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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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1면의 사진과 내용을 본 뒤에, 이걸 안 본 눈을 사고 싶어졌다. 차라리 몰랐으면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이렇게 알았으니 나는 앞으로 잡화점에서, 가만히 틀어박혀 상황이 진정되길 빌도록 하자. 간절하게 기도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아이니스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지금 땅바닥에 기도하면서 뭐라 중얼거리는 거에요?”
“지금은 제발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우주에게 기도를 하는 중이란다.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몇 년을 말해야, 너의 머릿속에서 나를 아저씨라 부르지 않게 되겠니?”
따지고 보면...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여장을 한 다른 이들의 잘못이 아닌가? 나는 피해자일 뿐이야! 그래! 나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어째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아저씨? 이번엔 가련한 백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그건 또 무슨 모습이야?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너는 어째 세계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날 아저씨라고 부를 것만 같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연하지 않아!”
아침부터 다시 스트레스가 기어오르기 시작하면서, 그 스트레스는 내 목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허브티를 끓이기 시작했는데, 마리아가 어느 사이에 옆에서 신문을 보며 웃고 있었다.
“쿠하하핫! 수수께끼 미소녀! 하하하핫! 카일이여. 차라리 이 모습 그대로 아테리카 학원에 편입하면 될 것 같은데, 배움의 장소로 다시 들어갈 건가? 하하핫!”
이게 무슨 여장소설도 아니고, 여장까지 하면서 그 고급진 학원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물론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럴 바에 그냥 여기서 레시아나 루시피나에게 1:1로 마법을 배우는 편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적어도 거기에는 마법사의 길 최상급 이상이 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레시아와 루시피나는 적어도 달인급.
그렇기에 내가 거기에 갈 일은 전혀 없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몰라도, 프리트론에서 소동을 제압한 수수께끼 미소녀가, 설마 남자에 파이론에서 악평으로 자자한 잡화점에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을 테니까.
가장 큰 걱정은...루니아 누나와 루노아 씨가 그 자리에 얼굴을 비췄으니, 따지고 보면 마리아와 루시피나까지, 한 자리에 다 같이 있었으니까, 전부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 수수께끼 미소녀를 카린 마냥 죽었다고 태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그 자리에 있던 목격자들을 전부 태우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 때. 잡화점의 문이 거칠게 열리기 시작했다.
“여어! 평민! 놀러 왔다고?”
검은 제복의 황금해골이 왼쪽 가슴에 장식이 되어있는 수사관인 레이비스 씨는, 밖에 날씨를 알리는 듯 윗옷을 잡고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며 체온을 낮추고 있었다. 그 후에 허브티를 다 끓여서 내 찻잔에 따르자마자, 레이비스 씨는 그 뜨거운 것을 시원하게 원샷을 하고 난 뒤에,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보다 목은 괜찮으세요? 입은 안 데였나? 무슨 강철로봇도 아니고 저 뜨거운걸 단숨에 들이부어?
“그럼...어제 그 슬라임인지 뭔지 난동 부렸던 곳에 갔던 사람 손?”
그냥 이곳이라고 확정하고 수사하러 온 거구나?
어쨌든 레시아가 레이비스에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이유로 뺀질이가 어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거지?”
그러자.
“그야 당연히 그 수수께끼의 미소녀를 찾아서 학원장에게 데려가기 위함이지. 애초에 너무 신출귀몰한 거 아냐? 분명 이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성격은 딱 한 사람밖에 없는데 말이지. 안 그래? 평민?”
조용히 잡화점 밖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내 모습을 포착한 듯. 황금색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음...판사님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난 판사가 아냐. 수사관이지. 그날 네가 날뛴 것은 꽤나 운이 좋지 않았어. 우리들의 왕이 그 자리에서 함께 보고 있었거든. 물론 학원에서 벌어진 사고는 좋지 않았으나, 마침, 네가 나타나서 단숨에 해치우는 모습을 보고, 실수를 무마한 셈이 된 거지. 문제는...”
“문제는?”
항상 레이비스 씨가 저렇게 뜸을 들일 때마다, 뭔가 불안해서 미치겠다니까? 저번에도 뜬금없이 “너! 납치 당해라!”라는 말 때문에 달까지 끌려간 기억까지 있으니까.
“특별히 상을 내려주기 위해, 이름과 사진을 찾아보려고 해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잖아? 물론 루니아가 멋대로 끌고 가서 여장시켰다고 나에게 말했을 때는,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넘길 수 있느냐는 거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을 때는, 이미 나를 쏘아 보면서 “이거 어떻게 할 꺼야? 빨리 해결책이나 말해.”라고 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살벌한 눈빛이 말하고 있다.
“그냥 다른 사람이 그 모습으로 변신을 해서, 위장입학을 하면 되지 않나요? 뭘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하하하.”
애초에 변신마법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럼 루시피나와 레시아 중 한 명이 변신해서 아테리카 학원에 존재하기만 해도, 그 문제는 식은 죽 먹기로 해결되는 일이다. 오랜만에 머리를 잘 굴렸군! 잘 했어! 카일!
“멍청하기는...그러면 평민 네 녀석 고유의 마법은 어떻게 할 건데? 그때 분명 새벽<Daybreak>을 사용했잖아. 게다가 약간 청록 빛으로 띄는 마나는 너 이외에 없다고?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변신한다고 해서 마나의 색상이 달라질까? 그건 개안이 3단계만 올라가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아테리카 학원 중등부로 올라가면, 마법사 지망생은 전부 개안 3단계를 한 상태란 말이지.”
“...어...음...”
단순한 변신마법으로는 다른 이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그보다 개안에도 단계가 있다니 또 다른 공부가 되었군.
“또 다른 공부가 되고 나발이고 빨리 해결책이나 생각해!”
아무래도 내 독백을 읽었는지 레이비스 씨의 인상이 험악해지면서, 내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레이비스 씨? 이렇게 과격한 성격이 아니잖아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에요?”
“오늘 이내로 그 소녀에 대한 신변이 확실해지지 않으면, 왕국 수사대가 모든 대륙에 퍼져서 수색해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내가 수색예정인 지역이 ‘리벌트’. 북부지역에 있는 만년설의 제국이란 말이야! 난 추운 것이 질색이니까 당장 해결책을 내놔! 안 그러면, 설녀 코스프레를 시킨 다음에 리벌트에서 얼어 죽여주마!
레이비스 씨는 추위에 약한 모양이다.
애초에 그 소녀가 뭐길래 찾으려고 하는 걸까?
“그보다 왜 찾으려고 하는 거에요? 그 수수께끼인지 보물찾기인지 하는 미소녀를? 왕국 수사관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잘 알겠으나, 아직 학원측의 입장에 대해 듣지 못했거든요?”
왕국 측은 특별한 상을 내리기 위해, 왕국 수사관들은 고향을 떠나 저 멀리 타지에서 일하기 싫어서. 레이비스 씨의 경우에는 추운 것이 싫다는 것은 잘 알겠으나, 아직 학원 측의 입장은 듣지 못했다.
“아테리카 학원은 무수히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야.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은 학원 내에 치안을 담당하는 인원이 부족하거든. 그 인원을 채워야 하니까 학원장도 자신의 학생이 아니지만, 스카우트를 하려고 하는 거야.”
그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네...
“그렇다고 해도 여장을 하면서 거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장은 이제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으나, 레시아가 입을 열자 모두가 얼어붙은 듯이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주인이 누굴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되지 않는가? 선생으로 초빙한다거나, 그 소녀가 사실 주인의 제자였다는 정보까지 뿌리면, 그 제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주인은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이미 나를 떠나고 여행을 떠났다고.”
마지막 말은 내가 예상한 말이지만, 아무래도 레시아의 생각과 같았나 보다. 그건 그렇고...
“나를 스승으로 찾는다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학원장이 속아 넘어줄까요?”
레시아는 나를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학원장이야 말로,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왕이야 말로 속아 넘어갈 수 있다. 그 이유는 주인 스스로 잘 알지 않는가?”
내 스스로가 잘 안다고?
아!
“나는 엘티노스 잡화점의 주인이지!”
기쁜 마음에 레시아를 들어올려 끌어 안은 뒤에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역시 사역마 하나는 제가 잘 둔거 맞죠! 어쩜 이렇게 영특한 생각을!”
“아서라...지금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활발한 감정표현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주인은 그곳에 초빙될 수 있기도 하고,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학원의 선생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러니 최소한 선생으로 일하고 싶지 않으면, 그 안에서 적당히 말하고 바로 나오는 게 좋다.”
레이비스 씨는 옆에 가만히 서서 보다가, 생각을 전부 정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그 수수께끼의 소녀는 없는 셈으로 하자고, 대신 네가 스승으로서 아테리카 학원에 다녀오는 걸로 해. 하긴 그런 제자를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배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학생들의 능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평민을 선생 취급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선생이 되는 건은 거절하면 되잖아요? 애초에 그녀가 특별한 케이스라고 하면 되니까.”
레이비스 씨는 잡화점 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학원장이 그리 만만한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야.”
레이비스 씨가 나간 이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좌표마법으로 1층에 물품을 이리저리 배치하고 있었다. 가끔 루시피나가 만들어주는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밖에 뜨거운 공기가 이리저리 아지랑이를 그리며 춤을 추고 있을 때.
-풀썩.
창문 밖에서 누군가가 쓰러져있었다.
“...이건 또 뭔?”
마리아는 밖에 있는 사람을 확인 한 뒤에 입을 열었다.
“말린 오징어로 만들면 되는가?”
“그냥 들여보내요. 사람은 오징어가 아니니까요.”
30대 중반의 여성이 “물...”이라는 단어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루시피나가 마법으로 물을...
“하이드로 펌프!”
-파아아아!
“그걸 왜 날려! 이 거북왕아!”
거대한 물줄기가 잡화점 밑에서 5번정도 솟구친 이후에, 수재민이 되어버린 나는 루시피나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루시피나는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는 듯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에? 드래곤들은 이정도 마법으로 날려줘야 정신차리던데?”
“그 드래곤의 크기와 이 사람의 크기를 생각하세요!”
루시피나는 나의 말에 잠깐 멍하니 생각하다가, 혀를 내밀고 윙크하며 외쳤다.
“...데헷!”
“귀여우니까 하지마!”
정신 없이 지나간 대화 속에서 홍수가 난 잡화점바닥에, 아까 잔혹한 태양에게 쓰러졌던 여성이 일어났다.
“상당히 나쁜 꿈을 꿨군. 마치 거북왕이 나에게 하이드로 펌프를 사용하는 꿈을 꿨어.”
“그것 참 기묘한 꿈이네요. 그나저나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그 여성은 나를 보더니...
“그러고 보니 여기는 어디지?”
“여기는 엘티노스 잡화점인데요?”
그러자 순식간에 일어나자마자 나의 두 손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오! 이곳이 전설의 대마법사 엘티노스가 남긴 잡화점이고, 그쪽이 그 수수께끼 미소녀의 스승인가! 나이가 많이 어려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제자를 배출했다니 놀랍군. 게다가 마나가 한 사람에게 소용돌이치는 이 감각!”
그런걸 알 수 있는 건가...아무튼 성급하게 붙잡은 손을 살짝 뿌리친 이후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쪽은 설마 학원장인가요?”
그러자 거리를 살짝 벌리더니 정식을 인사하는 여성.
그 여성은 이렇게 소개 했다.
“내가 바로 아테리카의 학원장. 이사벨 마그누스라고 한다. 그럼 연봉협상부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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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나저나 이거 언제 끝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