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31
131
정말로 따분한 대화가 지나가고 난 뒤에야, 리비아는 어디론가 사라진 걸로 봐선, 주인을 애타게 찾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히 도발의 강도가 매우 높았고, 질투의 표식을 가진 자는 그 도발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순간 상황판단에 의해 상대의 도발의 의도를 읽고 반격을 가하는 것이야 말로, 리비아의 진정한 기량이긴 하지만, 여전히 짐 앞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쉽게 걸리는 것은 고쳐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마계공작 대부분은 짐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나, 언젠가는 짐의 자리마저 노릴 정도로 위험하게 변화시켜놔야, 마계에 황금기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황금기가 찾아온다면 짐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타락의 물결은 마계에서 지워지게 되고, 곧 이어 천계든 인간계든 어디든 바로 공격하러 나서겠지.
애초에 본능적으로 호전적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짐과 같이 인간 마을 외진 곳에서 의자에 앉아 유유자적한 평화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
“......”
“......”
짐의 우아한 독백을 하는 도중에 왠 꼬마가 이쪽을 보고 있노라. 따라서 독백이 강제로 멈추는 기적을 맛보았다. 그보다 실물로 보나 유전 물질로 보나, 이 아이는 인간인 것을 어째서 똑바로 응시하고도 멀쩡할 수 있는가? 게다가 이 꼬마는 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들고 있는 육포를 보고 있었다.
“...먹고 싶은가?”
아이는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보고도 죽거나 심한 경우에 침을 흘리지 않는 아이라...상당히 흥미가 깊군. 게다가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한낱 인간의 아이 하나가 똑바로 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신기할 뿐이다. 따라서 그 아이에게 아깝지만 먹고 있던 육포를 던져줬다. 갓난아기도 받을 수 있을 만큼 마법으로 어느 정도 조정해서, 그 아이 손에 살포시 올려두자 얼마나 굶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사이에 육포는 사라져 있었다.
“이름은?”
“...?”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못 알아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뭐...조금이라도 대답을 할 시간을 준다면 스스로 말하지 않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지. 그러나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이름은커녕, 바람이 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이 꼬마! 짐이 묻지 않는가?”
결국 그 꼬마에게 약간 소리를 높이는 꼴이 되어버렸다. 한심하게 그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당해보면 그대들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 장담한다. 어쨌든 꼬마는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지, 짐의 눈을 똑바로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남의 이름을 알기 전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라고 했어요.”
참으로 당돌한 꼬마로군, 짐의 이름과 직책을 듣고도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시험해볼까?
“짐은 타락의 표식을 가지고 있는 현 마왕인 레프리시아다. 감히, 짐의 진명을 먼저 말하게 한 죄는 크게...”
“저는 루멘이에요.”
짐의 말을 끊고 너무 당당히 말하는 꼬마를 보며, 당황한 나머지 다음의 대사가 기억나지 않았다. 오히려 까먹었다고 해야 맞으려나? 마왕이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어린 꼬마들은 벌벌 떨어야 정상이 아닌가? 혹시 그건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대마왕보다는 곶감이 더 무섭다는 그 말?
곶감이라는 자는 대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길래, 어린 아이가 짐의 이름을 듣고도 떨기는커녕,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공기취급을 하며 자기소개를 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한번 조사를 해보도록 하자. 어쩌면 신화에 나올법한 이야기인 만큼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래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루멘이라는 작고 연약한 아이여.”
그러자 꼬마는 입을 열었다.
“오늘도 떠돌아다니면서 괜히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얻어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물론, 평균적으로 13시간 정도 돌아다니면, 하나씩은 얻을 수 있더라고요. 절박한 생산환경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끼씩은 먹고 사는 게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꼬마가 맞는지부터 의심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대부분 저렇게 생각이 깊고 철이 빨리든 아이는 고아일 가능성이 높다.
“어이 꼬마.”
“저는 루멘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한 번은 어색해서 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은 제 이름을 불러야 대답을 해드릴 겁니다.”
아우리스만 아니었어도, 지금 이 곳에서 기화시킨 다음 제거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야만적인 성격은 전대 마왕이지, 지금의 짐이 아니노라. 따라서, 짐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꼬마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루멘이라는 꼬마여. 그대는 고아인가?”
그러자 꼬마는...
“다짜고짜 아픈 기억부터 찌르고 들어오시는 걸로 봐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것을 먼저 발설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해요.”
아니...앞에서 말해주지 않았는가? 마왕이라고...
그보다 마왕보고 무례하다고 전할 수 있는 깡이 있을 줄은...
아니 잠깐만?
“혹시 눈이 안 보이는 것인가?”
“정확해요. 그보다 저의 개인적인 신상을 멋대로 파고드는 일은 하지 말아주겠어요?”
‘눈에 뵈는 것이 없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 꼬마가 짐을 직시해서 정신이 붕괴되지 않는 이유가, 가장 간단하게 눈이 보이지 않아서라니, 짐은 빠르게 고양이로 변신을 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신상을 파고드는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허나 짐은 운이 좋게도 그 잘난 마왕이니라. 마왕에게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이 있지. 심지어 그대들이 믿는 아우리스 여신보다 더욱 강대한 힘이니라. 그대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가? 아니면 강대한 힘을 지니고 싶은가? 선택을 해보거라.”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는 거 아니에요? 설령 공짜로 줘도 남이 주는 걸로 벌어먹고 사는, 저의 거지 같은 신세는 변할 따름이 없네요. 그런 것은 저의 존재가치를 더욱 없게 만들고, 저를 쓰레기로 만드는 거에요.”
정말 꼬마가 맞는 건가?
정신연령에 +80을 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할 말을 일어버린 짐은 결국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흥미가 있어서 힘을 퍼준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 그 청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이라는 곳에서 사탄이 예수를 시험하듯. 짐 또한 사탄의 입장이 되어 행한 것뿐이지만, 이 아이는 정말 예수라도 되는 듯이 거절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탄은 끈질기게 예수를 괴롭혔고, 짐은 한번 시도하고 안 되면 포기하거나 다른 걸 하는 자이니라.
“그나저나 마왕님. 질문 있어요.”
“호오? 무엇인가?”
“어째서 마왕님은 인간계를 침공하지 않는 거죠?”
어린 아이가 다짜고짜 이런 질문이라니...인간이 마왕에게 “왜 우리 영토를 침범하지 않느냐!”라고 화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원망이 서려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생각을 잠시 정리한 뒤에 입을 열었다.
“아우리스 여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주인과의 계약 내용에서 위배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인? 마왕님이라면서 주인도 있나요?”
“짐은 지금 인간계의 입장에서 사역마에 해당된다. 주종관계가 아니라 파트너의 관계로 맺어있으니 대등한 입장이지만, 주인과의 계약에서 “잡화점을 같이 해줄 사역마를 구하고 있다.”라는 말에는 인간계를 침략해달라는 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몬스터가 자주 사용하는 잡화점이라고 할 지라도, 주인은 인간이다. 주인을 무시하고 인간계를 침공하는 행위는 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다른 육포를 아이에게 건네주면서 말을 했으나, 생각해 보면 마왕이라는 자가 야망도 없이 인간계를 침범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른 마왕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하물며 공존이라는 것보단, 방관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가까운 입장이다.
뭐...방관하는 입장이 너무 따분해서, 주인이 짐을 소환했을 때. 냉큼 달려온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군요...우물우물...”
종이를 세절하는 마냥 육포가 잘려나가며 꼬마의 입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이쪽에서 질문을 해야 할까?
“루멘이라는 꼬마여, 어째서 짐이 인간계를 침공했으면 좋겠는가? 물론, 몇몇의 인간들이 평화를 좋아한다고 겉으로는 떠벌리고, 속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자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자들을 단죄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꼬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저...”
“그저?”
꼬마의 심리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하기 시작했으나, 겉으로는 멀쩡한 척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심해서 그래요. 모두가 변함없을 정도로 따분하니까요. 시설에서 숨막히며 가만히 있는 것도 그렇고, 목적의식 없이 멍하니 살고 있다가. 이대로 성장하고 그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저는 대체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걸까요?”
짐은 입을 열어 즉시 질문을 했다.
“몇 살인가?”
“12살이요.”
확실히 정신연령은 92살일려나? 정신연령은 나중에 알아 맞추도록 하고, 꼬마에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사리분별을 할 줄 알고, 신세 한탄을 하기 전에 무엇이라도 도전하려고 해보거라. 자신의 존재 의의가 없어 보여도, 세상에 나가면 의외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마련되어 있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한심할 뿐이지 않는가? 짐은 그대와 같은 나이에 마법사의 길 상급을 달성했고, 네크로멘서의 길 중급을 함께 진행했노라. 물론, 그것 이외에는 힘을 기를 방법이 많았으나, 가장 적성에 안 맞는 것을 했을 뿐.”
“마왕님은 마법과 네크로멘서가 적성에 안 맞아요?”
“짐의 적성이 가장 잘 맞았던 것은 소환사의 길과 그 외 여러 가지다. 아무튼, 짐 또한 다양하게 도전하면서 이윽고 성취를 했으니, 그대 또한 자신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애초에 시력이 없다고 해서 미각과 청각, 후각이 진보 했으면 진보가 되었지 퇴화가 되지는 않았을 터. 촉각도 마찬가지다. 우선 세공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세공사라...우물우물...”
짐이 건네주지 않은 육포를 먹고 있는 꼬마는 천천히 생각하다가...
“세공사의 길이라...좋아요. 오늘은 마왕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아서 다행이에요. 조금만 늦었어도 강물의 온도가 따듯한지 확인해보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마왕님은 돌아갈 곳이 있지 않나요? 주인이 안 찾아요?”
슬슬 주인이 마법 습득할 시간인가?
“어쨌든 이 일은 누구에도 발설하지 말거라. 마왕과 이야기 한 자체만으로 빛의 대성당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알았어요. 육포를 준 답례로 꼭 비밀로 간직할게요.”
때 마침. 엘프 여왕으로부터 염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왕님. 카일이 마법을 다 배우고 도망치듯이 빠져 나오던데요? 무슨 얀데레 미터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또 페어리 여왕이 폭주하고 있던가? 금방 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는 꼬마를 보며 작별을 고했다.
“그럼 짐은 가겠다. 다음에 봤을 때는 비상한 세공사가 되어 만날 수 있도록.”
“잘 가요. 마왕님.”
짐은 공간이동 마법이 아닌, 레버 대점프로 엘븐 포레스트까지 힘차게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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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 대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