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는 중?/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 103

FNL-Phantasm 2016. 5. 24. 01:28

103

 

당신이 눈을 떠보니 전혀 다른 세계라면?

당신은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하여 상황을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공항상태에 빠져서 갈피를 잡지 못한 체 헤맬 것인가?

...어떻게든 내 상황보다는 좋아 보이겠지.

-칸포리우스 제국의 여신의 성역 안에 있는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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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가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눈을 뜨면, 이세계에 소환 되어 앞으로 주인님이 될 사람을 멍 때리며 보거나, 눈을 뜨니까 그것 만으로 충분히 불행이 이어져서 하늘 위에서 내려오거나, 눈을 뜨니까 환생인지 나발인지 윤회사상이 심어져 있는 시스템을 통해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물론 아주 간편하고 간단한 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대표적이지만...

 

그러면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 물론 눈을 뜨니까 여장(하필이면 엘프 코스프레.)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전혀 다른 천장이 보였고, 의자에서 일어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 전까지, 새벽 4시에 잡화점을 닫고 대충 정리한 뒤에 잤던 일밖에 없었다. 이상한 토끼를 따라간 적도 없고, 기묘한 거울 속으로 들어간 적도 없었으며, 이상한 대머리 아저씨에게 빨간약도 먹은 기억이 없는데, 나는 과연 어째서 이곳에 멍하니 인형처럼 있는 걸까?

 

어라? 주인님? 일어나셨나요?”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루나가 맨 처음으로 내 시야에 비췄다. 여전히 순진한 연녹색의 눈은 내 얼굴 상태를 보고 진단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였고, 고개가 이리저리 갸웃거림과 동시에, 분홍빛의 머리카락과 토끼 귀가 움직였다. 그보다 메이드 복의 상태를 봐선 잡화점에 있는 메이드 복이 아니라, 왕실에서나 보일 법한...그래. 쇼콜라 씨가 입을 법한 고풍스러운 메이드 복.

 

루나. 여기 대체 어디야? 잡화점에서 자고 있던 나는 어디 있냐고!”

 

진정하세요.”

 

문제는 루나의 어깨에는 프리트론의 상징인 독수리가 아니라, 용을 상징하는 은색의 문양을 보아, 지금 다른 왕국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보다 이 옷 누가 입혀준 거지? 자고 있는 사이에 난 무슨 끔찍한 일을 당했냔 말이다!

 

주인 드디어 정신이 드는가? 꽤 일어나지 않아서 죽은 줄 알았다.”

 

옆에는 알게 모르게 검은 고양이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물론 마왕이지만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레시아는 태연하게 있었다.

 

레시아까지 확인 한 걸로 봐선, 제가 위에 있는 독백처럼 어디 이세계로 날아가지 않았다고 확신을 했어요.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여긴 대체 어디인지 저의 명석한 두뇌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니까요?”

 

때에 따라서는 명석함이 가출하는 머리겠지. 아무튼, 루니아가 휴가로 칸포리우스 제국에 있는 용사맞이 축제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길래, 어쩌다 보니 칸포리우스 제국에 도달하게 되었다.”

 

명석함이 때에 따라 가출하다니요? 제 명석함은 비행청소년입니까? 그보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 안에는 제가 여장을 해야 한다는 어떠한 결과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팬미팅을 한다고 들었다.”

 

그럼 저번부터 쭉 깔려온 팬미팅 복선이 이제 회수된 거냐! 애초에 거기서 나를 남자라고 알고 있다면서! 그럼 분명 여장을 안 해도 됐을 터인데? 저번에 멜로디 씨와의 악몽을 재현을 하듯 엘프 코스프레는 왜 되어 있는 걸까?

 

레시아. 그러면 저는 여장 안 해도 되잖아요? 여기 무슨 출장 코스프레 서비스 같은 거 아니잖아요? 게다가 루나와 레시아가 있다면, 어딘가에는 루시피나 씨와 마리아와 함께 왔을 것 아니에요?”

 

그러자 레시아는 짧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여기는 성녀와 무녀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여신의 성역이라는 곳이다.”

 

그런데요?”

 

레시아의 말에 나는 즉답으로 대답을 했지만, 더 이상 레시아가 말을 하지 않아 침묵이 강림을 하기 직전에, 내 명석한 머리는 레시아의 말을 토대로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설마...여기...팬미팅 장소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경비대라는 작자들도 한심하기도 하지. 레시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순식간에 절망하며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왜 하필 팬미팅 장소가 타 죽기 좋은 금남구역에서 하냔 말이야!”

 

잘 생각해보니 목소리도 변조마법이 걸린 걸로 봐선, 정말 여자인 줄 알고 들여보냈다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인데. 금발 가발도 그렇고 연녹색의 드레스도 그렇고 하물며, 신지도 않았던 흰색의 여성용 구두까지 있는 걸로 봐선, 가면 갈수록 위험해지는 성 정체성을 바로 잡기 위해, 앞으로 잠에서 일어나면 나는 남자입니다!”라고 세상을 향해서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여신의 성역이라니...

엘티노스가 직접 쓴 책에서는 여신의 성역이란 곳에 대해 나타나 있는데.

 

남자가 가면 큰일나는 Top 5.


- 저자 엘티노스


Top 3. 여신의 성역


위치: 칸포리우스 제국 중심부에 위치.


-가면 큰일나는 이유-


여신의 성역은 오로지 무녀들이 성녀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수련장과 같다.

1년에 한 번씩 가장 외모가 뛰어나고, 모든 시험에서 최우수로 통과한 무녀는

아우리스 여신이 직접 권위를 내려주어 성녀가 될 수 있다.

물론 온 대륙의 최고의 미녀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모든 남자들의 이상향과 같지만,

칸포리우스 제국의 법 중. 특별법에 의하면, 경계병 뒤에는 붉은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남자가 무슨 이유든 넘게 되는 순간,

즉시 사형을 하거나 불에 태워 죽인다고 한다.

(이야! 나도 한 때 정말 큰일날 뻔했지!)

 

다녀 온 겁니까? 엘티노스?

책의 내용을 회상하다가 지금 상황에서 쓸 모 없는 내용까지 생각해버렸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이라도 이 성역 밖으로 탈출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상황. 주변을 대충 둘러보니 창문은 모조리 봉쇄되어 있고, 나갈 수 있는 문은 정면에 있는 문 하나뿐이다. 그래도 불빛이 있는 걸로 봐서는 거대한 샹들리에 5개가 그림자 없이 비추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대로 팬미팅을 하다가 경비대든 뭐든 적발당함과 동시에, 나는 타 죽어가는 배드엔딩을 맞이하는 사태가 벌어지겠지.

 

어떤 주인공이 여장 당한 것도 서러운데, 금남구역에 던져진 이후에 발각돼서 타 죽었어요.”라고 끝 마무리를 짓게 된다면, 그건 꿈 결말과 같은 김빠지는 마무리가 될 것이기에...

 

레시아.”

 

뭐냐? 주인?”

 

지금 당장 잡화점으로 가죠.”

 

미안하지만 무리다.”

 

어째서! 댁은 마왕이잖아!

 

이곳은 여신의 성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지금 내가 조그만 힘을 발동하는 날에는, 아우리스 여신이 곧바로 달려와서 천상과 지옥의 법률이 어쩌고 저쩌고, 티리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잔소리를 듣기 싫다.”

 

티리엘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정의의 대천사인데요! 아우리스 여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여신도 악마잡이 3을 했겠지.”

 

했겠지가 아니라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냔 말이에요! 아니 무엇보다 티리엘이 진짜 천계에 존재하긴 하나요?”

 

아마도.”

 

레시아는 더 이상 귀찮은 질문은 하지 말라는 듯. 자신의 앞발을 핥고 있었다. 물론 이 이상 질문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이번엔 루나에게 말을 걸었다.

 

루나. 지금 당장 달로 돌아가자. 그리고 거기서 잡화점으로 데리고 가줘.”

 

? 지금 달에 있는 차원 장치가 보수공사로 인해서 점검하고 있다는데요?”

 

그래? 얼마나 걸리는 데?”

 

원래 정기 점검으로 2시간동안 점검하다가, 뭔가 오작동이 일어나서 긴급점검으로 3시간 소요했고. 아직도 원인이 불명이라 연장점검으로 9시간동안 사용을 못한다고 하네요.”

 

무슨 전설의 3대 명검이 다 모였군. 좋아. 일단 탈출은 내가 알아서 하는 걸로.

 

팬미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될 것 같아요오.”

 

문이 열리면서 루니아 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왔다. 아직까지 휴가 기간이라 제복차림이 아니라, 흰색의 가디건과 연분홍 빛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만간 옷을 또 사야겠네요오.”라고 중얼거리며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금남구역에 온 기분이 어떤가요오?”

 

루니아 씨...아니 누나. 제가 대체 뭘 잘못했죠?”

 

잘못이라뇨? 카일은 그저 팬미팅을 위해서 목숨을 받쳐서 희생하는, 그런 상냥한 사람으로 기억되겠죠.”

 

웃기고 있네! 그보다 지금 몇 시죠?”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다. 루니아 씨는 자신 왼쪽 손목에 있는 붉은 가죽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오후 12 31분이네요. 앞으로 29분 남았어요.”

 

29?

 

뭐가 남아요? 앞으로 제 수명이요?”

 

아뇨. 팬미팅이요오.”

 

만약에 루니아 씨가 이것까지 감안하고 설계를 해서, 나를 재우고 꾸며놓은 것이라면, 정말 큰 그림을 잘 그릴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냥 맨 처음에 목 졸려 죽을지라도, 루니아 씨를 잡화점에서 휴가 동안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루니아...누나. 지금 유서 쓸 수 있나요?”

 

종이와 펜이 없네요오. 팬들에게 펜과 종이를 받아 놓을까요?”

 

나는 다시 고개를 좌우로 저어 거부했다.

지금 써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파이론 마을에서 처음에 내가 가위바위보 대회에서 이긴 날에, 엘티노스 잡화점 규칙을 받은 날과 비슷한 기분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딱 한가지 있는데, 잡화점을 받았을 때는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는 것과, 지금의 상황은 내 정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탄로나는 순간, 순식간에 불타 죽는 엔딩을 맞이 한다는 점이다.

 

내가 머리를 감싸며 이리저리 생각을 하는 동안, 갑자기 루니아 씨가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1년에 한번 성녀를 결정하는 날이에요. 그런 귀한 구경도 같이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네요오.”

 

아 그러셔요? 누구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덜 아프게 죽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나저나 궁금한 점이 딱 하나 있었다.

 

왜 이곳의 무녀들과 백장미라는 종이덩어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루니아 씨는 마치 선생이 학생을 알려주듯 흐뭇해 하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에게는 욕구가 있듯이, 무녀들에게도 욕구를 이겨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하지만 최근에 욕구해소를 할 수 없어서 갈망하고 있던 찰나에, 제가 카일의 사진을 찍은 것이 실..로 칸포리우스 제국까지 퍼지는 바람에, 그걸로 무녀들의 욕구가 해소 되었다는 우...인 결과를 통해, 여신들의 성역에서도 백장미를 배포하고 있었지요.”

 

일부러 칸포리우스 제국까지 퍼트린 다음에, 무녀들의 욕구가 해소되었다는 결과를 통보 받자마자, 바로 백장미 2호집이든 3호집이든 뿌린 것 같은데요? 기분 탓인가?

 

어디가 실수고 어디가 우연적인 결과라는 거에요!”

 

덤으로 황녀님도 자주 구독을 누르시고 가신답니다.”

 

여긴 그게 무슨 유튜ㅂ...아니 이건 됐고! 설마 황녀님도 여기에 오시나요?”

 

팬클럽 회장님이 신걸요.”

 

이런 망할...

 

제가 남자 인건 알아요?”

 

물론이죠.”

 

화형인가?

 

그래서 비밀리에 여성들만 초대하는 팬미팅이 완성된 거에요. 빛의 대성당에 있는 대주교가 아닌 이상은 이곳에 남자들은 출입이 불가능하니까, 되도록이면 저희들만의 비밀이 되겠지요.”

 

마치 걸리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루니아 씨의 말은

 

누나에요.”

 

마치 걸리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루니아 누나의 말은, 오히려 나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보다 독백 그만 읽으시라고요!”

 

어라! 시간이 다 됐네요오. 이제 팬미팅을 시작할까요오?”

 

다시 손목시계를 본 루니아 씨는 타임오버네요! 유감입니다!”라는 듯한 어조로 닫혀 있는 문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만큼 내 인생에 험난한 날이 있을까?

아마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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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자마자 난장판으로 시작.