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226
226
예선과 본선이 다른 점이 있다면, 관객의 수가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 몰려와서 지켜보고 있고, 준결승전이나 결승전이 아닌 이상, 하루에 본선경기를 치르는 횟수는 확실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내가 지금 왜 이런 말과 고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와아아! 카린이다!”
“이쪽에도 봐주세요! 요정님!”
“무슨 소리야! 저 분은 여신이라고! 여신이 강림한 거야!”
이 빌어먹을...
[주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에 구멍이 생겨서, 그 안으로 전부 다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이 만들어 질것만 같도다. 이제서야 본선 첫 경기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정도면, 입 소문이라는 것은 상당히 대단한 모양이로군?]
[이건 레시아 때문이잖아요...]
레시아가 동화를 해서 매력이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매력이 이 정도로 올라간다면 이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어디 우주에 떠돌아다니는...아니면 바다에서 잠들어있는 크툴루 신화에 나올법한, 매력지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본다. 원형으로 둘러싸인 관객석들과는 다르게, 그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의자들이 배치되어있는 곳에서는, 각각 다른 귀족이나 왕들이 초청되어 앉아야 하는 귀빈석이라는 소리고, 비무대회의 본선을 치르는 장소는 그 중앙에 위치한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대회장이다. 돌로 만들었으니 잘못 넘어진다면 죽을만한 데미지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뭐 어쨌든 내 첫 번째 상대로 누가 걸렸느냐 하면...
“꽤나 기구한 운명이지 않는가? 처음 상대가 이 몸. 세실리아 일 줄은...”
아무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정말 나란 인간은 운이 개미 발바닥보다 더 없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은빛의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대검을, 한 손으로 자유롭게 휘두르는 것을 앞에서 보고 있자니, 지금 세실리아가 일으키는 바람을 잘 타고 날아간다면, 잡화점까지 한번에 이동되리라 생각했다.
루니아 누나 밑에서 검술을 배웠다는 말은, 좋게 말해서 루니아 누나보다는 검술이 낮다는 것과, 나쁘게 말해서 뭘 하든 일단 나보다 검술에서는 위라는 소리니까...따지고 보면 절대적으로 안심이 안 되는 소리잖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심판의 시작소리가 들렸다고는 하지만, 천천히 검을 겨누고 있는 세실리아와는 달리, 나는 가만히 응시만 하고 있었다. 지금은 뭘 해야 할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가 공격을 하는 타이밍에 순간적으로 반응을 하기 위함. 애당초 새벽<Daybreak>을 사용하려면 2초의 틈이 존재하는데, 저런 강자 앞에서 2초라는 시간은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을 한 뒤에, 녹차를 끓여서 마시려고 녹차 풀까지 뜯을만한 시간이다.
...아니 녹차 풀까지는 아닌가?
그보다 왜 제압을 하고 녹차를 끓여 마시려고 하는 거지?
확실히 설명하자면...2초라는 시간은 상당히 짧은 시간이 아니란 소리다.
“먼저 달려들지 않는 것인가? 그럼 이쪽에서 간다!”
-샤아악!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앞에서 대검을 내려찍는 것과 동시에, 나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티르빙을 한 손에 사브르 형태로 바꾼 뒤에, 빈 왼손으로는 마탄 아낌없이 퍼부었다. 연기 속에서 미세한 바람소리가 들리자 마자 허리를 숙이면, 곧바로 세실리아의 대검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갔고, 대검을 다시 올려 치는 것으로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뒤로 빼야 했다.
“검을 언제 뽑았는지 몰라도 은빛 송곳니를 이겼던 달인이라면, 정정당당히 정면승부를 걸도록 해라.”
“애초에 은빛 송곳니라도 그런 무시무시한 대검 앞에서는 정면승부를 하려고 하지 않을 텐데...아니 오히려 정말 정면승부를 하려고 하겠군.”
은빛 송곳니라면 싸움의 기초를 베이스로 상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초야...나는 피하고 상대를 때린다. 이것...
절대로 저 대검 앞에서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를 그대로 실현하다간, 살을 주고 뼈를 깎아버리다가, 살을 너무 많이 주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은빛 송곳니가 아니거든...”
천천히 사브르를 겨누며 비어있는 왼손에는 은빛 송곳을 소환했다. 팔을 교차하면서 서서히 자세를 잡고 있는 내 앞에서, 다시 도약하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내 시야에 비춰졌다.
남자일 때보다 가장 크나큰 장점이 평소보다 마나가 더 많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마나를 전부 신체강화로 돌려서 사용을 한다면, 마치 시간이 거의 정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지금 내 시야에서는 영원히 지나가지 않을듯한 그런 기분...
[마나로 인한 신체강화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주인이 지금 실행한 것은 신체강화능력이 아니다.]
[신체강화능력이 아니면...대체 무엇인데요?]
나는 레시아의 텔레파시에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왼손에 있던 은빛 송곳으로 나에게 내려오는 대검의 면을 옆으로 힘껏 쳐냈다.
[신체강화라기보단 지금 주인은 신체를 가속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된다. 체내에 있는 마나를 가속시켜서 회전하게 되면 가속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버틸 수 없는 몸이라면 벌써 무너져 내렸겠지.]
지금 무너져 내리지 않았으니까...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구나.
그냥 사용할 수 있다는 말로 간추려서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지만 지금 마나를 통한 신체가속을 사용하는 것은...나 뿐만이 아닌 듯했다.
세실리아는 다른 관중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속도에 맞춰서 움직이고 있으니까. 만약 일반인이 봤다면 야무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과 똑같을 것이라 생각하지만...그 전에 야무치가 누구냐고? 그...낭아풍풍권...아니 이건 그만 하자.
대검을 단호하게 튕겨낸 나를 보며 당황한 얼굴을 지어버린 세실리아는, 이윽고 내가 사브르를 휘두르기 전에 저 뒤로 도약해서 거리를 벌렸다.
“단검의 끝으로 대검을 밀어낼 생각을 하다니...그거 자살행위인건 알고 있는가?”
“실패할 일이 없으면 자살행위가 아니니까.”
하지만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경기장이 부셔지지 않고 오히려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뭐로 만든 거야? 이거...경기장 바닥을 강화했나?
“경기장도 손쉽게 부셔지지 않는 걸 보아하니...슬슬 진심을 내도 되겠군. 본선이고, 상대도 연약해 보여서 적당히 하려고 했지만...”
이윽고 세실리아의 대검으로부터 바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검을 다시 양손으로 잡아 뒤쪽으로 보내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말 그대로 신체 가속을 했음에도 분명하고 시야에 잡히지 않았으니까.
보통 이런 클리셰라면 위에서 혹은 뒤에서 휘두르려고 하는데...아 맞네. 뒤에서 빠르게 휘두르는 세실리아를 포착하고 난 뒤에, 다시 은빛 송곳으로 튕겨내려고 했지만, 대검에도 기류가 뭉쳐있어 튕겨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나도 멋지게 검에 속성을 부여하거나, 마나를 실어 담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어라? 잠깐. 나도 할 수 있잖아?
-슈우욱! 파아앙!
순식간에 붕 떠버린 내 시야는 그 거대했던 경기장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았다, 키가 큰 세실리아가 하나의 점으로 보일 정도라고 생각하면, 지금 내가 얼마나 높이 뛰어올라갔는지 알 수 없다. 물론 휘두르기 전에 사브르로 겨우겨우 흘려 보내서 다행이지, 정면에서 막았으면 지금 이정도 높이로 띄워지고 오른팔까지 박살 났을 생각에 한 숨을 쉬었다.
[그 찰나의 위험 속에서 역으로 점프를 뛰어서 막는다는 선택지는 잘 한듯하군. 그럼 주인은 대체 무엇을 하려고 이 높이까지 있는 것인가? 적어도 20M정도는 되는 듯 하다.]
[그야...]
그야...광역기?
“이런...너무 강하게 휘둘렀나? 저 작은 몸으로 땅에 추락하기라도 하면 위험하니 받아줘야...음?”
신체가 강화되어 있으니 지금 저 멀리서 세실리아가 말하고 있는 것도 들을 수 있다고는 하나, 세실리아는 지금 이변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다시 전투자세를 취했다.
[주인...정말 할 것인가? 그거 정말 자살행위라고?]
[뭐...지금 떨어져도 날아오는 것은 공격일 텐데요...그냥 남자답게 한방을 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요?]
[지금은 여자이지 않는가?]
[신경 꺼!]
공중에서 마나를 잔뜩 부여한 검은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증가하는 무게로 인해 내 몸도 천천히 중력가속도를 받아서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고, 거대한 대검에 바다 빛의 마나와 더불어 피의 대가가 활성화 되며, 붉은 빛이 서서히 맴돌기 시작했다.
“유성!<Shooting Star>”
원뿔이 되어 맴도는 찬란한 색상의 기류는 마치 오로라를 생각하게 만들었
-콰아앙!
다.
아니 솔직히 뭐라 좀 더 멋진 설명은 하고 싶었는데, 그 높은 고도에서 1초 안으로 떨어졌으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은 멀쩡한 것을 보니 무사한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튼튼했던 경기장은 깊게 박혀있는 티르빙으로 인해 금이 가버렸다. 물론 천천히 회수를 하면서 세실리아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보려는 순간, 입에 피를 머금고 플레이트 아머가 대부분 파손이 되어 맨 살이 들어났고, 몇 군대는 플레이트가 파괴되면서 살이 찢은 듯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 생각 없이 내리찍었는지 몰라도 이쯤 되면 미안해지긴 하네.
“훌륭하군...큭...!”
내려찍기 직전에 세실리아가 취한 행동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장외로 도망가기라도 했으면 부상 없이 끝날 수 있었지만...
“기사는 도망가는 것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세실리아를 보고 확실히 그 말이 떠올랐어요.”
“...어떻게...내 이름을? 설마...그렇군. 잡화점의 주인이 이렇게 나를 이길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어쩐지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은 했었어. 그래서 숨겨둔 여동생이라도 있던가? 라고 생각했는데...”
“잡담은 그만하시죠...”
“그나저나 기쁘군.”
“...어떤 것이?”
세실리아는 힘겹게 천천히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전 화에서는 나를 ‘세실리아 씨’라고 독백을 했었잖아. 그때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거리가 좀 멀어진 줄 알았거든.”
“...아니! 그건 대체 어떻게 알아내는 건데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있다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지금 나는 페이즈 2를 돌입하고 있다고? 어두운 영혼 3에서는 이제서야 생명력의 50%를 깎아버린 것뿐이야. 본선이라고 해서 너무 안일하게 봤는데, 잡화점의 주인인 것을 알아차린 이상...절대로 건성으로 검을 휘두를 수는 없지.”
세실리아 씨의 푸른 눈이 빛나면서 다시 바람을 끌어 모아 순식간에 내 앞에 도착해서 대검을 휘둘렀으나...나는 티르빙을 다시 귀걸이 형태로 바꾼 뒤에, 왼손으로는 세실리아의 팔을 붙잡아 대검의 경로를 차단하고, 오른손으로는 세실리아의 명치를 가격했다.
“페이즈 2가 아니잖아요. 고집 부리지 말고 좀 쉬세요.”
시합종료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관객들은 환호성의 비명대신에, 침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히 본선부터 무차별한 힘을 막 휘두르는 것을 보여주면, 어떤 사람이라도 침묵을 할 수 밖에 없
“““와아아아아아!”””
“이번 년도 비무대회는 최고다!”
“잘한다! 카린!”
“카린! 결혼하자!”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네.
...잠깐! 마지막 누구야!
“승자! 카린!”
보통 승자는 패자를 안 보고 자기 멋대로 가버리는 법이지만, 나는 세실리아가 구급반에게 옮겨지는 것을 전부 다 확인한 뒤에서야 경기장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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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트북이 느닷없이 아파서 수리점에 다녀왔어요.
그래서 오후에 쓸 수 있었습니다.
물론 파티션이 죽어버리고 기계에는 이상이 없어서 SSD를 버리는 일은 없지만...
다크소울 3을 다시 처음부터 깨게 생겼어요...
이제 1회차 겨우 다 깼다고 생각했는데...다시 1회차를 해야 하네요.[인생...
여러분도 자신의 건강과 노트북, 컴퓨터의 건강도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