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68
168
“1주일 전부터 굶었는데 이 집은 정말 밥이 맛있네요! 한 그릇 더 주세요.”
말만 한 그릇 더이지,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6그릇째 리필 중이다. 매리와 마리를 도와줬던 보상은 이렇듯 점심을 같이 먹는다고는 하나, 이 사람 정말로 많이 굶었는지, 아니면 뱃속에 있는 거지가 폭동을 일으킨 건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먹고 있었다. 물론 잡화점이 활기찬 것은 바라고는 있지만, 이 사람까지 찾아온다면 활기가 폭주라는 단어로 변하겠지.
“어라? 루니아 씨! 이거 오랜만에 뵙네요!”
“와아~ 윈디다!”
누나도 아는 사이라고?
그럼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겠구나.
뭔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루니아 누나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달린 건가? 조만간 명언 중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커다란 분기점이 있는데, 그것은 루니아를 알기 전과 루니아를 알고 난 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전에는 인류는 BC와 AC로 나뉜다고 하지만...
C는 클라멘...아니 더 이상 말을 하지 말자.
어쨌든 다시 잡화점으로 돌아와서, 매리와 마리가 나에 대한 주제로 이리저리 떠드는 동안, 루시피나는 왠지 모르게 집요할 정도로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뭐랄까 밥을 먹고 있는 동안 관찰 당하는 그런 기분...
“루시피나? 안 먹어요?”
“신랑의 볼에 밥풀이 묻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만화책에서 보면 밥풀을 때주는 장면 있잖아? 그걸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정말 어떤 의미로 순수한 드래곤이 아닐까. 하지만 볼에 밥풀이 묻을 정도면 내가 얼마나 급하게 먹어야 하는 걸까? 아무리 7주일동안 굶어서 거의 아사 직전인 윈디 씨도 밥풀은 안 묻고 잘 먹고만 있을 터. 누가 억지로라도 붙이지 않는 이상, 그런 클리셰는 애초에 이루어 질 수 없는 환상과 같은 존재다.
하물며 그건 일상이 아닌걸...
그건 러브 코미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지.
“저기? 루시피나? 너무 가까이에서 보는 거 아니에요?”
너무 가깝다 못해 많이 부담스럽다.
“그러고 보면 이곳도 신기하네요? 매리와 마리에게 들었지만 마왕을 소환해서 계약을 맺은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거물이잖아요? 여기는 거물들의 아지트와 같은 곳인가요?”
아지트는 아니지만, 평균 전투력으로 보았을 때, 잡화점 내부에 있는 사람들만 해도 이미 군대를 쓸어버리는 것은 간단 할까? 뭐...레시아는 본 모습으로 돌아가기만 해도, 정신 방어가 높지 않는 이상...아마 전부 죽거나 심한 경우에는 침을 흘리겠지...
“잡화점의 진실을 알리기만 해도 특종이겠지요?”
“응. 확실히 특종이네. 하지만 과연 널 살려둘까?”
“히익...”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이 되어있던 상관은 없으나, 윈디 씨는 나의 말에 기겁을 한 건지, 표정에 기겁을 한 건지 알 수 없을 무렵. 레시아는 가만히 있다가 뒷발로 목덜미를 긁은 뒤에 입을 열었다.
“거기 백치.”
“백...백치!”
레시아가 느닷없이 저런 폭언을 사용할 정도면, 뭔가 마음에 거슬린다는 소리이긴 하다만, 어쨌든 검은 고양이는 터벅터벅 다가가서 고압적인 입을 열었다.
“짐과 주인은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다. 장래를 약속한 연인 사이라고 적도록.”
“그 이야기냐! 이 정신 출타 넘버원아!”
레시아에게 분노의 아이언 클로를 하려는 순간, 순식간에 검은 고양이가 12마리로 늘어나면서 말 하기를...
“아무리 주인이라도 이 중에서 진짜를 찾아 낼 수 있을까? 게다가 주인의 첫 키스를 뺏어갔으니 짐이 결국 책임질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는 마신이 우리들을 축복하고 있다는 소리다.”
여유롭게 웃으면서 이리저리 몸을 섞어 진짜를 못 찾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면, 전부 다 아이언 클로를 하면 알죠.”
주위에 떠다니는 마나를 응집해서 레시아의 분신 수에 맞췄다. 그 손들은 전부 검은 고양이들에게 쏜살같이 달려나갔고, 그 중에 역시 하나가 걸려들었다.
“냐아아아!!!”
레시아의 비통한 외침과 몸부림을, 멍하니 보고 있던 윈디에게 나는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기를...
“만약에...아주 만약에...잡화점에 대해 이상한 기사를 쓴다면, 그때는 아이언 클로 1시간 코스가 될 거야. 살아가는데 두개골이 필요 없다고 느끼면 한번 써보도록 해봐.”
“아...안 쓸게요. 평생 죽을 때까지 안 쓸게요. 무덤으로 가지고 갈게요.”
하지만 윈디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 존재 했으니.
“그러고 보니 어째서 그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던 거야?”
그 첫 번째로 잡화점 밖에서 굶어서 죽기 직전까지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던 일에 대해 슬슬 물어봤다. 그러자 날아온 그 답변은...
“파이론이 고향인 저에게 있어서, 이 잡화점은 언젠가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어릴 적의 꿈이 있어서 말이죠. 따라서 저의 스파이더 센서가 오늘 발동한 겁니다. 분명 지금 정보를 모아서 취재를 시작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말이죠.”
윈디 씨가 파이론 출신인 것은 나름 놀랐지만, 오히려 기피해야 할 대상을 취재한다는 것은, 물타기에 바쁜 마을 주민들과 달리 확고한 사고가 있다는 소리다. 거기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감탄을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항상 있기 마련.
“애초에 너는 스파이더 센서가 없거든? 그거 스파이더 맨에게 있는 거잖아?”
“사실 저는 스파이더 걸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할까요?”
“멋대로 아무 설정이나 붙여서 쓰면 꼬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냐?”
“음...그럼 잡화점 주인과 저는 오래 전에 소꿉친구라는 설정으로 가죠.”
“그 놈의 설정놀이는 정말 좋아하는 군? 슬슬 아이언 클로의 쿨타임이 돌아왔는데, 한번만 더 그 자유로운 혀를 놀려보시지?”
그러자 허브티를 한 모금 마신 윈디 씨는 “쳇...남자가 여자로 변하더니 쪼잔 해지는 연구 결과를 써야겠어.”라고 중얼거렸다. 물론 그걸 들었으니. 이번엔 아이언 클로가 아니라 그 입 속에 있는 혀를 잡아다가 늘리기 시작했다.
“으에에에! 에에에에!”
“누가 쪼잔하다고?”
손톱으로 혀를 누르자 소리가 더 심하게 커졌다.
“이이이! 아오해어여!”
“뭐 번역으로 따지자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는 것 같군. 항상 중얼거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귀가 안 들리는 곳에서 하는 것이 좋아. 알았지?”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윈디 씨를 본 뒤에 나는 혀를 놔줬다. 그러자 윈디 씨는 눈물을 머금고 “오늘의 일기...훌쩍...나는...악마를 보았다...”라고 일기장에 정말로 쓰고 있었다. 조만간 혀를 잡아서 늘리는 것도 리스트에 추가 해놓자.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정보를 모아온 것은 뭐가 있는지 말해.”
“정보 이용료는 주시겠지요?”
어디서 아부하는 듯한 손놀림으로 언제 기분이 회복되었는지, 웃으면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무슨 분위기가 이렇게 빨리 빨리 바뀌는지...
“점심 먹었잖아.”
“칫. 돈을 받으려고 했는데 여전히 실패했네요.”
어째서 하멀 씨가 거머리라고 말 하는지 알 수 있는 면모였다.
“지금 있는 정보로는 바리스 에드워드 공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거에요.”
어떤 정보인지 나는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모르는 척하고 살짝 떠보기로 해보자.
“스캔들에 관한 건가? 하긴 바리스 씨 주변에는 여성들이 많으니까.”
“아뇨.”
하지만 내가 살짝 떠보는 것에 비해, 윈디 씨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게 변했다.
“지금 바리스 씨의 상태로 보아 신변에 위험이 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마치 암살자나 다른 특정 외부 인물에게 노려지는 듯한?”
이건 또 무슨 날벼락과 같은 하이 스피드 150km 강속구 같은 소리인가?
그냥 간편하게 줄이면 ‘말도 안 된다.’
“바리스 씨가 다른 누구에게 노려지고 있다니?”
“따라서 지금까지 정보를 보아 저의 추측으로는...분명.”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윈디 씨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얀데레에게 노려지고 있는 거에요!”
...인생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말을 왜 들어야 하지? 라는 그런 것은 아니고,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소리이지만, 뭐랄까 전개상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할만한 “암살자에게 노려지고 있다.”라던가, “반란군들이 노리고 있다.”라던가 좀 더 그럴싸한 전개가 몇 개 더 있을 텐데, 하필이면 뭐? 얀데레? 그게 정말 특종이라도 되는 거냐? 데일리 플래닛에 있는 편집장이 당장이라도 해고 하겠는데?
“주인. 짐은 주인의 제자들을 데리고 심연의 도서관으로 떠나겠다.”
레시아도 어이가 없었는지 느닷없이 매리와 마리를 데리고 마계로 가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갔다. 아무튼 그렇게 잠깐 동안 바라보고 나서 윈디 씨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다시 외쳤다.
“그나저나 오히려 지금은 잡화점의 주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카일 씨에게 더 흥미가 있습니다!”
“본연의 일에서 멀어지려고 하지마. 그리고 나에게 흥미를 갖지마. 그리고 활동이라고 하지마.”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는 윈디 씨는, 그야말로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할 법한 마이 페이스였다. 그러던 와중에도 루시피나와 루니아 누나는 장을 보러 나간다고, 3층으로 올라갔고, 마리아가 눈을 비비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늘도 첩이 늦잠을 자서 밥은 없는 건가? 그보다 그 여자는 또 뭐냐? 카일이여? 벌써 그런 장르에 눈을 뜬 것인가?”
“그런 장르는 대체 무슨 장르인데요? 뭔지 몰라도 마리아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냉장 보관함에 루시피나가 마리아의 몫을 남겨놨으니, 데워서 드시면 될 거에요.”
그리고 옆에서 뭔가 적는 소리가 들렸는데...
“로리콘...”
-덥썩!
“끄아아앗! 어! 어째서! 저는 속성에 관한 것을 적고 있었는데에에!”
“그 속성이 어째서 로리콘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거야? 너 조만간 무덤으로 들어가볼래? 툼 레이더 찍고 싶어!”
특정 단어가 들리자마자 곧바로 아이언 클로가 튀어나가, 윈디 씨의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다.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는 윈디 씨를 두 번째로 두고,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아직까지 ‘바리스 씨의 현 상태는 어떠한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은 못 들었지만, 우선 위험하다는 소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바리스 씨는 지금 당장이라도 위험한 상태인 거야?”
“추욱...아이언 클로가 너무 강해서 대답할 힘이 없답니다. 만일 저를 되살리고 싶으면 그 모습으로 귀엽게 삐삐루 삐루삐루 삐삐루삐! 를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오호라? 내 인내심이 단번에 무너지는 것은 오랜만인데?
-꽈아아악!
“아아아악! 농담! 농담이잖아요! 조크라고요! 그만해요! 얼굴이 무너져 내리잖아요! 이 이상 눌려지면 슬라임으로 변이 한다고요!”
아이언 클로가 언제부터 사람을 슬라임으로 바꾸는 마법이 되었는지는 둘째치고, 되도록이면 가장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듣기를 빌어야 했다만...아직까지 그렇게 확실하다고 할 정도로 뚜렷하지는 않았으니.
“윈디 씨.”
“어머? 어머? 갑자기 왠 존칭? 아까는 반말을 사용하더니?”
-꽈아아악!
“그건 댁이 먼저 반말 써서 그렇잖아!”
“꺄아아앗! 그냥 편하게 윈디라고 불러요! 세삼스럽게...으그그그그극! 그런데 이거 왠지 중독성 있는데? 꺄흐으으윽!”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몰라도, 내 인생에서 이런 사람은 안 만나도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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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다르게 좀 길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