀석이군. 아무튼 전 벨헤임 기사단장의 마지막 부탁으로, 여기 있는 엘리파스 님과 벨라, 그리고 나를 이곳 말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줄 수 있을까?”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파이론에서도 잡화점밖에 없어요?”
“그래도 여기서 얼어 죽거나, 추격자에게 살해당하는 것보단 좋겠군.”
죠니 씨가 허락을 하자마자 나는 엘리파스라고 불리는 사람의 주변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통 내가 혼자 귀환마법을 사용한다면 마법진을 그릴 필요는 없지만, 단체로 공간이동을 해야 한다면 안정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마법진을 미리 그려서 그 좌표에 공간을 미리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 게다가 마나도 더욱 많이 들기 때문에 마법진을 그리면서 마나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가끔가다 천장으로 좌표가 잘못 설정될 수 있으니까,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많이 당해본 경험자인 내가 먼저 입을 열고, 귀환마법을 발동했을 무렵. 공간이 어느 순간 일그러지더니 빛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떠서 내 주변을 둘러보자 다른 사람은 전부 천장에 있고, 나 혼자 바닥에 서 있었...아니. 잠깐만?
-쾅!
“아오! 제길! 이 잡화점은 나만 싫어하냐!”
내가 주인인데!
왜 나를 추락사 시키려고 안달이 났냐고!
“끄응...신인류는 곳곳에 숨어있고 정보를 자기들끼리 공유할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숨어 지내는 것이 더 편할 거에요.”
죠니 씨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기를...
“세상에. 마법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하군.”
“지금까지 마법사를 단 한번도 못 봤다는 말씀은 하지 마시죠. 대체 어디서 살았길래 마법사를 못 봤다는 말이 나와요?”
그러자 죠니 씨는 나에게 기묘하게 생긴 권총 하나를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이건 마법공학으로 이루어져 마탄을 발포하는 권총이 아니라, 실탄을 집어넣고 쏘는 권총이다. 아르칸 제국이라고 들어본 적은 있지? 내가 거기 출신이야.”
그럼 아르칸 제국에서 리벌트로 넘어왔다는 소리가 되는데...
세상에나...그 먼 길을 3명이서 걸어왔다고?!
“아르칸 제국에서 리벌트 국경을 넘어가는 것은 최소가 2개월이라고요? 그것도 마차를 타야지만 가능한 시간대인데...무슨 수로!”
“다행히도 그때는 연료가 얼마 없었지만 CAR-42 시험판이 있었거든.”
...아. 맥커드 가문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말 없는 마차녀석이로군. 42면 42번째 시험판인가?
“지금 내가 줄 것은 없고...자. 이 검이라도 가져라.”
“아니...그러니까 그 부러지기 쉬운 검은...”
“재질은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이야.”
“그럼 당연히 받아야...야! 잠깐!”
재질이 미스릴이라면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느닷없이 귀에 있던 티르빙이 검을 먹어 치워버렸다. 은빛 송곳과 뱀 그림자도 먹어 치워서 그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더니, 이번에는 이런 도신이 얇은 검마저 무자비하게 삼켰고, 죠니는 눈이 호를 그리면서 입을 열기를...
“봐라. 니 귀걸이가 멋대로 집어먹을 정도로 좋은 검이라고 했잖아?”
아니...지금 태클 걸어야 하는 부분이 그게 아니잖아요!
***
아르칸에서 도망쳐 나온 일행은 사키엘의 문으로 통해 사라졌고, 나 또한 천계로 가서 엘티노스를 만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사키엘의 문이 천계로 가는 길만큼은 보여주지 않았다. 문고리를 비틀어 열면 그냥 뒤에 있는 잡화점의 벽지만 나왔고, 천계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물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별 수 없이 티르빙을 새로운 검으로 변형시키고 천천히 구경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사용해야 할 무기는 내가 더 잘 알아야 하니까.
그건 그렇고...어디서 기묘한 분위기가 감지되는데...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
게다가 잡화점의 멤버들이 다 없어진 적은 처음인 만큼,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해서 더해졌다. 오히려 내가 어디론가 나간 경우에는 한 명이라도 이곳에 지키고 있어야 할 텐데?
이쯤 되면...
뭔가 불길하다.
오히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튀어나가야 하는 그런 기분이 전해졌을 무렵. 사키엘의 문으로 다른 곳을 향해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
“야호~ 카일!”
“으아아아아악!”
문을 열었더니 루니아 누나가 사키엘의 문에서 나타났다. 더 정확히는 사키엘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그냥 그 뒤에 있었을 뿐이었던 것일까?
“여름은 이미 끝났다고요! 스릴러 장르는 이제 한층 물 건너 갔단 말이에요! “
“놀라는 모습 귀여웠어요오.”
“시끄러워!”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바닥에 넘어진 상태에서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드디어 주인을 잡았다.”
“마스터를 잡았습니다.”
옆에서 시나와 레시아가 내 팔목에 구속 마법을 걸었는지 몰라도, 팔이 그 상태로 고정을 당해버렸다. 마나와는 전혀 다른 성질로 마법을 사용하는 시나와, 항마의 축복을 간단히 깨 부셔버리는 레시아가 걸어버린 구속마법이 유효하다는 소리인가?
“이제 슬슬 8집이에요오. 그러니 좀 더 과감한 의상을 준비했답니다아?”
루니아 누나가 웃으면서 나에게 보여준 옷을 보게 된 나는, 딱 한가지 머릿속에서 떠오른 말이 생각났다.
날 죽여줘...
=============================================================================================
무슨 옷인지는 노코멘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